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아이들이 위쪽으로 뛰어올라가며 장난치는 모습을 가끔 본다. 이때 아이들이 열심히 걷더라도 에스컬레이터 자체가 내려가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위로 올라가려면 정말 열심히 내달려야 한다.
이런 현상을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한다. 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 격인 ‘유리 거울을 통해서(Through the Looking Glass)’라는 소설에서 유래한 말이다. 앨리스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제자리에 머물자 이상한 나라의 여왕인 레드 퀸은 “이곳에서 제자리에 머물려면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한다. 어디든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 환경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제자리에만 머물려고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미국 생물학자인 반 밸런(Van Valen)이 각 개체가 끊임없이 서로 자극하며 진화하는 과정을 ‘레드 퀸’이란 말로 설명한 후 이 용어는 생물학, 군사학 등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경영학에서도 레드 퀸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한 회사가 마케팅 투자를 늘리면 다른 회사가 이에 자극받아 대응 투자를 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로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이 용어가 자주 활용된다. 일부 학자는 레드 퀸 효과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발전을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경영학자들 사이에서 레드 퀸 효과의 메커니즘을 구명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경영학계의 최고 권위 학술지인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2008년, Vol. 51, No. 1)에 이와 관련, 주목할 만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템플대와 메릴랜드대 연구팀은 56개 미국 기업의 데이터를 토대로 레드 퀸 효과와 기업 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경쟁사의 가격 및 생산량 조정이나 신규 마케팅 등 외부적 자극에 빨리 대응하는 조직의 성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특정 기업이 대응하면 경쟁사의 추가 대응을 유발, 이로 인한 실적 하락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경쟁사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의 실적 상향 추세는 여전히 유지됐다.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하는 ‘공진화’ 현상을 뒷받침한 연구 결과다.
연구팀의 분석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건수보다 속도가 경쟁사의 실적에 끼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점이다. ‘스피드 경영’을 통한 신속한 대처가 그만큼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