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분노는 기업에 큰 위험을 초래한다. 실제 2007년 한 국내 이동통신사 본사 정문에 벤츠 차량이 돌진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회사는 2억 원 상당의 물적 손해뿐만 아니라 관련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미지 훼손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서양에서는 분노한 소비자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담당 직원이 사고사를 당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분노는 이처럼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최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경영대학원 폴 패터슨 교수 연구 팀은 소비자가 분노하는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대응 전략을 담은 논문을 저명 경영학술지인 <캘리포니아 매니지먼트 리뷰> 최신호(Vol.52, No.1, 6∼28p)에 실었다. 연구 팀은 미국과 중국, 호주, 태국 등 4개국에서 서비스 불만 등으로 분노를 경험했던 소비자 50명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했다.
연구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모든 소비자 분노는 일순간의 강렬한 경험 때문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사건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단순한 불만으로 전화를 했는데, 회사 직원들이 책임 떠넘기기를 해서 화가 치밀었고 결국 매장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감정이 격화돼 극단적 분노가 형성된 사례처럼, 분노의 수준은 반드시 여러 개의 사건을 거치면서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다. 즉, 기업 입장에서 보면 소비자의 분노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몇 차례는 있었다.
특히 물질적 피해 보다는 감정 훼손이 훨씬 심각한 소비자 분노의 동인이었다. 소비자의 피해 규모는 커피 한 잔에서부터 많아야 몇 십만 원 정도였다(1억5000만 원짜리 벤츠 승용차를 돌진시킨 남성도 40만 원짜리 휴대전화 때문에 분노했다). 소비자 대부분은 금전적 손실에 따른 경제적 고통 때문이 아니라, 자부심이나 무력감, 불공정성 등으로 인한 감정적 상처 때문에 분노했다. 따라서 기업이 분노한 소비자에게 물질적 보상을 해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감정적 상처를 보듬어줘야 한다.
또 연구 결과, 소비자들은 화가 분노로 바뀌는 한 차례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를 경험한 뒤, 다시 적의를 갖고 복수를 하는 두 번째 티핑포인트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팀은 각 티핑포인트별로 기업의 대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 티핑포인트 전 단계, 즉 화가 났지만 아직 분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 대처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연구 팀은 콜센터에서 고객들의 목소리를 분석해 흥분 정도를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전화 상담사들이 더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소비자들이 잘못된 기대를 갖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객실 전화 사용료로 자주 분쟁이 발생했던 호텔에서 전화 요금이 유료라는 안내판을 전화기 바로 옆에 부착했더니 민원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소비자가 오판하지 않도록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 서비스 마인드를 가진 직원을 채용하고 훈련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화가 났을 때 목소리를 높이는 고객도 있지만, 더 차분하고 낮은 톤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고객들의 미묘한 반응을 간파하는 베테랑 서비스 요원의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전수해야 초기 단계에서 불만을 막을 수 있다.
첫 번째 티핑포인트를 넘어서 이미 분노한 소비자에게는 감정적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자존심 손상, 무력감, 불공정성 등으로 상처를 입은 고객에게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문제점을 바로잡아주면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또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직원이 현장에서 문제를 곧바로 시정할 수 있도록 적절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해버린 다음에는 정밀한 원인 분석을 해야 한다고 연구 팀은 강조했다. 분노가 폭발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초기 불만 사항이 아니라 중간에 화를 돋운 직원들의 대응 태도나 프로세스 등에 있다. 따라서 소비자의 불만을 처리하는 과정 전체를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며, 사안에 따라 고위 간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