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이남주 자연아래버섯

땅도 돈도 없이 시작한 버섯농사, 끝없는 연구로 ‘프리미엄 버섯’ 창조했다

최한나 | 113호 (2012년 9월 Issue 2)

 

 

농업은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려움에 직면한 산업입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여느 중소기업 못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는 농업 벤처기업들이 있습니다. DBR이 분석한 이남주 자연아래버섯, ㈜장생도라지, ㈜하늘빛, 두리영농조합, 예산사과와인 등 5곳은 CEO의 열정과 집념,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괄목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장인정신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남들보다 한발 앞선 기술개발과 서비스를 혁신해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창출했습니다. 시작은 소박했지만 큰 꿈과 불굴의 의지로 빛나는 결실을 만들어 낸 농업인들의 이야기는 현대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값진 교훈을 줍니다.

 

정원은 인공의 자연이다. 보기 좋게 꾸민다는 미명하에 식물들의 몸이 뎅강 잘려나갔다. 몸의 일부가 흘러나온 단면은 붉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은 비극이다. 각종 SNS로 안부를 물어도 얼굴을 맞대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질이 좋아도 각종 첨가제로 점철된 가공 식품보다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가 낫다. 결국 자연스러움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의 성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송명진 _ Gardening Acrylic on canvas, 194x260.6cm, 2006

작가_ 송명진, 코디네이터_ 윤정미, 디자인 디렉터_ 최훈석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서진원(서울대 응용생명화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대포 공장에서 일하는 21세 청년이 있었다. 공장에서는 작업복을 두 벌 줬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기계와 씨름하다 보면 점심때쯤 작업복은 회색으로 변했다. 쇳가루에 먼지가 달라붙어서였다. 퇴근할 때쯤 옷은 다시 벌겋게 색을 바꿨다. 쇳가루에 땀이 묻어 녹이 슬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청년은 상사의 지시로 사무실을 찾았다.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있으니 잠시 들르라는 지시였다. 땀을 훔치며 사무실 문을 연 순간, 청년은 눈을 의심했다. 책상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옷은 전부 흰색이었다. 홀로 거무죽죽한 옷을 입고는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을 만큼 사무실은 온통 하다. 자신도 모르게 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청년은 다시 한번 놀랐다. 공장에서는 하루 종일 기계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할 때도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문이 닫히자 사무실 안에서 들리던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완벽한 방음이었다. 충격을 받은 청년은 공장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신음하듯 말했다. “거긴 완전히 다른 세상 같더라…” 동료들은우리랑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같냐며 그에게 오히려 면박을 줬다. 그는이런 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작은 사고가 났다. 작업 중에 대포 앞에 달려 있는 나사 4개 중 하나를 부러뜨린 것이다. 나사가 하나만 없어도 대포는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공장주는 대포 값 물어내라고 다그쳤다. 안 그래도 일에 흥미를 잃고 있던 그는 공장주와 한판 붙었고 그 길로 공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좁은 면적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작물로 버섯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무릎을 쳤다. 버섯은 땅도 없고 돈도 없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작물로 여겨졌다. 그렇게 시작한 버섯 재배가 어느 덧 30년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농장은 한 해 매출만 10억 원이 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버섯 농장으로 컸다. 30여 년 전 공장에서 눈물을 삼키던 그가 바로자연아래버섯을 이끄는 수장, 이남주 대표다.

 

살아남을 길은 기술개발뿐

버섯을 재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계를 다루던 그에게 버섯은 낯설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따라 할 만한 사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대표 스스로 해야 했다. 그는 우선 버섯 재배 방법을 담은 책을 여러 권 샀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여러 차례 정독한 후 실험에 들어갔다. 각종 종류의 버섯 균을 사다가 톱밥에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책에 있는 그대로 아무리 시도해도 1주일만 지나면 버섯은 죽어버렸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버섯은 생존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아직 젊은데 왜 방에서 버섯만 붙들고 있느냐, 차라리 나가서 막노동을 해라고 다그쳤다. 당시 그는 결혼해서 아내를 두고 있었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담에 수개월간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 더해져 상심이 컸던 그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다 말고 집을 나와 버렸다. 12시가 넘은 때였다. 집 앞 골목을 서성이던 그는 저도 모르게 버섯 하우스 앞에 섰다. 버섯 균을 심고 자라게 하기 위해 설치한 하우스였다. 하우스에 들어가 한바퀴 돌면서 통마다 살펴봤다. 역시나 버섯 균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쓰레기 봉지에 하나씩 쓸어 담는데 그중 살아올라온 버섯 하나를 발견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버섯이 살아나온 병을 천천히 살펴봤다. 버섯을 기를 때는 버섯 균 외에 다른 균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병을 완전히 밀봉한다. 그는 병의 목을 잘라내고 비닐을 씌워 다른 균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버섯 균을 투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버섯이 살아나온 병은 입구에 씌운 비닐이 찢어져 있었다. 비닐이 찢어지면 잡균이 들어가서 버섯이 자라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그는 밤을 하얗게 세워가며 원인을 분석했다. 이 대표는지금은 탄산가스나 공기 유통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설비가 다 갖춰져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전부 감에 의존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몇 날 며칠 버섯 균이 살아나온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몰두했다. 그리고 비닐이 찢어진 병이 오히려 자체 멸균 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미 병 속에 일반 공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비닐로 아무리 입구를 막는다고 해도 완전 밀봉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비닐에 구멍을 내주면 안과 밖의 밀도 차이로 안에 있는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병 안의 공기를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 입구의 비닐이 찢어진 병에서 버섯 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직접 재배한 버섯을 수확한 그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했다. 일단 버섯 균이 살아남게 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다음은 배지(培地)였다. 버섯 균을 심고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드는 재료 뭉치를 배지라고 한다. 배지를 어떻게 만들어야 좀 더 튼튼하고 영양분 많은 버섯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그에게 던져진 다음 숙제였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수십 권의 책을 읽었다. 책에 나온 대로 셀룰로오스와 리그닌 등 각종 물질을 섞되 어떤 배지에서 버섯이 가장 튼튼하게 자라나는지를 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또 다른 배율로 섞어보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는재료 조합하는 일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했다고 말했다. 실험을 반복하면서 그는 버섯 품종마다 배지 재료와 배율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그가 고안해낸 것이 장기수확형 배지였다. 그때까지의 배지는 하나를 만들어 버섯을 한번만 재배하고 버려졌다. 그는 매번 배지를 만드느니 하나 만들어서 3∼4개월 정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백 번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그는 여러 차례 사용해도 망가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장기수확형 배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몇 달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배지가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고 싶다는 요청이 전국 각지에서 밀려들었다. 그해에만 70만 개 넘게 팔아치웠다. 배지만 팔아도 어느 정도 수입이 가능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최종 목표는 버섯이었다. 그리고 이왕 버섯을 기른다면 최고 품종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는 곧 다른 실험에 착수했다. 그를 현재 위치까지 올라오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봉지재배법이 이때 개발됐다.

 

 

봉지재배법을 개발하다

당시 이 대표는 수확한 버섯을 재래시장에 도매로 팔았다. 그럭저럭 팔려나가기는 했지만 포장도 하지 않고 수확한 그대로 내다팔다 보니 다른 농장에서 생산되는 버섯들과 차별성이 별로 없었다. 배지를 팔아 얻는 소득 외에 버섯만으로는 적자였다. 이런 상황이 10년간 지속됐다. 이 대표는한때 집에 쌀이 떨어졌을 정도로 심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에 쌀 떨어졌다던 그날이 안사람 생일이었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가장 큰 문제는 버섯 값이 자꾸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이 대표가 버섯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때 버섯은 균상재배가 일반적이었다. 균상재배는 넓은 선반에 볏짚이나 톱밥 등을 깔아 균을 심고 수확하는 모든 과정을 한자리에서 하는 재배 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5∼6년쯤 지났을 때 병재배가 빠르게 확산됐다. 병재배는 병 속에 배지를 넣어 병마다 버섯을 길러내는 방법을 말한다. 균상재배에 비해 초기 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버섯 농가의 대부분이 병재배로 돌아서면서 재배량이 늘었고 가격이 하락했다. 배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속재료 가격은 오르는데 버섯 값이 떨어지면서 적자가 불가피했다.

 

채산성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 대표는 특히 병재배를 통해 길러지는 버섯이 인위적이라고 판단했다. 버섯의 영양분은 대부분 갓에 들어 있다. 따라서 갓이 크고 넓을수록 좋은 버섯이다. 그런데 병에서 키운 버섯은 먹고 자랄 수 있는 양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갓이 작다. 병 위로 올라오면서 자라기 때문에 대가 길어진다. 이 대표는야생에서 자라는 버섯을 보면 대가 짧지만 통통하고 갓이 넓게 펼쳐져 있다병재배를 통해 길러지는 버섯은 버섯 같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수익성도 확보하면서 병재배를 대체할 만한 방법을 고민하던 이 대표는 어느 날 농민신문을 들추다가 한 장의 사진을 봤다. 일본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부가 배지를 매달고 있는 버섯을 들고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는사진을 보는데 배지가 병에 담겨지는 것보다 컸다. 크기가 딱 비닐봉지만 했다. 봉지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실험에 착수했다. 봉지 안에 배지를 담고 그 안에 버섯 균을 심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자 버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러진 버섯은 병에서 기른 버섯과 비교해 확연히 달랐다. 대가 짧고 굵으며 갓이 눈에 띄게 컸다. 빛깔이 곱고 색이 선명했다. 양분이 충분하게 공급되면서 병에서 자랄 때보다 버섯 갓이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적인 재배법으로 키워 맛과 영양이 우수한 버섯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여기저기서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10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남주표 버섯이 세상에서 인정받은 첫 성과였다.

 

그러나 이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병재배는 물론 봉지재배법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배지를 비닐에 담는 과정을 사람이 일일이 달라붙어 직접 해야 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시간과 비용을 많이 잡아먹는 이 과정을 자동화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이 대표는 아예 직접 기계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배지를 기계로 담을 수 있으면 훨씬 빠르고 편하며 싼 값에 버섯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발한 기계를 시운행하다가 아내의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기계 개발에 성공했다. 기계는 알맞은 양의 배지를 측정해 봉지에 담는 과정을 대체했고 덕분에 버섯 재배에 한층 힘이 붙었다. 이전까지는 가장 중요한 과정을 사람 손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버섯 재배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기계의 힘을 빌리면서부터 본격적인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또한 단계별 재배 과정을 분리 진행할 수 있어 이전보다 체계적인 재배 및 관리가 가능했다. 이 대표는 살균실과 냉각실, 배양실, 생육실 등 재배 과정별로 별도 공간을 두고 버섯을 기르기 시작했다. 작업은 빨라졌고 생산량이 늘었으며 버섯의 질은 더 좋아졌다. 기존 버섯보다 맛과 영양이 우수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해지자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는기계공으로 일했던 몇 개월의 시간이 이런 과정에 도움이 됐다인생에 쓸데없는 시간이란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고품질 소량 생산의 기반을 닦다

매출이 늘면서 공장도 확장했다. 1농장에 이어 제2농장을 지었다. 2농장을 짓고 얼마 안 됐을 무렵 그는 아는 사람을 통해 한 컨설턴트를 소개받았다. 그의 버섯 재배에 또 다른 도약 계기를 마련해준 컨설팅이 이때 성사됐다. 이 대표는 컨설턴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새로운 시각에서 버섯 재배 및 판매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5000만 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남들이 재배하는 버섯을 기르기보다는 남과 다른 방식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버섯 재배가 어느 정도 안착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가 어려웠다. 외부와 접촉할 기회도 잘 없고 늘 하던 대로만 하다 보니 변화가 없었다. 3자의 관점에서 버섯 사업을 총체적으로 진단해보고 싶었다.”

 

몇 달간 진행된 작업 끝에 컨설턴트는 크게 세 가지를 조언했다. 첫 번째는 CI(Corporate Identity) 제작이다. 그때까지 그에게는 딱히 정해진 브랜드가 없었다. 그저 수확하는 대로 가져다 팔았을 뿐이다. 컨설턴트는 그에게 브랜드로 쓸 만한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라고 했다. A4 두 장에 걸쳐 수십 개를 적었더니 그중 받침이 없고 발음이 쉬우며 사람들에게 빠르게 각인될 만한 이름을 골라줬다. 그 이름이 바로 지금의 브랜드이남주 자연아래버섯’이다. 이 대표는자연 품성을 닮은 버섯을 재배하겠다는 목표가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아 가장 적당한 이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인증이나 자격증을 취득하라는 것이었다. 이남주표 버섯의 품질을 입증할 만한 공적 인증을 따서 홍보에 활용하라는 내용이다. 그는좋은 버섯을 재배해서 보여주면 되지 인증이니 자격증이니 하는 것들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방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좋은 버섯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버섯을 버섯 자체로만 보지 말고 다양한 시장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이 대표가 버섯을 재배한 지 어느 덧 20년이 훌쩍 넘었고 봉지재배법과 톱밥주입기 등 남보다 먼저 개발한 방법들이 많았다. 이는 교육과 후계 양성이라는 무형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는 원천이었다. 또한 버섯은 식용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버섯에서 추출한 색은 염색용으로 쓸 수 있다. 또는 버섯 균으로 쓰레기를 분해하거나 폐유를 정화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먹는 걸로만 알았던 버섯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버섯 재배 20년이 넘어가면서 습관적으로 관행에 따라 하던 일들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컨설팅 결과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한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무조건 배제하지 않고 가급적 적극 수용하려고 했다. 버섯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서 받았던 것이 오히려 다양한 관점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판로 개척 및 사업 다각화

버섯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 확보되면서 이 대표는 확실하면서도 고정적인 유통로를 뚫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환경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올가와 생협연대, 한살림 등에 제안서를 내고 버섯을 보냈다. 가장 먼저 연락해 온 곳이 생협이었다. 생협은 질좋은 버섯을 원활히 공급해준다면 1년 안에 이 대표가 생산하는 버섯의 거의 대부분을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다른 곳에 비해 매장이 많고 가정 주문량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이 대표는 생협과 손을 잡았다. 처음 3개월간 판매한 버섯은 한 달에 30만 원어치였다. 일단 시장성을 보기 위해 소량만 판매대에 올린 것이다. 이 대표는 택배를 쓰지 않고 생협 물류센터까지 직접 30만 원어치 버섯을 날랐다. 여주에서 군포까지 3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버섯을 싣고 왕복하자 물류센터에 있는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연에서 크는 그대로의 버섯을 맛볼 수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6개월 만에 1년 재배량을 모두 팔았다. 가격도 한층 비싸게 받았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버섯은 200g 300∼400원 정도지만 이 대표가 생산한 버섯은 이보다 5∼6배 비싸다. 생협을 고정 거래처로 두면서 판매에 힘이 붙었다. 생협은 좀 비싸더라도 질 좋은 식품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주로 찾는, 이른바 프리미엄 시장이다. 이 대표의 버섯은 이 시장을 찾는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현재 이 대표가 생산하는 버섯의 90% 이상이 생협에 납품된다.

 

2농장을 지으면서 이 대표가 구상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버섯 체험농장이다. 단지 버섯을 한번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버섯의 특성을 이해하고 좀 더 관심 있게 지켜볼 수 있는 학습장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버섯을 구경하고 버섯이 재배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직접 따서 맛보기도 하는 체험농장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이 농장은 현재 농림수산부가 지정한 전국 50개 현장실습교육장 중 하나다. 지금도 제2농장을 따라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사시사철 버섯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둘레길이 있다.

 

한편 이 대표는 교육과 후계 양성에도 힘을 쏟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 농업고등학교나 농과대학 교사들, 버섯 농가 주인들, 버섯을 재배하겠다는 생각으로 귀농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이 대표는지금까지 30년 넘게 한길만 걸어오면서 누적된 경험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강단에 선다내가 잘하는 것이 버섯 키우는 일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체험농장과 교육을 통해 벌어들이는 부수입은 연간 8000만 원에 이른다. 버섯이나 배지를 팔아 버는 소득보다는 적지만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성공요인

1.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독자적인 가치 확보

이남주표 버섯이 빛을 본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버섯들과의 차별화다. 병에서 자란 대부분의 버섯들은 대만 길고 갓이 작다. 반면 이 대표의 버섯은 큰 갓을 자랑하며 모양과 영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자연에서 자라는 모습 그대로를 재연했다는 점을 인정받으면서 소비자들은 일반 버섯보다 5∼6배 비싼 값을 주고 사먹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 같은 차별성은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 개발에서 비롯됐다. 버섯을 재배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이 대표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고 봉지재배법과 톱밥주입기 등을 개발해 시장을 주도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업종에는 늘 비교 대상이 있다. 이남주가 생산한 느타리버섯은 A농장에서 생산한 느타리, B농장에서 생산한 느타리와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비교 대상을 월등하게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면 경쟁 구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아예 다른 제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 역시 이런 점에 착안했다. 봉지재배법을 개발한 후 그의 버섯은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포지셔닝했다. 이전까지는 A농장 버섯의 가격과 B농장 버섯의 가격을 보고 가늠해서 자신의 버섯 가격을 결정했다면 봉지재배 이후부터는 A버섯도, B버섯도 줄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무기로 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다. 다른 농장에서 1000원 받으니까 나도 1000원 받겠다는 식이 아니라내 버섯은 3000원어치 가치를 지니니까 3000원 받겠다는 접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또한 새로운 시장 창출의 토대가 됐다. 그전에는 납품하려면 기존 제품을 밀어내고 새로 입점해야 했지만 비교 불가능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후부터는 기존 제품과 같은 시장을 두고 다툴 필요가 없었다. 이 대표는버섯을 시장에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입점해 있던 농장주들에게 항의를 많이 받았는데 봉지재배법으로 재배한 버섯을 팔면서부터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2. 효과적인 브랜딩으로 프리미엄 시장 공략

이남주 자연아래버섯이라는 이름은 자연 그대로를 추구한다는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봉지재배법으로 길러진 버섯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이름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이름은 매출에도 도움을 줬다. 이름만 듣고도 버섯을 사겠다는 도매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 네이밍이었던 셈이다.

 

특히 이 이름은 프리미엄 시장에서 잘 먹혀들어갔다. 값이 더 비싸도 질 좋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자연 닮은 버섯을 길러낸다는 브랜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결국 생협이라는 탄탄한 매출처를 확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생협에서 매년 일정량 이상 소비되면서 꾸준한 매출을 올릴 수 있었고 경영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3. 재배 과정의 체계화 및 기계화

농작물 재배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전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단계별로 강조하거나 생략할 대목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감에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거나 상황에 따라 재배량 및 방법을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식으로는 재배 공정의 체계적인 관리가 불가능하다.

 

이남주 대표는 생산 과정에 필요한 기계를 직접 만들어 재배 작업을 일률화했다. 버섯 균을 심은 봉지를 늘어놓고 시작부터 끝까지 한곳에서 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배지의 잡균을 없애는 멸균실, 고온에서 멸균한 배지를 식히는 냉각실, 버섯 균을 주입하는 배양실, 버섯이 본격적으로 클 수 있게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는 생육실 등 각각의 공간을 만들고 과정별로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버섯의 맛과 질을 높인 것은 물론 이남주표 버섯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매출 증대에 영향을 미쳤다.

 

4. 사업 다각화

버섯만 길러 팔았다면 지금처럼 이름 있는 농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버섯뿐만 아니라 버섯이 먹고 사는 배지를 스스로 개발해 팔면서 버섯 전문 농업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또한 버섯을 식용으로만 보지 않고 교육 자료로 활용해 체험학습장을 만들어 소비자와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곳을 방문해 버섯이 어떻게 길러지고 자라는지를 보고 겪은 소비자들은 충직한 단골이 됐다. 또한 버섯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직접 교육에 나서면서 그는 진정한 전문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모든 활동은 주력 사업인 버섯 재배 및 판매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5. 컨설팅 등 외부 조언 적극 수용

농가에서 컨설팅을 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이 대표가 컨설팅을 받기로 결정한 때는 온갖 시련을 겪고 이남주표 버섯으로 이미 시장에서 인정을 받던 시기였다. 컨설팅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관행에 의존해서 변화와 혁신 없이 사업을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제3자적인 시각에서 처한 상황을 조망하기 위해 컨설팅을 결정했다. 그리고 버섯을 모르는 사람이 낸 아이디어라고 배척하지 않고 컨설턴트의 조언을 신중하게 듣고 실천에 옮겼다. 이는 열린 사고와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과적으로 이남주 버섯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