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대명사 IBM, 고객이 첫발이었다

48호 (2010년 1월 Issue 1)

위기의 근원은 무엇인가?
기업은 왜 위기가 닥쳐서야 뒤늦게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일까. 기업이 내외부 환경을 잘 이해하고 전략을 수시로 조정했다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격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지만 현실 세계에서 이처럼 이상적인 기업 전략을 실행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기업은 스스로 지속적으로 변화하기보다 변화에 저항하고 현 체제를 고수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 체제를 고수하려는 기업의 속성 때문에 오랜 기간 변화를 거부하다가 한계 상황에 부딪힐 때 비로소 미뤄왔던 변화를 한꺼번에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일어난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 상황에 빠졌고, 상당수 기업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위기 극복 방안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도했지만 IBM만큼 극적으로 경영 시스템을 바꾸고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기업은 드물 것이다. IBM은 1911년 3개 회사의 합병으로 설립된 CTR(Computing-Tabulating-Recording)이 모태다. IBM이라는 회사명은 1924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1970년대까지는 창업자인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과 그의 일가가 IBM을 경영했는데, “IBM 제품을 구입하면 회사에서 해고될 일이 없다(Nobody ever got fired for buying IBM)”라는 기업 고객의 찬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의 제품과 성공적인 경영 활동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됐다.
 
IBM은 창립 이후 1990년까지 고성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하지만 1991년 IBM 창사 이후 처음 적자를 냈고, 적자 행진은 1993년까지 지속됐다. 누적 적자만 16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IBM은 곧바로 위기 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1993년 4월 IBM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 출신인 루 거스너(Lou Gerstner)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루 거스너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정보기술(IT) 분야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그가 과연 기울어가는 IBM을 회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하지만 루 거스너는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그는 취임한 다음해 곧바로 IBM을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키고, 2002년 3월 샘 파미사노(Sam Pamisano)에게 CEO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무려 10년간 IBM의 성과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또한, 루 거스너가 CEO로 재직하는 동안 IBM의 사업 구조는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인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됐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업 체질까지도 미래 시장에 맞게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루 거스너는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이 글에서는 루 거스너가 CEO로 영입되기 이전과 이후의 IBM 상황을 비교 분석하고 루 거스너 영입 전과 영입 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위기 속에 빠진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어떤 접근 방법을 택해야 할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특히 다음의 상호 관련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잘나가던 IBM이 왜 갑자기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일까? 당시 IT 산업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IBM은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했는가? 환경 변화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루 거스너 영입 전에 IBM 내부에서는 어떤 변화를 시도했었는가? 루 거스너는 자신이 영입되기 이전에 추진되었던 시도를 계속해서 추진했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의 변혁을 시도하였는가? 루 거스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얻었는가? IBM의 회생 전략은 우리 기업에게 어떠한 시사점을 던져주는가?

 
IBM의 쇠락
IBM은 컴퓨터의 산 역사다. 초기 컴퓨터 개발을 주도했으며 컴퓨터의 대량 생산을 통해 세상에 IBM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1981년 내놓은 IBM PC로 애플사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초일류 기업인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1980년대만 해도 IBM의 하청 업체에 불과할 정도였으니, IBM은 그야말로 대단한 기업이었다. 1984년 IBM 매출이 세계 IT 산업 이익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수익성도 뛰어났다. 1990년도 말까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IT 기업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 뒤에 IBM의 위기가 태동하고 있었다. 1984년을 정점으로 매출이익률, 자산이익률, 자본이익률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계속된 성공에 취해 내부 구성원들은 컴퓨터 시장의 환경 변화라는 위기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재앙을 효과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리스(lease) 지향적인 사업’에서 ‘판매 지향적인 사업’으로 사업 방식을 변환시킨 결정과도 일부 관련이 있다. 사업 방식을 전환해 미래의 성과를 현재로 끌어당겼기 때문에 IBM의 당시 성과가 겉으로 좋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임직원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풍부한 자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결과 내외부 환경의 위협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미 1980년대 중반 IT 시장에서는 IBM에게 불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IBM은 이른바 슈퍼컴퓨터로 불리는 대형 컴퓨터를 생산했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들에게 메인프레임(mainframe)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PC의 성능이 급속히 발전되면서 기업들이 비싼 메인프레임 대신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클라이언트-서버(client-server)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호환성이 높은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을 채택하면 가격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었고, 벤더(vendor)에게 묶이는 이른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을 줄이는 효과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또한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이 보편화하자, 상당수 기업들이 경영정보시스템(MIS) 부서에서 집권적으로 관리하던 시스템 도입 의사결정을 일선 현업 부서에서 하도록 분권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MIS 부서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던 IBM은 고객 관리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내부 비효율의 원인
당시 IBM 내부의 비효율성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줄곧 성장가도를 달려왔기 때문에 각 부서 및 사업 단위에서 요청하는 대로 경영 자원을 방만하게 제공했다. 이 결과 부서 및 사업 단위별로 자원 중복이 매우 심각했다. IBM 제품 간 호환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 불만도 증가하고 있었다. 엉뚱한 곳으로 고객의 주문을 발송하고, 잘못 처리한 문제가 내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등 고객 대응 능력에서도 구멍이 뚫렸다.
 
IBM은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집단 합의에 따른 경영 방식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IBM의 최고 경영진은 내부에서 육성된 중역들로만 구성됐다. 구성원 간 단합이나 팀워크를 강조하다 보니 다양한 견해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되기 어려운 집단주의적 조직 문화를 갖게 됐다.
 
1990년대 초 IBM에서는 CEO를 포함하여 22명의 최고 중역들로 구성된 전사경영위원회(Cor-porate Management Board)가 경영상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 의사결정을 했는데, 이들 가운데 1명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안건이 기각되는 ‘만장일치제’를 채택했다.
 
최고 중역들은 핵심 사안에 대한 보고서 작성과 의사결정을 부하 직원들에게 상당 부분 맡기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 스태프들이 수차례의 사전 조율 모임을 통해서 전사경영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도록 장애 요인을 사전에 조정하고 안건을 상정하는 게 관행이었다. 따라서 전사경영위원회에 상정된 안건들은 대부분 만장일치로 통과될 수 있었다. 전사경영위원회는 유명무실한 의사결정 기구였으며, 실질적으로는 관련 스태프들의 합의에 의해 회사가 운영되고 있었다.
 
황당한 일은 IBM이 대표 IT 기업인데도 사내 부문 및 사업부서가 보유한 IT 시스템들이 서로 연동이 잘 되지 않았다. 한때 IBM 내부에 128명의 최고정보책임자(CIO·Chief Information Officer), 125개의 데이터센터, 31개의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존재할 정도로 내부 관리 시스템이 엉망이었다. IBM의 정보 처리 비용은 업계 평균의 3배에 이를 정도로 관료주의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 CEO였던 존 에이커스(John Akers)는 미흡한 고객 대응 문제와 내부의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실시하고, 당시까지 유지돼왔던 평생 고용 제도를 폐지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크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비효율적인 관료주의가 팽배했으며 구성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1992년 4월 존 에이커스가 “구성원들이 전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내부 문제점을 공개 비판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지만, 개선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IBM은 여러 조치에도 효과가 없자 기업 분리라는 특단의 조치를 고려하게 된다. 기업 분리란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거대한 IBM을 13개의 소회사로 분리하고 각 회사별로 신속하게 환경에 대응하자는 것이었다. 이 논의는 IBM의 주력 부문인 PC 부문의 분사 논의로 촉발됐다. 문제는 구체적인 분사화 추진 전략이 없이 어느 분야를 분사해야 할지에 대한 원론적인 논의만 무성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논의 때문에 내부 혼란만 더 가중되고 있었다.
 
특단의 조치를 위해서?
IBM 이사회는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CEO를 외부에서 영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사회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얼라이드시그널(Allied Signal)의 래리 보시디, 모토롤라의 조지 피셔 등을 접촉하고 마침내 1993년 4월 루 거스너를 영입했다. 루 거스너가 IT 업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부족했지만, 고객 대응 능력이나 구조조정 경험이 매우 풍부한 인물이란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모든 일은 고객에서부터 출발한다!
루 거스너가 IBM에서 받은 첫인상은 구성원들이 내부 관점에서 시장이나 사업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고객 지향적인 회사의 CEO 출신으로서 루 거스너는 IBM의 조직 문화를 바뀌지 않으면 회생할 수 없다는 점을 곧바로 깨달았다.
 
내부 관점에서 고객과 시장을 바라보는 구성원의 시각과 이에 대한 루 거스너의 대응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1993년 봄 버지니아에서 IBM의 주요 고객사의 최고기술경영자(CTO·Chief Techonolgy Officer)들의 모임이 개최됐다. 1박 2일 일정의 이 행사를 담당하는 중역은 루 거스너의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 중역은 루 거스너가 회사 및 업계 사정에 밝지 않고 업무 파악으로 매우 바쁠 것이라고 짐작하고 개회식에만 참석해줄 것으로 요청했다. 딴에는 루 거스너를 배려한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루 거스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 행사가 주요 고객사의 CTO 대상이라는 점을 듣고, 자신을 포함해 되도록 모든 중역들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도록 독려했다. 고객이 우선이라는 그의 시각에서 이 행사는 모든 중역들이 신경을 써야 하는 중요한 행사였던 것이다.
그 모임에서 루 거스너는 메인프레임 가격 인하 계획, 기술 체계 변경 등의 주요 사안을 고객사에 공표했고, 자사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원하는 고객사에게 담당 중역도 배정했다. 배정된 중역에게는 3개월 이내에 고객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현장에서 바로 고객 문제와 내부 인력을 연결시키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이다.
 
IBM을 분리하지 않는다!
원래 IBM의 분사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IT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IBM은 특정 영역에 전문성을 보유한 회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분할 공급 환경이 구축되는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회사 안팎의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IBM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리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루 거스너는 다른 판단을 했다. 소비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분산된 수많은 공급자가 아니라 이들을 통합해서 고객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통합 솔루션 사업자라는 점을 간파했다. 즉, 분할 공급 환경에서는 모든 것을 통합하여 작동시키는 부담이 소비자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신뢰할 수 있는 회사를 원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일은 IBM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이런 확신을 갖게 된 루 거스너는 IBM 특유의 경쟁력을 파괴하면서까지 IBM을 개별 부품 공급자 집단으로 전락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고객에게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분사화 계획을 중단시켰다. IBM 내부에서 분리 작업을 해오던 투자은행, 회계사, 광고대행사 등도 모두 내쫓았다.
 
IBM의 회생 전략의 핵심에는 ‘하나의 IBM으로 간다’는 전략적 선택이 있었다. 루 거스너는 이를 구성원에게 전파하기 위해 8가지 원칙을 공표했다.(표) 이 원칙은 구성원들에게 통합, 원가 절감, 고객 중심 경영, 신속하게 움직이는 조직 등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고객 지향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라!
루 거스너는 IBM의 시장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에 고객 지향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데 전념했다. 우선 국가별, 사업별로 분화돼 있던 업무 프로세스를 하나의 업무 프로세스로 통합하고 세계의 모든 고객에게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역의 스태프들이 회사의 주요 현안을 결정하던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도 도입했다. 라인 관리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고객 관점에서 책임 경영을 하도록 시스템과 제도를 구축했다.
 
중역들에게는 ‘고객을 끌어안는 노력(Opera-tion Bear Hug)’을 주문했다. IBM 최고 경영진이 각각 3개월마다 최소한 고객 5명을 방문하도록 독려했다. 중역들은 고객의 말을 경청한 다음 IBM이 고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뒤 적절한 행동으로 고객을 붙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고객이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1, 2쪽의 간결한 보고서를 작성해 내부 부서에 제출하고 3개월 이내에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가 최고 경영진에게 주어졌다.
 
전사적인 협력 경영을 실시하라!
IBM은 당시 부문별로 경영됐기 때문에 전사적인 관점에서 브랜드 관리 체계나 보상 관리 체계 등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IBM은 광고대행사를 단일화하고 구성원의 성과를 전사적인 성과와 연동시키는 등 전사적인 협력 경영을 추구하였다.
 
IBM은 1993년 당시 무려 70개의 광고대행사에 일을 맡겼다. 각 대행사는 상호 협조 없이 각자 방식대로 일하고 있었다. 한 잡지에 18개의 서로 다른 IBM 광고가 실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디자인과 메시지가 각각 달랐고, 로고조차 통일되지 않았을 정도로 일관성이 없었다. 루 거스너는 브랜드 통일을 위해서 오랫동안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마케팅 전문가 출신의 애비 콘스탬을 최고마케팅책임자(CMO·Chief Marketing Officer)로 영입했다. 당시 IBM에서는 마케팅을 전문 분야로 인식하지 않을 정도로 마케팅 마인드가 약했다. 애비 콘스탬은 먼저 여러 중역들이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정된 광고 예산을 거둬들였다. 중역들이 각자의 광고대행사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어 오길비 앤 매더(Ogilvy & Mather)를 대표 광고대행사로 선정했다.
 
보상 관리 체계도 뜯어고쳤다. IBM은 경영진에게 개별 사업 단위의 성과를 근거로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었다. 회사 전체의 경영이 엉망이더라도 자기 일만 잘하면 많은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IBM에는 자기중심적인 조직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루 거스너는 그에게 직접 보고하는 최고 경영진의 보너스를 회사 전체 실적에 연동시켰다. 그리고 그 아래 직급 경영진의 보너스는 IBM 전체 실적이 60%, 소속 사업 단위의 실적은 40%가 반영되도록 고쳤다. 이런 방식으로 경영진의 보너스에 회사 전체 실적을 반영하도록 수정했다.

 
수익성 없는 자산을 매각하라!
루 거스너가 모든 것을 통합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영역을 찾아 ‘선택과 집중’을 했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이나 자산은 철저하게 매각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려고 했다. 1992년까지만 해도 하드웨어 사업이 매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으나 2000년 이후 소프트웨어 사업 매출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재편됐다.(그림)
 
IBM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존 톰슨과 데니 웰시 등의 최고 경영진이 주도했다. 메인프레임 사업에 역량 집중, 소프트웨어 사업 기반 강화, 서비스 중심적인 사업 구조로 재편 등이 ‘선택과 집중’의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회사 역량만으로 소프트웨어 사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고, 응용 소프트웨어 사업자와의 전략적 제휴도 활발하게 모색했다. 또 서비스 중심적인 사업 구조를 갖추기 위해 과거에는 IBM 제품에 대해서만 서비스 사업을 하던 방식에서 타사 장비 설치 및 문제 해결로 확대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IBM은 IT의 모든 면에서 고객을 위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했다.
 
구조조정의 핵심 역할은 제리 요크(Jerry York)가 주도했다. 제리 요크는 크라이슬러 최고재무책임자(CFO· Chief Finance Officer) 출신으로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는 먼저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매각했는데, 예를 들면 네트워크 하드웨어 사업, D램 사업, 하드디스크 드라이버 사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회사에 꼭 필요치 않다고 판단되는 자산도 모두 매각했다. 회사 항공기 중 상당수와 뉴욕의 본부 건물들도 매각했다. IBM은 1980년대부터 귀중한 예술품을 많이 사 모았는데 대부분은 밀봉된 상자 속에 보관돼 있어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그중 일부만이 이따금씩 IBM 타워 화랑에 전시되곤 했을 뿐이었다. 이 예술품 중 상당수는 매각됐다.
 
하드웨어 구조조정 vs. 소프트웨어 변혁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IBM의 위기가 1990년 초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위기의 근원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태동되고 있었다. 위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도 구성원들은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스로 혁신하려는 마음가짐도 가지지 못했다. 이는 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으며 조직 개편이나 분사화 등의 외형적 변화 노력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즉, IBM 사례는 현 체제를 고수하려는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이 변하지 않는 한 기업의 위기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IBM 사례에서 위기 탈출에 대한 2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위기 속 회생 전략은 CEO의 변혁에서 시작된다. 위기에 빠진 기업이 집단주의 내지는 획일주의에 감염돼 있다면, 외부 CEO를 영입하는 것처럼 보다 충격적인 요법이 필요하다. CEO의 교체는 기업 전략 수정과 사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다.
 
둘째, 위기 속 회생 전략이 성공하려면 조직 구조나 체계 등 조직의 하드웨어 측면은 물론 조직 문화와 구성원의 마음가짐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변화도 동시에 수행돼야 한다. 상당수 기업들이 위기에 빠지면 자산 매각, 사업 구조 재편 등 하드웨어 구조조정에만 급급하고 기업 문화 혁신 등의 소프트웨어 변혁에 대한 노력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루 거스너 영입 후 IBM은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수익성이 없는 자산과 사업을 매각하는 한편, 고객 지향적 자세, 통합적인 사고 및 업무 방식, 혁신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식의 소프트웨어 변혁을 통해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또한 미래지향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도 갖출 수 있게 됐다. IBM 사례에 나타난 회생 전략의 요소 및 절차를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업들의 특성이나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기업 전략에 따라 회생 전략의 요소 및 절차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은 하드웨어 구조조정은 위기에 대한 단기적 미봉책이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위기에서 탈출해서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구조조정과 함께 장기적으로 결실이 나타나는 소프트웨어 혁신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서비스 산업이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서비스 사이언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이 지금까지 진행한 연구 성과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공개합니다. 이번 기획 시리즈가 한국 제조업 및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8호 The Rise of Flexitarians 2022년 0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