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종합

디지털세상에도, 최적의 장소는 따로 있다

108호 (2012년 7월 Issue 1)




1.
디지털 시대와 공간의 소멸 논쟁

기업 활동에 있어 입지는 그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주요 결정 요소다.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Ray Kroc) 회장이 이미 1972년도에맥도날드는 무엇을 파는 회사인가라는 질문에 ‘Location’이라고 대답했던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최적의 입지 요인은 무엇인가? 전통적 입지이론은 생산비용의 최소화 혹은 이윤의 극대화라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적 분석 틀을 바탕으로 교통비나 시장 잠재력 등 유형적 입지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고전주의적 입지론은 포드주의적 대량 생산체제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제조업과는 크게 상이한 문화예술, IT, 바이오 등 지식기반 신산업의 입지경향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입지이론은 기업 간 거래비용, 지역 내 학습역량 등 지역 내에서 고착된 문화/역사/제도적 요인, 관계자산 등 무형적 입지요인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돼 왔다. 이러한 입지이론의 진화과정은 근래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의 등장 혹은 시장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기업의 입지 관련 의사결정 과정상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났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반드시 기업의 입지 의사결정 과정의 복잡성을 증가시켰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및 사이버 공간의 확산 등으로 경제활동의 지리공간에 대한 의존성이 줄어들어 기업의 입지 관련 의사결정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서, 의류, 가구, 농수산품 등의 온라인 자동주문이 가능해져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인터넷이 해결해주는 세상이 됐으며 최근 들어서는 팝업스토어처럼신중한(?)’ 입지 선정 과정을 무시하는 트렌드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기술결정론자들이공간의 소멸을 논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지리공간적 측면에서의 산업입지가 여전히 중요한가 하는 주제도 보다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전통적 공간이론의 진화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고 최근의 변화된 경제환경하에서 지리적 측면의 산업 입지가 기업활동에 갖는 의미를 논의한다.

 

2. 공간이론의 진화

1) 공간과 경제 연구 분야

공간과 관련한 이론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산업 활동의 터전이 되는 물리적 공간에 대해 연구한입지 이론(location theory)’을 보자. 튀넨(Johann H. Thünen), 베버(Alfred Weber) 등 독일 경제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됐던 농업입지론과 공업입지론 등은 경제학을 뿌리로 하고 있지만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지리학적인 요소를 접목했다. 오늘날 상업 입지 논의의 근간이 되는 크리스탈러(Walter Christaller)의 중심지 이론 또한 농업 및 공업입지론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지리학의 한 분야인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은 경제 현상의 공간적 배열이나 농업, 공업, 상업 등 각종 산업의 입지 및 지역 간 분포 등을 다루는 학문 분야로 입지 이론은 이 분야의 근간이다. 경제학의 세부 분야인 도시경제학(urban economics), 공간경제학(spatial economics) 역시 경제학적 분석 틀을 이용해 경제 활동의 공간적 차원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분야는 유사한 핵심 질문을 가지고 출발한다.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역 간에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특정 산업은 왜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가? 또 이 두 분야는 경제학의 한 분야인 동시에 도시의 발생과 확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도시학(Urban Studies)의 세부 분야이기도 하다. (그림1)

 

 

입지 이론은 지역과학(regional science)과도 연관이 깊다. 지역과학은 미국의 경제학자 아이사드(Walter Isard)와 주변 학자들에 의해 1954년에 Regional Science Association이 설립되면서 창시된 분야다. 아이사드는 기존 경제학, 지리학, 사회학 등 개별적인 학문만으로는 현대에 일어나는 인간 활동과 공간 현상과의 관계를 규명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으며 주된 분석 방법으로는 선형계획법, 투입산출모형, 계량경제모형 등이 사용된다.

 

2) 신고전주의 입지이론

입지이론의 고전은 튀넨의 농업입지론을 시작으로 베버의 공업입지이론 이후 뢰쉬(August Lösch), 스미스(David Marshall Smith) 등 학자들에 의해 발전됐고 20세기에 들어서는 피오레(Michael J. Piore)와 세이블(Charles F. Sabel), 스콧(Allen J. Scott)과 스토퍼(Michael Storper), 크루그먼(Paul Krugman), 포터(Michael Porter) 등 경제학자들에 의해신경제지리학’혁신등의 관점이 주목받게 됐다. 크게 두 갈래로 이론의 흐름을 구분 지어 생각해 보면 주로 운송비, 원료비, 노동비, 동력비 등 생산 비용에 주목한 신고전주의의 고전적 입지이론과 집적의 이익과 혁신을 접목시킨 신경제지리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전적 산업 입지론의 기초가 되는 베버의 공업입지론은 기본적으로공장은 생산 비용이 최소인 곳에 입지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공업 생산에 필요한 비용 항목들로는 원료비, 동력비, 노동비와 설비 등 고정자산의 감가상각비, 이자비용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입지의 영향을 크게 받는 비용들은 원료비, 동력비, 노동비로 볼 수 있는데 베버는 이를 기반으로 각각 비용의 중요도에 따라 운송 지향형, 노동 지향형, 집적 지향형 공업 등을 설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시멘트 제조업 등은 원료 취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원료산지 근처에 자리잡아야 한다.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이나 베트남, 미얀마에 많은 제조업 생산기지들이 입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생산 요소 중에서도 베버는 운송비를 가장 중요한 인자로 봤는데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초기 산업 사회에서는 운송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교통수단의 발달과 유통 혁명으로 운송비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현 상황하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또한 베버의 입지 삼각형에서는 원료산지, 소비지가 하나의 점으로 고정돼 있고 경쟁 공장의 입지는 없는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에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림2) 이후 뢰쉬는 최소비용 대신최대수요에 주목한 이론을 전개했고 스미스는 베버의 최소비용과 뢰쉬의 최대수요를 통합한 이론을 제시했다.

 

 

3) 신경제지리학의 태동

비용 최소화와 이윤 극대화를 가장 중요시하는 신고전주의적 입지 이론과 달리()경제지리학은 문화, 관계자산(relational asset), 제도(institution)의 역할 등에 주목한다. 이론의 중심이 바뀐 것은 제조업에서 지식기반경제(Knowledge Economy)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산업의 중심이 제조업과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에서 IT, 문화 콘텐츠, 바이오 등 신산업으로 넘어가면서 창조적 인력의 확보와 이들의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및 지식의 교류, 이러한 환경을 제공하는 터전으로서의지역입지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피오레(Michael J. Piore)와 세이블(Charles F. Sabel)은라는 저서에서 기존 경제지리학과 최초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들은 포드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대량 생산체제가 일본과 독일 등 신흥 강국의 생산체제와는 다르다고 봤다. ‘후기 포드주의(Post-Fordism)’로 이름 붙인 신흥 강국들의 생산체제는 기존 수공업적 생산방식과 포드주의적 대량 생산체계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제도, 관습, 사회적 규범(norm) 등의 지역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역설했다. 스콧(Allen J. Scott)과 스토퍼(Michael Storper)는 지식기반사회 내에서의 다양한 산업 사례를 연구했다. 이들은 시장과 환경의 변화로 산업 내 분업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기업 간 Collaboration, Cooperation, Coordination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4) 발전하는 신경제지리학

신경제지리학에서 지금까지도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산업 클러스터는 이러한 다양한 이론적 기반에서 만들어졌다. 이 분야에서 대표적 학자 중 한명인 색서니언(Annalee Saxenian)은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IT 기업 집적과 네트워크 효과에 주목하면서 실리콘밸리의 1980년대 고속 성장을 설명했다. 동부 Route 128지역의 수직통합형(vertically integrated) 산업 벨트의 형성보다 실리콘밸리의 분산형(decentralized) 모델이 성장에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기업 간 협동(cooperation)과 일상적인 사회적 교류가 발생하고 유지될 수 있는지역이 생산에 있어서의 공간적 단위(Storper, 1997)이며 지역 내 전문화된 기업들의 그룹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유럽의 주요 학자들은 하이테크 기업들이 특정 지역에 모이는 이유로 혁신(innov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역 자체를 하나의 생산체계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연구는 하이테크 업계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지식이며, 따라서 산업 입지의 중요 요소는 지역 내 지식의 전파와 상호 간 배움의 기회(mutual learning)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베델(Bethelt), 마스켈(Maskell) 등 학자를 중심으로 클러스터에서의 혁신 활동을 위해서는 ‘local buzz(클러스터 내에서의 네트워킹)’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local buzz가 강화된 형태의 여러 개 클러스터들이 서로 연계돼 지식을 주고받는 형태의 ‘global pipeline(클러스터 간 네트워킹)’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이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렇게 발전·계승돼온 신경제지리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학자 중 하나는 국제 교역 관련 이론가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다. 그는 산업의 집적, 지역 간 격차 등을 교통비, 수요분포, 수확체증(규모의 경제)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모델로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크루그먼은 미국 내의 다양한 제조업의 입지변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피드몬트 지역의 카펫 산업, 글로버스빌의 가죽장갑 제조 산업, 시카고의 농기계 산업 등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 특정 지역에 집중하고 이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하게 된다. 혁신적인 산업뿐 아니라 일반적인 제조업 또한 집적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면서 크루그먼은 경제학에서의공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피력하면서 ‘New Economic Geography’라는 용어를 전파했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유명한다이아몬드 모델을 통해 클러스터를 설명했다. 수요조건, 요소조건, 관련/지원산업, 기업전략, 구조 및 경쟁양상의 4개 요소를 특정 산업이 경쟁력을 창출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정의했는데 이 모델에서 포터가 강조한 것은 이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적인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다름 아닌 지리적 집중 현상이다. 포터는 10개 국가의 사례 분석을 통해산업 클러스터의 개념을 강조하면서 국가와 지역의 경쟁우위에 관해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개별 국가들이 경쟁 우위를 점함에 있어서 분석의 기본단위는 산업과 산업 클러스터이며 클러스터는 1)클러스터 내에 입지한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2)해당 분야에서 혁신을 유발하며 3)해당 분야 내 신사업의 발생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국가 경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3. 산업입지 이론과 현실 세계

1) 해외 생산기지의 본국 귀환

그렇다면 이상과 현실에는 과연 어떠한 차이가 존재할까? 실제로 기업의 입지에는 다양한 입지요소들이 통합적으로 작용한다. 헤이터(Hayter, 1998)는 교통, 원재료, 시장 등을 포함해 노동조건, 외부경제, 에너지, 사회기반시설, 자본, 토지/건물, 환경, 정부 정책까지 모두 11가지 요소를 입지 선택 시 고려하는 요소로 꼽았다.

 

입지 선택 요인들 중에서 비용의 중요성은 아직도 절대적인 것일까? ‘공장은 비용이 최소인 곳에 입지한다는 말은 제조업의 해외 이전(offshoring)이 진행되던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물론 최근까지도 많은 제조업체가 원가절감을 위해 생산기지를 중국, 베트남 등지에 두고 있다. 버논(Raymond Vernon)은 제품의 성숙도가 증가하고 시장 내 경쟁자의 수가 증가할수록 기술적 과점으로 인한 지대는 감소하는 반면 비용 절감 압력은 증가한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해당 제품의 생산 기지 입지는 초기의 중심지에서 점점 주변부로 이동된다. 일례로 삼성전자 휴대폰은 한국 외에 중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생산되며 인도, 브라질에도 거점을 두고 있다. 반도체는 1996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최근 2번째 공장을 중국 시안에 건설하기로 했다. 인건비와 땅값이 저렴하고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개도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로컬에 거점을 마련함으로써 신규 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현지 조달을 통해 운송비를 절감하고 수요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해외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중국 등지에 있던 공장을 폐쇄하고 자국으로 이전하거나 신규로 자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숙련된 인력을 이용한 생산의 효율성 제고, 기술 유출의 방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국 인력 고용을 통한 실업 감소다. 미국에서는 GE, 포드 등 기업의 공장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왔고 후지제록스 등 일본 기업도 해외 생산기지를 본국으로 이전하는 추세다. 각국 정부는 고용 증대를 위해 자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인하하고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미국은 자국으로 복귀한 기업에 대해 이전 비용의 20%를 사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 또한 지난 해 일어났던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산업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주변 지역을부흥 특구로 지정하고 해외에서 생산기지를 해당 지역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특혜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단순한 노동이 요구되는 저부가가치 부품의 생산은 여전히 비용이 확실히 적게 드는 개도국 입지를 선호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에는 이와 같은리쇼어링(reshoring)’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도 침체된 제조업을 재활성화하고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 생산기지를 국내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소 비용의 입지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외부적 경제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식만 고집할 수는 없다. 다만 많은 제조업들이 본국을 떠난 이유가 기본적으로비용때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제조업체의 본국 유턴을 위해서는 숙련된 인력 조달, 양질의 생산 인프라 제공 외에도 확실한 비용 측면의 메리트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비용 그 자체보다도 국가나 지역의 입지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정책적 차원에서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 유치를 위해 운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제반 요소들을 제공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다음(Daum)’이 제주도로 간 이유

도입부의공간의 소멸에 관한 논쟁으로 돌아가서 산업의 입지에 있어 물리적 공간이 중요한가 하는 화두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 혁명 이후 물리적 공간의 중요성이 서서히 감소해 갈 것이라는 의견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공간적 집중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이며 MIT 미디어랩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미첼(William J. Mitchell) 교수는 기술결정론자와 유사한 입장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공간의 중요성을 점차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도시 사회학자인 카스텔(Manuel Castells)은 미첼의탈공간화와는 반대되는재공간화를 주장하면서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은 정보 처리의 공간/지역적 집중화를 가속시킬 것이며 디지털 기술로 인해 대체되는 물리적 공간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토종 IT·미디어 기업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다음’)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은 본사 직원 1명이 장거리 출근으로 인해 회의에 지각했던 작은 사건을 계기로 본사 이전을 추진했다. 2004 3월 본사의 제주도 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같은 해 4월 연구개발팀 16명이 제주로 이전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총 350명의 인력이 제주도로 이전해 근무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IT업계의 집적 클러스터에서 누릴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 대면 접촉을 통한 정보 교류 등 여러 가지 이익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전 8년째가 된 2012년 현재 직원의 80%가 제주 생활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의 본사 이전이 직원들로부터 만족감을 이끌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적 입지이론에 비추어 볼 때 본사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어서 운송비, 원료비, 동력비의 영향은 크지 않다. 노동비와 집적 이익을 고려할 때 IT 산업은 값싼 노동력보다는 창의적인 인력을 필요로 하므로 노동비가 최소인 지점도 맞지 않다. 파주-수원-평택에 걸친 경기도의 LCD클러스터처럼 IT나 게임 관련 업체들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서울 강남에 집중해 분포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벤처 열풍이 불면서 신생 IT기업들이 강남에 터를 잡은 이후 벤처 버블이 붕괴되고 일부는 구로나 가산디지털 단지 등으로 분산되기도 했으나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스마트폰 관련 업체들의 테헤란로로의 재진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임대료가 타 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데도 불구하고 IT나 게임업체에 이곳이 매력적인 이유는 관련 인력들에게 강남이라는 지역이 주는 매력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인재를 구하기가 쉽고, 다수의 벤처캐피털이 밀집해 있어 금융 인프라 접근성이 좋으며, 게임협회나 인터넷 협회 등 관련 단체도 주변에 있어 오프라인 교류도 용이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집적의 이익이 큼에도 불구하고 다음은 IT 업계가 이미 집적돼 있는 강남을 뒤로 하고 과감히 제주도를 택한 것이다.

 

다음이 이러한 직접의 이익과 네트워크 효과를 포기하고 제주도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업의 특성상 e메일이나 메신저 등 인터넷을 이용하는 업무의 비중이 높아 업무의 상당 부분을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삶의 질에 주목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클러스터에서 누리는 집적의 이익이나 이미 구축돼 있는 인프라보다도 바로 이 업계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인력에 주목한 것이다.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싱가포르의 과학도시로 2001년부터 개발이 시작된원노스(One-North)’는 혁신적인 인재들을 위해 좋은 생활환경을 조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BT, IT, 미디어가 공존하는 연구단지 사이에 기업인, 연구자, 학자 간 네트워킹이 가능한 ‘Xchange’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우수 교육기관과 다양한 유형의 주거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른바 직장과 거주지가 일체화될 수 있는 공간이 창조적 산업에 종사하는 인재들의 입지 선호 요건으로 각광받는 것이다.

 

 

신세대 인재들은 연봉이나 복지도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기업이 제공하는 삶의 질에 관심이 많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찌든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의 귀농, 귀촌이나 도시농업과 같은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경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흔히 창조적 기업의 입지는창의적 인력의 확보가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창의적 인력이 선호하는 곳에 기업이 입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고전적 입지론에서는 인적 교류나 혁신에 적합한 공간환경 등 부가가치보다는 비용을 주로 고려했다. 하지만 지식기반경제 시대에는 거꾸로 비용보다 이러한 부가가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다음의 제주 이전 이후 디지털 분야의 다른 기업과 R&D 센터가 제주도로 입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다음을 시작으로 클러스터가 발생해 또다시 집적에 의한 외부효과가 발생하면서 클러스터 내부의 네트워킹인 ‘local buzz’가 강화될 수도 있다.

 

4. 상업입지 이론과 체험형 상업의 존속

1) 체험형 상업의 존속

도시형 산업으로 불리는 소매 상업 분야에서는 전자상거래의 확대로 많은 상점들이 사이버스페이스로 흡수됐다. 일례로 의류 분야에서 백화점 등 대형 유통체인의 인터넷 배송과 개인 인터넷 쇼핑몰의 발달로 오프라인 매장은 예전에 비해 니즈가 줄었다. 인터넷 매장은 광고 및 마케팅 비용, 임대료, 인건비, 물류비용 등을 줄여줬다. 하지만 영화관이나 독특한 레스토랑 등 소비자의 직접적인 체험이 필요한 공간들은 여전히 상권의 이동에 따라 무수히 없어지고 또 동시에 생겨나고 있다. 쇼핑공간도 야외 나들이 겸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소위라이프스타일형인 교외의 프리미엄 아웃렛이 인기를 끌고 있다. 상업의 입지는 공업과 달리 정책적인 입지 요인이 덜 작용하며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2) 크리스탈러의 중심지 이론

상업 입지 관련 이론으로는 독일의 지리학자인 크리스탈러(Walter Christaller)의 중심지 이론 외에 레일리(W.Reily)의 소매인력법칙과 허프(David L. Huff)의 소매지역이론 등이 있다. 중심지 이론(Central place theory)은 개별 상업의 입지뿐 아니라 좀 더 광범위한 지역까지도 포괄해 적용이 가능한 이론으로 특정 지역이 주변 지역에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중심지의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는 해당 지역의 인구 규모에 비례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크리스탈러는최소요구치재화의 도달 범위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최소요구치란 중심지가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수요에 해당하는 개념이며 재화의 도달 범위란 소비자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최대 범위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재화의 도달 범위 내에 최소요구치가 충족돼야 중심지는 중심지로서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다수의 중심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지역에서 중심지들 간에는 위계(hierarchy)가 있어서 6각형의 모양을 이루고 이 중심지들 간의 거리가 좁아지면서 각 중심지들이 각각 고차원 중심지와 저차원 중심지로 분류된다. 고차원의 중심지는 일반적으로 규모와 배후지가 크고 따라서 같은 위계의 중심지 간 거리가 멀고, 이보다 상대적으로 저차원의 중심지는 규모와 배후지가 작고 중심지 간 거리가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그림3)

 

 

예를 들어 고차원 중심지는 큰 배후지를 필요로 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저차원 중심지는 그보다 작은 배후지를 필요로 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이 입지한다. 크리스탈러 이론의 한계는 지역적 특성을 무시하고 지역을 모두 균질한 공간으로 간주하고 인구 분포 또한 균일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중심지의 커버리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고 시계열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아 중심지 간 위계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설명할 수 없다는 점 등이 있다. 이론상으로는 고차원 중심지인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시 외곽의 명품 아웃렛 쇼핑몰은 서로 먼 거리에 위치해야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 특정 지역에 집중함으로써 누리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점포들이 서로 바로 옆에 위치하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레일리와 허프의 상업입지 이론

한편 레일리는 소매인력법칙을 통해 상권을 설명했는데 두 개의 도시가 있을 때 각각의 도시의 흡인력은 도시들의 인구에 비례하고 두 도시 사이에 있는 분기점으로부터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도시들이 도시 사이에 존재하는 소비자를 끌어당긴다는 측면에서 중력법칙이라고도 한다. , 두 도시 A, B 사이에 제3의 도시 C에 소비자가 있을 경우 A, B 두 도시가 상권으로서 가지는 상거래 흡인력이 두 도시의 인구에 비례하고 A-C, B-C 간의 거리에 각각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형 역시 도시들의 거리와 인구 수만을인력이 발생하는 요인으로 간주하면서 도시들의 특성이나 도시 사이에 존재하는 지역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는 존재한다. 허프의 소매지역이론은 레일리의 중력법칙을 토대로 소비자가 특정 쇼핑센터에 방문할 확률을 제시했기 때문에 확률모델이라고도 한다. 기존의 소매인력법칙이 도시들의 인구와 도시까지의 거리만 고려한 데에서 나아가 확률모델에서는 매장의 면적, 경쟁하는 쇼핑센터의 수까지 고려했다는 점이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5. 현실 속의 상업 입지와핫 플레이스의 이동

현실에서 소위 상업 입지로서핫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곳들이 이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강남의 사례를 보면 쇼핑, 레스토랑 등이 성업했던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이제 많은 상업시설들이 빠져나갔고 신사동 가로수길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인사동 예술가 공방의 경우 예전에는 많은 전통 공방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이러한 점포들의 다수가 삼청동 일대로 빠져나갔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이동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하나의 장소에서 누리게 되는 집적의 이익보다 해당 장소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지대의 비용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점포들은 점점 지대가 낮은 곳을 찾아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패션, 레스토랑, 화장품 등 생활과 밀접한 상업은 기존에 형성된 상권에 대기업 브랜드가 진입하면서 지대가 일시에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형성된 지대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는 점포들이 좀 더 지대가 낮은 곳으로 순차적으로 이동해 서로 인접한 장소에 다시 모이게 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곳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다.상업 입지는 넬슨이 주장한 것처럼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는데 청계천 개발 시 기존 상인들의 이주 장소로 고안됐던 송파구의가든파이브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가든파이브가 입지한 장소 자체가 소비자에게 주는 매력도가 초기에 기대했던 것만큼 존재하지 않았기에 대규모 공실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에 더해 기존에 청계천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됐던 집적 효과가 인위적인 이주에 의해 만들어진 가든파이브에서는 그대로 살아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해당되는 산업들과 전후방으로 연관돼 형성돼 있던 가치사슬이 단절되면서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6. 입지의 변화: 움직이는 매장, 팝업스토어

그렇다면 입지라는 것은 고정된 채로 지속되는 것인가? 2002년 미국의 대형 할인매장타겟(Target)’이 신규 매장의 입지를 구하지 못해서 임시적으로 단기간만 임대한 매장을 오픈했다가 의외의 인기를 끌면서팝업스토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를 벤치마킹해 최근 많은 기업들은 신규 제품의 프로모션을 위해 점포를 임대해 단기간 동안만 운영하는 방식을 점점 많이 채택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단시간에 유니크한 매장을 구성해 소비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짧은 한정된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팝업 스토어는 해외 선진 도시들에서는 개별 매장 차원에서부터 도시 전체 레벨로까지 확대돼 ‘Temporary Urbanism’이라는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임시적인입지는 가볍고(light), 저렴하고(cheap), 신속하게(quick) 입지를 선택하고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입지 선정에 대한 큰 고민 없이 해당 사이트의 잠재성을 테스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영국은 이러한 트렌드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Shoreditch라는 소도시에 설립된 BoxPark라는 쇼핑몰은 세계 최초의팝업쇼핑몰로서 2011 11월 오픈했으며 60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철도역 아래 부지 유휴 공간에 조성해 관심을 끌었다. (그림6) 오랫동안 유휴지로 남아 있었던 부지는 부지의 오너가 향후 4년간 개발에 착수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이를 해당 기간 동안 임대하기로 하고 개별 임차인들을 구성해 임시적인 쇼핑 지구로 조성했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유동인구, 접근성 등이 확보돼 있는 곳의 복합적인 입지 요인들을 신중하게 고려해 지역을 선정하는 방식과 달리 거꾸로 적당한 환경이 충족된 곳에 테스트베드 형식으로 적은 비용에 매장을 일단 일시적으로 개설해 소비자의 1차적인 피드백을 얻음과 동시에 해당 지역의영구적(permanent)’ 입지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입지 선정은 한번 결정하고 나면 쉽게 바꿀 수 없는 단점이 있으므로 선정 전에 이러한 방식을 채택해 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미국의 뉴욕이나 워싱턴 D.C. 등 도시에서는 아예 시 도시계획국에서 이러한팝업적인 시도들이 많아지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기업의 입지에 있어서 선택의 폭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하겠다.

 

7. 결론: 입지의 미래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그의 저서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세계 어느 곳에 살든 모든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인도의 방갈로르가 IT 업계의 중심이 되고 각종 인재들의 혁신의 장()이 된 것을 봐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주도에 본사를 두고도 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봐도 이미 세계는 말 그대로평평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이든 정말로 평평해진다면좋은 입지의 중요성이나 산업의 클러스터링 현상은 설명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The World is Spiky’라는 아티클을 통해서 세계 혁신의 지도를 제시한 바 있다. (그림4)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들고 새로운 제품과 산업을 창조해 내는장소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혁신의 엔진 역할을 하고 상품을 제조하는 데 적합한, 혁신을 지원하는 데 최적의 장소 또한 존재하며 이러한 혁신의 landscape 내에서 혁신적인 도시들은 그렇지 못한 도시들과 점점 차이를 벌려 가는 것이 현실이다. 고도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IT의 발달로 어디에서든 동일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오프라인상에서의 인적 교류와 네트워킹이나 장소 자체가 주는 특성은 어떠한 세계화나 최첨단 기기도 대체하지 못한다. 특히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장소들이 고립되지 않고 계속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확대해야 한다. 장소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 장소를 선정함에 있어 유연성은 증대될 수 있겠으나 그 중요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박강아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kangah.park@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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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 Mover Advantage:‘Me too’전략이 좋다

 

우리말에이라는 단어가 있다. ‘자리가 좋아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부터 떡볶이 집과 작은 구멍가게까지 모두 목이 좋아야 많이 팔 수 있다. 모든 업체들의 입점 전략은좋은 목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통 업체들은 주변에 유동인구가 많거나 구매력이 높은 소비층의 주거지역에 영업점을 내기를 원한다. 거기다가 교통이 편리해서 접근성이 좋으며 큰길가에 있어서 어디서나 잘 보이면서 임대료까지 낮은 곳이라면 그야말로 최고의 목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모든 것을 갖춘 곳(location)은 많지 않다.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이미 다른 업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다른 기업의 입점 전략을커닝하는 ‘Me too’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글에서는 기업들의 대표적인 입점 전략을 모아봤다. 기업들은 미투 전략 외에선택과 집중차별화 등의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목은 한정돼 있으며 모두가 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입점 전략은 비용에 대한 인식 차이와 경쟁의 성격에 따라 좋은 목을 중심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1. 벤치마킹

아딸떡볶이의 창업자인 이경수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아딸떡볶이 점포 위치로) 창업주들에게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 앞, 파리바게뜨 옆을 추천한다고 말했다.1 파리바게뜨가 아딸이 추구하는 바와 같이 전액 포장으로 매출을 올리는 가게이면서 두 곳 모두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을 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파리바게뜨는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등 유명 프랜차이즈를 여럿 운영하는 입점 노하우를 가진 SPC그룹이 운영하는 곳이다. 따라서 미투 전략을 활용하면 SPC그룹의 노하우를 쉽게 모방할 수 있다. 입점 벤치마킹은 이처럼 쉬우면서 매우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90개 외식업체의 프랜차이즈 1호점 입지를 분석한 대한지리학회지에 실린 논문2 에 따르면 약 79% 71개가 강남구,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1호점은 각 업체들이 입점 전략에 가장 신경을 쓰는 점포라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업체들이 결국은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논문은 강남구에는 압구정동과 삼성동에 패밀리레스토랑, 종로구에는 종로2가에 패스트푸드점, 서대문구에는 신촌 대학가 일대에 아이스크림과 커피전문점, 중구에는 명동에 패스트푸드 및 피자 스파게티점의 1호점들이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외식업체 프랜차이즈 1호점은 또 금융기관이 많은 곳에 자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론적인 분석이기는 하지만 은행들 역시 입점 전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유통업체나 레스토랑 등 사기업만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서비스는 인구 수에 따라 고르게 분포되기 때문에 공공서비스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일본 택배업체인 야마모토운송은 일본 전역의 경찰서 위치를 참고해 영업소를 열었다.3 경찰서는 주민의 안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구밀도와 거리를 잘 따져서 설치되며 경찰차들이 지역을 운행하듯 택배 차량의 이동범위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의 양대 산맥인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비슷한 곳에 점포를 운영한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패스트푸드는 고객들이 먹기 위해서 멀리 이동하지 않으며 꼭 한 브랜드만 고집하는 고객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전략이다. 맥도날드 먹으러 가다가 버거킹이 보이면 마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 자동차 매장도 대부분 특정 지역에 모여 있어 대표적인 벤치마킹 사례로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수입차 거리인 도산공원 사거리를 보면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영업점이 처음 들어선 이후 다른 수입차 업체들이 하나둘씩 영업점을 내기 시작해 이제는 대부분의 수입차 영업소가 자리잡았다. 수입차 업체들은 고객들이 오기 편한 장소이면서 잠재구매력이 큰 곳을 영업점 위치로 선택한다. 제품의 가격이 비싼 만큼 부촌에 몰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산공원 사거리, 삼성동, 서초(예술의전당 부근), 분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일산과 목동은 물론 최근에는 용산까지 수입차 거리가 형성되고 있다.

 

은행들도 지점을 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인근 지역 주민들의 경제력이다. 서울 강남권에 블록마다 은행지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점포개설 담당자는지점을 새로 낼 때는 영업 대상의 소득수준, 지역 기업체 현황, 아파트 단지의 평형이나 가격대 등 경제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지점 개설의 50% 정도는 경제력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지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강남에 있는 지점은 대부분 실적이 좋다고 한다. 이와 같은 벤치마킹이 많은 입점 전략은 독특하게 ‘Late mover advantage’가 일반화돼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2. 선택과 집중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입점 전략은 독특하다. 1962년 미국 아칸소주에 첫 점포를 연 월마트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로 성장하면서 2012년 현재 미국에만 4500여 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월마트가 이처럼 급성장했지만 미국 전역에 우후죽순 마트를 여는 전략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월마트는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마트를 열면서 점진적으로 방사형태로 뻗어 나갔다.(그림) 한 지역을 집중 공략해 더 이상 신규 점포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더 먼 지역으로 확장해간 것이다. 미네소타대 토마스 홈스 교수는 월마트가 이러한 전략을 쓴 이유를 비용과 인력의 문제로 분석했다. 점포들이 가까이 있으면 운송트럭들이 여러 점포에 물건들을 실어 나를 수 있어 비용 면에서 절약이 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1호점과 2, 3호점이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운송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또 종업원 교육 문제도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 유통업체는 경험 많은 매니저들의 새 종업원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데 점포들이 서로 가까우면 경험이 많은 매니저들을 인근의 새 점포로 보내 새 종업원 교육을 시키기가 용이하다.

 

국내서 비슷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던 대표적인 업체는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신세대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직장인들이 모이는 사무실 밀집지역, 지하철 역세권이나 대형 쇼핑센터 주변 등 고객들의 눈에 잘 띄고 접근이 쉬운 곳에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이 중에서도 가장 예의 주시한 점은 예비 고객의 동선이었다. 이들이 움직이는 곳을 살펴 그곳에 집중적으로 매장을 열었다. 대표적인 곳이 신촌, 강남 테헤란로, 광화문, 명동 등이다. 이런 곳에는 보통 여러 개의 스타벅스 점포가 있어 고객들은 돌아서면 스타벅스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스타벅스가 성장위주의 경영을 할 때 이 같은집중적 초토화전략은 브랜드 노출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3. 차별화

입점 전략을 짤 때 벤치마킹을 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 이때는 차별화가 답이다. 대형마트가 대표적인 예다. 대형마트의 신규입지 장소로 가장 알맞은 곳은 점유 인구를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지점으로 경쟁업체 매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4 이마트 개발팀은 새 대형마트를 위한 부지매입 기준은 왕복 6차로 이상의 대로변에 너른 부지가 있는지, 반경 3㎞ 이내에 10만 명 이상이 사는지, 핵심 상권 내에 기존 유통업체 매장이 있는지 등이라고 밝혔다. 소규모 매장들은 서로 벤치마킹이 일반화돼 있지만 대형마트는 다르다. 기존 대형 유통매장이 있는 곳은 웬만하면 피한다. 대형마트의 고객들은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고객과 같이 여기저기 여러 군데를 다니기보다는 한 곳을 정해놓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념이나 철학 차원에서 경쟁업체들과 완전히 다른 포지셔닝을 하는 사례도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후발주자인 매드포갈릭은 매장 위치로 경쟁 패밀리 레스토랑들과는 달리 큰길가보다는 뒷골목을, 1층보다는 지하를 선호한다.5 이유는 단 하나, 임대료가 적기 때문이다. 같은 상권이라도 대로변과 이면도로변의 임대료는 배가 차이 난다. 매드포갈릭은 음식 맛이 좋으면 위치를 찾기 어렵더라도 고객이 결국은 찾아올 것이라는 철학을 토대로 비용(임대료)를 줄이고 음식 맛에 더욱 신경을 쓴 것이다. 대로변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매장을 연 대부분의 경쟁 패밀리 레스토랑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전략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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