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vation in Smart Economy

애플이 차를 만들면 끄지 않아도 될까

113호 (2012년 9월 Issue 2)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생활수준은

과거 누군가의 혁신 덕분이다.

Innovation involves finding a new and better way

of doing something.

Much of our modern society is based on innovations

that have occurred in the past

that provide us with the standard of living we enjoy today.

- Iowa State University Extension,

Peter Drucker and Innovation, 2010

 

맥과 윈도

 

얼마 전 미국 맥도널드 매장에서 무선인터넷 사용방법을 안내한 자료가 화제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Windows) 운영체계를 사용하는 PC의 경우 Windows XP Vista 중 어느 OS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무선인터넷 접속법도 다르고 최대 7단계를 소비자가 직접 설정해야 했지만 애플의 맥(Mac) 운영체계의 경우 단지 3단계만 거치면 접속이 이뤄졌다. 사용자 경험을 강조하는 애플의 전략이 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사례였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사실 컴퓨터가 무선인터넷 망에 접속하는 원리는 윈도PC냐 맥이냐에 따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컴퓨터공학적으로 보았을 때 총 10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세스라면 윈도의 경우 그중에서 7단계를 소비자가 직접 조작하고 나머지 3단계를 컴퓨터가 처리한 것이고 맥의 경우는 소비자가 3단계만 조작하면 나머지 7단계를 컴퓨터가 처리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들이 애플의 엔지니어들보다 능력이 떨어져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품설계 시에 고객의 경험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얼마나 염두에 뒀는지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TV의 틀이 깨진다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소비자의 경험이나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라는 차원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생산할 수 있는 제품 종류에 따라 영역을 나누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습관은 혁신을 가로막는다. 이미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영역이 파괴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가 바로 TV. 그리고 구글과 애플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예전에는 ‘TV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사각형에 안테나가 달렸거나 다리가 달린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림 2의 왼쪽 두 개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소수다. 대부분 그저 사각형의 모습을 생각하거나 사각형 안에 화면이 있는, 즉 사각형 안의 사각형을 생각한다 (그림 2의 오른쪽과 같은 모습이다). 이제 TV 기술이 너무도 발전해 안테나나 다리 같은 것은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안테나 혹은 다리가 없는 사각형의 모습은 크기와 무게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스마트폰과 다른 점이 없다. 단지 외관만이 아니라 기능으로도 구별 혹은 정의하기 어렵다. TV로는 방송을 보고 휴대전화로는 전화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스마트폰으로도 TV를 볼 수 있고 TV로도 인터넷을 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방송국에서 공급한 콘텐츠를 시청자가 TV를 통해서 보는 방식이 대세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이에 변화가 올 것이다. 먼저 주목할 것은 콘텐츠의 변화, 정확히 말해서 콘텐츠 소스의 변화다. 과거의 TV 콘텐츠는 방송국에서만 제작 가능했지만 점점 외주제작 방식으로 바뀌었다. 외주제작도 아직까지는 전문 회사나 전문가 집단이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여기에 일반인도 포함될 것이다. 이미 YouTube 같은 UCC(user-created contents) 매체에서는 일반인이 만든 동영상을 하루에 수억 명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감상하고 있다.

 

모바일로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던 사람들이 집에 와서는 TV로 방송국이 제작한 콘텐츠만을 계속 볼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물론 현재 인터넷 등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영상을 TV로 보기는 불편하다. 하지만 이게 가능해진다면 소비 패턴도 바뀔 수 있다. 바로 이런 고민 끝에 구상된 제품이 구글TV. 구글이 구축하고자 하는 세상은 TV 관련 콘텐츠를 구글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보는 시스템이다. 수많은 동영상 콘텐츠 중에서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검색 서비스를 통해 아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창조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글은 “TV가 웹을 만나고, 웹이 TV를 만나다(TV MEETS WEB, WEB MEETS TV)”라고 주장한다. 이게 성공하면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 접속과 TV를 통한 인터넷 접속을 모두 구글을 통해서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한편 애플은 구글과 다른 차원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강조한다. 애플은 TV라는 제품의 본질이 디스플레이가 아닌 방송 송수신이라고 정의했다. TV와 모니터를 구분하는 기준이 방송 송수신장치의 유무 여부다. 이와 같이 제품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토대로 애플은 송수신 장치를 장악해 TV가 속한 생태계를 새로운 스마트 생태계로 바꾸려 하고 있다.

 

TV의 기본 기능은 방송을 보는 것이므로 TV 송수신기만 있으면 다른 디스플레이에서도 얼마든지 방송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이미 우리는 컴퓨터로, 핸드폰으로, DMB 기기로, PMP로 방송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집에는 거실과 안방에 TV가 있고 공부방에는 데스크톱과 노트북 등이, 주머니에는 휴대폰 혹은 스마트폰이, 가방에는 PMP 혹은 iPad 등이 있다. 이 중 어느 스크린으로라도 방송을 볼 수 있다. 고객 경험의 관점에서 고민해보면 TV, 스크린, 콘텐츠 및 서비스 등 한 영역에서만 혁신은 큰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것과 관련된 생태계(ecosystem)를 고민해야 한다. 애플은 스마트 시대에 생태계 전반의 서비스와 경험까지 고려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구글과 애플은 TV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토대로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혁신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 시대에 생태계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서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태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플랫폼(platform)을 장악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플랫폼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기업들이 많다. 플랫폼을 제품이나 기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eBook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현재 eBook의 대명사는 아마존의 킨들이다. 그렇다면 아마존의 킨들을 실제로 제조하는 회사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만일 eBook이 제품이나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아마존의 킨들보다는 유명 전자회사인 소니가 직접 제조하는 eBook이 시장을 주도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소니는 eBook이라는 제품을 만들려고 했고 아마존은 킨들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킨들은 전자책이라는 기기가 아니라 책, 잡지, 신문 등의 아날로그 인쇄 산업을 디지털 인쇄 산업으로 변화시키려는 플랫폼이다. , 잡지, 신문을 읽는 기능뿐만 아니라 인쇄물들을 구매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독서라는 행위뿐만 아니라 독서 전후의 행위를 포괄하는 독서 관련 생태계의 구심점이 되고자 했다. 이러한 독서 생태계를 잘 아는 회사는 소니가 아니라 아마존이다. 소니는 전자책이라는 기기를 세계 최고로 잘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 하지만 아마존은 독서를 위해 책을 사고 파는 전 과정에 대한 서비스를 세계 최고로 잘할 수 있는 프로세스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두 회사가 디지털 인쇄 산업에서 경쟁을 벌였고 결과는 아마존의 압도적 승리였다. 이것을 조지프 파인(Joseph Pine)과 제임스 길모어(James Gilmor)가 저서 <체험의 경제학>에서 소개한 경제적 가치 상승의 단계인범용품 추출-제품 제조-서비스 제공-체험 연출로 설명해보자. 소니는제품 제조의 수준에 있었고 아마존은서비스 제공의 수준에 있었다. 아마존의 킨들이 고객 니즈와의 관련성이 더 크므로 포지셔닝도 더 차별화됐고, 따라서 프리미엄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 미국은 올해 들어서 이미 전자책의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을 넘어서는 현상이 일어났다.

 

전문성은 변한다

 

‘애플의 iCar가 판매된다면 사겠는가라고 물으면 아직 많은 사람들은 주저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차는 애플의 분야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차는 IT 제품과 달라서 생명과 관련된 안전성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애플이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 2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분야의 문제다. 애플은 IT 전문가이지 기계공학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자동차는 IT산업인가, 기계산업인가? 아직 자동차 구성 요소라는 하드웨어적 요소로 보면 분명 아직도 자동차는 기계산업이다. 그렇지만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미 IT와 전자기 부문이 기계 부문을 추월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자동차 산업의 IT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미래 자동차산업에서 IT 기반 기업이 기계 의존 기업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애플이 휴대폰을 만들 것이라고, 혹은 아마존이 eBook을 만들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것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되는 분야는안전성이다. ‘애플이 과연 안전한 차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마찬가지로현대자동차는 언제부터 안전한 차를 만들 수 있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만든 것이 1975년이므로 지금부터 37년 전 일이다. 애플이 안전한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이런 일이 시작됐다는 전조가 보인다. 세계 최초의 오픈 소스 자동차가 생겼다. Local Motors라는 이 회사는 마이크로 공장(micro-factory)이라는 혁신 개념의 제조업이다. 직원 수는 10명 정도지만 상세 설계는 크라우드 소싱으로, 부품 조달은 모델별로 500∼2000대 정도씩만 하고 이를 키트로 만들어서 판매한다. 이런 추세라면 자동차가 DIY(do-it-yourself)화될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애플의 iCar가 나오면 사겠느냐는 질문에 “iCar는 끄지 않아도 되나요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 애플 제품은 디지털 제품이지만 다른 제품들과는 달리 On-Off의 개념이 없다. 마치 기계가 에너지로부터 자유롭다는 느낌이다. 평생 끄지 않아도 되는 애플 제품과 하루에도 몇 번씩 먹통이 되어버리는 블루스크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재부팅해야 하는 윈도 제품과는 그 체험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자동차 시동을 끄거나 켜지 않아도 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에 벌써부터 마음 설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세상이 스마트 시대다. 그런데스마트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소비자는 이를 인식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기업은 그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스마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스마트 시대에 필요한 제품도 만들 수 있고,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고, 경험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시대란 기계가 인간에게 적응하는 시대이다. 과거 산업혁명 이후 기계 시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기계를 만들었다. 당연히 인간이 기계로부터 효용을 얻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기계로부터 효용을 얻기 위해 기계에 적응해야만 했다. 기계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소위 전문가라고 불렀다. 보다 뛰어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계에 더 잘 적응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디지털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 IT의 시대를 거쳐 모바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계가 인간에게 적응하는 일들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소위 스마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간이 어떤 경험을 하기를 원하는가를 알아야 인간이 기대하는 이상의 경험을 연출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인지를 가지고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을 스마트 시대의 혁신이라고 한다.

 

사용자경험-서비스-제품의 순으로 기획하라

 

최근 많은 사람들이 경험과 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UX(user experience)디자인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인지의 수준이제품 제조에 머물러 있다면 효과적인 경험 디자인은 불가능하다. 고객 경험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한다면 책을 제품 혹은 기계의 수준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또 무선인터넷에 3단계면 접속할 수 있는 과정을 7단계로 접속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소비자 혹은 사용자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전문가가 이런 생각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TV의 이미지가 네모 상자로 굳어져 있는 고정관념은 TV를 만드는 전문가가 오히려 더 강하다. TV를 만드는 기업 혹은 전문가들은 현재 기업의 문화와 업무 형태상 자신의 산업 혹은 제품을 뛰어넘는 일을 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거나 혹은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TV라는 제품을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지 제품을 넘어선 서비스에는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TV 제조사들도 애프터서비스를 하지만 이것은 TV 제품의 내부와 관계된 것이지 TV 제품 외부와 관련된 방송사, 콘텐츠 제작사 및 개인 등 생태계와 관련한 서비스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TV라는 제품을 넘어선 협업을 생각하거나 생태계 전반과 관련된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일은 대부분의 기업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TV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제품과 산업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현상인데 이를 스스로 뛰어넘기 전에는 스마트 시대의 혁신은 그저 남의 떡인 것이다.

 

 

일례로 최근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의 이슈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카카오톡 서비스가 시작되고 인기를 끌면서 언젠가는 카카오톡이 텍스트 기반이 아닌 음성 기반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않은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하거나 협업을 성사시킨 대기업은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이 경영 전략, 상품/서비스 전략 혹은 마케팅 전략을 디자인하고 실행할 때 산업 전반이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UX, 혹은 서비스를 기반으로 디자인하지 않는 태도나 문화 때문에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을 막으려면 적어도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경험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체험을 연출하는 수준이 아닌 그저 제품을 제조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게 제품 위주로 사고한다. 우리는 보통 우리 제품으로 할 수 있는 기능이 무엇인지, 이익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동시에 USP(unique selling point)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한다. 하지만 USP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제품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다. 서비스는 물건을 주고받는 판매가 아니라 소비 과정 전체를 설계하는 것이다. 체험 경제는 단순한 가치 제공을 넘어선 연출의 수준을 필요로 한다. 사고의 수준이 제품 제조 및 판매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제품의 원가 혹은 가격을 먼저 생각하거나 자사의 경쟁력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으로는 스마트 시대의 혁신을 주도할 수 없다. 여기서 오해 없기를 바란다. USP나 원가, 가격, 그리고 경쟁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제일 먼저 생각할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용자경험 중심의 혁신을 위한 촉매 프로세스

 

경험 중심 혁신과 관련한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론인 IDEO디자인 사고서비스 디자인과 관련된 내용은 인터넷과 책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방법론을 실제 프로젝트에서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접근법으로촉매 프로세스(Catalyst Process)’를 개발했다.

 

‘경험 중심 혁신의 기본은 상품 혹은 서비스 제공자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아주 강렬한 체험을 많은 사용자 혹은 소비자가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상품 혹은 서비스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멤버들이 경험 현장의 아우라(aura) 혹은 관계(rapport)를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아니면 적어도 가상적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 촉매 프로세스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주관적일지라도 이러한 체험을 위한 보고(see), 느끼고(feel), 이해하는(understand) 단계 이전에 무엇인가 아이디어를 발상하지 않는다는 원칙 또한 경험 중심 혁신에서 매우 중요하다.

 

첫 단계인본다(see)’의 단계는감각적인 체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경험과 체험의 가장 기저에는 감각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하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러한 감각의 과정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이 이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와 관계된 경험의 부분을 디자인할 때 많은 요소를 놓치고 만다. UX 교수가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요즘 감성은 좀 따라 오는 것 같은데 아이폰과 같은 감각은 아직 먼 것 같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 감각에 대한 고려가 없으면 감각에 대한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촉매 프로세스에서 감각은 첫 번째 단계이지만 경험 디자인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단계이기도 한 것이 감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 영역에 대한 대표적인 방법론은 IDEO에 의해 널리 알려진 관찰법(observation)이지만 최근 스마트폰과 같이 작은 움직임에 의한 사용행태가 많아지면서 거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는 어려움이 있어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활용해 뇌를 관찰하는 인지과학적 방법론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인지과학에서는 무엇인가를 느끼기 위해서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적인 입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많은 상품기획 담당자, 마케터, 혹은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감각적인 체험의 단계를 조사 기관에 맡기거나 이미 조사된 자료를 통해서 대신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혹은 경험을 디자인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 감각의 단계를 생략하고는 불가능하거나 수준 높은 경험 디자인은 기대할 수 없다. , 새로운 경험을 디자인하려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단계를 꼭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식당을 개선하기 위해 요리사를 인터뷰하거나 관찰해야 한다면 식당의 테이블에서 인터뷰하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인터뷰하고 직접 요리하는 것을 관찰하고 본인도 직접 요리를 해봐야 한다. 만일 냉장고 문 손잡이나 경첩을 개발한다면 가장 먼저 해볼 일은 문을 열고 닫아 보는 일이다. 그것도 수백에서 수천 번 반복해 그 감각을 손으로 느껴봐야 한다.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여닫아 봤어?” 이 질문은 과거 필자가 삼성전자에 근무할 때 당시 CEO였던 윤종용 부회장이 냉장고 개발자에게 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몇 번이나 여닫아 봤는지 기억이 없었다. 별로 여닫아 본적이 없기 때문이거나 많이 여닫아 봤어도 생각 없이 했기 때문이다.

감각의 영역 다음은 감정(feel)의 단계다. 사실 사람이 감각과 감정의 단계를 분리해서 느끼지는 않지만 경험을 디자인하려면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에촉매 프로세스에서도 분리했다. UX라는 말을 만들어낸 돈 노먼(Don Norman)은 그의 저서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에서 그림과 같은 3가지 처리 과정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먼저본능적(visceral)’ 레벨은 춥거나 덥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안전하거나 위험하거나 등을 아주 빠르게 판단하는 수준이다. 영어로는내장의라는 의미도 있는데 우리도 너무 슬플 때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의식적인 사고보다는 본능적이고 잠재의식적이며 자각하지 못하고 하는 경험이다. 두 번째행동적(behavioral)’ 단계 역시 visceral과 같이 잠재적이고 자각하지 못한 상태로 경험한다. 예를 들어서, 친구와 말하면서 걸을 때 우리는 걷는 행동에 대해 자각하지 않아도 잘 걸을 수 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수천 번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자동화된 혹은 아주 숙련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습관들도 이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본능적(visceral)이고 행동적(behavioral) 경험은 모두 감각 기관에 의한 자극에 의해서 시작되고 행동으로 반응하는 영역이다. 또한 행동이 자연스러울 때 우리는 통제하고 있거나 영향력이 있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아이폰에서 터치에 의해 이미지를 확대하고 축소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내 마음대로 통제되는 느낌, 혹은 BMW 같은 자동차로 급코너를 돌 때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낌, 혹은 무거울 것 같은 냉장고 문을 열 때 살짝 당겼는데도 힘들이지 않고 조금만 열리는 느낌 등이 행복한 행동적 경험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본능적 경험과 행동적 경험에 해당하는 감각과 감정은 이성적인 사고만으로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이 이러한 경험에 대해서 철저히 무시하거나 디자이너의 감에만 의존해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디자인해왔다. 경험을 디자인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방법이다. ‘촉매 프로세스에서의 감각과 감정의 단계는 디자이너만이 느껴봐야 하는 단계가 아니라 엔지니어와 마케터들도 모두 직접 느껴봐야 하는 단계다. 더불어서 고려해야 할 것은 이러한 경험은 잠재적이고 순간적일 수 있기 때문에 관찰하기 어렵거나 직접 느껴봐도 알기 어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과거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함께 모여서 서로의 감각과 감정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깊이 음미해 봐야 한다. 이렇게 사용자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직접 듣고 느낀 감정을 가지고 사용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을지 넓고 깊게 연구, 조사하는 단계가 촉매 프로세스 2번째 단계인 감정(feel)의 단계이다.

 

사용자만의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팀원 모두가 느끼는 감각에 대한 감정들을 모두 다 꺼내서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상품 혹은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특히 부정적 감정에 대해서는 금기시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반쪽짜리 기획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단계를 소홀히 한다면 앞선디자인적 사고를 활용하든서비스 디자인방법론을 활용하든 시장에서 사랑받을 경험을 디자인하기는 불가능하다. 많은 프로젝트에서 팀원들 모두가 느끼거나 알고 있으면서 이에 대해 표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 실패한 작품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럴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현이다. 그럴 줄 알 것을 미리 꺼내고 공유하고 공감해야 한다.

 

그 다음 3번째 단계인 이해(understand) 단계를 살펴보자. 이해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감각이나 감정이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영역이라면 감성은 관계적이고 포괄적인 영역이다. 나뭇잎과 줄기 등의 나무에 대한 디테일을 체험했다면 그 다음은 숲에 대한 체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단계에서는 앞서 언급한 돈 노먼이 이야기한 3번째 과정인사색적(reflective)’ 경험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것은 감각적 입력 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다. 사람은 인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 후 감정을 통해서 세상을 해석하기도 하지만 감각이나 감정에 반해 사색에 의해 행동적 경험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렴한 전자시계보다 아주 고가의 시계를 원하는 현상, 혹은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챙이 평평한 모자를 삐딱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체성과 같은 것도 이와 같은 사색적 경험, 혹은 초자아(super ego)에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사색적 경험은 어느 특정 개인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 간의 관계 혹은 환경과 같은 것에 영향을 주고받거나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함께 무언가를 해왔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트렌드 혹은 문화 같은 것들도 이러한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홍대 앞에는 의료 업계에 화제를 일으킨 제닥(‘제너럴 닥터’)이라는 의원이 있다. 여기서는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위해 의사와 환자 간의 관습적 의사소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제공하기 위해 환경적 맥락을 바꾸는 시도를 했다. 환자가 자신을 고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병원을 카페로 만들었다. 단순히 인테리어만 바꾼 것이 아니라 실제 카페와 같이 환자와 일반인들에게 커피와 차를 파는 공간이다. 의사와 고객이 만나는 접점인 진료실에서도 환자는 소파에 앉아 편하게 얘기하고 의사는 불편한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야 하기 때문에 환자의 말을 경청할 수 있도록 환경과 맥락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의사와 고객과의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렌드 혹은 문화뿐만 아니라 업계의 정설, 혹은 게임의 법칙 등 큰 그림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사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업계의 정설은 과거 언젠가 게임을 법칙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연 통찰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계의 정설 중에는 현재 유효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된 정설로 인해 고정관념이 머릿속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제닥의 사례에서처럼 모든 세상이 서비스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도 의사는 의사 선생님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는 호텔 서비스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료업계 종사자뿐이 아니다. 환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할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 효력을 상실한 업계의 정설을 바꾸는 것은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환경 간의 문맥 또는 패턴 혹은 패러다임 등 큰 그림을 바꿔야 하는 작업이다.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다른 하나의 방법은 불연속성을 찾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제닥의 경우처럼 업계의 정설을 뒤집는 것은 이미 세상이 바뀌었는데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변화시키는 다소 수동적인 방법이다. 반면 불연속성을 찾는 것은 앞으로 바뀔 큰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애플이 디지털 음악 문화를 위한 아이튠즈라는 음악 판매 시스템을 웹에 만든 것은 퍼스널컴퓨터 시대에서 웹 시대로의 불연속점을 건너가기 위한 도전이었고 모두가 마이스페이스라는 거대한 웹 시스템에 빠져 있을 때 가벼운 페이스북 앱을 개발하는 것은 웹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의 불연속성이 있을 것이라는 패턴의 변화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무와 숲을 충분히 체험해 도전 의지가 생겼거나 패턴의 변화를 인지했다면 이것을 통찰로 전환하기 위한 상상의 나래를 펴서 새로운 나무와 숲을 디자인하는 창의(imagine) 단계가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실행가능성보다는 소비자 혹은 사용자의 욕구에 집중해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감각-감정-이해의 단계가 불확실성 속에서 패턴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창의의 단계에서는 가능한 많은 통찰의 요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통찰의 순간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브레인스토밍 혹은 아이디어 워크숍을 해봐야 소용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감각-감정-감성의 단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엔진의 자동차가 있어도 충분한 연료를 공급받지 못했다면 질주할 수 없다. 괜히 아이디어가 없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감각-감정-감성의 단계를 미리 준비한다면 아이디어는 차고 넘칠 것이다. 이후 수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통찰을 통해 올바른 솔루션을 고르는 절차로 넘어가면 된다. 이것이 창의의 과정으로 널리 알려진 확산(divergence)-수렴(convergence) 과정이다. 따라서 감각-감정-감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통찰의 순간을 원한다는 것은 연료를 넣지 않고 차가 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감각-감정-감성의 단계를 통해 충분히 통찰을 위한 폭과 넓이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면 통찰의 순간에 양의 질적 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후 많은 통찰을 기회로 전환시키는 단계가 그 다음 단계인 논리(think). 이 논리의 단계에서는 지금까지 발견한 기회 요소들을 일관성 있는 하나의 덩어리인 콘셉트로 체계화, 시스템화하는 단계까지 포함한다.

 

다음 실행의 단계에서는 아주 작은 실험들의 연속인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과정이다. 이 프로토타이핑의 핵심은 빠르게 실패해나가면서 성공의 기회를 확인하는 것으로촉매 프로세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렇게 작고 빠른 실패(fast fail)들을 통해서 얻은 경험의 기회들의 집합체인 콘셉트를 상품 혹은 서비스로 전환하게 되면촉매 프로세스의 산출물인 경험 중심 기획서가 완성된다.

 

이러한 촉매 프로세스의 진행 중에는 지켜야 할 2가지 규범(norm)이 있다. 첫 번째, 촉매 프로세스는 상품기획과 같은 한 부서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디자인과 엔지니어링과 같이 부서의 벽을 넘은 다기능협업팀(CFT, cross-functional team) 혹은 다학제팀(multidisciplinary team)이 운영해야 하는협업 프로세스(collaboration process)’. 두 번째, 다른촉매 프로세스는 혁신 혹은 창의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공장의 제조라인 프로세스처럼 순차적으로 일회에 끝나는 효율 프로세스가 아니고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iteration process)이라는 것이다. 촉매 프로세스를 실행할 때 협업과 반복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도전해 보면 분명 좋은 효과를 얻을 것이다.

 

 

김동준 innoCatalyst 대표, 삼성전자 VIP(Value Innovation Process)센터 파트장, dongjoon@innoCatalyst.com

 

김동준 innoCatalyst 대표는 연세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삼성전자에서 15년간 근무하면서 보르도TV 60여 개의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삼성그룹 기술상, CTO Best Progress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innoCatalyst 대표, Strategos Network의 파트너로 다양한 기업의 창의, 혁신 및 협업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