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Thinking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하시은(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미국의 디자인 기업 IDEO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5’에 포함된 유일한 디자인 기업이다. IDEO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마이크 넛톨이 삼성디자인학교(SADI)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2006년 IDEO를 떠난 뒤에도 디자인 컨설팅 전략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 디자인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9년에서 1997년까지 삼성과 밀접하게 일했습니다. 1년에 열 번 정도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온 게 2003년입니다. 가장 처음으로 삼성과 일한 것이 컴퓨터 모니터였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왜냐하면 처음으로 삼성을 위해 디자인한 모델이 성공했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3-4 세대 정도 더 디자인을 했습니다. 제가 고급 모델을 디자인하고 삼성 내 자체 디자인팀에서 하위 사양을 디자인하는 식이었죠. 제가 디자인에 참여했을 당시 삼성의 모니터와 디스플레이 부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당신이 디자인한 컴퓨터 모니터의 특징은 무엇이었나요?
“좋아 보였습니다(They looked good).”
좋아 보이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만약에 제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그건 굉장히 가치 있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사실 어떤 디자인이라도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좋아 보인다는 것은 특정 시기의 많은 것들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주위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좋아 보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대적입니다. 유행과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좋아 보이는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순간은 마법 같은 것이지요.”
디자인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영감입니다. 당신이 삼성에서 일했을 때 한국적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었나요?
“제가 디자인한 것에 한국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삼성 TV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했습니다. 어떤 시대에서도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디자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 문화, 역사, 전통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관심은 있지만요. 물론 제가 한국 박물관을 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이테크 상품 소비 시장에서는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동일한 스타일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어떤 스타일은 어느 한 국가에서 조금 더 선호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디자인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한국적 디자인의 잠재력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제가 동의하기를 바라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런던에서 한국까지, 그리고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10시간 비행기를 타면 갈 수 있습니다. 세계는 생각보다 굉장히 작습니다. 제 생각에는 특정 분야에서 타 문화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품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대량 생산 소비 제품 카테고리의 경우 모든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그 제품은 최고여야 합니다. 다양한 나라 출신의 모든 사람들이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는 목표를 이루고 싶어 합니다. 병원의 경우 한국적인 병원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세계 어디든지 훌륭한 병원이 있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죠. 자동차도 모든 곳에서 통용될 수 있습니다. 제품 디자인은 앞으로 더욱 세계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IDEO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마이크 넛톨
애플의 모토는 ‘Think differently’이고 이것이 애플의 경쟁력입니다. 디자인 하면 떠오르는 애플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Think differently는 어디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전 세계 어떤 기업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라는 모토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마케팅 전략이나 개발 등의 분야에서 차별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관건은 열심히, 잘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thinking really well and really hard). 대상에 대한 엄청난 집중력이죠. 애플은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의 머릿속을 정확히 파악합니다. 그들은 시장 조사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애플은 여전히 똑똑한 사람(bright people)을 갖고 있고 그들은 사람들이 사랑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최근까지 애플은 굉장히 똑똑하며 힘(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것을 이렇게 만들어라’고 말할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리더십 이상입니다. 그는 다른 회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예시는 애플이 다른 회사들처럼 주입식 플라스틱 몰딩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알루미늄을 기계가공하는 방식으로 제품 생산을 하도록 결정한 것입니다. 제가 (이 방식이 디자인적으로 더욱 우수하니) 고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면 아마 저보고 미쳤다고 했을 겁니다. 알루미늄 기계가공 방식은 복잡한 생산 과정을 요합니다. 플라스틱 주입식 몰딩 기계는 전 세계에 있고 이미 완벽히 생산해낼 여건도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기계가공 알루미늄은 수십 개가량의 소량 생산에만 사용됩니다. 알루미늄 한 블록을 만들기 위해 굉장히 큰 CNC 공작기계가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투자 규모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런 이유로 애플 이전의 어떤 기업도 알루미늄으로 된 제품을 만들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애플은 이를 해냈고 이것이 차별성으로 나타났고 다른 회사가 넘보기 힘든 자산이 된 겁니다. 크게 이기고 싶다면 큰 위험 부담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사례 또한 알루미늄과 관련이 있습니다. 알루미늄 커버 이전의 맥북에서는 플라스틱 뒤에 LED가 있어 불이 꺼졌을 땐 보이지 않다가 불이 켜지면 숨소리가 들리면서 빛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커버를 알루미늄으로 바꿨을 때에도 디자이너들은 이 기능을 넣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엔지니어팀으로 가서 LED를 보이게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엔지니어들은 알루미늄은 투명하지 않고 금속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이것이 가능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한 연구소에서 금속에 미세한 구멍을 내는 공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 구멍들은 미세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이러한 구멍 여러 개를 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빛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애플은 유럽의 한 실험실에서 개발되고 있던 이 기술을 가져와 생산 과정에 적용했습니다. 애플의 경쟁력 중 하나가 그들은 절대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바로 애플의 제품을 사용할 때 기분 좋은 이유입니다. 정말 할 것이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자세 말입니다. 많은 회사들은 타협하고 일정에 맞추고 예산에 맞춰 경영합니다. 애플은 만만치 않은 경쟁 상대입니다. 삼성은 애플과 성공적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플의 경쟁 대상이 되는 회사 역시 매우 소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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