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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UI / UX 인가

이제는 ‘선 경험, 후 구매’시대 UX 역량이 기업 경쟁력 좌우한다

조광수 | 106호 (2012년 6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하시은(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 시대에 UI(User Interface)/UX(User Experience)가 왜 중요한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원시사회부터 지금까지 시장 구조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시 사회에서는 생산자가 소비자였다.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자기가 소비했다. 하지만 사회가 발달하면서 잉여생산물이 교환됐고 점차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됐다. 특히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들은 제품에 대한 세부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 따라서 생산자는 제품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마케팅을 본격화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마케팅과 고객 경험이 분리됐다. 기업들은 당연히 ‘우리 회사 제품은 정말 좋다’는 식으로 마케팅했다. 고객들은 이 말을 믿고 제품을 샀는데 실제 써보니 형편없다고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생산자가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과거에는 제품 정보를 구할 채널이 생산자의 마케팅밖에 없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기껏해야 가족이나 친구 등 믿을 만한 사람들의 사용 경험을 공유하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기술 발달로 고객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확산으로 소비자는 다른 사람이 제품을 사용해본 경험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본 분들이라면 구매 결정 전에 다른 사람의 사용 후기를 읽어봤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기업이 마케팅용으로 제시하는 콘텐츠는 아예 건너뛰고 스크롤바를 아래로 내려 사용 후기부터 읽는 사람도 많다. A사와 B사의 휴대전화 광고를 보고 비슷한 평가를 내렸던 실험자들이 제품을 사용해보고는 A사 제품을 훨씬 더 선호한 연구 결과도 있었다. 기존 마케팅 패러다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구매 후 경험’에서 ‘경험 후 구매’로 소비 패턴이 바뀐 것인가.
“그렇다. ‘선 경험, 후 구매 시대’가 열렸다. 그래서 이제 소비자라는 개념보다 사용자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구매하게 하면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식상한 마케팅 문구를 더 이상 믿지도 않고 잘 보지도 않는다. 세일즈도 갈수록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휴대전화 매장에 들어온 상당수 소비자들은 ‘아이폰 주세요’ 혹은 ‘갤럭시S주세요’ 라고 말한다. 이미 다른 사람의 사용 경험을 보고 구매 품목을 정한 다음에 매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는 피처폰 사용자처럼 가격이나 판매 조건을 중시하는 일부 소비자에 국한된다. 그래서 이제는 소비자란 개념보다 ‘유저머(usumer, user+consumer)’란 개념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유저머는 사용자와 소비자를 결합해 만든 조어다. 소비자는 판매를 중시하는 마케터들이 중시한 개념이다. 반면 UI/UX 전문가들은 사용자를 중시한다. UI/UX 전문가들은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에 대해서는 잘 대답하지 못한다. 판매량을 예측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은 마케터들이 잘한다. 하지만 UI/UX 전문가들은 고객들이 사용 과정에서 어떻게 긍정적 경험을 하도록 유도할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용자의 경험을 관리하는 일은 이제 기업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기업에서 사용자 경험에 대한 의사결정은 실무자의 몫이다. 전략 과제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몇몇 선도적 기업에서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디자인을 하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고위 임원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임원이 관심이 없고 잘 모르니 실무 직원이 알아서 하는 기업이 많다. 제품 색을 빨갛게 할지 파랗게 할지, 버튼을 어떻게 배치할지 등은 임원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지만 사용자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애플과 삼성의 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다. 삼성 스마트폰의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만든 게 아이폰 특허 침해라는 게 애플의 주장이다. 역으로 삼성은 애플에 비행모드의 비행기 마크를 빼라고 소송을 냈다. 세계 IT업계의 양강(兩强)이 이처럼 극히 ‘사소해 보이는’ 요소를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경영자라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용자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인드를 표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 제품에서 사진을 확대하고 축소하려면 엄지와 검지를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이면 된다. 애플은 이걸 특허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우 직관적인 이 UI가 나오자 사람들은 사진을 확대 축소할 때 자연스럽게 이렇게 행동한다. 만약 이게 특허로 인정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고객의 마인드가 통일됐기 때문에 특허료를 지불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사실 이건 기술적으로 전혀 대단하지 않다. 두 점 간의 거리를 삼각함수로 잡아주면 된다. 하지만 별것 아닌 기술이라도 고객 경험 관점에서 고민해 UI를 개발하면 이처럼 고객의 마인드를 통일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김치냉장고는 기계공학적으로 기존 냉장고와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딤채는 사람들에게 기존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가 다른 제품이라는 마인드를 심어줬다. 사람들은 이제 냉장고가 있어도 자연스럽게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장만한다. 이처럼 마인드가 통일되면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진다. UI/UX는 마인드를 통일시키는 강력한 무기다. 원천기술 개발과 달리 UI/UX 분야는 투자비가 훨씬 적게 든다는 장점도 있다. 경영자의 관심이 없는 게 문제다.”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했던 일본 기업들이 최근 쇠락하고 있다. UX 디자인 역량 차이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미국의 장점은 ‘콰드로버전스(quadrover- gence·4개의 융합이라는 뜻)’에서 찾을 수 있다. 콰드로버전스는 하드웨어와 인프라 플랫폼, 소프트웨어, UI, UX의 융합을 의미한다. 그 정점은 UX다.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은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하는 콰드로버전스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애플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애플은 제조와 관련해 대부분을 아웃소싱한다. 칩은 삼성에서 납품받고 생산은 중국 폭스콘이 담당한다. 하지만 UI/UX만은 미국 본사에서 한다. CEO도 디테일까지 직접 챙긴다. 아이폰, 아이패드, iOS, 아이팟 등 애플 제품 이름에 유독 사람이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아이(i)’가 많이 들어간 건 아마도 애플이 기술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아주 재미있는 케이스다. 일본은 하드웨어 기술도 좋고 디자인도 좋다. 하지만 고전하고 있다. UX는 디자인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 이유가 빠져 있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UX를 구현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아무리 많이 육성해도 UX를 고려하지 않으면 부가가치 창출이 어렵다. 애플의 아이패드 앱 ‘아이북’에서 책장을 넘길 때면 감탄사가 나온다. 얇은 종이 틈으로 뒷면이 비치는 등 종이책을 넘길 때 느낌이 그대로 난다. 하이라이트로 선을 그으면 차갑고 반듯한 선이 아니라 사람이 그은 꼬불꼬불한 모양이 나온다. UX를 고려하면 이처럼 고객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선물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코드를 짜는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하기 힘들다. 심플하고 편안한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경험을 충족시켜야겠다고 방향을 바꾸면 힘들더라도 이런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많은 UI/UX팀이 디자이너로 구성돼 있다.
“이런 성향이 일부 기업에서 깨지고 있다. UX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경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을 한다. 아직까지 많은 디자이너들은 드로잉(drawing)만 한다. 소리를 통한 경험은 전자공학 분야에서, 음악은 작곡가가 해야 한다. 사용자들이 직접 제품을 만져보면 구매력이 40%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옷가게에서 옷을 입어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만져보거나 입어보면 오너십이 생긴다. 이렇게 중요한 ‘터치’와 관련한 UX디자인은 누가 해야 하나. 이런 부문의 전문가가 없는 기업이 대다수다. 고급 가구는 서랍을 열고 닫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부터 소리, 비주얼, 터치감까지 모든 감각과 관련이 있다. 자동차는 또 다르다. 운전하면서 닿을 수 있는 팔의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적절한 위치에 기능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UI/UX를 제대로 하려면 결국 다중감각적 경험을 이해하고 제품에 반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여러 다양한 분야의 융합이 중요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하다.”
 
좋은 UX를 만들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중요하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CEO들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밖을 잘 보지 않고 제한된 사람들만 만난다. 사람의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UX라는 것은 제품 기획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제품의 성공의 잣대이기도 하다. UI디자인, UI엔지니어링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UX다. 다양한 삶의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과거 좋은 노래를 듣기 위해 사람들은 검색하고, CD를 사고, 플레이어에 재생시켜 듣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이런 모든 프로세스를 애플이 새로 디자인했다. UX는 제품 기획의 시작이고 종점이다.” 

 
과거 피처폰 시절, 왜 MP3플레이어를 통째로 휴대전화 안에 넣지 못할까 이상하게 여겼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고민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애플이 이 일을 했다.
“사실 만들어 놓고 보면 정말 쉬워 보인다. UX 기술을 우습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답을 알기 전까지는 생각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엄청난 연구를 해야 한다. MS가 윈도를 만들었을 때 인류학자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문화보편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윈도의 휴지통을 생각해보자. 과거에 파일을 지우려면 파일 이름을 기억해야 하고 ‘del’ 같은 명령어도 알아야 했다. 하지만 휴지통이란 메타포를 사용하자 모든 사람이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애플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휴지통 뚜껑도 열리게 만들었다. 윈도에서도 폴더에 파일을 넣을 때 폴더가 열린다. 이런 사고는 기술 중심으로 생각하면 절대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시각만 전환해도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4S를 발표했을 때 언론의 반응은 시니컬했다. 음성인식 기능 정도 추가한 것으로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애플의 시리(Siri)는 농담도 할 수 있다. ‘나랑 결혼할래’라고 물어보면 ‘그냥 친구로 지내’라고 대답한다. 이러니 ‘정들겠다’ ‘짜증난다’는 반응을 하는 사용자가 많아졌다. 많은 사람이 기계에 이런 표현을 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2030년쯤 나와야 하는 기술인데 이걸 애플이 전면에 내세웠다면 다음 버전에는 얼마나 더 잘 만들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네이버나 구글에 가서 ‘서울 날씨가 어때’라고 입력하면 ‘서울’ ‘날씨’가 들어간 문서가 잔뜩 나온다. 구글은 무려 50만 개 가까이 문서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 서울의 기온을 정확히 말해주는 건 찾을 수 없다. 시리는 단번에 ‘오늘 따뜻하대. 16-24도 사이야’라고 대답한다. ‘인천은 어때’라고 물으면 ‘비슷해’라고 답한다. 시리를 ‘아이시리’라 작명하지 않은 건 아마 더 이상 ‘아이’를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맥락을 이해하는 언어학과 심리학이 IT와 결합해야 시리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인문학 분야의 연구 예산이 도로 하나 만드는 예산에 불과하다. 이런 분야의 발전을 거의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애플의 시리는 사실 UI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UI는 사람과 기계를 편리하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시리 같은 게 보편화되면 UI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애플의 TV가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정부와 업계는 스마트TV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기능을 집어넣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고려다. 많은 기능이 추가돼 리모콘은 더 복잡해졌다. 이런 TV는 사람을 더 헷갈리고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애플의 TV는 아마 사람에게 ‘지금 프로야구 볼래’라고 먼저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냐 드라마 볼래’라고 답하면 평소 보던 드라마 채널이 바로 나올 것이다.”
 
인간의 인지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인지과학은 사용자가 갖고 있는 뇌, 마인드, 몸이나 환경이 어떻게 인공물과 상호작용을 하는지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적록색맹의 예를 들어보자. 만약 적록색맹 사용자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UI 담당자라면 녹색과 적색을 같이 쓰면 안 된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에게는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는 알고리즘이 있지만 색맹인 사람은 그것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적록색맹 사례는 ‘built-in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UX디자인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인식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고려해 UI를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알고리즘이 따로 있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의 직업은 무엇일까’라고 물어보면 보통 ‘간호사’라고 대답한다. 물론 이건 사실과 다르다. 의사나 직원 가운데도 여성이 많다. 하지만 인간은 후천적으로 획득된 지식의 구조에 영향을 받아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이 간호사일 것이라고 먼저 생각한다. 여자 의사까지 떠올리게 하는 노드는 좀 멀리 있다. 이런 지식의 구조가 편견이기도 하고 문화이기도 하다. 과거 KB국민은행의 상징은 까치였다. 한국에서는 까치가 길조다. 하지만 일본만 해도 까치가 좋은 이미지가 아니며 심지어는 스페인에서는 ‘도둑새’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은행이 도둑 이미지와 연관되는 건 참 곤란한 일이다. 결국 상징을 바꿨다. 사용자의 알고리즘을 중시하지 않으면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사용자 경험을 잘 만들려면 사람이 원하는 걸 이해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이런 지식을 갖추기 어렵다. 인문학적 소양과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에 이런 지식은 비즈니스에서는 ‘extra’로 여겨졌다. 잡스가 IT와 인문학의 융합을 얘기하고 나서야 시각이 달라졌다.”
 
UX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면 저원가를 무기로 경쟁해도 될까?
“아이패드2가 발표됐을 때 전 세계 업체들이 충격을 받았다. 아이패드1보다 스펙이 좋아졌지만 가격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내려간 거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니다. 명품이 싸지는 시대다. 저가 시장 공략에 주력했던 노키아가 반전을 위해 아프리카 시장에 갔다. 시장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허름한 집에서도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품질을 못 따라가면 가격도 안 된다.
 
아이패드2를 보고 충격을 받은 한 한국 기업은 절치부심해 애플보다 얇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패드3가 나왔는데 두께가 더 두꺼워졌다. 두께로 따라갔던 이 업체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두께가 기술력의 상징이라 여겼는데 애플은 사용자 경험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을 고민했던 것이다. 두께는 두꺼워졌지만 여전히 애플 제품은 잘 팔렸다. 지금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스펙 경쟁을 하는 기업이 있다. 실제 한국 여러 업체는 아이폰보다 스펙 측면에서 우월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잘 안 팔린다. 고객 경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면 열심히 노력해도 좋은 성과가 안 나온다.”
 
소셜네트워크는 UX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과거에는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SNS가 등장하고 나서 약한 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like’ 버튼을 받았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시원한 해답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SNS를 사용하는 이유는 뉴스나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오는 감정적 정서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다. SNS는 본질적으로 감성적인 것이다. 최근 카카오톡에 이어 ‘라인’이 뜨는 것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본질을 이해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어떤 게 좋은 UI/UX인가.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natural’이다. 자연스러운 인터랙션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은 아이폰 화면을 열 때 화살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처럼 특정한 규칙에 인간이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휴대전화를 흔들거나 아래에서 위로 밀어도 열려야 한다.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며 실제 한 업체는 이런 제품도 출시했다. 자연스러운 인간 행동을 반영하는 게 좋은 UX디자인이다. 엄지와 검지로 사진 크기를 조절하는 애플의 UI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한 회사는 양쪽 손가락을 휴대전화 위에 대고 밀었다 젖혔다 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유명 여가수를 광고모델로 기용해 적극 홍보했지만 나도 아직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런 UI라면 제스처를 포스트잇에 붙여놓고 몇 번 반복훈련을 해야 습득할 수 있다. 이건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고객들은 당연히 불편하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multi-modal’, 즉 다중 감각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통로로 감각을 받아들인다. 또 여러 정보를 통합해 경험이 생성된다. 똑같은 풍경이라도 평화로운 배경음악과 무서운 음악이 깔리면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인간의 성향을 잘 활용하면 감각적 경험의 합을 초월하는 초가산성(super-additivity effect) 효과나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두 가지 감각 경험을 잘 활용하면 두 배 이상 효과가 난다는 의미다. 지금 대부분 내비게이션은 시각과 청각만 활용해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우리는 운전석 등 뒤에 작은 패드를 설치해 촉각으로도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내비게이션보다 200% 이상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감각의 시너지도 중요한 트렌드다.”
 
B2B기업에도 UI/UX가 중요한가.
“예를 들어 반도체 업체를 생각해보자. 반도체 업체가 아무리 R&D 투자를 많이 해서 성능이 향상된 제품을 개발했다 해도 애플 같은 회사가 안 사주면 끝이다. 애플이 라인을 바꾸는 순간 기술개발 투자는 물거품이 된다. 반도체 기업은 어떻게 수요를 예측해야 할까. 결국 소비자인 IT 업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최종 제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UX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인가.
“UI/UX는 중소기업에서 해야 한다. UI/UX기술은 기반 기술에 비해 굉장히 저가로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큰 혁신은 여기서 나온다. 일본의 와콤이란 회사가 있다. 갤럭시노트에 펜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솔루션을 와콤이 개발했다. 사실 와콤의 기술은 쓰고 표현하는 매우 단순한 것이다. 이 회사는 삼성을 만나면서 대박이 났다. 대기업에서는 잔잔한 기술들을 개발하기 어렵다. 스마트 시대의 혁신은 우리의 주위에 있는 사소한 것을 IT로 구현한 것이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혹은 스스로 자신을 관찰해보면 얼마든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중소기업이 기업가정신을 갖고 도전해야 할 분야가 바로 UI/UX다.”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WCU 교수 인터뷰
 
조광수 교수는 피츠버그대에서 인지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주리대 정보과학과 학습공학, 전산학과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성균관대 WCU(World Class University)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터랙션사이언스연구소장, 서비스IT융합포럼 의장, UI/UX미래준비의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약 120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11년 성균관대 연구력 최우수교수로 선정됐다.
 
인터뷰 및 정리=김남국 DBR 편집장 march@donga.com
  • 조광수 | - (현) 성균관대 WCU(World Class University) 교수
    - (현) 인터랙션사이언스연구소장
    - (현) 서비스IT융합포럼 의장
    - (현) UI/UX미래준비의장
    - 미주리대 정보과학과 학습공학,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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