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 자연아래버섯
농업은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려움에 직면한 산업입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여느 중소기업 못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는 농업 벤처기업들이 있습니다. DBR이 분석한 이남주 자연아래버섯, ㈜장생도라지, ㈜하늘빛, 두리영농조합, 예산사과와인 등 5곳은 CEO의 열정과 집념,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괄목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장인정신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남들보다 한발 앞선 기술개발과 서비스를 혁신해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창출했습니다. 시작은 소박했지만 큰 꿈과 불굴의 의지로 빛나는 결실을 만들어 낸 농업인들의 이야기는 현대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값진 교훈을 줍니다.
정원은 인공의 자연이다. 보기 좋게 꾸민다는 미명하에 식물들의 몸이 뎅강 잘려나갔다. 몸의 일부가 흘러나온 단면은 붉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은 비극이다. 각종 SNS로 안부를 물어도 얼굴을 맞대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질이 좋아도 각종 첨가제로 점철된 가공 식품보다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가 낫다. 결국 자연스러움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의 성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송명진 _ Gardening Acrylic on canvas, 194x260.6cm, 2006
작가_ 송명진, 코디네이터_ 윤정미, 디자인 디렉터_ 최훈석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서진원(서울대 응용생명화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대포 공장에서 일하는 21세 청년이 있었다. 공장에서는 작업복을 두 벌 줬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기계와 씨름하다 보면 점심때쯤 작업복은 회색으로 변했다. 쇳가루에 먼지가 달라붙어서였다. 퇴근할 때쯤 옷은 다시 벌겋게 색을 바꿨다. 쇳가루에 땀이 묻어 녹이 슬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청년은 상사의 지시로 사무실을 찾았다.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있으니 잠시 들르라는 지시였다. 땀을 훔치며 사무실 문을 연 순간, 청년은 눈을 의심했다. 책상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옷은 전부 흰색이었다. 홀로 거무죽죽한 옷을 입고는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을 만큼 사무실은 온통 하다. 자신도 모르게 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청년은 다시 한번 놀랐다. 공장에서는 하루 종일 기계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할 때도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문이 닫히자 사무실 안에서 들리던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완벽한 방음이었다. 충격을 받은 청년은 공장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신음하듯 말했다. “거긴 완전히 다른 세상 같더라…” 동료들은 “우리랑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같냐”며 그에게 오히려 면박을 줬다. 그는 ‘이런 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작은 사고가 났다. 작업 중에 대포 앞에 달려 있는 나사 4개 중 하나를 부러뜨린 것이다. 나사가 하나만 없어도 대포는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공장주는 대포 값 물어내라고 다그쳤다. 안 그래도 일에 흥미를 잃고 있던 그는 공장주와 한판 붙었고 그 길로 공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좁은 면적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작물로 버섯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무릎을 쳤다. 버섯은 땅도 없고 돈도 없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작물로 여겨졌다. 그렇게 시작한 버섯 재배가 어느 덧 30년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농장은 한 해 매출만 10억 원이 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버섯 농장으로 컸다. 30여 년 전 공장에서 눈물을 삼키던 그가 바로 ‘자연아래버섯’을 이끄는 수장, 이남주 대표다.
살아남을 길은 기술개발뿐
버섯을 재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계를 다루던 그에게 버섯은 낯설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따라 할 만한 사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대표 스스로 해야 했다. 그는 우선 버섯 재배 방법을 담은 책을 여러 권 샀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여러 차례 정독한 후 실험에 들어갔다. 각종 종류의 버섯 균을 사다가 톱밥에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책에 있는 그대로 아무리 시도해도 1주일만 지나면 버섯은 죽어버렸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버섯은 생존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직 젊은데 왜 방에서 버섯만 붙들고 있느냐, 차라리 나가서 막노동을 해라’고 다그쳤다. 당시 그는 결혼해서 아내를 두고 있었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담에 수개월간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 더해져 상심이 컸던 그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다 말고 집을 나와 버렸다. 밤 12시가 넘은 때였다. 집 앞 골목을 서성이던 그는 저도 모르게 버섯 하우스 앞에 섰다. 버섯 균을 심고 자라게 하기 위해 설치한 하우스였다. 하우스에 들어가 한바퀴 돌면서 통마다 살펴봤다. 역시나 버섯 균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쓰레기 봉지에 하나씩 쓸어 담는데 그중 살아올라온 버섯 하나를 발견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버섯이 살아나온 병을 천천히 살펴봤다. 버섯을 기를 때는 버섯 균 외에 다른 균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병을 완전히 밀봉한다. 그는 병의 목을 잘라내고 비닐을 씌워 다른 균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버섯 균을 투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버섯이 살아나온 병은 입구에 씌운 비닐이 찢어져 있었다. 비닐이 찢어지면 잡균이 들어가서 버섯이 자라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그는 밤을 하얗게 세워가며 원인을 분석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탄산가스나 공기 유통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설비가 다 갖춰져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전부 감에 의존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몇 날 며칠 버섯 균이 살아나온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몰두했다. 그리고 비닐이 찢어진 병이 오히려 자체 멸균 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미 병 속에 일반 공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비닐로 아무리 입구를 막는다고 해도 완전 밀봉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비닐에 구멍을 내주면 안과 밖의 밀도 차이로 안에 있는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병 안의 공기를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 입구의 비닐이 찢어진 병에서 버섯 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직접 재배한 버섯을 수확한 그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했다. 일단 버섯 균이 살아남게 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다음은 배지(培地)였다. 버섯 균을 심고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드는 재료 뭉치를 배지라고 한다. 배지를 어떻게 만들어야 좀 더 튼튼하고 영양분 많은 버섯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그에게 던져진 다음 숙제였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수십 권의 책을 읽었다. 책에 나온 대로 셀룰로오스와 리그닌 등 각종 물질을 섞되 어떤 배지에서 버섯이 가장 튼튼하게 자라나는지를 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또 다른 배율로 섞어보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는 “재료 조합하는 일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했다”고 말했다. 실험을 반복하면서 그는 버섯 품종마다 배지 재료와 배율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그가 고안해낸 것이 장기수확형 배지였다. 그때까지의 배지는 하나를 만들어 버섯을 한번만 재배하고 버려졌다. 그는 매번 배지를 만드느니 하나 만들어서 3∼4개월 정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백 번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그는 여러 차례 사용해도 망가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장기수확형 배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몇 달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배지가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고 싶다는 요청이 전국 각지에서 밀려들었다. 그해에만 70만 개 넘게 팔아치웠다. 배지만 팔아도 어느 정도 수입이 가능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최종 목표는 버섯이었다. 그리고 이왕 버섯을 기른다면 최고 품종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는 곧 다른 실험에 착수했다. 그를 현재 위치까지 올라오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봉지재배법이 이때 개발됐다.
가입하면, 한 달 무료!
걱정마세요. 언제든 해지 가능합니다.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