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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조영갑 교수의 한국기업 향한 고언

“케네디의 위기관리를 배워라”

김남국 | 6호 (2008년 4월 Issue 1)
김남국기자 march@donga.com
 
많은 한국 기업들은 위기의 개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 위기관리 분야의 전문가인 조영갑 대진대 교수(안보학)는 아직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이해 수준이 부족하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위기관리는 당초 정치 안보 분야에서 사용되다가 기업으로 확장된 개념이다. 실제 위기관리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부터다. 위기관리학의 원조는 정치안보 분야인 셈이다. 조 교수는 국가 위기관리 분야의 교과서로 활용되는 ‘국가위기관리론’ 등 10여권 이상의 저서를 펴냈으며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쿠바미사일, 대만해협, 9·11테러 등 해외 위기와 연평해전, 서해교전, 북한 핵실험 위기 등을 집중 연구했다. 그를 만나 위기관리 능력 향상을 위한 대안을 들어봤다.
 
Q 위기관리가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도 위기가 발생하면 허둥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A 많은 관리자들이 스스로를 위기관리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위기란 말의 개념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기는 특정 개인이나 조직의 목표 달성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조건이 추가됩니다. 하나는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경우 위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년을 3년 앞두고 있다면, 월급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 삶의 목표 달성에 문제가 생기지만 이는 예상 가능하고 단기간에 의사 결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위기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반면 외환위기 때처럼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은 사람이라면 위기관리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위기란 말을 쓰다보니 진짜로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오히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Q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현상이 위기라면 어떻게 미리 대비할 수 있을까요.
A 위기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위기 발생 전에는 통상 어떠한 징후가 알게 모르게 나타납니다. 외환위기 때에도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위기를 경고했으며 미국 주요 싱크탱크가 한국의 경제위기를 경고하기도 했습니다.미국 9·11테러 이전에도 중동의 테러리스트가 대규모 공중 공격을 할 것이란 첩보가 이탈리아 정보기관을 통해 입수되면서 미국이 경계를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로 테러 위협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비를 소홀히 함으로써 위기가 현실화되고 말았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이런 징후를 잘 파악해서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또 역사적 데이터를 통해서도 사전에 위기에 대비할 수도 있습니다. 지진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지진이 많이 일어났던 곳이라면 당연히 상시 대비책을 마련해 반복된 대응 교육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Q 위기관리 측면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한 게 가장 극적인 성공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위기상황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3차대전을 각오한다는 엄포를 놓으면서도 동시에 유화책을 함께 펴는 등 치밀하게 구소련을 압박했습니다. 또 예술가와 언론인, 이중첩자 등을 활용해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확보해 상대방의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구소련 군함이 쿠바 인근 해상 800마일 격리선에서 정지 명령을 어겼을 경우 공격하겠다고 단언했지만 민간 상선의 경우 통과시켜주는 유연함을 보였습니다. 군함이 다가왔을 때에도 당시 후르시초프가 합리적 정책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격리선을 300마일이나 후방으로 양보하는 등 시간적 여유를 주면서 체면도 세워줬습니다. 적들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명예롭게 후퇴할 수 있는 퇴로까지 만들어 준 것이죠.”
Q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수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국가는 안보 차원에서 다양한 위기관리 매뉴얼을 갖고 있고 자주 훈련도 하지만 민간 기업들은 대비책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국가가 국경을 지켜주면 전 국민들의 안전이 확보가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국군이 38선을 아무리 잘 지킨다 하더라도 테러가 일어나면 국민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세계 최강 미국 군대가 국경을 잘 수비하고 있었지만 테러리스트들이 민항기를 탈취해 쌍둥이 빌딩을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국가 안보는 이제 회사나 개인의 안보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회사별·개인별로 어떤 위기발생 요인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파악해서 사전에 준비하는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위기위협 요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질적인 대응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Q 국가 위기관리 연구를 통해 얻은 시사점 가운데 기업 위기관리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줄만한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A 첫째로 위기관리에서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는 위기 및 위기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각 기관의 상황에 맞춰 위기의 유형을 구분하고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또 위기 상황 발생시 조직원들의 위기 극복 의지를 북돋아주고 조직 통합도 유도해야 합니다. 실제 9·11테러 때 부시 대통령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자극해 단합시켰습니다.
 
둘째로 매뉴얼을 만드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매뉴얼을 바탕으로 반복 훈련을 실시해야 합니다. 남대문 화재를 보세요. 문화재 관리 당국이 매뉴얼은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뉴얼도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 화재에 대비한 훈련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위기관리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도 마찬가지 문제를 경험했습니다. 매뉴얼에 따르면 비상사태가 터질 경우 백악관 직원과 국회의원들은 미리 지정된 장소로 가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9·11테러가 터졌을 때 전혀 이행되지 않았고 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안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수술을 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기관리 전문가를 육성해야 합니다.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보다 일본 기업들의 정보가 더 빠르고 정확하다고 합니다. 회사 차원에서 대내외 정보를 획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고 육성해야 위기관리 역량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Q 우리나라에서는 수해나 화재, 사건 사고 등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경향이 강합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우리나라는 사고가 나면 일단 관련부서 장관과 주요 책임자를 즉시 인사조치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다릅니다. 만약 한국에서 9·11테러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정보기관장, 국방장관, 교통 및 안전 관련 책임자 등이 줄줄이 해임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국가 위기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해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내각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터지면 그 조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존 수장이 새로운 사람보다는 문제를 훨씬 더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개인 비리가 있다면 즉각 조치해야겠지만 정책적인 문제나 열심히 일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이런 기회가 보장돼야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면 관심사도 바뀌고 단기적 수습책에 집중하기 십상입니다.
 

더 큰 문제는 정보 접근이 제한됨에 따라 위기상황을 분석하고 과학적인 대비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위기상황을 연구하고 재발을 막으려면 학자들의 체계적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료를 주지 않아요. 저도 국가 위기를 연구하면서 자료가 없어서 애를 먹었습니다. 외국은 다 공개한 자료도 우리만 비밀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후 관리에도 더 큰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문화재 화재가 난 후 고심을 거듭해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웁니다. 일례로 수 백 년 된 문화재가 손상될 수 있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자 일본인들은 안개 형태로 소화액을 내뿜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습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지만 교훈을 얻는 사람이나 조직만이 유사한 위기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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