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은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조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물론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대담하면서도 차별화된 전략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향후 전망을 두고 갑론을박이 엇갈리는 상황에서는 방향 정립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전망이 불투명하다거나 예측 자체가 어려울 때보다 더욱 난감한 처지를 만들곤 한다.
즉, 향후 비즈니스 전망에 대해 누구도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못할 때보다 각종 전망이 난무하고 그 전망들이 서로 대립할 때가 더 힘들다는 뜻이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향후 전망에 대해 서로 180도 다른 견해를 제시할 때 기업들은 괴롭다. 이때 앞으로 상황에 관계없이 그저 일이 잘 풀리겠거니 하고 두리뭉실한 전략을 택한다면 결코 올바른 해답을 도출할 수 없다. 우리가 제시하고자 하는 전략은 큰 차원에서 결실을 거두면서도, 혹 상황이 기업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 그에 걸맞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갑론을박의 쟁점과 그 논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 전략을 선택하기에 앞서 그 선택에 이르게끔 한 요인이 정말 중요한 요소인지,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건 아닌지 재고해야 한다. 서로 엇갈리는 전망을 하나하나 되짚어 봐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상 시나리오가 큰 도움을 준다. 전략적 투자를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어떻게 할지를 다음 4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분석해보자.
주요 논점: 미래상에 대한 엇갈린 전망
가상 시나리오의 논거가 되는 기초 자료는 언론, 학계, 정부, 블로그 등 각종 자료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기업 경영진들 사이에서도 서로 엇갈린 견해를 내놓고 있는지 모른다.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논거에 귀를 기울이고, 토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쟁점 사안에 대한 논의를 함으로써 과연 우리가 어떠한 동향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현재 기업 전략 분야에서는 포괄적이면서도 상호 연관된 다음 3가지 주제가 주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첫째, 정부와 시장력(market force) 간의 관계, 둘째, 환경과 에너지 공급 문제 간의 관계, 셋째, 세계화와 지정학적 입지 간의 관계다. 우리는 인터뷰를 통해 3가지 주요 쟁점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취합한 후 향후 10년을 바라보는 가상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각 시나리오에서는 서로 매우 다른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스토피아(Eastopia)정부가 국가 경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과거와 같은 자유시장, 자유경제 흐름에 역행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수적 자세를 견지하는 개발도상국들이 서구 선진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탈동조화(decoupling)’ 속도가 빨라진다. 개발도상국의 국영 기업, 국영 석유기업, 국부펀드가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반면 서구 기업은 내수 시장 침체에 따라 그 영향력이 약화된다. 세계 원유 생산 감소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한층 강화된다. 국가와 기업은 성장시장에 대한 접근성 확보 및 천연자원 확보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다.
미국 재무부 전 차관이자 투자은행 에버코어 파트너스의 현 대표인 로저 알트먼은 세계 중심이 비(非)서구 사회로 이동하는 흐름이 금융위기를 통해 한층 빨라졌다고 말한다. 경기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이 바로 거대 자본주의 국가이며 그 여파로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의미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인 사이먼 존슨 MIT 교수 또한 미국 경제의 잠재적 취약성을 우려한다. 금융위기 문제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향후 수년간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잃어버린 10년’ 기간의 일본과 유사하다. 당시 일본은 용기 있게 상황을 돌파하지도 못했고,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프랑스의 변호사, 저술가, 칼럼니스트인 로랑 코앙 타누기에 따르면 유럽의 경제 전망도 어둡다. 그는 유럽이 경제적 취약성, 혁신 부족, 에너지 정책의 부재, 고등교육 및 연구 부족, 인구 감소 등과 같은 경제사회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질책했다. 유럽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무대에서 유럽의 이해관계와 정체성을 적절히 규정지으려면 먼저 유럽연합(EU)의 재정비 및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현재 유럽 지도자 중 이 준비에 나서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정부 주도형 경제를 택한 중국, 러시아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약진을 전망했다. “국가자본주의 국가의 정부는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스위크 인터내셔널>의 파리드 자카리아 편집장도 미국 외 다른 나라의 부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앞으로도 여전하겠지만 산업, 금융, 교육, 사회, 문화 등 다른 모든 측면에서 미국 중심의 권력 구도가 사라지고 세계 권력이 재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