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대목장(大木匠), 화혜장(靴鞋匠), 조각장(彫刻匠) 등 주요 기술 장인들이 많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문화재’이자 한국식 전통 기술자의 표상이다. 한국 정부는 1986년부터 명장 제도를 도입해 특정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한 기술자들을 격려하고 이들의 노하우를 육성,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양성된 명장이 500명 안팎이라는 점은 매우 아쉽다. 절대적인 숫자도 적지만 기술 승계에 관한 구체적인 지원 및 교육이 미비하다. 명장 제도가 산업 및 국가 경제 발전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 참고할 만한 제도가 바로 독일의 ‘마이스터(장인)’ 교육 제도다. 독일은 기술 및 직업 교육 제도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나라다. 독일에서는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10대 후반∼20대 초반 현장에서 직업 교육을 받는다. 이들의 목표는 마이스터(Meister, 기술 장인)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무려 82%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다. 반면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30∼35% 정도에 불과하다. 얼핏 보면 세계적인 강국인 독일의 대학 진학률이 이처럼 낮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진다. 그럼 대학을 가지 않는 나머지 젊은이들은 다 무엇을 할까. 이들은 현장에서 직업 교육을 받는다. 이후 독일에서 최고 기술자를 의미하는 마이스터 자격증 취득에 도전한다.
일반적으로 20대 후반의 기술자들이 주로 마이스터 자격 시험을 치른다. 장인의 칭호를 받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이미 10년간 직업 교육을 받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다.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면 그 분야의 최고 실력자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명함에도 박사 학위 소지자처럼 마이스터를 표기할 수 있다. 자동차 정비, 금속 가공, 미장, 제빵, 미용 등 마이스터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하다. 현재 독일에는 마이스터 자격증을 딴 전문 기술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수공업 기업의 수가 무려 96만7000개에 달한다.
이 마이스터들은 굳이 창업을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 주요 기업에서 일반 기술자는 물론 고등교육을 받은 직원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독일의 밀레 본사에도 마이스터 자격증을 지닌 많은 기술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20∼30년씩 밀레에서 근무한 장기 근속자로 회사 안팎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금전적, 사회적인 대우가 좋으니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몰린다. 당연히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나 보유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 제도는 독일을 공업 및 제조업 분야의 강국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손재주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기능 올림픽 등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낸 적도 많다. 하지만 한국 사회, 특히 기업 현장에서 독일처럼 기술 장인을 우대해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기술 교육 및 홍보 제도 또한 아직 많이 취약하다. 노벨상을 탈 정도로 세계적인 과학자를 많이 보유하기만 한다고 해서 저절로 기술 강국이 되는 건 아니다. 기술 장인의 숫자를 대폭 늘리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
안규문 대표는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쌍용에 입사했다. ㈜쌍용의 미국, 쿠웨이트, 태국 법인장 등을 거친 세일즈 전문가다. 2005년부터 독일 가전업체 밀레의 한국법인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밀레그룹 전체의 유일한 외국인 해외 법인장이다.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kyu-moon.ahn@mie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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