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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출 전략

기능적 역량 중심으로 사업개발의 플랫폼을 짜라

곽동원 | 58호 (2010년 6월 Issue 1)
 

불과 일 년 전 실행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중 30% 가량이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통계치가 무색하게 많은 한국 기업이 경쟁적으로 자사의 중국 사업에 대해 공격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위기의 공포감을 어느 정도 극복한 기업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미나 유럽시장에 비해 지속적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에 다시금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차이나 러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또 한중 수교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중국을 성공적인 생산기지로 삼으면서 동시에 내수 시장까지 잘 개척한 기업은 극소수다. 특히, 한국에서 내수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기업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명확한 사업 방향을 수립하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또 수출을 통해 해외시장 경험을 축적한 기업들조차도 대외적 발표와는 달리 중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이런 실수를 답습하지 않고 성공적인 중국 진출 가능성을 높이려면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업종선택’ 보다는 ‘사업개발의 플랫폼’이 중요
중국에는 전 세계의 유동성뿐 아니라 지식 및 아이디어가 몰려들고 있어 전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제시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또 거의 모든 산업분야가 전 세계 평균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무엇을’ 하느냐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외국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 성공사례 중 상당수가 - 일례로 식품산업, 중위 기술(Mid-tech) 기반의 기계산업, 부품 산업 등의 성공사례 - 이러한 접근방법으로 성과를 낸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는 특정 업종에서 한국시장을 성공적으로 장악했고, 해당 업종의 중국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데다, 중국 고위직 관료층과의 시까지 있으니 중국에서의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반은 실패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이런 기업들은 중국 진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사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현지에서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중국에서는 다른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업체 수보다 10배가 넘는 국내외 업체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일례로 중국에는 인가된 농약제조기업만 2800여 개(비인가 기업까지 합치면 약 6000여 개 추정), 맥주회사 350여 개, 자동차 기업 100여 개가 난립해 있다. 금과옥조와 같이 여겼던 한국에서의 사업 모델이 중국에서 전혀 통하지 않아 막대한 투자비만 날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실수를 방지하려면, 한국에서의 성공사례나 주력사업에 구애 받지 않는 ‘룰 브레이킹(Rule Breaking)’, 즉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가 필요하다. 자기 회사의 강점을 ‘업종’이 아닌 ‘기능’ 이나 ‘보유 자원’ 측면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접근방법은 특히 한국 내수시장이나 규제산업에의 의존도가 큰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다.
 
먼저 마케팅, 연구개발(R&D), 생산 또는 물류의 효율성, 애프터서비스(A/S) 네트워크 구축 및 관리, 금융프로그램 등 기능적 측면에서의 자사의 역량을 먼저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 이런 강점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업종과 품목, 진출 대상 지역을 선정한다. 이후 내·외부 조달이 필요한 요인들을 주간 또는 일간 활동계획 수립이 가능한 수준으로 면밀히 파악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확보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표1 참조).
 
예를 들어 GE는 중국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항공 및 에너지 분야의 기술이 탄탄하다는 기능적인 역량을 충분히 활용했다. GE는 중국 정부와 협력해 사업 분야를 개척했다. 항공 및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 국유 기업과 제휴해, 중국은 물론 해외 시장을 공동으로 개척할 수 있었다. 기존 고정 관념대로 접근했더라면 GE는 주력 산업을 중국에 진출시키는 선에 그쳤을 것이다.
 
한국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기존 고정관념대로라면, 중국의 건설기계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가 높되 고가인 외국 기업 제품과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 로컬 기업 제품으로 양분화됐다는 점을 고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유연한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추고 있었으며, 개도국 고객 니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이를 활용해 중저가의 ‘미드-엔드(mid-end) 시장’을 만들어내 가격 대비 성능을 높였고, 판매 모델도 현지화했다. 또 금융 역량을 활용해 자금력이 달리는 고객에게는 금융 프로그램을 제공해 제품의 매력도를 높였다.
 
네슬레 역시 기존 고정관념에 따른다면 물류나 유통 인프라가 깔린 지역에 우선 진출하고, 글로벌 브랜드를 활용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네슬레는 저개발국에서의 원자재 조달 및 유통망 관리 능력이라는 자원을 이용했다. 또 네슬레가 보유한 8500여 개의 브랜드 중 10개 이상의 국가에서 판매되는 브랜드가 1% 미만 일정도로 브랜드 현지화를 잘 시키는 기능적인 역량이 뛰어났다. 네슬레는 이런 역량을 활용해 낙농 원유를 수입하기 위한 냉장 조달 시스템을 구축, 영세 낙농업자에 대한 신시장을 창출해 생산량을 현지에서 비약적으로 늘렸다.
 
컨트롤 타워, 관료적 의사 결정 체계 극복해야
이와 같은 일련의 활동에 가장 필요한 핵심역량은 기획력 및 실행관리 능력, 즉 중국 현지에서의 강력한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 기능이다. 이를 ‘사업 개발의 플랫폼’이라 부를 수 있다.
 
아직 중국 사업에서의 가시적 성공 경험이 없는 기업이라면 시 역시 위와 같은 관점하에서 확보해 나아가야 막연한 기대로 자원을 낭비하거나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시와 관련해서는 많은 경우 중앙정부나 정계 고위 인사들과의 인맥보다 업종별 산업협회나 학계의 전문가들과의 생산적 교류가 사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몇몇 한국 대기업들은 중국시장 진출전략을 수립하면서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를 큰 강점으로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잘 발휘되지 않던 계열사 간 시너지가 중국에서라고 제대로 발휘될 리 만무하다. 또 현지화를 목표로 ‘우리는 중국기업’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기업들에서조차 계열사 간 시너지는 고사하고 국내 본사와의 의견 조율 및 합의에도 힘겨워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중국 현지 법인에서 제안된 아이디어가 본사 보고 및 승인 절차, 그리고 계열사 간 영역 조정 등 정치적 고려를 거치면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의 사업모델로 귀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업 진출 시기를 놓쳐 심지어 진출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수직·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괴리 및 관료적 의사결정 체계는 신시장 개척에 있어 최대의 ‘적’이다. 한국 국내시장에서의 성공 공식을 넘어서는 ‘Rule Breaking’을 위해서는 중국 현지 경영진의 권한 확보 및 효율적 의사결정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그림1 참조).
 
예측 가능성 낮은 중국, 시나리오 기반의 경영 필요
중국은 1990년대 말과 2008년의 금융위기를 비교적 무난히 넘기며 주요 경제지역 중 가장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이 다시금 중국 시장에 절대적 관심을 보이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 경제라고 마냥 성공만 할 수 없다. 이번 금융위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규제로 인해 세계 금융시장과의 연계성이 높지 않은 중국 금융시장의 특성 및 중국 정부 주도의 풍부한 유동성 공급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프라 개발 및 부동산 경기 부양에 정부 자금이 집중되면서 차세대 성장산업으로의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이는 중국 산업 구조의 고부가가치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이러한 인위적인 경기 부양의 부작용이 누적되어 금융위기로 귀결되는 현상은 한국 및 일본에서 수 차례 반복된 바 있다. 올해 베이징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파트 가격이 연초 대비 2배까지 오르기도 했다. 아무리 현재 각광받고 있는 중국이라도 건전한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중국은 그 경제규모에 비해 규제 환경의 예측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장이며, 규제 변화의 충격 또한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크다. 최근 한국 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에너지 산업이나 산업재의 경우 이러한 리스크가 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그 어떤 시장보다도 시나리오에 기반한 경영을 해야 한다(표 3참조). 따라서 각 기업의 사업 특성에 따른 리스크를 면밀히 파악해 3∼5개의 경영환경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우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경영계획, 즉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INSEAD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시나리오 플래닝에 기반한 전략 수립 및 정부·공공 부문 정책 개발 분야에서 컨설팅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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