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1. 케네콧사의 칠레 동광산 협상

기적의 협상툴을 찾아라

박헌준 | 8호 (2008년 5월 Issue 1)

 

Case
1960
년대 칠레는 아르헨티나, 페루와 함께 세계 주요 동(銅) 생산 국가 중 하나였다. 칠레는 당시 세계 동 매장량의 약 30%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유타주에 본사를 둔 케네콧 동제련사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동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엘테니엔테 동 광산을 운영하고 있었다. 엘테니엔테 동 광산은 20세기 초부터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구겐하임 패밀리가 광산 개발을 시작해 운영하고 있었다.
 
칠레 총수출의 20%를 동 광석이 차지하던 1917년, 케네콧사는 구겐하임 패밀리로부터 엘테니엔테 동 광산을 사들였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면서 엘테니엔테 광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 동광산이 됐다. 지하 갱도의 전체 길이가 약 2000km에 달하고 매년 64km의 새로운 갱도와 회랑이 굴착되고 있었다. 당시 엘테니엔테 광산은 매년 35만 톤에 달하는 동 광석을 생산하고 있었다.
 
운영 초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케네콧사는 엘테니엔테 광산을 장기간 싼 로열티만 내면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4년 칠레 기독민주당의 에두아르두 프레이가 정권을 잡으면서 정치 상황이 급변했다. 프레이의 기독민주당은 광업 분야의 생산성 증대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동 생산과 제련, 그리고 판매에 칠레 정부가 참여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칠레 정부는 케네콧사는 물론 경쟁사인 아나콘다사를 타깃으로 모든 기존 계약의 재협상을 요구했다.
 
칠레 정부는 이 협상에서 매우 매력적인 대안(no -deal alternative)을 갖고 있었다. 만약 케네콧사가 계약 재협상을 거부하면 칠레 정부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 조건을 변경할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 엘테니엔테 광산을 몰수할 수도 있었다. 과연 케네콧사는 칠레 정부와의 이 협상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고 어떤 협상전략을 강구해야 할까.
 
당시 케네콧 동제련사는 어떤 수단을 강구하더라도, 아무리 능숙한 협상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성공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사납게 몰아붙이거나 으름장을 놓더라도, 협상전술의 또 다른 극단인 적극적 경청과 존경을 표하는 전술을 구사하더라도 형세는 절대적으로 케네콧에 불리했다.
 
케네콧사는 칠레 정부와의 협상에 대비해 최고의 협상 전문팀을 구성했다. 이어 칠레 정부의 협상 담당자들이 가진 배경과 협상스타일, 그들의 성격까지 연구했다. 칠레 협상 문화에 대해 조사하고 협상 상대방에게 대해 어떤 형태로 존경을 표시할지도 고민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케네콧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려웠다.
 
칠레 정부의 협상 관료들은 모든 가능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칠레 정부는 광산 전문가, 엔지니어, 그리고 경험 있는 매니저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고 케네콧사의 전문성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케네콧사가 광산을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과연 케네콧사는 칠레 정부와의 이 협상에서 어떤 전략을 활용해야 할까. 당신이 만약 케네콧사의 CEO라면 협상팀에게 어떤 지시와 조언을 하겠는가.

Analysis
당신은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데 상대방이 이혼을 강력히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은 모든 가능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어 당신이 더없이 불리한 상황이라면 대응하기는 더욱 어렵다. 1960년대의 케네콧사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케네콧은 1964년 말부터 시작된 엘테니엔테 광산의 몰수 협상을 1968년에 창의적인 협상으로 종결했다. 게다가 칠레 정부는 엘테니엔테 광산의 지분 51%를 매입하고 8160만 달러를 케네콧사에 지불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였음을 감안하면 케네콧사 협상팀은 놀라운 성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또 케네콧의 협상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케네콧 협상팀은 이 딜이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협상 과정과 목표를 미리 준비하는 ‘셋업’(다음 페이지 DBR TIP 참조)부터 먼저 고민했다. 최종 목표를 먼저 결정해 ‘노-딜 옵션’(협상이 깨졌을 때의 대안)보다 선호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으면 칠레 정부 측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케네콧 협상팀은 이상적 협상 셋업 상황으로부터 현재 상황으로 ‘거꾸로 그림 그리기’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이 그림에는 실제 협상 당사자는 물론 잠재적 당사자까지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다. 이 작업에는 잘 훈련된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케네콧은 협상의 틀과 판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여섯 단계를 밟았다. 첫 단계로 케네콧 협상팀은 칠레 정부의 허를 찌르는 과감한 제안을 내놓았다. 즉 케네콧이 가지고 있는 엘테니엔테 광산의 주요지분을 칠레 정부에게 매각하겠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단계로 케네콧 협상팀은 이 딜을 칠레 정부에게 더욱 유리하고 달콤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케네콧은 이 지분의 매각대금으로 광산의 대규모 확장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또 확장 프로젝트에 필요한 추가자금 조달을 위해 미국 수출입은행에서 대출을 받겠다고 제의했다. 이런 제안은 칠레 정부가 공공연히 약속한 광업 분야 생산증대라는 프레이 정권의 공약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단계로 케네콧은 광산 확장 프로젝트를 위한 미국 수출입은행 대출에 대해 칠레 정부가 보증을 서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뉴욕주법에 따른 보증을 요구한 것이다. 네 번째 단계로 케네콧은 미국 정부의 해외자산 몰수에 대한 보증을 전제로 가능한한 모든 자산을 보험에 가입했다. 다섯 번째로 케네콧 협상팀은 광산 확장 프로젝트로 인해 추가로 생산될 제품 전량을 북미와 유럽 고객에게 장기간 판매하는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 단계로 이 장기판매 공급계약에 대한 추심권을 유럽, 미국, 일본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재판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즉 장기판매 계약으로 미래에 발생하는 현금 수입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금융 컨소시엄에 재판매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할인된 금액이지만 케네콧사는 이 프로젝트로 발생할 수 있는 현금을 미리 회수할 수 있었다. 케네콧은 창조적 딜을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미리 이익을 챙겨서 이 딜에서 빠져나간 셈이다. 이 딜은 마침내 1968년 칠레가 케네콧 자산의 51%를 매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케네콧의 제안은 모두 수용됐다.
 
케네콧이 성공한 근본 이유는 협상 전술 때문이라기보다는 뛰어난 협상 셋업과 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협상 셋업부터 생각해보자. 케네콧은 어떻게 협상 셋업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갔을까. 칠레 광산 생산품에 대한 북미와 유럽 고객은 물론이고 칠레 정부와 미국 정부, 미국 수출입은행을 포함한 서구 금융회사와 보험회사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이 딜에 개입하도록 케네콧은 조심스럽게 셋업을 변경했다. 케네콧은 이 협상을 칠레 정부와의 양자간 협상이 아닌 다자간 협상으로 셋업을 변경해 미래 칠레의 정치적 변화 리스크에 민감한 다자간 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즉 칠레 정부의 광산 운영 역량에 대해 다자간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옳든 그르든 깊은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케네콧의 지분과 통제가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구조로 바꿔놓았다. 이렇게 협상 셋업을 변경함으로써 칠레 정부의 ‘배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인 해 케네콧사를 축출하고 광산을 몰수한다는 안은 오히려 실효성이 떨어졌다. 배트나란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협상을 결렬시키고 걸어 나갈 때 갖고 있는 ‘워크 어웨이(walk-away) 옵션’을 말한다. 또 협상 셋업의 변경은 케네콧의 배트나를 오히려 강화하는데 성공했다. 칠레 정부와 미국 정부의 보증, 뉴욕주법에 따른 보증, 보험, 기타 장기판매 계약업체들은 케네콧과 칠레 정부의 협상이 결렬되고 칠레 정부가 광산을 몰수할 때 케네콧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강력한 협력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딜 설계를 살펴보자. 초기 칠레 정부와의 협상은 케네콧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으로 보였다. 칠레 정부는 광산을 몰수하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갈 만큼 비싼 로열티를 부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케네콧은 칠레 정부에게 주요 지분을 가진 광산의 주인으로서 확장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함으로써 단순한 로열티 협상이 아닌 정치적으로도 매력적인 창조적 가치를 창출해냈다. 칠레 정부는 대규모 지분을 확보하고 규모가 커진 광산도 통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수입 확대의 계기를 마련했다. 케네콧사는 원래의 협상 테이블 판을 다시 짜서 형세를 바꿔놓았다. 투쟁적 딜을 파트너십 딜로 창조적 재설계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케네콧은 넘기 힘든 장애물들을 극복했으며 문제해결식 접근으로 파이를 키우고 상호 이익이 되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창조적 딜메이킹이야말로 협상 당사자들에게 모두 큰 이익을 제공하는 길이다. 케네콧사는 이런 ‘크리에이티브 딜메이킹’으로 새롭게 창조된 가치의 많은 부분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협상과 설득의 대가인 리처드 셸 교수는 모든 딜과 딜메이킹이 창조적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엄청난 협상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되도록 협상 셋업의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 회사에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딜 설계 그리고 창조한 가치를 자신에게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는 딜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셋째, 이런 딜을 종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협상전술에 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DBR TIP] 셋업

셋업이란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가장 유리한 상황이 되도록 협상 시작 전에 협상의 다양한 이슈를 미리 정하는 것을 말한다. 협상 당사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기 이전에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설정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말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 당사자가 다 참여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유리하려면 어떤 순서로 협상을 이끌어갈 것인지, 협상의 이슈와 관심사를 모두 고려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또 협상이 깨질 때를 대비해 유리한 대안과 결과를 미리 검토하고 유리한 협상 상황을 창조하는 것도 셋업에 포함된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방문 연구교수도 겸하고 있다.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등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으며 한국협상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협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왔다.

편집자주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과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창조경영 시리즈의 일환으로 이번 호부터 <Creative Dealmaking>이 연재됩니다. 연세대 박헌준 교수가 창조적 발상법으로 큰 성과를 낸 협상 사례 15개를 예시와 해설 형태로 소개합니다. 이 시리즈가 한국 비즈니스맨들의 협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