Strategic Communication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서 꿈을 키워 온 ‘내 집 장만’. 그러다 정말 운이 좋게 괜찮은 매물을 발견했다. 집 주인이 갑자게 해외에 나가게 됐다며 급하게 집을 내 놓은 것. ‘드디어 내 집이 생긴다’는 설렘에 밤잠을 설친 아내와 함께 부동산을 찾은 당신. 이미 집 주인과 부동산 중개인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먼저 말을 꺼내는 중개인.
“정말 좋은 기회 잡으신 거예요. 그럼, 가격은 전화로 말씀 드린 것처럼 진행하면 되죠?”
중개인의 질문을 듣는 순간, 당신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계산이 오간다. 협상 책을 통해 갈고 닦은 ‘내공’을 강호에 펼쳐 보일 순간이 온 것이다. ‘어떻게 역 제안을 해야 최대한 깎을 수 있을까?’ ‘집 주인에게 배트나(BATNA·협상 결렬 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는 있을까?’ ‘가격 말고 집 주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 등등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일단 가격 얘기는 좀 있다 하고 ‘래포(Rapport)’를 쌓아야지’라고 정리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당신의 아내가 호기롭게 외친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벅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해맑은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보는 아내. 그 모습을 보는 당신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협상을 하다가 가장 화가 날 때가 언제일까? 협상 상대가 나의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을 때? 아무리 논리적으로 얘기해도 듣는 척도 하지 않을 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참을 수 있다. 상대도 나와 같은 것을 갖기 위해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일 수도 있고 나와 아는 게 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협상 상대의 이런 모습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협상 중에 가장 화가 나고 황당할 때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우리 팀’에서 이상한 소리를 할 때다. 충분히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낼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라고 협상을 끝내 버린다거나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인데 “그럼 저희가 그건 양보해 드리죠”라고 통큰 제안을 하는 식이다. 이럴 땐 정말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낙장불입’의 원칙은 협상장에서도 통하기 때문이다.
많은 협상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있다면 무엇보다 ‘준비’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많은 협상 책에서 다양한 준비 방법을 소개한다. 협상 단계를 ‘시작 → 탐색 → 제안 → 마무리’ 등 시간순으로 구분해 상황에 따른 체크리스트를 제안하기도 하고 효과적인 제안을 위한 단계가 필요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 우리 협상팀의 마지노선을 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양보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모두 필요한 방법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협상의 각 요소들을 개별적으로만 설명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협상 준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툴(tool)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반문한다. “협상 준비? 필요 없어요. 제가 이미 수도 없는 협상을 해봤는데 다 거기서 거기예요. 노하우가 중요하지, 준비는 시간 낭비예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생각은 틀렸다. 이는 필자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많은 협상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에서 진행된 설문 조사 결과를 보자. 협상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협상을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뭔가요?” 결과가 어땠을까?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협상 경험’, 즉 노하우는 20개의 항목 중 19위에 그쳤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준비’였다. 협상 이슈에 대한 지식(2위)보다, 많은 협상 교육에서 강조하는 경청(4위)보다 ‘준비’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협상에서 준비의 중요성, 공감이 되는가? 그럼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HSG 휴먼솔루션그룹 가치협상연구소가 제안하는 답은 ‘ANT(ACE Negotiation Tool)’다. (표 1) 즉, 행동(A·Action), 인식(C·Cognition), 감정(E·Emotion), 이 3가지를 만족시키는 게 협상 3.0을 이뤄내기 위한 최고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ANT를 어떻게 활용할지 살펴보자.
0.나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다
<표 1>에 제시된 ANT 프레임워크의 세로줄 구분을 보면 행동, 인식, 감정의 각 요소들이 나열돼 있다. 이를 채우는 게 중요한 협상 준비다. 그런데 가로줄 구분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나’에 대해 쓰는 건 알겠는데 ‘상대’? 상대방의 협상 준비를 하라는 얘기인가? 이 칸에는 무슨 내용을 써야 할까?
협상은 나 혼자 머리를 써서 답을 찾아가는 수학 문제 풀이가 아니다. 나와 상대가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상대의 입장까지 같이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다. 상대의 요구사항은 뭘지, 욕구는 어떤 건지, 어떤 배트나가 있을지에 대해 협상장에 들어서기 전에 고민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협상 준비를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나’의 부분보다 ‘상대’의 부분에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채운다. ‘내가 뭘 원하는가’보다 ‘상대가 원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상황’을 아는 것이 협상을 훨씬 유리하게 만들어 주니까. 그래서 ‘나’만이 아닌 ‘상대’의 협상 상황도 함께 적어야 한다. 그럼 ANT에 대해 본격적인 설명으로 들어가 보자.
1.안건을 명확히 하라
모든 협상은 ‘이번 협상의 주요 안건이 뭔가’를 결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에 적는다. 예를 들어 보자. 구매 협상을 앞두고 있다면 ‘가격을 낮추는 것’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것’ 등의 안건이 쉽게 떠오른다. 그런데 과연 이것뿐일까? 만약 이번 협상 상대가 ‘처음’ 거래하는 업체라면 ‘품질에 대한 검증’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외국에서 생산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라면 ‘환율 문제’가 이슈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이번 협상의 주요 안건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같은 협상 멤버들과 공유해야 한다.
2.요구(Position)를 정리하라
앞에서 정한 안건에서 내가 요구하는 것을 적는다. 최대한 구체적일수록 좋다. 가격 문제라면 ‘개당 단가’인지, ‘전체 합산 가격’인지 등을 명확하게 밝히는 식이다. 이처럼 요구 내용을 명확히 할 때 팀원들 간 이견이 줄어든다. 그리고 상대는 무엇을 요구할까도 꼭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의 요구 조건과의 차이 정도에 따라 이번 협상의 어려움을 예측해 볼 수 있다.
3.욕구(Needs)를 생각하라
이제 상대의 행동(Action)을 바꾸기 위한 준비 단계다. 욕구를 안다는 건 협상을 풀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니즈의 첫 번째 요소는 바로 ‘내가 던질 질문’이다. 나의 니즈를 아는 것만큼 상대의 니즈를 아는 게 중요한데 이를 알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도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음으로 ‘Hidden Maker’, 즉 협상장에 직접 나오진 않지만 나의 협상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한다.
‘Hidden Maker’ 부분에서는 ‘상대의 Hidden Maker’를 찾는 것과 함께 ‘나의 Hidden Maker’도 생각해 봐야 한다. 당신의 협상 상대가 협상의 고수라면 당신을 움직일 수 있는 제3의 인물을 만나 이미 ‘손을 써 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협상일수록 당신 ‘주변인’에 대한 관리 역시 협상 준비 단계에서 꼭 필요하다. 이렇게 질문을 정리하고 Hidden Maker를 파악해서 나온 욕구를 정리해칸에 적어 둔다.
4.창조적 대안(Creative Option)을 만들어라
양 측의 욕구가 파악됐다면 이제 대안을 만들어 봐야 한다. <표 1>의 창조적 대안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와 ‘상대’의 영역을 구분하는 칸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안은 양 측 모두 만족해야 하는 ‘답’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요구나 욕구만 만족하는 대안은 창조적 대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래서 나와 상대 구분 없이 셀이 통합돼 있다.
ANT에서 창조적 대안은 3개의 행으로 구분돼 있다. 앞선 칼럼(DBR 117호와 120호)에서 소개한 창조적 대안을 만드는 방법을 각각의 항목에 담았기 때문이다. 상대와 ‘내기’를 거는 방식(Bet), 새로운 안건을 더하거나(Add) 협상 안건의 속성을 쪼개(Chop) 대안을 만드는 것, 다양한 안건들 간의 우선순위에 따라 교환하는 방식(Exchange) 등 협상 상황에 맞는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 보는 준비가 필요하다.
5.객관적 기준을 찾아라
이제 ‘인식’ 부분이다. ‘똑같은 결과’라도 ‘만족스럽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인식을 바꾸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객관적 기준(Standard)이다. 협상이 흥정으로 가지 않도록 하려면 기준을 정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나에게 유리한, 하지만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다양한 기준을 찾아보라. 그리고 상대는 나에게 어떤 전례 등을 활용해 기준을 만들어 낼 것인지도 고민해 보자.
6.BATNA 를 파악하라
협상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인 BATNA. 이 칸은 2개로 구분돼 있다. ‘현재’와 ‘개발’이다. ‘현재’ 칸에는 내가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을 써 넣는다. 만약 그 대안이 아주 강력한 것이라면 다음 칸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런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개발’을 생각해야 한다. 지난 DBR 109호 칼럼에서 BATNA는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상황을 바꾸거나 나의 역량을 키우는 등의 노력을 통해 개발할 수 있는 BATNA를 준비해야 한다.
ANT에서 BATNA에 대한 내용을 정리할 때는 ‘상대’의 칸에 대한 고민도 아주 중요하다. 상대가 현재 어떤 BATNA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협상 속도를 결정지을 수도, 그 대안을 어떻게 무력화시킬지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가 개발할 가능성이 있는 BATNA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준비도 할 수 있다. 이처럼 협상 준비는 ‘나’의 입장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입장이 돼 보는 과정이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