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A Business Forum 2012 Special Section

필립 코틀러, 사람 중심의 혁신을 말하다

116호 (2012년 11월 Issue 1)

 

 

들어가면서

 

이름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왜일까? 이름은이르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사람들이 그를 이르는 것이 곧 이름이 된다. 이름의 한자어인 명()은 저녁 석()자와 입 구()가 합쳐진 글자다. 초승달 모양에서 유래한 저녁()이 되면 입에서 소리를 내어야만 자기가 누군지 알려줄 수 있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이름, 또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인 이름, 오늘 서평에서는 세 가지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름은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그 이름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바로마케팅이라는 거대한 학문이 그 속에 담긴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틀러의 등장으로 기업경영에서 과학적이고 통합적인 방법론에 의한 본격적인 마케팅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때까지 단순한 판매기법 정도로 치부되던 마케팅을 경영과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코틀러는 마케팅을 물질적 가치를 창조하고 그 가치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며 전달해줄 수 있는 것이기에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예술이며 과학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지금도 전 세계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교과서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코틀러가 쓴 <마케팅 원리(Principle of Marketing)> <마케팅 관리론(Marketing Management)>은 마케팅의 바이블로 불린다. 그는 현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의 국제마케팅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카오틱스(Chaotics)

 

두 번째로 소개할 이름은카오틱스(Chaotics)’. 코틀러가 지은 책 이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저자들은 책 이름에 많은 걸 담고 싶어 한다. 재미있는 것은 카오틱스(Chaotics)라는 영어 단어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형을 찾으라면 아마도 카오스(chaos·혼돈, 혼란)의 형용사형인 카오틱(chaotic·혼돈, 혼란 상태인)일 것이다. 여기에서카오틱스라는 이름은 카오스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코틀러가 만들어낸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카오틱스를경제적 격동(turbulence)을 다루는 전략적 프레임워크와 플랫폼으로서 2008년에 마케팅 구루인 필립 코틀러 교수가 정의하고 발전시킨 것이다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키피디아의 정의와 책의 부제에 등장하는격동(turbulence)’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자연현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허리케인·토네이도·사이클론·쓰나미 등 모든 것을 파괴하고 세상을 대혼란에 빠뜨리는 자연재해 말이다. 또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격동을 겪기도 한다. 비행기가 흔들리면 자주 들리는 단어가 turbulence(난기류). 조종사는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어떠한 상황에서든 격동이 일어나면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은 사라진다. 그 대신 서로 충돌하는 격렬한 힘들이 세차게 몰아쳐 우리를 큰 충격에 빠뜨린다. 때로는 격동이 지속돼 경제 전반이 불황과 침체, 대공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혼돈과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는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격동이 일어나면 기업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혼돈에 대비해야 한다. 우선 격동기에 기업들은 취약성을 드러낼지 모른다. 따라서 그에 대비한 사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격동기에는 새로운 기회들이 떠오른다. 이때 기업들은 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격동의 시기에는 힘센 기업들이 경쟁기업들을 인수하거나 부도위기에 놓인 기업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한다. 혹은 경쟁기업들과 달리 핵심적인 투자를 줄이지 않음으로써 기회를 얻기도 한다. 대표 사례로 인텔의 전 CEO인 그로브는 회사를 이끌며 온갖 위협을 견뎌내 인텔을 반도체업계의 선두기업으로 만들었다. 인텔의 경쟁자는 단 한 기업에 불과했지만 그 기업이 인텔보다 성능이 우수하면서 저가인 제품을 내놓았다면 인텔은 아마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는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로브는 불확실성과 싸워야만 했다. 인텔은 임박한 위기의 조짐을 알아챌 수 있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했고 갖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시나리오별로 적합한 대책을 사전에 준비했다.

 

위기에 대처하고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시스템, 이것을카오틱스(Chaotics)’라고 부른다. 코틀러는 오늘날 기업들의 위기대응은 산발적이고 불충분한 방식에 머물러 있으므로 기업은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카오틱스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극심한 격동기를 헤쳐 나가야 할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는 무엇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혼돈에 대응하는 경영 프레임워크와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 시스템이 바로카오틱스 경영 시스템(Chaotics Management System)’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카오틱스 경영시스템의 3가지 요소인 조기경보 시스템(early warning system), 시나리오 구성 시스템(scenario construction system), 신속대응 시스템(quick response system)을 구축해 경기침체기와 같은 격동의 시기에 조직을 잘 운영하고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지금처럼 격동이 심각한 시대가 역사상 또 있었을까? 코틀러 교수는 카오틱스의 한국어판 책의 서문에 한국의 기업들도 격동의 시대를 맞이해 다음과 같이 조직의 프로세스와 전략을 새롭게 해야만 한다고 제안한다.

 

새로운 위협과 기회를 모두 감지하는 최고 수준의 조기경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대부분 단일전략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비상대책을 탈피하고 몇 개의 대안 시나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그 다음 각 시나리오에 부합하는 대응전략을 수립한다.

 

전면적인 비용절감을 감행하기보다는 쓸모없는 비용을 삭감해야 한다.

 

관리자들이 예산삭감에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기회에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조직 내 각 부서는 조직의 유연성을 높이는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경제적 격동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 책의 결론 부문에서 코틀러는 카오틱스 시스템을 추구하는 조직은 지속 가능한 조직의 핵심요소들인 반응성(Responsiveness), 견고성(Robustness), 유연성(Resilience)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 평판, 즉 기업 이름이라고 말한다. 높은 평판을 얻는 기업은 쉽게 위기를 잘 헤쳐 나가 장기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높은 평판을 가지기 위해서는 7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해리스인터랙티브는 감정적 호소, 제품과 서비스, 작업 환경, 재무 성과, 비전과 리더십, 사회적 책임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코틀러는 여기에혁신이라는 요소를 더 추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필립 코틀러가 지은 책 중에 혁신이라는 이름을 찾아 나선다.

 

혁신에서 승리하는 법

 

세 번째 이름은 이다. 보통 ER이라고 하면 병원에서는 응급실을 의미한다. Emergency Room이라는 뜻으로 시즌 15까지 찍은 유명한 미국 드라마가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필립 코틀러가 쓴 원서 , 혁신에서 승리하는 법이라는 제목을 한국에서 ER(Evolution & Revolution)로 제목을 바꿔 단 것이다. 그 뜻도 훌륭하지만 서평자에게는 카오스, 격동의 시대에 혁신만큼 응급한 것은 없다는 중의(重義)적인 뜻으로 들린다.

 

미시간대의 로버트 E. (Robert E. Quinn)근원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서서히 죽는다(Deep change or slow death)”고 말했지만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광속으로 변하는 요즘 시대에는 근원적으로 변하지 않으면빨리(fast)’ 죽는다. 이 같은 사실을 많은 경영자와 관리자들이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기에 기존 혁신 모델의 진화 필요성이 촉구된 것이다. 그것도 응급실처럼 급하게.

 

그렇다면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가? 이 책의 결론은혁신의 프로세스는 단계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이다. 기존의 여러 책에서 설명하는 혁신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등장한다. 목표설정조사연구아이디어 생성평가개발출시. 마치 줄줄이 달린 비엔나소시지라든가 제품 생산라인처럼 생긴 혁신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그림이 많다. 그러나 매주 새로운 방법론과 새로운 혁신 프로세스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는 이런 식으로 혁신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신 프로세스의 단점은 이전 단계와 이후 단계를 책임진 사람들과의 협력 없이 독립적으로 각 역할을 진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각 단계를 이런 식으로 할당하면이 단계는 내 소관이라는 식의 태도를 생산한다. 그 결과 각 단계를 맡은 주요 역할자가 프로세스의 한 부분만 책임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혁신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경우 아이디어 생산자 쪽에서는아이디어는 대단하지만 그것을 구현해내는 사람이 망쳐놓았다” “집행자가 잘못된 전략을 써서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코틀러는 제대로 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 혁신 프로세스는 현실적으로 각 단계나 국면에 개입된사람들이 상호 작용한 결과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혁신 프로세스 단계는 미리 설정할 수 없고 관련자들이 수행하는 역할이나 일련의 기능이 상호작용하면서 그 결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계가 아닌 역할을 중심으로 프로세스를 운영하면이 단계는 내 소관이라는 태도는이 단계는 우리 소관이니 각자 맡은 역할을 통해 가치를 더할 수 있는지 노력해보자고 바뀐다. 이렇게 하면 혁신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동안 모두 참여하도록 만들 수 있다. 물론 전담 팀을 구성하면 이 목적을 자연스럽게 성취할 수 있다.

 

여기서 코틀러는 혁신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a에서 f까지 이름을 붙여서 ‘A-F 혁신 모델로 소개하고 있다.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혁신 경영을 이루는 사람의이름은 바로 활성자(Activator), 탐색자(Browser), 창작자(Creator), 개발자(Developer), 집행자(Executor), 중개자(Facilitator). 어떤가. 이름이 혁신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이 중에서 창작자(creator)를 조금 더 살펴보자. ‘창작자는 혁신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아이디어를 내놓을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내는 아이디어는 혁신을 목표로 한다. 세상은 아이디어로 그득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디어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새롭고, 가치 있고, 적실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창작자들은 그저 아이디어만 내면 되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을 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아이디어를 발상할 수 있을까? 코틀러가 제시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동창조다. 공동창조(co-creation)는 아주 최근에 생긴 혁신 기법으로 아이디어 도출 과정에 고객이나 소비자를 참여시키는 기법이다. , 창의성이나 혁신 혹은 디자인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춘 기업들을 고용하지 않고 네트워크상에서 고객들과 함께하는 협력 작업방식이다. 고객위원회나 고객 패널, 즉 선발된 고객들로 표본 집단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접촉을 갖고 이들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가능성에 대해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행태도 공동창조의 일종이다. 또 자사 제품에 열정적으로 개입하는 사용자들이나 고객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공동창조에 해당한다.

 

신제품 디자인 과정에 고객들을 참여시키는 공동창조 기법을 시도한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네슬레 등에 특수 향료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부시보크앨런(Bush Boake Allen·BBA)은 고객들이 직접 디자인한 향료를 제작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공동창조 기법은 흔히 기업이 소수의 충성스런 고객들을 선정해 제품을 시험해보게 하고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받는 베타테스트 단계에서 많이 활용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할리데이비슨의 HOG(Holey Owners Group). 할리데이비슨은 열광적인 오토바이 고객들로 하여금 자사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도록 한다. 레고(Lego) 역시 공동창조 기법을 적용해 아이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받았다. 공동창조 기법으로 광고 아이디어를 만든 경우도 있다. 도리토스(Doritos)는 스낵 칩 광고를 진행하면서 대행사를 고용하는 대신 스낵 애호가들을 초대해 아이디어를 제공받았고 제일 좋은 아이디어를 제출한 사람에게 상을 줬다. 스타벅스는 여러 해 전부터 온라인 공간을 마련해 고객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또 이를 평가하도록 한 뒤 실제로 메뉴에 반영하고 있다.

 

맺으면서

 

필립 코틀러, 카오틱스, ER 등 세 가지 이름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이다. 혼돈의 시대에 의사결정은 프로세스나 시스템이 아닌 반응성과 유연성을 가진 사람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혁신을 위해 기존 경영에서는 시스템과 단계를 강조했지만 이제는 사람이 보다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조직은 반응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활성자(Activator), 탐색자(Browser), 창작자(Creator), 개발자(Developer), 집행자(Executor), 중개자(Facilitator) 중 어디에 속하는가? 정답은 모든 모습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카오스, 격동 속에서 미래의 혁신을 이뤄내는 전인(全人)적 인재상이 아닐까? 2012 11월에 한국을 방문할 필립 코틀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궁금해진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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