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기업의 장점과 단점을 연구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벤치마킹은
기업 현장에서 가장 자주 활용되는 경영 기법 중 하나입니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들은 벤치마킹 기법만 잘 활용해도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선도적인 기업의 임직원들은 해외 출장 길에 들렀던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비판적인 ‘베스트 프랙티스’ 추종은
고유의 기업 문화와 충돌을 일으켜 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한국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벤치마킹 우수 사례와 방법론, 창의적 사고 도출 기법 등을 집약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로 벤치마킹 툴의 가치를 재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
구성연 <사탕시리즈 v05>, 2010
사진작가 구성연 씨는 일상의 사물에 자신의 상상을 덧입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정물 사진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사탕과 꽃은 황홀하면서도 한시적이다. 꽃이 피면 눈부시고 아름답다. 하지만 절정에 달하는 순간 이내 지고 만다. 사탕 역시 달콤하지만 결국 혀끝에서 녹아버린다. 사탕과 꽃 모두 인간의 욕망과 연결된다. 구 작가는 후기 자본주의의 시대적 산물을 일상적 사물인 사탕과 꽃을 이용한 새로운 맥락(context)으로 연결해 제3의 기호를 만들어냈다. 사탕 시리즈의 ‘사탕 꽃’은 현존하는 사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이와 동시에 현존하는 어떤 사물로도 재현할 수 없는 시뮬라크라(simulacra·순간 생성됐다가 사라지는 자기 동질성이 없는 복제)이기도 하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의 주제인 ‘벤치마킹’의 핵심이 과거에 이질적으로 생각됐던 요소를 새로운 맥락에서 결합하는 창조적 모방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작품을 감상해볼 만하다.
작품소개: 사탕시리즈 v05, 108x150cm, light jet c-print, 2010
한국 기업의 초석을 닦은 것은 벤치마킹이다. 산업화 초기 한국 기업들은 저마다 외국으로 건너가 직·간접적으로 선진 기술과 경영 방식을 배웠다. 국내 한 자동차 회사 직원들이 1970년대 독일로 건너가 벤치마킹한 사례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현지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며 밤마다 숙소에서 각자 보고 듣고 경험한 기술들을 짜맞춰 국산 자동차를 만들었다. 전자회사도 일본 제품을 분해해보며 기술력을 축적했다.
이후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무조건 베끼는 방식의 벤치마킹에서 벗어나고 있다. 무비판적인 베스트 프랙티스 추종이 조직 갈등 등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다른 업종 벤치마킹을 통해 혁신 아이디어를 도출하거나, 한국적 상황에 맞게 외부 아이디어를 변형하거나, 회사 내부 부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벤치마킹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마트, 현대카드, 포스코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1. 이마트
최근 이마트는 백화점의 패션 매장을 압축해 이마트에 선보였다. 이마트 성남점에 개설된 ‘스타일 마켓(Style Market)’이 대표적이다. 아디다스, 크록스, 리바이스, 버커루, 매긴나잇브릿지, 블루독 등 40여 개의 백화점 브랜드가 입점했다. 동시에 제조 직매형 의류(SPA)를 ‘데이즈(daiz)’라는 자체 브랜드(PL)로 내놓고 있다. 자라(ZARA)나 유니클로처럼 4주에 한 번씩 상품을 선보인다. 신세계의 패션 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널(SI)이 남성, 여성, 아동복 등 의류 370여 종을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디자인 한 것. 데이즈는 대형 할인점의 의류가 트렌디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깬 시도다.
신세계는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형 할인점인 타겟(Target)을 벤치마킹했다. 타겟은 국내에는 다소 생소하지만, 미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쿨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타겟이 내건 구호는 ‘칩 시크(Cheap Chic·싸고 세련되게)’. 할인점이지만 저렴한 가격에 ‘+α’, 즉 세련됐다는 가치(value)를 전달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 파슨즈디자인스쿨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인 아이작 미즈라히(Issac Mizrahi)가 디자인한 의류 제품을 판매한다. 이를 통해 합리적 가격에 명품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했다.
이마트는 타겟을 벤치마킹하면서 ‘대형 할인점= 싼 브랜드’라는 인식을 불식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타겟의 기본 아이디어는 취하되 구체적인 방법은 한국의 현실에 맞게 조정했다. 타겟은 디자이너와 손잡았지만 이마트는 백화점 입점 브랜드를 유치했고, 신세계에 패션 계열사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의류 디자인을 신세계인터내셔널에 맡기기도 했다.
한국 여건 감안한 선별적 벤치마킹
이마트의 벤치마킹은 성장 단계에 따라 4단계로 나뉜다. 1993년 첫 매장(창동점)을 개설할 즈음인 1단계 때는 월마트의 창고형 매장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신세계는 백화점과 일반 슈퍼마켓의 성장세가 정체되는 시장 환경에서 신성장 동력 사업의 일환으로 기업형 유통 채널 비중을 키우기로 했다. 이마트는 높은 선반에 대용량 제품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월마트의 방식을 창동점에 그대로 적용했다. 고객들은 셀프 서비스 형식으로 물건을 갖고 갔다. 고객들은 많이 싸게 파는 새로운 방식에 신선함을 느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한국 정서와 다른 판매 방식에 소비자들은 당황했다. 특히 제품 설명이나 안내 등의 서비스가 없다는 점에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낯선 방식이 불편함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마트는 1996년 2단계(12번째 매장, 충북 청주점부터) 할인 매장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소비 행태 및 정서가 비슷한 일본의 할인점인 이토요가토(Ito Yokado)를 중점적으로 벤치마킹했다. 이토요가토는 동양인의 식습관에 맞게 야채 과일 채소 등 신선 식품에 주력했다. 또 시식 행사도 벌이고 전통시장처럼 박수치면서 물건을 판매했다. 이마트는 이를 적용했다. 한국인의 입맛을 감안해 신선식품의 비중을 늘려 공산품을 주로 취급했던 월마트와 차별화했다. 천장 마감도 하고 인테리어도 고급화했다. 월마트형 매장은 창고처럼 천장 마감을 하지 않아 위에서 때로 먼지가 떨어졌다. 하지만 신선식품을 판매하려면 위생에 신경 써야 했다. 식품 코너를 늘리면서 시식행사도 도입했고, 할인점 위치도 교외가 아닌 도심을 택했다. 판매 단위 용량도 과거 평균 10개에서 2단계부터는 평균 5개로 줄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후 이마트의 초기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월마트가 1998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철수했다. 반면 이마트는 연 매출 10조778억 원(2009년 기준)으로 성장했고 한국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사례는 벤치마킹을 해당 상황에 가장 맞는 최적화 전략(optimization alignment)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