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라이프 사이클 관리

확실한 비전, 구체적 관리...협력은 전략이다

51호 (2010년 2월 Issue 2)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USA(United Space Alliance)라는 회사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12대의 우주왕복선 발사 대행 계약을 수주하고, 우주 항공 계획 운영 계약(SPOC)을 따내는 등 큰 성공을 이룬 기업이다. 보잉사가 LMT라는 회사와 50:50의 지분 구조로 설립한 합작 기업(Joint Venture)인 USA는 NASA의 우주 왕복선 민영화 사업을 수주한다는 명확한 목적과 협력사 간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합작 기업은 미국 항공 방위 산업에 있어 기업 간 협업(Collaboration)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방위 산업과 같이 대규모 투자가 수반돼 위험도가 높은 산업이나, 자생적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활용한 성장을 모색하곤 한다. 기업들은 기업 간 협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접근 △강력한 브랜드, 유통 채널, 정부와의 관계 등 새로운 경영 자산의 취득 △비용 절감이나 새로운 역량과 같은 추가적인 경영 자원의 획득 △생산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의 습득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그림1) 문제는 모든 기업들이 협업을 통한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다수 경영자들은 협업 관계 구축을 통해 주주와 회사에 큰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의 3분의 1 이상이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전체 가치의 25% 이상이 외부 회사와의 협력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베인&컴퍼니를 비롯한 다수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협업 관계가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4년이 못돼 단기간에 끝나는 경우가 전체 협업 건수의 60%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성공적인 협업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협업이 실패하는 원인

2005년 미국의 이동통신 회사인 스프린트는 컴캐스트, 타임워너 등 미국의 4대 케이블TV 사업자(SO)들과 함께 유무선 통합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합작 법인 피봇(Pivot)을 설립했다. 스프린트가 협업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유무선 통합 상품 및 케이블과 데이터 통신 간 결합 상품이 당시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스프린트는 이 합작 기업에 필요한 자금인 2억 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했다. 그러나 피봇은 성장하지 못하고 2008년 4월 문을 닫고 말았다. 합작 법인의 가르시아 사장은 중간에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됐고, 후임인 코원 사장은 파트너사인 케이블TV 사업자들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보수적인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이미 가입 가구 수가 다 차버린 상황에서 신규 상품의 판매에 따른 실제 혜택이 매우 적어 사업 추진에 소극적이었고, 시장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반면 스프린트는 시장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해 독자적으로 자신의 대리점에서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케이블TV 사업자들은 피봇을 위한 별도의 임원진도 선임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이처럼 실패하는 협업에는 원인이 있다. 협업 관계 형성의 목적이 분명하지 못했거나, 상호 이해관계가 다른 기업이 결합했거나, 참여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잘 반영한 사업 구조를 만들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협업 관계의 탄생에서 소멸까지 이어지는 생명 주기(life cycle)의 각 단계마다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면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협업 관계의 성공 전략, ‘생명 주기’ 관리
협업 관계의 성공 여부를 관계 구축 시점에서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협업 관계를 끝내는 시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협업 관계의 생명 주기를 통해 어떠한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 협업 관계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협업 관계의 생명 주기는 △협업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 △협업 후보에 대한 평가 △협업 관계의 디자인 △협업 관계의 관리 △협업 관계의 청산에 이르는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①협업의 필요성과 목적을 명확히 하라
기업인들이 전략적 협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신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나 사업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인수합병(M&A)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가 입장에서 어떤 혜택이나 상황을 바라든지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협업 관계는 상호 대등하고 보완적인 관계다. 이러한 대등한 상호 협업 관계는 가치 사슬의 각 단계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생할 수 있다.(그림3)
 
연구개발(R&D) 단계의 협업:제품 개발 단계에서 다양한 기업과 협력하는 사례를 말한다. 가전 업체 필립스는 이 분야의 협업에서 대표적인 기업이다. 필립스는 심지어 가정에서 생맥주를 만들어 즐길 수 있는 ‘퍼펙트드래프트(PerfectDraft)’라는 기계를 글로벌 맥주 회사인 인터브루와 함께 개발해 판매한 적도 있다. R&D 협력의 가장 오래된 사례로는 보쉬와 지멘스의 협업 관계가 있다. 두 회사는 1967년에 B/S/H(Bosch & Siemens Hausgerate)라는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3만 5000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100여 나라에서 항 박테리아 기능과 미디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냉장고 등 혁신 제품을 선보였다. 이 결과 연평균 5%의 매출 성장률과 20% 이상의 영업 이익 성장률을 나타냈다.

제조 단계의 협업:필립스는 성숙기 사업의 제품 제조는 아웃소싱하고, 장기적으로 성장 기회가 있는 사업 기회에 대해서는 협업 관계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시장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제품 제조 단계의 협력을 통해 필립스는 중국 가전제품 시장 진출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했다.
 
마케팅 단계의 협업:협력사 각자가 보유한 브랜드와 그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협력이 이뤄지기도 한다. 자동차 제조사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시계 회사인 스와치가 만든 SMART(Swatch-Mercedes Art)라는 경차가 대표적인 협업 사례다. 두 회사가 각각 51:49의 지분을 투자해, 벤츠의 고급 자동차 관련 기술력과 스와치 그룹의 현대적이고도 소비자의 취향에 발 빠르게 맞춰나가는 디자인 및 이미지를 결합해 성공을 거뒀다.
 
유통 단계의 협업:다국적 소비재 기업인 P&G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기업인 허치슨 왐포아 그룹과 맺은 전략적 제휴도 대표적인 협업 사례다. 당시 허치슨 그룹은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광저우 지역에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P&G가 이 회사와 개인 위생 용품 생산을 위해 설립한 합작 기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허치슨 그룹은 정부의 소비세 감면을 이끌어냈고, 제품 공장 증설에 따른 공동 투자로 재무적 위험을 경감시켰다. P&G를 위해 원부자재의 수입을 대행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협업 관계는 P&G의 다양한 협력 모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②파트너사의 협력 의지와 성향부터 평가하라
이를 위해서는 파트너사의 경영진들 중에 누가 의사결정권자이며, 그 사람은 왜 이 협업 관계에 관심이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또 파트너 후보 회사가 장차 이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전략이 있다거나 과거에 협업 관계를 망친 적이 있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두 회사의 문화적 차이 또는 사업 관행이 서로 잘 맞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협업 관계의 필요성을 평가할 때 회사 간의 궁합에 대한 분석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에어컨 생산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기업과 협력을 추진할 때 에어컨보다 다른 사업에 관심이 많은 회사를 파트너로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파트너라면 냉장고 사업과 관련한 협업 관계를 소중하게 여길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협력 조건을 협상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③전략적 목표 실현에 적합한 협업 방식을 디자인하라
협업 관계를 디자인하는 구체적인 옵션은 해당 기업의 참여 정도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가장 느슨한 결합인 어드바이저 형태다. 이는 파트너사로부터 고정적 보상을 받고 필요한 기술이나 생산 관련 조언을 제공하는 형태다. 둘째는 생산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기업에게 지속적인 생산 기반과 기술을 제공하는 유형이다. 이 두 가지 형태는 자본 투자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셋째는 합작 법인으로, 지분 투자를 하고 경영상의 파트너로 활동하는 형태다. 실제로 베인&컴퍼니의 고객사인 글로벌 휴대전화 사업자는 중국에 진출했을 때 합작 법인, 독자 진출(WOFE), 생산 계약 방식(Contract Manufacturing) 등 다양한 옵션 중에서 합작 법인 형태를 선택한 사례가 있다. 이는 현지에서 공급 사업자로 등록되는 것이 중요했고, 참여사 모두 지분을 갖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넷째는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는 유형이다. 낮은 단계의 파트너십을 거쳐 새로운 법인 설립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협업 모델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다수 기업들과 동시에 협업 관계를 체결하는 ‘대단위 협업(Ultra-collaboration)’도 등장했다. 대형 할인점인 월마트가 이 분야의 선도적인 기업이다. 월마트는 수백 개의 기업과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 간의 협력 관계 자체가 하나의 산업을 형성할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적 협업 구조의 선택은 특정 산업의 시장 상황에 비춰볼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참여하는 기업의 지분 참여 의지 등에 대한 평가, 예상되는 영업 이익과 자본 지출 규모 등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협업의 실패가 잘못된 구조 설정에서 시작하는 사례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시 런치(Sea Launch)는 1995년 4월 보잉의 주도로 최초의 민간 위성발사 회사인 아리안 스페이스(Ariane Space)와 경쟁하기 위해 설립된 합작 법인이었다. 보잉이 노르웨이의 아커(AKER), 러시아의 RSC-Enersia라는 엔지니어링 회사, 우크라이나 기업 등과 함께 공동으로 경영한 이 합작 법인은 해상에서 민간 상업용 위성을 발사하는 방식을 채택해 보다 낮은 비용으로 위성 발사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반복되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2009년 6월에 파산 신청을 하고 말았다.
 
협업 관계를 잘못 설정한 게 패인이었다. 우선 파트너들이 협력보다는 각 사의 이익 창출에 집중했다. 파트너들은 스스로가 부품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합작 법인으로의 납품 가격에 자사의 제조비용과 판매 관리비용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거래 수수료까지 부과했다. 이 합작 법인은 100% 부채로 구성된 재무 구조로 설립됐는데, 자금력이 부족한 러시아 기업과 우크라이나 기업은 채무 부담을 전혀 지지 않았다. 보잉과 아커가 모든 채무를 부담하는 불공평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이었던 것은 파트너마다 이해관계가 달랐다는 점이다. 보잉만이 민간 위성 발사 사업에 실질적인 관심이 있었고, 아커는 해상 구조물 플랫폼을 판매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러시아는 새로운 기술 습득을 노리고 있었고, 우크라이나는 자국 기업 육성에 관심이 있었다. 이는 관심사를 공유하지 못하는 동상이몽의 협업 관계가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④균형 유지와 솔직한 대화로 협업 관계를 관리
협업의 진행 단계에서 어느 일방 회사에게 이익이 쏠리면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슈는 재무적 측면뿐만 아니라 전략적 측면에서도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파트너 기업이 일방적인 기술 이전을 강요한다면 상대 기업은 이 회사를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하게 되고, 결국 협업 관계 관리에 실패하게 된다.
 
1995년 픽사와 디즈니가 만화 영화 공동 마케팅에 관한 협약을 맺은 적이 있다. 양사의 협업 관계는 연간 1억∼1억 5000만 달러의 영업 이익을 만들어내는 등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 협업 관계는 픽사가 보다 많은 수익 배분을 요구하면서 계약 연장에 실패하고 말았다.
 
협업 관계의 관리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경영권을 어느 회사에 부여할 것인지 문제다. 일반적으로 더 앞선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경영권을 갖는 것이 좋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특히 외국계 회사와 협업 관계를 구축할 때는 경영권 관련 사항을 명확히 해야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미리 의사결정의 원칙과 프로세스를 정해놓는 것이 좋다.
 
⑤사전에 마련된 시나리오에 따라 원만하게 관계를 청산
협업 관계를 구축할 때부터 어떤 상황이 닥치면 협업 관계를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합작 법인을 만들면서 상호 합의했던 매출이나 이익 목표를 달성했거나 새로운 시장 환경에 익숙해져서 상대방에게서 더 얻을 것이 없어질 때 협업 관계의 청산을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업종의 회사와의 협업 관계라면 원하는 시나리오에 따른 협업 관계 청산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는 파트너 회사가 경쟁자로 돌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필립스가TV 제조사인 TCL과 매그나복스(Magnavox) TV 생산을 위해 협력한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TCL이 다른 TV 제조 회사인 톰슨과 합병해 필립스보다 더 큰 TV 생산 기업이 됐다. 결국 양사의 협력 관계는 파탄을 맞았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