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A사의 한국 지사는 얼마 전 내부 비리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간부 직원 한 사람이 회사 돈을 유용한 것. 해당 사안은 내부 문제를 넘어 언론에까지 보도됐다.
간부 직원의 부정행위는 내부 제보로 알려졌다. 회사는 이를 사내의 주요 책임자들에게 알렸는데, 그 와중에 제보자의 신분이 드러났다. 결국 제보자는 회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공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회사를 떠났다.
A사 아시아 지역 본사는 구체적인 인터뷰 등의 내부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한국 지사 임직원들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를 감싸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해당 간부는 증거를 은폐할 시간을 벌었다. 지역 본사 조사팀이 동료나 상사의 부정행위 조사에 협조하기를 꺼리는 한국적 조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경기 불황 시 늘어나는 사내 부정행위
금융위기는 기업 내부의 부정행위 빈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거나, 구조조정·임금 삭감 등으로 회사에 불만을 갖게 된 직원들은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
국제부정감사인협회(Association of Certified Fraud Examiners·ACFE)에 따르면, 2008년 미국 기업들의 내부 범죄 손해액(9940억 달러)은 전체 매출액의 7%에 이르렀다. 이는 경제 위기 이전(2006년)의 5%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ACFE는 2008년 기업 내부 범죄 조사 역시 전년에 비해 절반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물론 내부의 부정행위를 감시할 시스템을 갖추는 데는 비용이 든다. 최신 회계 정보 시스템과 정보 보안 및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은 기업에 큰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 불황기의 경영자라면 누구나 이런 추가 비용 지출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내부 관리 기법도 존재한다. 바로 내부 제보자의 활용이다. 내부 제보를 이용한 부정행위 적발의 활성화는 일부 제도적인 보완 및 제도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각별한 주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내 부정행위 감시와 적발의 첨병, 내부 제보자
기업들이 내부 제보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양과 질 2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부정부패 고발에서 내부인의 제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양적으로 가장 많다. ACFE 조사(2006년 1월∼2008년 2월, 미국 내 959개 사내 부정행위 대상)에 따르면, 내부 고발자에 의한 사내 부정행위 적발 건수는 내부 감사에 의한 것보다 거의 2배 정도 많았다.(그림1)
여기서 추가로 하나 짚어봐야 할 사항은 내부 고발자 중 고객과 납품업자의 비중이 30%를 넘는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이 사내 부정행위를 감시·고발할 교육 프로그램에 납품회사나 하청회사를 적극 참여시키고, 이들이 부정행위 적발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DBR TIP ‘익명 제보 핫라인의 유용성’ 참조)
[DBR TIP] 익명 제보 핫라인의 유용성
기업은 제보를 원하는 고객과 납품회사 등을 위해 별도의 채널을 열어놓아야 한다. 익명 제보의 중요성을 아는 기업들은 직접적인 제보 채널 외에 ‘내부 제보 핫라인’ 등의 추가적인 통제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핫라인을 통해 고객과 납품업자들은 의심스러운 상황을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다. 특히 납품업자들은 관련 업계의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정보원이다.
실제로 필자들은 한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B사)가 대리점으로부터 기술 유출 관련 제보를 받은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해당 대리점은 동종 업계 내의 여러 회사와 동시에 거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정 회사의 2대 주주가 비밀리에 회사를 설립했으며, B사로부터 기술을 빼돌리고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B사의 핫라인에 제보했다. B사와 크롤은 즉시 조사에 들어가 자칫 회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었던 중요한 사안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핫라인은 납품업체가 경쟁 업체(다른 납품업자)의 부정행위를 제보할 의향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영업 직원이 납품업자에게 중개인을 통한 계약을 종용하거나, 향응을 받거나, 특정인에게 금품을 상납하고 이를 가격에 반영해 계약하도록 제안하는 경우 등이 핫라인으로 제보되는 사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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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내부인의 제보는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높다. 한국 국민권익위원회가 2002∼2007년 접수한 전체 사건 중 70.4%가 실제 부정부패로 확인됐다. 이 중 내부 제보로 접수된 사건은 75.4%가 사실로 확인됐다. 게다가 내부 제보로 회수된 돈(491억 원)은 총 회수 금액(648억 원)의 75.8%를 차지했다. 내부 제보를 통한 신고 건수가 전체의 40% 미만임을 고려한다면, 그 유효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부 제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다음은 필자들이 수년 동안 다국적 기업들의 부정행위를 조사하고, 내부 제보자를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