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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아트 인사이트

창작…챗GPT와 부딪쳤다
공존할 수 있을까

김민지 | 364호 (2023년 03월 Issue 1)

편집자주

미학과 과학에 조예가 깊은 김민지 칼럼니스트가 AI, 블록체인, NFT, 웹 3.0, 메타버스 등 혁신 기술과 예술의 접점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실험 및 사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AI가 창작의 영역에까지 침투한 시대에 예술을 활용하는 개인과 기업의 설 자리는 어디인지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Article at a Glance


챗GPT가 알파고 쇼크 이후 잠시 잠잠했던 AI를 향한 시장의 관심과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 열풍을 타고 이미지 생성 AI의 대표주자인 오픈AI의 달리2(DALL-E 2), 영국 스타트업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의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인공지능 연구소 ‘미드저니’의 미드저니(Midjourney) 등의 서비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해주는 이런 AI들은 프롬프트 창에 입력된 문구를 그림으로 바꿔준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그저 몇 초 만에 단순하게 뽑아낸 이미지만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세계관을 온전히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AI 아트 창작에 뛰어든 예술가들의 평가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창작의 영역에까지 침투하고 있지만 인간의 주체성과 예술적 정체성이 설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AI를 창작자의 세계관을 완성해 줄 도구로 활용하고 협업 대상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실험, AI 기반 예술의 생태계를 키우려는 커뮤니티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챗GPT(ChatGPT)로 인해 인공지능(AI) 산업이 재편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를 인용하자면 최근 금리 인상과 실적 부진 등으로 대규모 감원을 감행한 빅테크는 새로운 ‘골드러시(Gold Rush)’의 대상으로 AI를 노리고 있다. 챗GPT 개발사인 스타트업 ‘오픈AI’와 2019년부터 협력 관계를 맺고 최근 100억 달러 수준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 주도의 AI 기반 검색 시장에 전략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의 93%는 구글이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지만 이렇게 거센 혁신의 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과거의 영광이 이어질 것이란 보장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 진행한 팟캐스트 대담에서 “AI의 발전은 가장 중요한 혁신”이며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말한 바 있으며, 실제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월 자사 AI 검색엔진 ‘빙’과 브라우저 ‘에지’에 챗GPT를 장착했다. 이처럼 오픈AI를 앞세운 마이크로소프트의 진격에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코드 레드(code red)’까지 발령한 구글은 시인이라는 뜻의 AI 챗봇 바드(Bard)로 맞불을 놨다. 하지만 시연 현장에 모인 청중 앞에서 똑똑할 줄만 알았던 바드가 오답을 말하는 바람에 모회사 알파벳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1000억 달러(약 126조2200억 원)나 증발하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챗GPT가 촉발한 전 세계 AI 경쟁은 알파고 쇼크 이후 잠시 잠잠했던 AI에 관한 관심에 불을 붙였고 관련 뉴스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챗GPT가 출시 두 달 만에 월간 활성화 사용자 수(MAU) 1억 명을 돌파하고 빠른 성장세를 구가하면서 많은 이에게 알려지긴 했지만 GPT가 처음 출현한 것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어진 질문 문장에 대해 적절한 답변 문장을 예측해 제시하는 GPT는 그간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진화를 거듭하며 발전했다.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로 여기서 트랜스포머란 2017년 구글이 발표한 논문에 등장하는 언어 생성형 AI의 핵심 알고리즘이자 신경망 모델이다. 트랜스포머는 다양한 단어를 조합한 문장 중에서 맥락을 고려할 때 해당 문장이 자연스럽게 구사될 수 있는 확률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GPT는 트랜스포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8년 오픈AI가 첫선을 보인 GPT-1은 파라미터(parameter, 매개 변수) 수가 1억1700만 개 정도에 그쳤으나 2019년 출시한 GPT-2는 15억 개, 2020년 등장한 GPT-3은 1750억 개로 대거 늘어났다. 그리고 이런 GPT-3을 한 번 더 개선한 GPT-3.5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 바로 챗GPT다.

AI가 더 많은 학습을 거칠수록 파라미터도 많아지고 성능도 개선된다. 파라미터가 많을수록 GPT의 확장성과 활용 가능 범주가 넓어진다고 이해하면 된다. 파라미터는 인간의 뇌에서 뉴런과 뉴런을 이어주는 시냅스, 다시 말해 신경세포 접합부의 역할을 한다. 인간의 뇌에는 뉴런 간 정보 전달의 통로 역할을 하는 100조 개의 시냅스가 존재하는데 오픈AI는 향후 인간과 맞먹는 파라미터 100조 개를 갖춘 GPT-4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AI가 인간의 뇌와 닮아갈수록 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리는 질문은 과연 AI가 사람의 고유한 능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다. 그리고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사람처럼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더욱 자극한다.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3D, 오디오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생성형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론을 해서 유사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IT 리서치 기업인 가트너는 생성형 AI가 제약, 미디어, 건축, 의료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그림, 3D 애니메이션, 영상 등 콘텐츠 창작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예술, NFT, 게임, 메타버스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Al, 콘텐츠 창작의 기폭제

최근 챗GPT 덕분에 덩달아 화제에 오른 이미지 생성 AI의 대표 서비스로는 오픈AI의 달리2(DALL-E 2), 영국 스타트업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의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인공지능 연구소 ‘미드저니(Midjourney)’의 미드저니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오픈AI가 2022년 4월 출시한 이미지 생성 AI ‘달리2’는 처음 출시했던 ‘달리1’보다 진일보하며 이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로 꼽히고 있다. 달리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이미지를 표현한 스페인 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픽사애니메이션 영화 월이(WALL-E) 캐릭터의 이름을 본뜬 AI로서 창작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가령 ‘아보카도 모양 의자’란 키워드를 프롬프트에 입력하면 달리는 다양한 모양의 초록빛 아보카도 디자인 의자를 생성해준다. 그런데 달리1을 사용한 이미지들은 어디선가 볼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이라 창의성이란 측면에서 다소 부족했다면 달리2는 같은 입력값을 주더라도 고해상도의 독창적인 예술 작품을 표현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의 기대치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한편 오픈AI보다 규모는 작지만 영국의 이미지 생성 AI 스타트업인 스태빌리티AI 역시 2022년 10월 벤처캐피털인 코아투매니지먼트와 라이트스피드 벤처파트너스로부터 1억100만 달러(한화 약 1443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 반열에 오르는 등 빠른 성장세로 눈길을 끌고 있다. 2019년 옥스퍼드대에서 수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방글라데시계 영국인 사업가 이마드 모스타크가 설립한 이 회사는 삼성전자의 실리콘밸리 투자회사인 삼성넥스트로부터 투자를 받은 이후 한국에도 지사를 두고 있다. 스태빌리티AI가 선보인 스테이블 디퓨전이 달리 등의 서비스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외부 개발 커뮤니티에 대한 개방성이다. 물론 이미지 생성 AI의 핵심은 높은 해상도의 창의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능력이긴 하지만 기능에만 집중할 경우 실제 외부 창작자나 개발자의 수요와 동떨어진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다. 이에 스테이블 디퓨전은 ‘AI의 민주화’를 표방하며 핵심 코드를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등 테크 커뮤니티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성인용 콘텐츠 제작 불가와 일부 예술가 그림체 구현 금지 기능 등을 추가한 것도 AI 윤리와 저작권 문제 등을 고민하는 외부 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미드저니 인공지능 연구소가 개발한 미드저니는 지난해 미술전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을 그리면서 화제를 모았던 AI다. 2022년 8월 미국 게임사의 설립자이자 게임 디자이너인 제이슨 앨런은 미드저니로 그린 AI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을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Colorado State Fair)의 디지털 아트 부문에 제출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소셜미디어 메시징 앱인 디스코드(Discord)를 통해 “AI 작품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히며 AI가 예술 창작의 영역에까지 진출했음을 알렸다. 물론 미드저니의 경우 디스코드 서버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디스코드 사이트에 가입하고 사용법을 숙지해야 한다는 불편을 동반한다. 그러나 직접 시도해본 결과 이 과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 간편하게 몇 개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몇 초 만에 달리와는 또 다른 느낌의 예술적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이유로 주목받고 있는 이들 업체의 ‘텍스트 투 이미지(Text-to-image)’ AI는 프롬프트(prompt) 창에 특정한 키워드를 명령어로 입력하면 이미지를 만들어준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AI 아트 작업을 하는 창작자들은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예술적 완성도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프롬프트 키워드를 연구하고 직접 부딪치면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그저 몇 초 만에 단순하게 뽑아낸 이미지만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세계관을 온전히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이미 AI 아트 창작에 뛰어든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제이슨 앨런 역시 미술전에 제출한 작품 3개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 80시간 이상을 썼다고 한다. 텍스트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이지만 이미지 변환을 위해 어떤 문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등은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결국 AI도 새로운 도구일 뿐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둘러싼 창작자들의 연구와 실험은 여전히 필요하다.

창작의 영역에 손을 뻗은 Al

창작의 주체가 된 AI가 아예 아티스트로 데뷔해 활동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일례로 카카오의 Al 전문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에서 개발한 ‘시아(SIA)’는 시를 쓰는 AI다. 시아는 1만3000여 편의 시를 읽은 후 어떻게 시를 쓰는지에 관한 작법을 익혔고 이윽고 첫 번째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했다. 대학로에서는 시아가 쓴 20여 편의 시를 엮은 시극 ‘파포스’가 무대에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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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카카오브레인이 선보인 그림 그리는 화가 AI ‘칼로(Karlo)’의 행보도 흥미롭다. 이미지 생성 AI 아티스트인 칼로는 최근 자화상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카카오브레인이 AI·빅데이터 전문 기업 바이브컴퍼니와 협업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AI 아티스트’에 관한 빅데이터를 칼로가 구현해내도록 학습시킨 것이다. AI가 진짜 예술가라면 어떠한 모습일까에 관한 사람들의 상상과 관념을 토대로 AI가 자화상을 표현한 셈이다. 이 그림은 미 글로벌 경제 전문지 포천의 한국판인 포천 코리아의 2월 호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AI 아티스트인 칼로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화상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인간 예술과와 다를 것 없다. 한 명의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구현하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역사 속 무수한 대가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얻듯이 칼로도 1억8000만 장에 달하는 텍스트-이미지 데이터셋을 학습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칼로의 순간(Karlo’s Moment)》전(展)이라는 전시도 열었다.

이처럼 AI는 창작을 위해 고뇌하는 예술가의 심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몇 초 만에 멋진 시를 쏟아내고 자화상도 그리는 등 인간 예술가 뺨치는 창작물을 내놓고 있다. 물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습작부터 시작해 수천 장 이상의 그림을 그려 나가며 예술가가 겪는 고뇌와 희열의 내러티브를 아직 AI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예술 창작의 영역에 AI가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마케팅 측면에서는 화제성이 클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이런 AI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이 조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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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넷플릭스는 새로 제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개와 소년’과 관련해 “일손이 부족한 애니메이션 업계를 보조하기 위해 영상 배경 그림에 Al 기술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창작자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제작사는 AI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부여하고 인간이 창작의 근본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거라 보고 있지만 반발하는 이들은 박봉과 격무에 처한 애니메이션 종사자의 처우 개선이 먼저이며 AI는 인간 창작자의 일자리 침해라는 사회적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 말한다.

인간의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실험

이렇게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창작 도구로서 AI를 실험하되 인간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가령 CJ올리브네트웍스는 AI 시작(詩作) 도구 ‘오아이 라이터(Oi Writer)’를 개발하면서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한 목적’의 도구라고 밝혔다. 실제로 시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 작품을 무려 3만여 편이나 학습한 오아이 라이터는 주제어를 입력하면 주제어에 걸맞은 초벌 문구를 작가에게 제시해준다. 실제 9명의 작가가 이를 활용해 시를 지은 뒤 작품들을 엮어 시집 『9+i』를 출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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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AI를 아트와 창의적으로 결합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작가들도 있다. LA와 뉴욕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융복합·다원 예술 작가 겸 큐레이터인 준케이(June K)가 대표적이다. 준케이는 “Al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살아나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이자 미래 매체”라며 “창작자들은 Al를 통한 예술 창작을 논의하는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AI 도구를 알고 배우는 새로운 물결에 동참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따르면 AI는 창작 과정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준케이는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구현하기 위해 포토샵, 애프터이펙트(After Effects), 시네마포디(Cinema4D)와 같은 다른 디지털 도구도 함께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개별 작가의 움직임도 있지만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AI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전시들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 최초 AI 아티스트 커뮤니티인 ‘AI 아티스트 클럽’이 2023년 2월 언커먼갤러리에서 개최한 《인공지능 창조(The Creation of AI)》전(展)이 대표적이다. AI 아티스트 클럽이 메타버스 전시 공간인 ‘이윰 NFT 뮤지엄(IUM NFT MUSEUM)’ ‘AI 네트워크(AI Network)’와 협력해서 연 이 전시는 AI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려는 취지로 기획됐다. 전시에 참여한 AI 아티스트 클럽은 2022년 7월22일 설립됐으며 어떻게 예술가들이 AI를 창작 도구로 활용하면서 AI 아트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커뮤니티는 스테이블 디퓨전이나 미드저니 등 다양한 생성형 AI의 사용법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기존 작가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육 및 연구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동시에 오프라인 공간과 메타버스에서 전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아가 저개발국가 어린이 및 예술가들도 AI 아트를 접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고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큰 비전까지 안고 있다.

이 《인공지능 창조》전(展)이 가지는 의미는 인간과 AI가 함께 구현한 합작품이라는 점이다.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가 창세기 7일간의 내용을 테마로 다뤘다면 이 작품들은 독특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8일간의 스토리로 구성돼 있다. 전시에 참여한 8명의 작가는 전체 스토리의 일부를 각각 배분받아 공동 창작을 했고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했다. 이를 위해 참여 작가들은 AI 이미지 처리 과정에서 형성되는 고유의 시드값(Seed Number)을 디지털 도화지의 숫자로 간주해 8명의 작가와 공유했다. 이는 집단 창작을 위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후 구체적인 이미지 창작에 필요한 명령어인 텍스트 프롬프트(Text Prompt)를 작가들과 공동으로 ‘설계-실험-공유-변형-적용’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개별 작가의 스토리아트 작품이 전체적인 통일감을 유지하면서도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큐레이션이 이뤄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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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획을 맡은 이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이 같은 방식의 전시를 두고 “이제 예술가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AI 예술 조수를 활용해 예술 창작의 노동을 단축시키게 됐다”며 “AI의 혁신적 발전은 개별 창작 중심이었던 ‘창작의 예술(Art as Artwork Creation)’을 보다 큰 세계를 제시하는 예술인 ‘창계의 예술(Art as World Creation)’로 확장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 말했다. 이어 “작품의 독창성에 주목하는 시대에서 AI를 통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독창적 세계관과 철학’을 가진 ‘예술가의 정체성’에 주목하는 시대로 전환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한편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면서 AI 디지털 휴먼을 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늘어나고 있다. 스타트업 수피아미디어가 가수 남진의 청년 시절을 AI 딥페이크(Deepfake)로 복원한 <메타셀럽남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딥페이크는 딥러닝과 페이크를 합친 단어로 인물 합성 기술을 나타내며 생성형 AI 모델 중 하나인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이하 GAN)’의 대표적인 기술이다.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수피아미디어는 GAN 기술과 크리에이티비티를 결합해 종합 엔터테인먼트 제작사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기업이다. 지식재산권(IP)과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을 기반으로 뉴 미디어, 영화, 드라마, 공연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타셀럽남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70대의 남진과 30대의 AI 디지털 휴먼 남진이 같은 무대에 서서 서로를 인터뷰하는 공연을 무대에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AI 디지털 휴먼 개발을 총괄한 수피아미디어의 고재혁 이사는 “디지털 청년 남진의 얼굴과 음성, 노래 등을 복원하는 데 모두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했다”며 “과거의 노래 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GAN을 이용해 노래 음성 합성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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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기반의 NFT 프로젝트

2018년 5월 구글 출신의 시니어 엔지니어들이 창업한 국내 스타트업 ‘커먼컴퓨터’는 블록체인 기반의 AI 클라우드 개발사다. 커먼컴퓨터는 구글처럼 효율적이고 협력 가능한 AI 개발 문화 구현을 지향하는 동시에 블록체인으로 누구나 간편하게 AI 기반 NFT를 개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자체 블록체인인 ‘AI 네트워크’ 메인넷을 구축하고 AI 개발에 필요한 모델이나 데이터, 컴퓨팅 자원을 자유롭게 모듈 형태로 결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이 표방하는 가치는 ‘AI를 위한 인터넷(Internet for AI)’이다. 커먼컴퓨터의 핵심 기술인 AINFT(Al-powered NFT)는 커뮤니티에서 개발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AI 기반 NFT에 데이터를 학습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누구나 나만의 AI 기반 NFT를 직접 창조하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커먼컴퓨터가 체임버 오케스트라 세종솔로이스츠, AI 작곡 스타트업 ‘포자랩스(POZAlabs)’ 등과 함께해 선보인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코벳’ 컬렉션(The Stradivarius violin ‘Cobbett’ collection, 이하 스트라디바리우스 NFT)이 대표적인 AI 기반 NFT 프로젝트다. 이 NFT 프로젝트는 약 3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했다는 게 특징이다. 프로젝트 기획자들은 17세기 바이올린 제작 장인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일생에 걸쳐 만든 1000여 개의 악기 중 코벳이란 이름의 1683년산 바이올린을 NFT로 박제했다. 블록체인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기록한 것이다. 해당 NFT는 크게 코벳의 바이올린 형상을 메타버스상에서 3D로 구현한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와 생성형 AI 기반으로 작곡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연주 음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이 음원은 포자랩스가 개발한 생성형 AI가 세종솔로이스츠 단원 스티븐 킴이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녹음한 바흐의 ‘샤콘느(Chaconne, Partita No. 2 BWV 1004)’를 학습한 뒤 생성해 낸 새로운 곡이다.

이처럼 스트라디바리우스 NFT는 정해진 음원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어 처리 AI 모델이 작곡, 편곡, 믹싱, 마스터링한 새로운 음악을 연주한다는 점에서 AI 기반 NFT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NFT가 더 이상 정지해 있는 개념이 아니며 생성형 AI를 접목하고 컴퓨터의 연산력을 활용하면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함을 의미한다. 메타버스상에서 누구나 AI 모델로 명악기를 연주하고 상호작용하는 등 AI 기반의 NFT 예술 커뮤니티는 점점 더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Al가 촉발한 뜨거운 논쟁들

Al의 눈부신 진화 앞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AI 윤리, 데이터 편향성, 저작권 법적 쟁점 등과 같은 이슈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무엇보다 AI 학습에 필요한 빅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서 동의 없는 데이터 수집 및 학습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최근 ‘내 그림도 훈련됐을까?(Have I been trained?)’라는 제목의 웹사이트가 개설됐다. 이 사이트에 창작자들이 자신의 그림을 업로드하면 Al 훈련용 데이터셋으로 도용됐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

호주 시드니대 비즈니스스쿨의 유리 겔 교수는 최근 지식 기반 대안 언론인 더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챗GPT는 데이터 개인정보 보호의 악몽이다(ChatGPT is a data privacy nightmare)’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글을 기고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는 만약 당신이 온라인에 글을 한 번이라도 올린 적이 있다면 당신도 걱정해야 한다는 경고를 덧붙였다. 오픈AI가 챗GPT의 성능 고도화를 위해 3000억 개에 이르는 단어를 활용하면서 개인정보 침해 위험이 있는 데이터를 수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는 치솟는 오픈AI의 기업 가치와 수익 전망의 이면에 대한 지적이자 오픈AI가 데이터를 제공한 이용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같은 지적은 생성형 AI 열풍에 가려 웹 3.0이 추구하는 핵심 철학, 즉 데이터 창작자에게 데이터 소유권 및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줘야 한다는 가치관이 희석되면 안 된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AI 디지털 휴먼 개발자, NFT BD(Business Development), NFT 전문 변호사, XR 콘텐츠 디렉터, 메타버스 뮤지엄 대표 등 신기술의 접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기업과 직종이 연일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는 이런 변화를 직접적으로 맞이하며 감당해야 한다. 시간의 축을 미래로 두고 현재를 바라보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가 명확하게 보인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시장 경쟁에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이 뛰어들고 각국 정부도 AI 산업 지원 및 육성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초기 기술 확장 단계에서는 수많은 문제가 동반된다는 사실이 그 광풍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거스를 수 없는 혁신을 직시하되 윤리나 저작권 관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론장을 마련하는 과정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이는 챗GPT에 물어보고 답변을 얻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 김민지 | Art&Tech 칼럼니스트

    필자는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과학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15년간 예술 관련 강의 및 진행 활동을 해왔으며 미래 교육 및 문화예술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근무했고, 경제방송에서 ‘김민지의 Art & Tech’ 앵커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는 『NFT Art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예술(2022, 아트북프레스)』이 있다.
    artandtechm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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