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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적 의사결정

계량 모델의 낮은 확률에 속지 말라

오정석 | 41호 (2009년 9월 Issue 2)
경영자의 수많은 역할들은 결국 의사결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고위 경영자의 일상 업무, 즉 회의를 주재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신규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누구를 발탁하느냐는 데에는 시시각각 의사결정의 문제가 개입한다. 경영자가 얼마나 적절한 시기에, 얼마나 적절한 형태로 의사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성장 추진력을 얻기도 하고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경영자들이 얼마나 적절한 의사결정 원칙을 따르느냐로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자의 의사결정은 워낙 그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그간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돕는 수많은 이론과 도구들이 등장했다. 크게 2가지로 구분하면 수학에 기초한 ‘계량적 의사결정 방법론’과 심리학에 기초한 ‘행동경제학적 방법론’이다.
 

 
 
계량적 의사결정 방법론은 수학에 기반한 ‘경영과학’을 경영자의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계량적 방법론을 총칭한다. 수학적 기법을 의사결정의 기술로 이용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는 특징이 있다. 반면 행동경제학적 방법론은 의사결정자가 계량적 방법론에서 제시하는 원칙을 따르지 않거나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과거의 경험 및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두 방법은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경영자나 의사결정자가 따라야 할 원칙과 주의해야 할 함정들을 알려준다.
 
계량적 의사결정 방법론이 기업에 직접적인 효용을 줄 때는 다음과 같다. △무수히 많은 대안이나 고려 요소가 있어 의사결정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할 때 △기업이 처한 문제의 형태가 새로워 과거의 경험 사례가 없을 때 △의사결정의 결과가 상당히 중대한 의미를 지닐 때 △향후 비슷한 의사결정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을 때 등이다. 즉 문제가 복잡하고, 의사결정이 가져올 금전적 변화가 막대하며, 한번 개발한 시스템을 앞으로도 꾸준히 활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계량적 의사결정 방법론을 써야 한다. 의사결정 상황을 수학 공식으로 만든 후 기계적으로 그 결과를 도출하는 편이 기업에 훨씬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가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인 홍콩 국제 터미널이다. 이 터미널에는 매주 125척 이상의 화물선이 정박하고, 매일 수천 대의 화물 트럭이 컨테이너를 운반한다. 홍콩 터미널은 물류 효율화를 위해 몇 가지 의사결정 모델들을 포함한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Decision Support System·DSS)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 컨테이너 비용은 35%가 줄었고, 물동 처리량은 50%가 늘었다.
 
홍콩 터미널의 예에서 보듯, 의사결정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구현할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이 향후 기업에 돌아올 이득보다 훨씬 적다면 계량적 의사결정 모형을 적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계량적 의사결정 모형을 도입해 얻은 금전적 이득이 IT 시스템 도입 비용의 100배 이상인 사례도 있다.
 
 
최적화 이론이란 무엇인가
계량적 의사결정의 2가지 대표 방법론은 ‘최적화 이론(optimization)’과 ‘의사결정론(decision theory)’이다. 최적화 이론은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 의사결정권자의 목표를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는 SI 업체들이 개발한 AMPL, CPLEX, LINDO와 같은 소프트웨어 툴을 이용하면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엑셀의 해결사(solver) 프로그램도 최적화 이론의 대표적 예다.
 
최적화 이론의 틀을 잘 이해하려면 주어진 상황에서 ‘의사결정 변수’ ‘제한 조건’ ‘목적 함수’라는 3가지 요소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첫째, 의사결정 변수는 상품 가격, 생산량, 연구개발(R&D) 투자 비용, 광고비처럼 경영자가 활용 여부 및 그 정도를 결정할 수 있는 변수를 말한다. 물론 경영자의 위치와 능력에 따라 사용 가능한 변수의 범위와 정도는 제한돼 있다.
 
둘째, 제한 조건은 자원의 한정성을 뜻한다. 이는 의사결정 변수의 활용 정도에 따라 소모되는 자원의 보유량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경영자가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의 총량이 정해져 있을 때, 의사결정 변수를 너무 많이 활용하면 자금 제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는 인력, 시간, 생산 용량과 같은 다른 한정된 자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형성 과정,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실패 등은 한정된 자금 및 기타 자원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확장 전략을 사용해 기업에 큰 위기를 몰고 온 예다.
 
마지막으로 목적 함수는 의사결정자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 즉 수익 극대화, 비용 최소화, 효율성 극대화 등을 지칭한다. 많은 경영자들은 자신의 목적 함수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목적 함수를 갖고 일을 진행해 기업 자원을 낭비한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최근 수년간 일관되게 ‘최상의 품질’이라는 목적 함수를 갖고 자원과 노력을 집중해 좋은 성과를 냈다.
 
최적화 이론이 의사결정자에게 주는 교훈은 ‘비용 대비 효용을 기준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한 교훈이지만 의외로 현실 경영에서 이를 적용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의사결정론이란 무엇인가
의사결정론은 ‘선택 가능한 대안’ ‘대안 선택의 기준’ ‘불확실성’이라는 3가지 요소로 이뤄진다. 먼저 선택 가능한 대안을 선정할 때, 의사결정자는 주어진 대안들을 전반적으로 고려하는 폭넓은 시야와 다양한 정보 습득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때 어떤 대안을 어떻게 선택할 거냐는 문제에서는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또 대안 선택의 기준이 금전적 수익성인지, 수익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고려한 합리적 결과인지 등을 잘 파악해야 한다. 불확실성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때는 가능한 많은 정보를 참고하고 전문가의 의견도 활용해 불확실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의사결정론은 주어진 경영 환경을 모델링하는 작업이 지나치게 복잡할 때나, 경영자 및 직원들이 기업 환경을 구성하는 자료를 직접 취합하거나 그 분석 과정을 공유할 때 적합하다. 최적화 이론의 핵심은 수학인데, 수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 경영자가 이를 단시간에 습득하고 활용하려면 무리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론은 소위 의사결정 나무(decision tree)를 자동 생성해주는 엑셀 연계 프로그램 등을 사용하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소프트웨어 툴이 필요하지는 않다. 조직원들이 모여 토의한 내용을 직접 적기만 해도 상당한 유무형의 효용을 얻을 수 있다.
 
의사결정론을 잘 활용한 기업은 1990년대 이스트먼 코닥이다. 듀크대 로버트 클레망 교수와 로버트 크윗 교수의 연구 1 에 의하면, 1990년대 코닥은 10년간 최소 178개 이상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론 적용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의사결정론을 적용한 분야도 전략 개발, 납품업체 선정, 업무 과정 분석, 브레인스토밍, 제품 포트폴리오 선정 등 기업 활동 대부분을 망라했다. 그만큼 의사결정론을 적용할 분야가 많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코닥은 총 10억 달러 이상의 금전적 이득을 얻었고, 프로젝트 발주 비용보다 185배 이상 많은 가치를 창출했다. 금전적 이득뿐 아니라 코닥 경영진은 의사결정 상황 및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한 공통의 틀과 대화 방식도 공유할 수 있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의사결정 관계자들이 효율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장도 마련됐다.
 
경영자가 저지르기 쉬운 일반적 의사결정 오류는 계량적 의사결정 방법론을 잘못 적용하면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기회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매몰 원가를 지나치게 고려하는 행동이다. 자본, 토지 등의 생산 요소를 활용할 때 금융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이들의 활용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기업의 생산 활동에만 활용하려는 자세는 선택 가능한 대안을 스스로 제한한다. 즉 어떤 제조업체가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했다고 해서 여기에 반드시 생산 공장을 지을 필요는 없다. 상업용 부동산을 짓거나 그 부동산을 비싼 값에 파는 게 더 큰 이익을 줄 수도 있다. 또 최적화 이론의 목적 함수를 산출할 때 매몰 원가까지 포함하면 목적 함수의 형태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아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계량적 의사결정론을 지나치게 과신해 의사결정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통계나 예측 모형 등을 활발히 사용하는 일부 경영자는 과학적 방법론을 지나치게 맹신해 가끔 위험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환율, 주가 등을 예측할 때 계량적 예측 모델에서 1, 2% 미만의 낮은 확률로 발생할 상황에 대해 미리 위험을 대비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확률이 낮아도 치명적이거나, 잠재적으로 거대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항상 대비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본질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구조적으로 무시하는 관행이 쌓여 일어난 게 아니겠는가.
 
그간 많은 경영자들은 직관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좋은 의사결정’과 ‘좋은 결과’는 엄연히 다르다. 의사결정 과정의 질과 관계없이 그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의사결정의 질이 좋아도 결과가 나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은 경영자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보면 좋은 의사결정 습관을 가질 때 더욱 우수한 성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계량적 의사결정 방법론이 제시하는 툴과 교훈은 경영자가 좋은 의사결정 습관들을 형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여기에 행동경제학 방법론의 교훈이 더해지고 경영자 개인의 직관과 경험까지 쌓인다면, 누구나 최강의 판단력과 실천력을 동시에 갖춘 경영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경영과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오퍼레이션 리서치로 석사, 경영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보컴퓨터 전문연구요원,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계량적 산업 분석, 통신 경제학, 미디어 경제학 등이다.
  • 오정석 | - (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삼보컴퓨터 전문연구요원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jo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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