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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MBA의 HR스쿨

경영자가 주도한 혁신, 성과에 영향 못 미쳐

최진남 | 54호 (2010년 4월 Issue 1)

기업 경영에서 차지하는 혁신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혁신 역량을 꾸준히 강화하기 위해 분주하다. 조직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염두에 둘 점은 혁신이 단순한 일회성 사건(single event)이 아니라 여러 단계(multi-stage)로 이뤄진 연속적 과정이며, 단계별 과정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다는 점이다. 조직 혁신의 단계를 어떤 식으로 구분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대부분의 이론이 혁신의 도입(adoption), 혁신의 실행(implementation)이라는 두 단계를 포함하고 있다.
 
조직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음 4가지다. 첫째, 혁신 관련 주요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설정하는 최고 경영층, 둘째, 혁신의 내용과 정도를 제시하는 시장과 기술 환경, 셋째, 조직이 도입하는 혁신 그 자체의 특성, 넷째, 조직 혁신의 활용 주체이자 궁극적 사용자인 조직 구성원이다. 따라서 조직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네 부류의 핵심 주체가 각각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필자는 2007년에 성공적인 조직 혁신으로 잘 알려진 국내 한 중견 기업이 지난 30년간 도입한 다양한 혁신의 전개 상황을 사례 분석적 방법으로 연구, 이 기업이 어떻게 혁신 역량과 조직 성과를 동시에 높였는지를 알아봤다. 이 연구를 위해 해당 기업의 8개 업무 분야(전략/기획, 홍보, 인사, 마케팅, 생산, 기술 개발, 영업, 구매)를 관리하고 있는 임원 40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심층 인터뷰에서 복수의 임원이 언급한 94개의 혁신 진행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통계 분석도 실시했다.
 
분석에 포함된 혁신의 90%는 업무 과정, 절차, 제도 등에 관한 혁신으로 조직 구조 및 문화 변화, 전사적자원관리(ERP), 식스시그마 등을 포함했다. 또 대부분의 혁신은 개인 업무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팀(43%), 혹은 회사 전체(21%)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를 요구했다. 이 94개 혁신이 조직 내에 도입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요소들이 강하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면 <그림>과 같다. 이때 (+)와 (-) 기호는 각각 긍정적, 부정적인 효과를 의미한다. 점선은 약한 효과, 얇은 실선은 중간 정도의 효과, 굵은 실선은 강한 효과를 나타낸다.

 
혁신 도입과 효과의 관계에서 혁신 실행의 역할
혁신을 통해 조직 효과성을 증진하려면 혁신의 도입과 실행이 모두 중요하다. 혁신 도입의 결정은 성공을 위한 필요 조건이지만 좋은 혁신을 도입한 기업들이 모두 우수한 성과를 내지는 않는다. 어떤 기업은 혁신에 성공하고, 어떤 기업은 실패한다. 왜 그럴까. 이는 혁신 자체의 실패(innovation failure)가 아니라 혁신 실행의 실패(implementation failure)다. 지행격차(knowing-doing gap)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도입 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기대했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러닝머신이라는 좋은 혁신을 도입(러닝머신 구매)하고서도 이 혁신을 연례 행사로 활용한다면 당초 혁신 도입으로 기대했던 효과(건강 증진)를 얻을 수 없다. 외국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된 연구들에 의하면 ERP나 업무재설계(BPR) 등 값비싼 혁신을 도입한 많은 기업들도 애초에 기대했던 혁신 효과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94개 혁신 사례를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혁신 도입의 요소들이 혁신 효과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실행 단계를 강화함으로써 조직 효과성을 향상시키는 현상이 뚜렷했다. 즉 혁신을 통해 조직 역량을 강화하고 조직 성과를 향상시키려면 혁신 도입 여부보다 일단 도입한 혁신을 어떻게 실행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혁신을 도입하는 일만으로는 결코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위 그림에 나타난 분석 결과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로 조직원 주도의 혁신 도입이 혁신을 통한 조직성과 향상에 미치는 강한 효과다. 경영자, 환경, 혁신 그 자체 등 다른 요소와 달리, 조직원이 혁신 도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 복잡한 실행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조직 성과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때가 많았다. 국내 기업 중 조직원의 도전과 창의를 강조하고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며 자발적 참여를 격려하는 창조 경영을 도입한 사례가 많다. 문제는 창조 경영을 주창하면서도 조직원들이 업무 관련 혁신이나 신기술을 도입할 때 초기부터 이 과정에 참여해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사례가 적다는 사실이다. 현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혁신 과정을 주도할 때 해당 혁신이 가시적인 경영 성과를 창출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분석 결과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혁신 도입과 혁신 실행
거듭 강조하듯 혁신 도입 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요소들은 혁신 실행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 일관성 유지 경향(stability effect)은 경영자와 조직원이라는 주체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경영자가 주도적으로 혁신을 도입했을 때, 경영자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혁신의 실행과 정착 과정에도 많은 지원을 한다. 조직원이 주도적으로 혁신을 도입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혁신 도입에 책임이 있는 경영자가 이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발벗고 나서듯 이들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즉, 혁신 도입 결정에 대한 책임감은 그 실행 과정에서 혁신에 대한 주인 의식으로 승화된다. 이는 혁신 성공을 위한 열정적 노력으로 이어진다. 조직원이 혁신 도입을 주도했는지 아닌지가 조직원의 적극적 혁신 실행 자체보다 혁신 성과와 강한 연동성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동 주체로서 강한 의지를 갖는 경영자나 조직원과 달리 비즈니스 환경이나 혁신 그 자체가 갖는 특성은 실행력과의 연관성이 조금 약했다. 경쟁이나 시장 변화 등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혁신을 도입했다면,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외부 환경이 혁신 실행의 동기를 제공한다. 혁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우수성 때문에 해당 혁신을 도입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해당 혁신을 도입하기 이전 기업은 그 혁신이 자사에 유용하고 적합한지 사전 분석을 한다. 혁신의 우수성 때문에 혁신을 도입했다면 실행 단계에서도 혁신 자체의 특성이 해당 혁신의 활용과 정착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
 
혁신의 도입과 실행 과정에서 각 단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요소가 바뀌는 현상(agentic shift)도 발생한다. 위 그림에서 보듯, 조직원이 혁신을 주도적으로 도입하면, 혁신 자체의 강점에 의한 혁신 실행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기존 연구들은 혁신 도입 단계의 조직원이 담당하는 역할을 다소 간과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직원들은 실무를 진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업무 환경과 특성에 관한 이해가 깊다. 변화와 새로운 요구에도 민감하다. 조직원들은 자사 조직과 잘 부합하고, 업무 성과에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혁신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 하나 놀라운 결과는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한 혁신 도입이 경영자 주도의 혁신 실행에 가지는 부정적 영향이다. 환경 변화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혁신을 도입할 때, 경영자는 혁신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기 어렵다. 당연히 실행 과정에서 경영자의 지원도 줄어든다. 이는 인간 심리의 보편적 특성이기도 하다. 경영자의 핵심 업무는 경영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일이다. 환경에 떠밀려 비자발적으로 혁신을 도입하는 상황은 경영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 경영자가 환경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거나, 이것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영자가 해당 혁신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혁신 실행에도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시장이나 기술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른 조직을 모방하거나 추세에 못 이겨 수동적으로 도입하는 혁신은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혁신 실행과 혁신 효과성
기업이 혁신 활동을 진행하며 기대하는 결과는 두 가지다. 첫째, 대다수 기업이 혁신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이유는 성과 향상이다. 둘째, 혁신을 도입하고 실행하면서 조직의 학습 능력, 미래 환경에 대한 적응력 등 조직의 혁신 역량 자체를 강화하는 일을 장기적 목표로 삼기도 한다. 위 그림에서 나타났듯 조직의 혁신 역량과 성과는 혁신 도입과 실행의 다른 측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경영자 경영자의 적극적인 참여는 혁신의 성공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영자의 참여와 혁신 성과와는 큰 관계가 없다. 경영자가 혁신 실행에 적극 개입하면 해당 혁신의 적법성, 즉, 현재 진행하고 있는 혁신이 조직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장 뚜렷하게 알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혁신 실행에 적극적인 경영자들은 혁신을 더욱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혁신 관련 활동에 대한 물적 자원, 교육 훈련을 적극 지원한다. 경영자의 이런 지원이 혁신을 위한 조직 역량을 강화시키는 듯 보이나 분석 결과, 실제 경영자 주도의 혁신 실행이 성과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 나타났다.
 
이는 경영자가 주도하는 톱다운 방식의 혁신이 혁신 실행의 주체인 조직원들에게는 다소 강압적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조직원들은 혁신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자신의 업무와 해당 혁신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려 하지 않는다. 혁신에 막연히, 또 표면적으로만 순응할 때가 많다. 이는 혁신 효과가 실제 성과로 나타나는 일을 가로막는다. 때문에 설사 경영자의 판단으로 혁신을 도입했더라도 이를 실행하는 단계에서는 경영자가 뒤로 물러나는 게 좋다. 현업에 가까운 관리자나 직원들 중 혁신 주도 세력(innovation champion)을 조직해 톱다운 방식에 대한 직원들의 거부 반응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환경 외부 환경 역시 혁신의 성공에 큰 영향을 준다. 조직은 끊임없이 조직을 둘러싼 시장, 기술 환경, 고객, 경쟁자 등 외부 환경을 분석한다. 기업 성과는 그 기업이 얼마나 외부 환경이 부여하는 기회와 위협에 능동적으로, 또 적절히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 기술 등 외부 요구에 의해 혁신 실행이 촉진된다는 점은 해당 혁신이 조직의 환경 적응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 그림에 나타난 분석 결과와 같이 환경이 주도하는 혁신 실행은 조직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혁신 그 자체의 특성 해당 혁신이 얼마나 유용한가, 업무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조직원들이 받아들이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가, 조직 특성과 잘 맞는가 등 혁신 그 자체의 특성은 혁신의 사용 빈도와 실행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새로 도입한 혁신이 업무와 관련이 깊고, 실제로 상당한 도움을 주며, 업무 효율성도 향상시켜준다면 조직원들은 당연히 해당 혁신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수용성도 높을 것이다. 혁신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이를 체화시켜야 하는 조직원들의 혁신 수용성은 혁신 성과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 본 연구 결과 또한, 혁신 자체의 우수성이 조직의 혁신 역량 강화와 실제 업무 성과에 상당한 기여를 함을 보여준다. 혁신 자체의 강점은 조직 역량과 혁신 성과에 모두 작용하는 유일한 변수였다.
 
조직원 조직원의 무관심과 저항은 성공적인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다. 조직원 스스로 혁신 실행을 위해 노력하고, 기존 업무와 혁신을 융화시키기 위해 고심하는 일은 새로 도입한 혁신을 조직에 연착륙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열쇠다. 실제 혁신 실행에 적극적인 조직원들은 강한 동기를 갖고 있고, 혁신 성공에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다. 혁신을 실행하고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조직원들은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풀어 나아가야 한다. 조직원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결국 조직 전체의 장기적 혁신 역량을 향상시킨다. 또한 조직의 성과 향상과도 연결된다는 점이 연구 결과에 나타난다.
 
혁신은 한 사람의 개인만 잘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조직이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성과를 향상시키려면 다음 선결 과제가 필요하다. 첫째, 혁신을 도입할 때 남들이 좋다는 혁신 기법을 무조건 도입할 게 아니라, 그 혁신이 우리 회사에 정말 유용한지, 핵심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지,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에 쉬운지 등 혁신 자체의 특성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둘째, 외부 환경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실패해 수동적으로 혁신을 도입하면 혁신에 대한 주인 의식이 저하되고, 실행력도 대폭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조직원 스스로 활용 가능한 혁신을 탐색하고 혁신을 도입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조직원들이 혁신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해당 혁신에 강하게 몰입하고, 성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조직원은 혁신 실행과 성공에 가장 큰 비중을 지닌 주체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과 함께 인사 조직 분야 국내 최고 석학들의 연구 성과, 경영 기법 및 이론을 게재하는 ‘서울대 MBA스쿨의 HR 특강’ 코너를 연재합니다. 서울대 최진남 교수, 이경묵 교수, 김성수 교수 등 인사관리(HR), 조직 행동, 조직 이론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통찰력 있는 지식을 전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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