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

노벨식 경영과 한국의 재벌 경영

75호 (2011년 2월 Issue 2)


편집자주

전략 경영 이론의 의미와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실전에서 기업이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전략 경영 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 성과를 내온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 코너를 통해 경영 전략 이론의 분석 틀과 그 올바른 활용법을 제시합니다. 고전 이론뿐만 아니라 최신 경영 이론도 함께 소개하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필자는 현재 서아시아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에 약 한 달간 머물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에 경제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제르바이잔은 7세기부터 고대 비단길(Silk Road)을 통한 동서교역의 요충지였고 그루지아, 러시아, 아르메니아, 이란, 터키 5개국과 맞닿아 있다. (그림1) 아제르바이잔은 면적이 한국의 약 80%, 인구는 900만 명 정도인 작은 나라다. 아제르바이잔은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으로 한때 석유 산업 분야에서 선두를 달렸다. 2000년도 후반 이후에도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출을 통해 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석유와 천연가스에만 의존하는 편향된 산업 구조로 제조업 및 서비스업은 매우 낙후돼 있다. 석유마저도 2025년쯤에는 고갈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0 달러에 불과하지만 천연자원이 풍부해서 제대로 된 경제 정책과 투자 환경을 잘 구축한다면 경제발전을 매우 빠르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경제 발전 가능성을 연구하고, 이를 위한 글로벌 기업의 역할, 특히 한국 기업과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는 협력 관계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아제르바이잔의 산업 구조 및 경제 발전 방향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IMD 등의 보고서들은 한결같이 아제르바이잔이 추가 성장하려면 사회에 만연돼 있는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석유 산업의 비관련 다각화를 통한 경제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제 보고서는 선진국의 시각에서 개발도상국을 평가해 개도국 경제발전에 맞지 않은 산업과 경제 발전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은 인구 900만 정도로 노동력과 내수 시장이 작고 기술과 인프라가 부족해 경영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 산업과 동떨어진 비관련 제조업을 시작하는 일은 무리일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성공해도 곧 노동력 공급 부족으로 노동 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물론 더 값싼 노동력을 외부에서 받아들이거나 첨단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면 되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다.

따라서 석유 산업과 관련 없는 산업을 발전시킬 게 아니라 현재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를 강화시키면서 관련 산업을 다각화해야 더 효율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1차 산업으로는 석유 산업 의존도를 줄이면서 점차 재생에너지 쪽으로 나가고, 2차 산업으로는 석유나 에너지와 관련된 제조업으로 태양전지 및 풍력발전기 부품 등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

새로운 산업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 산업을 철저하게 이해해야 한다. 필자는 아제르바이잔의 기존 산업인 석유산업을 깊숙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제르바이잔은 과거 한때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국이었다. 당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산업을 발전시킨 사람이 유명한 노벨(Nobel) 형제들이었으며, 그들이 이렇게 벌어들인 돈이 바로 노벨상 기금의 기초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럼 아제르바이잔의 산업 발전 역사, 노벨상, 한국 기업들이 참고해야 할 점을 찾아보자.

종합적인 글로벌 기업가 정신

개발도상국이 경제 성장을 빠르게 이루려면 글로벌 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제르바이잔은 20세기 초 세계 석유 산업을 선도했는데 이때 스웨덴 출신 노벨 형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노벨가()와 아제르바이잔의 인연을 자세히 살펴보자. 노벨가의 첫째 아들인 로버트 노벨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후 총의 개머리판 및 군수품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러 종종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이 나라의 석유 사업 가능성을 발견해 둘째 루드빅 노벨에게 아제르바이잔에서의 석유 사업을 제안했다. 당시 로버트와 셋째인 알프레드는 둘 다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건강도 좋지 않아 루드빅과 그의 아들이 아제르바이잔에 와서 석유 사업을 했다. 이에 루드빅은 형제들과 자금을 합쳐 1879 Baronobel(Nobel Brothers라는 뜻) Oil Production Partnership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정유 기술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루드빅은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제하기 위해 실력 있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는 석유를 추출하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해 석유와 관련된 제품을 개발하는 등 석유 사업을 크게 일으켜 무려 8만 개의 석유 관련 시설을 세웠다.(그림2) 루드빅은 석유 생산의 현대화를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송유관 및 철제 석유 저장소를 만들고 조선 엔진에 필요한 녹물(black oil)과 분쇄 기술을 처음 도입했다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석유 사업을 통한 관련 및 지원 사업의 수직적 통합이다. 루드빅은 사업 기회의 확대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석유 사업과 관련된 사업 분야를 통합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는 석유 탐사 및 추출부터 시작해 드릴링과 개발,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의 수직적 통합을 꾀했다. 당시 석유 이동 비용은 석유 생산 비용보다 몇 배나 비쌌다. 낙타나 개가 끄는 수레로 석유를 운송했기 때문에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수 없었고 운송 시간도 길었다. 이에 루드빅은 저렴하고 안전한 석유 수송 방법을 강구했다. 그가 만든 운송 수단이 바로 세계 최초의 유조선(탱커)인 조로아스터(Zoroaster).(그림3) 루드빅은 이후 탱커의 선단을 만드는 사업도 시작했고, 카스피해를 넘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유조선 개발에도 큰 공헌을 했다. 1890년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였던 이유다.

하지만 유조선의 크기가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당시 스웨덴에서 이를 건조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루드빅은 스웨덴에서는 선박의 일부분만 건조하고 발틱 해(Baltic Sea)에서 용접하는 방식을 취했다. 당시 이런 제조 방식은 굉장한 혁신이었다. 그는 철도 탱크도 처음으로 도입하고, 1878년에는 송유도관도 건설해 질 좋은 제품을 전세계적으로 빠르고 안전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시키는 데 성공했다.

노벨 형제의 사회적 책임

이후 47년간 쌓아온 노벨 형제의 석유 사업은 불행하게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끝을 맺었다. 당시 노벨 제국이라 불릴 만큼 큰 사업을 가지고 있던 노벨가는 모든 자산을 볼셰비키에 빼앗기고 한 푼도 없이 아제르바이잔을 빠져나가야 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볼셰비키가 혁명 후 금권 정치가(plutocrats)를 모두 살해하던 시기에 아제르바이잔의 현지 노동자들이 노벨가의 사람은 모두좋은 시민이니 볼셰비키가 죽여서는 안 된다며 그들을 보호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노벨 식구들을 보호했던 노동자들을노벨 사람들(Nobelites)’이라 불렀다. 이들은 노벨 식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벨 집을 둘러싸서 인()의 장막을 치고 노벨 식구들을 외국으로 탈출시켜 준다. 이들이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노벨 일가의 탈출을 도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노벨 일가는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가 아닌 사회에 대한 책임을 몸소 실천했던 사람들이었다. 루드빅 노벨과 그의 아들 엠마누엘 노벨은 선두적인 기업가였을 뿐 아니라, 종업원 및 사회에 파격적 공헌을 했다. 이들은 직원들에게 이익의 일부를 공유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당시 노동자들을 단순히 소모적 자원(expendable resource)으로 여겼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매우 진보적인 행위였다. 노벨 일가는 직원들에게 숙박시설을 제공하고 복지 시설뿐 아니라 공원 및 문화생활의 공간, 더 나아가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비 및 유학 장학금을 제공했다.

엠마누엘 노벨은 특히 인재 양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회사 순이익금의 무려 40%를 사회사업과 아제르바이잔의 과학 연구 진흥을 위해 사용했다. 더 나아가 빌라 페트롤레아(Villa Petrolea)의 지역을 개발해 직원들과 그의 식구들을 위한 학교, 도서관, 병원 등을 지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일반화되기 100여 년 전부터 노벨 일가는 이미 이를 실천한 셈이다.

노벨상과 아제르바이잔

노벨 형제들의 가장 의미 있는 유산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벨상이다. 우리는 흔히 노벨상하면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번 돈을 가지고 만든 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상은 다이너마이트보다는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산업과 더 관련이 깊다. 당시 다이너마이트로 돈을 많이 벌어들인 알프레드 노벨은 루드빅 노벨의 석유 사업에 투자했다. 그 결과,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으로 노벨상의 기금을 만들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벨상 이외에 2개의 노벨상이 더 존재했다는 점이다. 하나는 1888년 루드빅 노벨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들어진 노벨상이다. 이것은 석유 산업과 관련된 발명품이나 과학 기술에 대한 상이다. 다른 하나는 1907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에서 루드빅의 아들 엠마누엘 노벨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노벨상이다. 엠마누엘 노벨상은 석유 산업 발달에 기여한 과학자, 전문가, 경영 관리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현재 몇몇 노벨가의 자손들은 아제르바이잔 정부와 공동으로 엠마누엘 노벨상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아직은 추진 단계지만 석유 산업보다는 미래를 선도할 재생 에너지, 환경 오염,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으로 만들어질 계획이다.(표 참조)

노벨식 경영과 한국의 재벌 경영

노벨의 석유 사업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를 석유 상거래의 중심지(Black Gold Capital)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코카서스(Caucasus) 지역의 석유 산업 및 관련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83년에는 바쿠에서 그루지아의 트빌리시를 잇는 최초의 철도가 놓여졌고 1907년에는 흑해 연안의 바투미까지 연결하는 송유관이 설치됐다. 바쿠 시의 상업 발달로 아제르바이잔의 금융 산업도 크게 발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 건축 업자들에 의한 건물 디자인과 빌라 페트롤레아의 지역개발은 이후 바쿠의 건축 양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노벨식 경영과 한국식 재벌 경영 간에 다음과 같이 매우 중요한 유사한 사실이 있다는 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한 분야의 사업에서 성공한 후, 이와 관련된 여러 산업을 종합적으로 발전시킨다. 둘째, 생산과 수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국제화를 도모한다. 셋째,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매우 빠르게 진행시켜 속도의 경영을 이뤄낸다.

우리는 흔히 재벌 경영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재벌 경영이 더 효율적일 때도 적지 않다. 특히 한 국가의 경제 발전 초기에는 관련 산업이 발전돼 있지 않으므로, 어느 한 사업을 크게 일으키더라도 가치사슬의 다른 부분이 취약하면 해당 산업의 경쟁력도 오래 가지 못한다. 이럴 때 재벌 경영이 필요하다. 루드빅 노벨이 석유 생산을 아무리 잘 했다 하더라도 운송 부문이 취약하면 석유 산업의 경쟁력도 유지하기 힘들다. 이를 잘 알았기 때문에 그는 운송 부문 등 관련 분야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우리나라도 경제발전 초기에는 루드빅 노벨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공과 논란은 있지만 당시 몇 개의 재벌 기업들이 자사의 핵심 산업과 관련이 있는 여러 산업에 진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자사의 성장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즉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경제개발 초기의 국가에서는 한국식 재벌 경영이 유효하다. 거의 모든 산업 기반이 낙후돼 있는 상황에서는 여러 분야를 한꺼번에 국제적으로, 빨리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노벨 일가처럼 사회적 책임을 다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제르바이잔은 100여 년 전에 노벨식 경영에 힘입어 경제 발전을 이뤘다. 이제는 한국식 경영을 받아들여 제2의 도약을 해야 할 때다. 필자는 한 달간의 아제르바이잔 정부 경제 자문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경제 전반에 걸친 개선점을 제안하는 일 이상으로, 이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해 윈윈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휘창 교수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경영 및 경영전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국제경쟁력, 경영전략, 해외직접투자, 문화경쟁력 등이다. 현재 국제학술지에서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다수의 국내외 기업, 말레이시아 및 두바이 정부, 세계은행(World Bank)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 국제기구의 자문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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