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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식품 카누

“기술을 빼는 게 더 고급기술” 원재료 맛 살려 새 시장 선점

김선우 | 118호 (2012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현태(서울시립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00원짜리가 있는데 누가 300원짜리를 사먹겠어?”

 

동서식품 경영진의 반응은 차가웠다. 설탕과 프림을 넣지 않은 고급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커피믹스와 같은 스틱 형태로 300원대에 선보이겠다는 아이디어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고가 이뤄졌던 2010년 당시 커피믹스 시장을 들여다 보면 경영진의 반응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동서식품모카골드같은 커피믹스가 너무 잘 팔렸다. 2000년대 들어 10년 가까이 두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고 국내 대형마트에 진열된 5∼6만여 개 상품을 통틀어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중 하나였다. 동서식품의 가장 큰캐시카우이기도 하다.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제품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데 잠재적으로 이 제품의 판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신제품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커피믹스는 여전히 잘 팔리기는 하지만 성장세는 조금씩 둔화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과 아메리카노로 대표되는 블랙커피에 대한 수요 증가, 다이어트 열풍 등은 커피에 대한 소비 패턴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켰다. 동서식품은 미래 시장 성장 동력으로 새로운 커피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동서식품 베버리지마케팅팀 최상인 부장(50)의 고민은 깊어갔다.

 

커피믹스의 성공- 소비 환경의 변화

커피믹스가 국내에서 처음 출시된 것은 1976년이었다. 주로 등산이나 낚시 등 레저활동을 할 때 이용하는 니치마켓 제품으로 인식됐다. 야외에서는 커피, 설탕, 프림을 따로 챙기기 번거롭다는 점을 감안해 3가지를 섞은 스틱 형태의 봉지에 넣은 것이 바로 커피믹스였다. 이 제품은 출시 후 15년 넘게 야외에서 즐기는 니치 제품으로만 인식됐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전환기를 맞았다. 다음의 3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사무실 냉온수기의 보급이다. 과거에는 차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물을 끓여야 했다. 예전에는 사무실에탕비실이라는 곳이 있어 물을 끓여 차를 준비하고 설거지도 했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사무실마다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냉온수기가 보급되면서 뜨거운 물을 구하기가 쉬워졌다. 둘째, 기업 복리후생비의 증가다. 직원들 복리후생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기업들은 사무실마다 간단하게 커피나 녹차를 마실 수 있게 구비했다. 셋째, 한국인의 급한 성격도 한몫했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타 마신다는 건 커피 따로, 설탕 따로, 프림 따로 넣어야 하는데 성격 급한 한국인에게 이런 복잡한 절차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의 최고 수혜자는 커피믹스였다. 15년 넘게 야외를 맴돌던 커피믹스는 사무실로 들어와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블랙커피의 성장

커피믹스 시장은 성장을 거듭했다. 커피자판기는 자취를 감췄고 회의하거나 담배 피울 때, 식사 후 잡담을 나눌 때 직장인들의 손에는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이 들려졌다. 2010년에는 커피믹스 국내 전체 소비가 10 t을 넘어섰다.(1) 각 기업 사무실은 물론 가게에서도 커피믹스는 필수 품목이 됐다. 하지만 커피믹스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커피 전문점의 등장이다. 한잔당 가격이 3000원 이상으로 비싸기는 하지만 맛 좋은 커피를 파는 전문점이 서울의 대형 빌딩 1층마다 하나씩 들어섰다. 여기에 여성들이 소비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분위기 좋은 커피 전문점은 만남의 장소로 인기를 모았다. 다이어트 열풍도 한몫했다. 커피 전문점의 드립커피나 아메리카노 같은 블랙커피에는 칼로리가 거의 없지만 커피믹스에는 설탕과 프림이 들어 있어 몸무게에 신경을 쓰는 소비자들은 조금씩 커피믹스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동서식품이 파악한 외국계 및 국내 프랜차이즈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수는 2006 1500여 개에서 2011년 약 15000개로 불어났다. 커피 전문점 열풍은 한국인의 커피 입맛도 바꿔놓았다. 스타벅스코리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스타벅스에서 소비되는 커피를 커피 외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간 블랙(아메리카노, 드립, 에스프레소)과 기타 라떼와 모카 등 비블랙의 2종류로 나누어봤더니 판매 잔 수로 55가 나왔다. 절반이 블랙커피를 마신다는 얘기다. 블랙커피는 첨가물이 없어 커피 자체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설탕 넣고 프림이나 우유를 넣으면 커피가 좀 질이 떨어져도 다른 맛이 덮어준다. 소비자들은 품질 좋은 원두의 블랙커피를 마시다가 점차 원두커피에 맛을 들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최 팀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 착안했다. 소비자 1인당 마시는 커피믹스 잔 수는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커피믹스는 여전히 1년에 10 t 넘게 팔리기는 하지만 2009년 이후 성장률이 5% 내외로 정체됐다. 소비자들은 이제 커피 전문점 수준의 원두커피를 원한다. 그런데 인스턴트 커피는 추출하고 농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많이 우려내려 하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원두커피를 흉내내서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한마디로 원두커피 같은 고급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믹스가 환경이 변하면서 저절로 잘 팔리게 된 제품이었다면 이번에는 변화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커피 제품을 내놓아야 할 차례였다.

 

 

카누의 콘셉트와 개발과정

커피 전문점 수준의 고급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커피 전문점이 만드는 커피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문점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추출해내는 온도는 100∼120도였다. 커피믹스에 들어가는 인스턴트 커피 추출 온도는 180도 정도다. 최대한 많이 우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맛이 떨어졌다. 고급 인스턴스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120도로 추출하는 장비를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액체인 커피를 봉지에 담지 못하니 건조를 해야 한다. 향 손실이 가장 적은 동결건조 방식을 사용하자고 했더니 연구소 등 회사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 하루 1t 분량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식으로 만들면 커피를 하루에 100㎏도 못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팀장은 120도 정도로 추출한 원두커피를 동결 건조하면 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문점 커피를 100으로 보았을 때 80∼90%는 모방이 가능하다고 봤다. 퀄리티는 높이고 1회용 스틱 형태의 제품인 커피믹스의 사용 편의성은 그대로 둔다는 전략이다. 동서식품은 전체 커피 시장의 30% 정도는 카누가 속한 블랙커피 시장 몫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카누의 콘셉트는 이런 고민을 거쳐 탄생했다.

 

제조 및 연구인력과의 갈등 신제품 개발 방향은 정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사고의 전환이다. 많은 동서식품 임직원들은 커피는 무조건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브랜드인모카골드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가격도 현재 커피믹스의 가격인 100원선에서 내놓아야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카누의 콘셉트를 설명하면이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최 팀장은 연구소에 내려가 사정을 해야 했다. 연구소 자체 공장에 파일럿 라인을 만들어 일단 샘플 생산이라도 해보자고 졸랐다. 상업화는 나중 문제였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신제품을 만들자는 마케팅 부서의 요구에 연구소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 팀장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최 팀장이 연구소 출신이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최 팀장은 1980년대에 동서식품의 최대 히트 상품인 모카골드를 직접 개발한 주인공이었다. 그는 고급 인스턴트 커피의 생산이 가능한지를 알아본 후 한 단계씩 전진하자고 연구소를 설득했다.

 

기술이 없는 게 기술 커피믹스인 모카골드는 커피 추출 후 건조, 설탕과 프림 추가 등 복잡한 공정을 거친다. 이에 반해 카누는 추출 후 건조해서 원두커피 가루 5%를 배합하는 단순한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많은 사람들은 첨단기술을 사용하고 복잡한 제조 공정을 거쳐야 더 가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먹거리는 다르다는 게 최 팀장의 생각이다. 원재료에 가까울수록 고품질이라는 판단으로 카누 제조공정에 적용되는 기술을 최대한 줄이려 했다. 하지만 복잡한 공정을 선호했던 기존 조직원들에게 이런 발상의 전환이 쉽지 않았다. 최 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문점의 원두커피는 기술도 없고 설비도 없다. 그래서 맛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볶은 원두 그 자체를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동서식품이 팔고 있는 커피믹스는 모든 첨단 기술이 다 들어가 있다. 가급적이면 손을 안 타는 게 좋은 것 아닌가? 기술을 넣는 게 아니라 기술을 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품질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을 회사 내부에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5% 200 카누에는 원두커피 가루가 5% 들어가 있다. 동서식품은 카누가 고급을 지향하는 만큼 원두 비율을 무조건 많이 하면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원두를 30% 써보니 한약 느낌이 나고 찌꺼기가 많이 남았다. 커피를 마시는데 목에 걸리면 안 되고 입에 남으면 안 된다. 그래서 25%, 20%, 15%로 점차 원두 비율을 줄여봤다. 맛은 여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미 원두커피의 85% 수준의 품질 구현했는데 굳이 원두를 많이 넣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두 비율을 5%로 해보니 입에 남지 않으면서 침전물도 없앨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커피믹스는 물의 양을 100㎖를 기준으로 하지만 카누는 물 200㎖를 기준으로 정했다. 영업 부서에서는 커피믹스와 같은 100㎖를 기준으로 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카누가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의 맛을 재현한 제품인 만큼 일반 인스턴트 커피믹스와 동일한 음용 방법으로 마시면 안 되고 커피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를 만들 때 사용하는 물의 양인 200㎖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봤다.

 

 

시음 테스트

동서식품은 2011 10월 출시 열흘 전에 전문 조사기관에 맡겨 사전 검증을 해봤다. 카누를 스타벅스 및 커피빈 커피와 비교 시음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스타벅스나 커피빈이 있는 건물의 빈 공간을 빌려 1층에서 보온병에 공수해온 전문점 커피와 카누를 비교해 봤더니 100명 중 65명이 카누에 손을 들어줬다. 한꺼번에 100명분을 준비할 수 없어 5명 단위로 반복 실험을 했다. 당초 5050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동서식품은 큰 자신감을 얻었다.

 

뉴 카페, 카누

경영진이 물었다. “가격이 300원이면 포장은 다르게 하나라고. “아닌데요.” “그러면 외관이라도 다르냐?” “똑같은데요.” “그럼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서 어떻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뭔가 차별화되는 게 있어야 한다. 구매 전까지 어떻게 소비자를 꼬실 것인가? 눈에 보이는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타당한 지적이었다. 뭔가 소비자에게 전혀 다른 제품이라는 걸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우선 이름부터 고민했다. 네이밍 업체 직원들이 의외로 쉽게 만들어 왔다. ‘뉴 커피, 뉴 카페를 뒤집으면카뉴인데발음이 어려우니카누로 하자고 제안했다. 최 팀장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객들이 보트를 먼저 떠올릴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네이밍 업체 직원들은광고를 통해 커피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할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배와 혼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결국 카누는 새로운 콘셉트의 커피믹스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해 이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패키지 디자인

여성 직장인은 까다롭다. 회사 주변에 있는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서 사무실에 들어온 다음 컴퓨터 전원 켜고 일을 시작한다. 카누가 이 자리를 대체하려면 서랍에 들어가야 했다. 커피믹스 팔듯이 180개짜리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남자 담배갑처럼 양복 주머니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서랍에 들어가든지 해야 했다. 그래서 10개짜리와 30개짜리로 만들어 서랍에 쏙 들어가게 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화를 위해 패키지 디자인을 고민했다. 전통적으로 커피 제품에는 검은색 디자인을 써본 적이 없다. 주로 화장품, 위스키와 같은 고급 제품에 검은색을 쓰지만 식음료 쪽에서는 검은색을 꺼려했다. 식욕을 돋우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커피 디자인은 대부분 커피잔이나 원두,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이미지를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카누는 이렇게 하기 힘들었다. 포장 단위가 작아 원두 사진을 넣을 공간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고심 끝에 식음료 업계의 관행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쉽게 눈에 띌 수 있도록 검은색을 사용하기로 했다. 광고를 통해 카누가 커피라는 사실을 잘 알리면 검은색 사용으로 인한 문제점을 없앨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포장이 너무 단순한 느낌이어서 글자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삼았다. 그래서 글자를 옆으로 눕혔다. 카누 제품 디자인은 ‘2011 잇 어워드(It-Award)’에서패키지 & 용기 디자인부문 베스트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본격적인 마케팅과 성장

카누의 포지셔닝은전문점 아메리카노, 원두커피를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즐기세요였다. 이를 위해 수준 높은 커피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광고 카피, the smallest café in the world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드라마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한 공유를 광고 모델로 이용해서 이런 이미지를 TV 광고를 통해 구현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제품 출시 즈음 공유가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는데 군대 가기 전에 경쟁사 제품 모델을 했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1년 전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고 군 복무 기간 중 연예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한 이미지를 줄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광고는 효과가 있었다. 동서식품이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 하는 줄 알았다며 가맹점 문의전화까지 왔다.

2011 10월 출시한 카누는 출시 보름 만에 판매 누적량 150만 개를 돌파했으며 판매액 기준으로 25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 700억 원, 내년 900억 원 매출이 예상된다. 최근에는 월 매출이 70억 원 수준으로 올랐다. 롯데칠성과 남양유업이 경쟁 제품을 출시했지만 동서식품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3)

 

카누 미니

동서식품의 국내 커피시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원두커피는 8.8%, 인스턴트 커피는 81.3%, 커피음료(RTD·Ready To Drink) 11.9%를 차지하고 있다. 원두커피 시장은 현재 구성비가 작지만 매년 16% 이상 고성장하고 있다. 장소로 보면 국내 전체 커피 소비 잔 수의 40%가 직장에서 소비된다. 직장이 가장 큰 소비 장소인 셈이다. 문제는 카누가 아직 직장 시장을 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무실에서는 보통 커피 한 종류만 갖다 놓는데 이 자리에 카누가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었다. 100㎖용 종이컵만 있는 상황에서 200㎖의 물이 필요한 카누를 타먹기가 힘들다. 그리고 100원 정도하는 커피믹스에 비해 비싸다.

그래서 동서식품은 2012 11월부터 가격과 용량을 낮춘 카누 미니를 내놓고 커피믹스가 장악한 사무실 커피 시장 공략을 추진하고 있다. 커피믹스 시장이 커진 이유는 사무실 비치 때문이었다. 사무실을 장악하기 위한 첨병인 카누 미니가 다시 한번 성공 신화를 쓸지 주목된다.

 

성공요인

①잠재수요의 포착 기업은 보통 제품 판매량을 늘리는 데 막대한 자원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1960 Theodore Levitt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논문 ‘Marketing Myopia’의 지적대로 고객의 욕구 파악이 제품 판매보다 훨씬 중요하다. 동서식품은 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커피믹스를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변화하는 트렌드를 읽고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해 고급 인스턴트 블랙커피 시장을 창출했다. 눈높이가 높아져 질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어 했지만 전문점 커피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소비자들이 많았다. 동서식품은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고급 인스턴트 원두커피 제품의 출시를 결정했다.

동서식품에서는 2005년 맥심 모카골드에서 설탕과 프림을 빼고 커피만 있는 제품을 출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맛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실패를 통해 카누 제품 개발 과정에서 고객들의 요구 사항, 니즈 등을 충분히 반영했다.

②마케팅과 생산/R&D 부서의 협업 사실 동서식품은 당장 카누와 같은 신제품을 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커피믹스의 수요가 조금씩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재적으로 기존 주력제품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는(cannibalize)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만드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특히 연구개발 과정에서 마케팅팀과 생산/연구개발(R&D)팀 간의 갈등이 문제였다. 마케팅팀에서는인스턴트 커피 시장의 성장을 예측하고 고품질의 신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생산/R&D팀에서는마케팅팀의 기획대로 새로운 커피를 만들면 생산성이 낮아진다며 제품 개발에 반대했다. R&D/생산 라인 담당자들은 기존 커피믹스를 만드는 공정에 익숙해져 있었고 R&D에 성공한다 해도 상용화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서식품은 이런 갈등을 해결했다.

신제품 성공을 위해서는 마케팅과 생산/R&D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마케팅 부서는 고객가치를 중시하고, 생산은 효율성을 중시하며 R&D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부서 간 갈등은 불가피하다. 현명한 기업은 다기능팀(CFT) 운영, 인접 공간에 사무실 배치, 순환보직(job rotation) 등으로 이들 부서 간 협력을 유도하며 신제품 성공 확률을 높인다. 동서식품의 경우 마케팅 담당자가 R&D팀 출신이었던 게 큰 힘이 됐다.

③인스턴트 커피 제조 노하우 카누 개발 과정에서 연구진은더 많은 기술이 들어가야 좋은 제품이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마케팅팀은 식품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고품질 제품이라며 연구진을 설득했다. 결국 카누는 저온에서 커피를 추출해 동결 건조하는 단순한 공정으로 만들 수 있었다. 뺄 것은 다 뺀 슬림 공정인 셈이다. 이러한 슬림 공정은 오랫동안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어온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④가격 20여 년 전 한국의 다방에서 판매하는 커피 가격은 1000원이었다. 다방 커피와 같은 맛을 내면서 뜨거운 물만 있으면 누구나 쉽고 값싸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된 제품이 맥심 모카골드였다. 그 당시 다방 커피의 10분의 1 가격인 100원에 판매됐다. 카누를 출시하면서 동서식품이 고심했던 부분은 가격이다. 스타벅스 비아가 1봉지당 1200원 상당의 고가로 출시됐고 기존에 없는 인스턴트 원두커피이기 때문에 카누가 500원은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카누는 동서식품의 철학을 그대로 승계했다. 커피 전문점 아메리카노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인 325원에 내놓은 것이다. 이 가격이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이러한 가격정책은 불황과 맞물리면서 커피 전문점 소비를 대체하는 효과도 발휘했다.

⑤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카누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었지만 소비자들에게 이를 효과적으로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동서식품은 카누의 가장 큰 고객층을 사무실에서 일하는 원두커피를 즐기는 직장인으로 정했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커피 전문점 품질의 커피를 사무실에서도 쉽게 책상에 두고 마실 수 있다는 의미로 ‘the smallest café in the world’라는 광고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했다. 검은색 포장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선우 기자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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