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삼성전기 거북선센터

부서 이기주의 허물고 ‘시간싸움’ 이겼다

57호 (2010년 5월 Issue 2)

기업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신제품 개발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월한 제품이라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술적 우위와 마케팅 역량을 절묘하게 결합해 신제품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전략과 프로세스, 방법론을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소개합니다. 또 제품 혁신의 산실로 불리는 삼성전기 거북선센터의
성공 요인도 체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신제품 개발과 관련한 위기관리 솔루션도 전해드립니다.

 


 
‘전자 산업의 쌀’이라고 부르는 부품이 있다. 적층세라믹콘덴서(MLCC·Multi Layer Ceramic Capacitor·항상 일정한 전류가 흐르도록 조절해 주는 부품)라는 수동 소자다. 휴대폰, LCD TV, 노트북 PC 등 전자 제품 여기 저기 안 들어가는 곳이 없어서 ‘쌀’이란 별명을 얻었다. 실제 크기는 작은 모래알 정도. 와인 잔에 가득 채우면 무려 1억5000만 원짜리 고급 승용차보다 값이 더 나간다. 휴대폰에 200여 개, LCD TV에 700여 개가 들어간다. 소형화·슬림화·고용량화 기술이 MLCC 제조의 핵심이다.
국내 최대 전자 부품 기업인 삼성전기에서 단일 품목 기준 최대 매출, 최고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것이 바로 MLCC다. 삼성전기는 2009년 기준 전체 매출액(연결 기준 5조5505억원)의 약 20%를 MLCC 판매로 거둬들였다. MLCC 영업이익률도 두자릿수로 회사 전체 평균치(8.4%)를 웃돈다. 또 일본 경쟁사들보다 기술력 측면에서 1년 이상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2005년까지만 해도 삼성전기 MLCC 사업은 매년 100억 원대 적자를 내 회사 내 ‘애물단지’로 통했다. 제품력 측면에서 무라타, TDK, 교세라 등 일본 경쟁사들을 뒤따라가기에 급급했고, 경쟁사 대비 신제품 출시 시기도 1년∼1년 6개월 가량 뒤졌다.
 
삼성전기가 쟁쟁한 일본 경쟁사들을 제치고 MLCC 시장에서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데는 혁신적 신제품 개발을 목표로 하는 사내혁신 조직 ‘거북선센터’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 약 20년간 일본 업체들의 뒤만 쫓아가다, 2005년 11월 거북선센터에서 사상 최초로 경쟁사보다 3개월 앞서 신제품(‘1005 2.2㎌’ 기종) 양산에 성공했다. 이 신제품 판매로 삼성전기 MLCC 부문은 2006년 곧바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이후 ‘알짜’ 수익 제품으로 급부상했다. MLCC 개발 사례를 중심으로 삼성전기에서 혁신적 신제품 개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거북선센터의 성공 비결을 집중 분석했다.
 
1 가중치 평가 항목에 따른 과제 선별
거북선센터는 2003년 4월 강호문 전 삼성전기 사장이 원가 절감과 혁신적 신제품 개발을 목표로 설립했다. 일본 회사들이 전자부품 시장을 장악한 것을 본 강 전사장이 일본 회사들을 무찌르자는 뜻에서 거북선센터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무거운 쇠는 물에 가라앉기 마련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거북선을 개발한 자세를 배워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혁신적 목표를 갖고 도전하자는 의미도 담았다.
 
삼성전기 신제품 개발은 통상 사업부별로 개발팀, 혹은 선행개발팀(향후 2∼3년 뒤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을 개발하는 팀)을 꾸려 진행한다. 이 가운데 혁신적 기술 개발이나 신(新)시장 창출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과제를 일정 기준에 따라 선별, 거북선센터에서 별도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거북선센터에 MLCC 프로젝트 심사 의뢰가 들어온 것은 2005년 3월. LCR 사업부(MLCC 관장 사업부)에서 오랫동안 중국 판매를 담당해 온 중화 영업 그룹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PC시장에서 고용량 MLCC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때만 해도 대부분 PC 업체들이 사용하는 제품이 ‘1608(가로 1.6mm X 세로 0.8mm X 두께 0.8 mm) 4.7㎌(마이크로패럿·패럿은 콘덴서가 저장할 수 있는 전하량 단위)’이었으므로, 사이즈는 같지만 두 배 이상 용량이 큰 ‘1608 10㎌’을 개발하면, 신(新)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LCR 사업부장이던 최치준 상무(현 삼성전기 부사장)가 이 안을 받아들여 거북선센터에 프로젝트 심사를 의뢰했다.
 
통상 거북선센터는 프로젝트 개발 의뢰가 들어오면 가중치가 정해진 평가 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겨, 총점 70점 이상을 받은 과제들을 택해 입과(入科) 여부, 즉 거북선센터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평가 항목은 이익 기여도(50%), 수율이나 원가절감 등 핵심 지표의 향상률(20%), 구성중인 CFT의 적절성(20%), 제품개발로 인한 파급효과(10%) 등이다. 당시 MLCC 프로젝트는 이익 기여도 측면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아 입과 결정이 났다.
 
2 CFT 구성해 신제품 개발드림팀 조직
거북선센터의 신제품 개발이 사업부 단위 신제품 개발과 다른 점은 협업팀(CFT·Cross Functional Team)을 이뤄 작업한다는 점이다. 각 사업부의 개발팀을 주축으로 하되, 그때 그때 프로젝트 주제 및 특성에 따라 마케팅, 영업, 구매, 제조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단순히 개발팀 시각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부서에서 온 인력들의 관점을 반영,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하자는 취지다.
 
CFT를 총괄하는 프로젝트 리더(PL· Project Leader)는 대개 사업부 개발팀 소속 직원이 맡는다. 특이한 점은 PL 외에 각 CFT마다 프로젝트 운영 전문가인 프로세스 디자이너(PD·Process Designer)를 배치한다는 점이다. PD는 사업부가 아니라 거북선센터에 소속된 인력으로, CVS(국제공인가치혁신전문가), BB(6시스마 블랙벨트) 등 전문 자격을 갖춘 프로젝트 진행 전문가다. 과제 주제와 특성에 따라 단계별로 적절한 방법론을 제시, PL과 함께 CFT를 이끄는 핵심 축을 담당한다.
 
MLCC 프로젝트의 CFT는 LCR 사업부내 칩(chip)선행개발팀과 칩재료개발팀 등 개발 인력과 함께 영업, 구매, 품질, 특허 등 분야별 전문 인력으로 꾸려졌다. 눈 여겨 볼 점은, CFT 출범 때만 해도 과제 목표는 휴대전화 단말기 고객사들에 폭발적 인기를 끌며 삼성전기에 ‘대박’을 안겨 준 ‘1005(1.0mm X 0.5mm X 0.5mm) 2.2㎌’ 기종이 아니라, PC 고객사들을 겨냥한 ‘1608 10㎌’ 기종의 ‘샘플 개발’이었다는 사실이다. 개발 품목이 초기 목표와 달리 ‘1005 2.2㎌’ 기종으로 바뀌고, 특히 샘플 개발이 아니라 ‘양산화’로 프로젝트 최종 목표가 변경된 것은 거북선센터의 독특한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3 100 Index 통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 설정
거북선센터는 6시그마(완벽한 품질을 달성하기 위한 경영혁신 방법. 품질 수준으로 정의하면 100만개 제품당 3.4개의 불량품이 나오는 수준) 방법론인 ‘DMAIC’<용어설명1 참조>의 개념에 기초해 신제품 개발을 진행한다. 즉,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크게 5단계(Define→Measure→Analyze→Improve→Cont-rol)로 구분한다. 이 프로세스를 기초로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단계별로 다양한 기법을 적절히 적용, 문제를 해결한다. <그림1 참조>
‘DMAIC’ 5단계 중 맨 처음 정의(De-fine)단계에서는 ‘100 Index 기법’을 활용한다. 이는 CFT가 추구하는 도전적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해, 향후 평가해야 할 항목들을 가능한 세세하게 쪼개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경영 관련 지표는 생산 물량, 판매가, 매출액, 손익, 양산 일정 등 세부 지표로 1차 구분한다. 이후 물량 지표를 고객별, 등급별, 사양별로 재분류하는 등 1차 구분된 지표들을 또 다시 세분화한다. 도출된 지표들 각각에 대해서는 삼성전기의 현 수준(baseline)과 경쟁사 수준을 수치화해 비교한 후, CFT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주목할 점은 거북선센터에서 요구하는 세부 지표의 수준이다. 과제당 최소 150가지에서 많게는 800여 가지 지표를 작성한다. 100 Index에서 ‘100’은 이상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일 뿐, 실제로 지표를 100가지만 만들어놓은 프로젝트는 단 한 개도 없다. 소비재가 아닌 산업재의 특성상 공정수가 10여 가지에 달하는데, 공정별로 관리해야 할 제품 특성 및 성능 지표(두께, 각도, 전압, 소음 등) 들을 세세하게 뽑아내기 때문이다. 물론 수 백 가지 지표를 모두 관리하지는 않는다. 대개 최종 관리하는 지표는 10∼30 여 개에 그친다. 현실적으로 수백 개 지표를 모두 관리할 필요도, 관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표로 뽑아냈다 하더라도 대세에 지장이 없는 항목들이 더러 있고, 경쟁사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비교 목표 수준을 설정하기 힘든 사례도 많다.
 
자칫 시간 낭비로까지 비쳐질 수 있는 100 Index 작업을 거북선센터가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신제품 개발 전체 프로세스상 어느 영역에서 비용 절감 및 가치 창출 기회가 있는지를 프로젝트 초기에 파악하기 위해서다. 즉, CFT 팀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MECE(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용어설명2 참조>하게 지표를 쪼개다 보면, 앞으로 프로젝트 어느 구간에서 병목이 발생할지를 사전에 파악해 역량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00 Index 작업의 또 다른 장점은 팀원들에게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북선센터 이동훈 차장은 “제품 개발자들, 특히 산업재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이 어디로 팔리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자신이 만들 제품이 어떤 고객사가 만드는 어떤 제품에 얼마만큼 팔려서 삼성전기에 얼마만큼 수익을 안겨줄지 알려주는 것만큼 개발자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2005년 거북선센터의 MLCC 프로젝트 팀원들이 100 Index 작업을 통해 도출한 지표 수는 총 770여 개였다. MLCC 제작 주요 공정만 따져도 배치(Batch·세라믹 파우더와 액체 용제를 섞어 슬러리(현탁액) 제작), 성형(세라믹층 및 금속전극층 시트 제작), 인쇄, 적층(세라믹층과 금속전극층을 교대로 켜켜이 쌓는 과정), 절단, 소성(도자기를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굽듯 화로에 제품을 집어 넣어 세라믹을 단단하게 하는 공정) 등 15가지가 넘어 공정별로 파악해야 할 지표 수가 상당했다. MLCC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실제 관리할 지표로는 총 34개를 뽑았다. 삼성전기의 현 수준과 일본 경쟁사 수준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명확한 목표치 도출이 가능한 지표들로 압축했다. 유전체(세라믹층) 두께 및 유전율, 내부전극(금속전극층) 두께, 적층수 등 기술 관련 지표(14개)와 경영(고객사별 예상 매출 물량 및 금액 등), 제품 특성(용량, 정격 전압, 절연 저항 등), 수율(공정별, 단계별 수율 등), 신뢰성(고온 등 가혹 조건하에서의 내구성 테스트 등) 등 주요 지표(20개)들이 핵심 관리 지표로 선정됐다.
 
1. DMAIC 방법론 DMAIC 방법론은 6시그마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이다. 총 5단계로 구성되며, 단계마다 3개의 하위 스텝으로 구성돼 총 15개 스텝으로 구성된다. 첫 단계인 Define 단계에서는 문제 인식을 통한 과제 정의가 이뤄진다. Measure 단계에서는 문제의 현 수준을 측정하고 개선 목표를 설정한다. 세 번째 Analyze 단계에서 문제의 원인 분석 및 검증을 진행하며, 그 다음 Improve 단계에서 해결안을 최적화한 후 이를 적용하게 된다. 결과가 개선되었다고 판단되면 마지막 Control 단계에서 결과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관리계획을 수립해 시스템화한다.
 
2. MECE MECE는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의 분석 기법으로, 중복과 누락 없이 분석하는 원칙을 말한다.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부분의 합들이 전체를 이루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잘 된 MECE 분석 사례로 숫자를 실수와 허수로 구분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잘못된 MECE의 예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중복되지는 않는데 누락이 발생하는 경우다. 서울 주민을 종로구와 중구 주민으로만 나누는 예가 대표적이다. 누락은 없지만 중복이 발생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걸 그룹’ 핑클 멤버들을 솔로 활동을 한 멤버와 연기 활동을 한 멤버로 나누어 보자. 4명 모두 적어도 하나의 활동을 했지만, 이효리는 솔로와 연기를 모두 해서 중복이 발생한다. 마지막 잘못된 MECE의 예는 누락과 중복이 동시에 발생할 때다. 자동차를 현대 자동차와 가솔린차로 나누는 사례가 잘못된 MECE의 대표 사례다.
 
4 VOC로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유연성 제고
고객의 소리(VOC·Voice of the Cus-tomer)는 매우 중요한 혁신의 원천이다. 거북선센터는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VOC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VOC를 통해 시장에서 원래 개발 계획과 다른 신규 모델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 원래 계획도 얼마든지 변경한다. 2005년 거북선센터 MLCC 프로젝트의 당초 개발 품목이 ‘1608 10㎌’ 기종에서 ‘1005 2.2㎌’ 기종으로 바뀐 것도 바로 이런 VOC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북선센터 입과 당시 MLCC 프로젝트의 목표로 잡았던 것은 PC 업체, 특히 중화권 PC 메이커를 주 공략 대상으로 한 고용량(10㎌) MLCC였다. VOC를 듣기 전 시장 트렌드 분석에 기초해 이런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PC 업체 외에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들에 대한 직접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PC 업체들과 달리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사들은 ‘1608 10㎌’보다 용량은 작더라도 사이즈가 작은 ‘1005 2.2㎌’ 제품에 대한 수요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체적인 시장 조사 결과 ‘1608 10㎌’보다 ‘1005 2.2㎌’ 기종에 대한 수요가 세 배나 많았다. 결국 프로젝트 팀은 ‘1608 10㎌’ 기종 개발에 더해 ‘1005 2.2㎌’ 기종 개발을 추가했고, 메인 개발 기종도 ‘1005 2.2㎌’ 기종으로 변경했다.
 
물론 개발팀원들 중 일부는 “‘1608 10㎌’기종을 개발하겠다고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보고했는데 중간에 계획을 바꾸는 건 말도 안 된다” “‘1608 10㎌’ 하나 개발하기도 벅찬데, 왜 자꾸 일을 키우나?”라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하지만 “시장과 고객이 바뀌면 목표도 그에 맞춰 수정해야 한다”는 거북선센터의 VOC 철학과, “메인 기종을 바꾸지 않을 요량이면 (거북선센터에서) 나가라”는 PD의 엄포로 인해 결국 팀원들도 기종 변경 결정에 승복했다.
 
영업 사원뿐 아니라 개발팀 직원이 함께 짝을 이뤄 대면 인터뷰 진행을 원칙으로 하는 것도 거북선센터 VOC의 차별화 요소다. 고객의 니즈를 면밀히 분석, 제품 개발시 역량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B2B 제품의 특성상 영업사원들이 시시콜콜한 부품 세부 사양이나 기술 특성에 대해 고객사 설계자들과 대화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발팀원이 직접 VOC에 참여하면, 고객사별로 향후 부품 개발 시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은 보강하고, 어떤 특성은 무시해도 되는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가 쉽다.
 
거북선센터 MLCC 프로젝트 역시 VOC에 개발팀 인력이 참여했다. 당시 LCR 사업부 칩선행개발팀 소속으로 거북선센터 MLCC 개발 프로젝트에 합류한 송태호 수석은 해외 영업 담당자와 함께 글로벌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의 설계 디자이너와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정격 전압 제고와 DC-BIAS(직류전압을 가하면 콘덴서의 용량이 감소하는 특성) 개선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특히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시중에 샘플로 돌아다니던 ‘1005 2.2㎌’ 제품은 일본 무라타와 태양유전 제품이 유일했는데 두 제품 모두 정격전압은 4V였다. 정격 전압 수준을 6.3V 정도로 올리고 DC-BIAS 현상을 25% 정도만 개선해도 고객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게 분명했다. 반면 온도 보정 기능 등 몇 가지 성능은 통용되는 수준보다 좀 떨어지더라도 고객들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쟁사 대비 차별화 전략 포인트가 명확해졌고, 한정된 자원·역량의 선택과 집중을 가능케 하는 기초 데이터가 모두 확보된 것. 모두 개발팀 인력이 VOC에 참여해 얻어낸 성과였다.

5 Tear-Down 통해차별화 전략 모색
측정(Measure) 단계에서 VOC와 함께 자주 쓰이는 Tear-Down 기법은 말 그대로 경쟁사 제품을 완전 ‘해체’하는 수준으로까지 분석하는 작업이다. 경쟁사 제품을 메커니즘, 부품, 데이터별로 나눠 외관, 사양, 성능별로 집중 분석, 삼성전기와의 역량 격차 분석(Gap Analysis)을 실시하는 게 목적이다.
 
2005년 MLCC 프로젝트에선 일본 경쟁사가 제작한 ‘1005 2.2㎌(정격전압 4V)’ 기종 샘플을 해체 대상으로 택했다. Tear-Down의 목표는 삼성전기 최초로 ‘1005 2.2㎌’ 기종을 제작한다는 수준을 넘어, 경쟁사 대비 월등한 제품 개발로 잡았다. VOC 단계를 통해 명확해진 차별화 포인트(정격전압 6.3V 구현 및 DC-Bias 25% 개선) 실현을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할 지에 모든 역량을 집중됐다. 경쟁사 기종의 외부 구조, 설계 구조, 전극 측정, 유전체 특성 등 기본 속성 테스트 외에 첨가제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으로 내부 알갱이 구조까지 분석했다.
 
이 같은 심층 분석은 프로젝트 관련 제반 경비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지원하는 거북선센터의 파격적 지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이동훈 차장은 “사업부 개발팀에서 신제품 개발 작업을 진행하면 예산 제약 때문에 시장·고객 조사는 물론 경쟁사 제품 분석 같은 핵심 작업도 하고 싶은 대로 못 할 때가 많다”며 “거북선센터에선 모든 경비를 전사 경비로 처리하기 때문에 현업 부서에선 어려웠던 활동들을 마음껏 진행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심층 분석 작업을 통해 ‘DMAIC’의 세 번째 단계인 분석(Analyze) 단계에 쓰일 기본 가정들(첨가제 종류, 소성 온도 등)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6 CAE, CE 기법 통해 개발 기간 획기적 단축
분석(Analyze) 단계에서 거북선센터가 활용하는 기법은 공용화 분석(Plat-form), FAST(Function Analysis System Technique), CAE(Computer Aided Engineering) 등이다. 이 가운데 2005년 MLCC 프로젝트 팀이 활용한 기법은 제품의 설계, 개발 분야에 컴퓨터를 응용하는 CAE였다. CAE는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실험(simulation)을 통해 테스트 기간 및 비용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는 기법으로 MLCC 공정을 고려할 때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MLCC 제작에서 핵심 공정은 원료에 해당하는 슬러리 제조를 위한 배치 공정. 피자 맛의 기본이 밀가루 반죽(dough)에 달려있듯, 슬러리를 제대로 만들어야 고품질의 MLCC가 나온다. 용제의 종류, 섞는 기술, 섞는 비율 등에 따라 MLCC 품질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소성 공정 역시 매우 중요하다. 세라믹과 금속이 반복해 쌓여있는 MLCC 내부 구조 특성상 열을 가하면 세라믹과 금속의 수축·팽창률 차이로 인해 파열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제품을 화덕에 굽는 온도, 투입 기체의 종류와 양 및 시점 등 다양한 조건들이 잘 갖춰져야만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거북선센터 MLCC 프로젝트 팀은 실제 샘플 제작에 앞서 CAE 기법을 적극 활용, 무수한 가상 실험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공정별로 여러 조건들간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다.
 
CAE 이후 더 중요한 과정은 실제 샘플 제작을 통해 원하는 특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MLCC 시장은 더 작고, 더 얇고, 더 큰 용량의 신제품을 누가 더 ‘빨리’ 내놓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즉, 시장에 최초로 진입하는 선도자(first mover)에게 과실이 집중되는, 전형적인 ‘시간 중시 수익 모델(Time Profit Model)’ 시장이다. 일본 경쟁업체는 이미 ‘1005 2.2㎌’ 샘플 개발을 끝낸 상태였다. 과거 삼성전기는 각고의 노력 끝에 신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경쟁사가 내놓은 소형 고용량 신제품에 밀려, 생산 원가도 회수하기 힘든 가격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제품을 팔았던 경험도 했다. 따라서 한시라도 빨리 제대로 된 ‘1005 2.2㎌’ 샘플을 만들어야 했다. MLCC 공정별로 조건을 달리해 성능 측정이 가능한 샘플 하나를 만드는 데는 통상 2주의 시간이 걸린다. CAE를 끝마친 당시 시점에서 프로젝트 목표 종료일까지 남은 기간은 총 16주. 남은 기간 내내 실험에만 매달려도 최대 8번의 실험 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작 8번의 실험으로 목표 특성을 모두 구현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북선센터는 샘플 제작 실험에 동시공학(CE·Concurrent Engineering·제품의 디자인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의 설계 작업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설계·제조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기법) 개념을 적용, 시간의 한계를 극복했다. 보통 순차적으로 진행하던 실험을 서로 중복시켜 연속 진행함으로써 시간 활용을 극대화했다. 우선 가능한 실험 계획 가짓수를 모두 도출,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계획표를 작성했다. 종속 관계가 없는 실험들은 앞 실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실험을 했으며, 반드시 선행 실험 결과가 나와야만 의미있는 결과 도출이 가능한 실험들은 선행 실험 실시 2주 뒤로 시기를 정했다. 매일 아침 일일 회의를 통해 현재 진행중인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고, 다음 실험에선 어떤 인자를 개선해 적용해야 할지 고민한 것은 물론이다.
 
CE 기법의 적용으로 거북선센터 MLC C 프로젝트 팀은 무려 27회의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당초 가능했던 실험 횟수(8번)보다 세 배나 많은 실험을 초고속으로 진행한 셈이다. 프로젝트 목표 종료 시점(2005년 7월15)에 맞춰 일본 경쟁사 제품보다 한층 개선된 ‘1005 2.2㎌’ 기종(정격 전압 6.3V, DC-BIAS 25% 개선 등) 샘플 제작에 성공한 것은 물론이다.
 
7 PD 제도 통해 부서이기주의(silo) 철폐
샘플 개발에 성공하자, 거북선센터 MLCC 프로젝트의 주축을 이뤘던 LCR 사업부 선행개발팀원들은 곧바로 사업부에 복귀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발팀원들의 의견대로 이 때 CFT가 해체됐다면, 삼성전기의 MLCC 역전 드라마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쟁사 샘플보다 성능이 개선된 샘플을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샘플은 샘플일 뿐이었다. 신제품이 실제 기업 매출로 이어지려면, 하루라도 빨리 양산 작업에 착수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맡겨진 ‘샘플 개발’ 소임을 충실히 끝낸 선행개발팀원들은 양산까지 책임질 수 없다고 버텼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사업부장이 지시한 또 다른 과제들(다른 MLCC 기종 샘플 개발)도 산적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사업부에 복귀해야 할 판에 본연의 업무도 아닌 ‘양산’ 작업으로 시간을 뺏길 수는 없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북선 MLCC CFT가 곧바로 해체되지 않고 시양산 작업까지 맡게 된 데에는 당시 MLCC 프로젝트 남창우 PD의 역할이 컸다. 그는 시양산까지 거북선센터에서 진행해야만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 당시 LCR 사업부장이었던 최치준 상무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경쟁사 제품보다 더 좋은 성능의 샘플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고객사에서는 샘플 한 개라도 더 달라며 아우성을 치는 판이다. 하지만 사업부 양산 스케줄을 고려해 볼 때, 지금 이 상태로 CFT를 해체하고 기종 양산을 사업부에 맡기면 고객 수요에 대응할 수가 없다. 언제 경쟁사가 양산 제품을 내놓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려면 프로젝트 목표를 변경해서라도 거북선센터에서 양산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최치준 상무에게 “당장 시양산 작업에 착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존 CFT 멤버 전원이 거북선센터에 잔류하는 것은 물론, 양산을 위해 제조 및 제조기술 인력 6명까지 추가로 충원됐다. 자칫 해체될 뻔했던 팀이 더 큰 규모의 팀으로 재출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 셈이다. 발 빠른 시양산 작업 착수를 통해 그 해 9월 7개 업체로부터 수주를 받았고 11월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지만 삼성전자 노키아 지멘스 등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들의 주문이 쇄도했다. 일본 경쟁사보다 3개월이나 빨리 판매를 시작한 덕에, 초기 고마진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삼성전기는 여세를 몰아 후속 기종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06년 용량을 두 배 이상 늘린 ‘1005 4.7 ㎌’을 개발했다. 이는 경쟁사 대비 6개월 먼저 이뤄낸 성과였다.<그림2 참조>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 개발로, 삼성전기는 2006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은수 기술혁신그룹장(거북선센터장)은 “MLCC 프로젝트는 특정 사업부서의 이해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업부장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는 PD제도가 없었다면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FT마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PL을 두긴 하지만 PL은 거북선센터 소속이 아닌 특정 사업부 소속 인력이 맡게 된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바라볼 때 전사적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자신이 소속돼 있는 사업부, 소속팀 입장에서만 과제를 바라보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은수 그룹장은 “CFT를 구성만 해 놓았다고 부서이기주의(silo)가 사라지고 협업이 절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며 “성공적인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서는 PD처럼 전사적 입장에서 프로젝트의 방향타를 조정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과제
2003년 4월 수원 사업장에서 출범한 거북선센터는 현재 국내외 8개 사업장 전체로 확산됐다. 지금까지 거북선센터를 거쳐간 과제 수는 총 320여 개. 위에 사례로 든 MLCC 개발을 비롯, 애니콜 핸드폰에 들어가는 내장형 카메라 모듈, 휴대폰 진동 세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모터로 햅틱폰 탄생을 가능케 한 수직 진동자, 보르도 TV의 원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LCD용 파워 모듈, LED TV에 들어가는 백라이트 모듈 등 삼성전기의 턴어라운드를 이끈 첨단 디지털 제품 대부분이 거북선센터를 거쳐갔다.
 
거북선센터 설립 이후 7년간 전체 매출기여 효과(과제 결과물 양산 시작 후 1년 내 예상 매출액으로 실제 기여 매출액과는 차이가 있음)는 1조3112억 원, 원가 절감 효과(기존 모델 대비 신규 모델 적용 시 예상 비용 절감액)는 6572억 원이다.<그림3 참조> 거북선센터가 이처럼 혁혁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체계적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와 독특한 활용 기법 및 차별화된 운영 방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9년 박종우 사장으로 삼성전기 사령탑이 바뀌면서 최근 거북선센터에 새로운 미션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거북선센터가 다뤄왔던 과제는 개별 사업부에서 진행하는 제품 개발 과제였다. 하지만 박 사장은 단순히 개별 사업부의 제품 개발 과제가 아니라 사업부간 융·복합 과제를 발굴,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라는 특명을 내렸다. 지금까지 거북선센터는 체계적인 프로세스와 독특한 활용기법을 통해 CFT를 성공적으로 운영, 혁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PD제도 등을 통해 CFT 운영상 조직 내 부서이기주의(silo) 철폐에도 성공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철폐한 장벽은 엄격히 말해 개발, 영업, 구매, 제조 등 ‘기능부서간’ 장벽이었다. 향후 실시하게 될 사업부간 융·복합 과제에선 ‘사업부간’ 장벽을 철폐하는 게 관건이다. 단일 사업부 제품 개발 프로젝트와 달리 융·복합 프로젝트는 사업부간 주종(主從)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 융·복합 과제로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을 때 발생하는 매출액 산정만 따져보더라도, 특정 부서에 과실이 집중되기 쉽다. 주축이 되는 부서와 단순 자재 공급 부서로 나뉘기 쉽기 때문이다. 사업부간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어떻게 조정해 협력을 이끌어낼지가 앞으로 거북선센터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