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조달의 혹한기를 버티기 위한 근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머슬업’ 전략은 과거 속도를 중시하고 성장을 최우선 순위에 놓던 실리콘밸리의 ‘블리츠스케일링’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전략은 단기적인 성장 엔진을 끄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내부 전략을 재점검하고 다시 핵심 역량으로 돌아가는 접근법이다. 노션, 이베이, 에어비앤비는 이런 머슬업 전략을 통해 다가오는 불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들 사례는 위기 상황일수록 1) 목표 KPI를 외형 성장에서 내실 다지기로 바꾸고 2) 기업 가치 바겐세일을 활용한 M&A에 적극 나서고 3) 자금력을 확보해 선택지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4) 인재를 확보하고 5) 마케팅 비용을 재점검하면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
닷컴 버블을 이겨내고 2005년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안착한 CRM(고객관계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는 매출 1조 원 돌파가 예상되던 2008년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기업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독형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목격한 세일즈포스의 수장 마크 베니오프는 SaaS(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Software as a Service)라는 거대한 시장 흐름에 올라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경영 기조를 B2B 영업 중심의 일반적 성장 전략에서 M&A를 통해 전체 유효 시장을 확장하는 매크로 성장 전략으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세일즈포스는 경기 불황이 이어졌던 2009~2011년 사이, 15건의 크고 작은 M&A를 성공시키며 3년 만에 매출을 두 배 이상 성장시킬 수 있었다. 이는 훗날 테블로, 뮬소프트, 슬랙에 이르는 조 단위 M&A도 과감하게 진행하는 세일즈포스의 인수합병 DNA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혹한기를 견디는 현명한 방법: 머슬업(muscle-up) 전략
자금 조달의 혹한기가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오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세일즈포스 사례처럼 그동안 내실 중심 경영을 해왔던 기업들은 이를 오히려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다음 경기 회복 단계에 진입했을 때 더욱 높게 뛰어오르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항상 인재 영입에 목말라 있는 고성장 스타트업은 적극적인 애퀴-하이어(Acqui-hire)11인재 영입을 주 목적으로 이뤄지는 스타트업 인수
닫기를 통해 미래의 인재를 영입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한 기회를 틈타 적극적으로 스몰딜 M&A를 추진하며 미래 신사업을 조기에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요란하게 외부 활동을 하기보다 조용히 근육을 키우며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머슬업’ 전략은 경기 침체기를 현명하게 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많은 기업의 주목을 받고 있다.
1. 불황기에 공격적으로 인재 확보에 나선 ‘노션’
협업 및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노션(Notion)은 팬데믹 이전까지는 조용히 ‘입소문’과 ‘제품력’에 기반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지난 2년여간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협업 툴에 대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회사는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경험했다. 이에 경영진은 앞으로 보다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채용, 인수합병 및 마케팅 전반에서 변화를 꾀하면서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노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벤처 혹한기가 닥치자 많은 스타트업은 비용 지출을 줄이고 보수적인 경영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여타 스타트업과 달리 노션은 2021년 10월 세쿼이아캐피털의 주도로 무려 3600억 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22https://www.forbes.com/sites/alexkonrad/2021/10/08/notion-raises-at-10-billion-valuation-boosted-by-remote-work-tiktok/?sh=b70f6b064900
닫기한 데 이어 우리사주 매입을 통한 인재 유출 차단 및 신규 인력 영입, 스몰딜 중심의 애퀴-하이어 M&A, 브랜드 마케팅 도입을 통한 대중 브랜드 이미지 선점 등 적극적인 ‘머슬업’ 전략으로 혹한기를 타개해 나가고 있다.
1) 적극적인 우리사주 매입으로 인재 유출 방지
스타트업이 시리즈B를 지나 어느 정도 성장 단계에 진입하면 새로 조직에 들어온 구성원들은 나름 상장을 통해 성과를 나누게 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최근 들어 기술주 중심의 대규모 주가 조정이 이어지면서 당분간 고성장 스타트업의 상장이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직원들이 불안한 미래로 인해 동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제홍jehong@atlas-pac.com
아틀라스퍼시픽 대표
박제홍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다. 에이티커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국내외 대기업과 다수의 성장 전략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후 국내 사모펀드에서 중소중견기업 경영권 인수 및 성장 자본 투자를 이끌었다. 현재는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캐피털 ‘아틀라스퍼시픽’에서 전 세계 혁신 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으며 스타트업 및 테크 전문 뉴스레터 ‘CapitalEDG’를 운영하며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DBR 주최 CES 2024 참관 투어에서 현지 모더레이터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