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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자금 조달 혹한기의 '머슬업(muscle-up)' 전략

목표를 외형 성장서 내실 다지기로
인재 확보해서 다음 반등 준비하라

박제홍 | 361호 (2023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자금 조달의 혹한기를 버티기 위한 근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머슬업’ 전략은 과거 속도를 중시하고 성장을 최우선 순위에 놓던 실리콘밸리의 ‘블리츠스케일링’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전략은 단기적인 성장 엔진을 끄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내부 전략을 재점검하고 다시 핵심 역량으로 돌아가는 접근법이다. 노션, 이베이, 에어비앤비는 이런 머슬업 전략을 통해 다가오는 불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들 사례는 위기 상황일수록 1) 목표 KPI를 외형 성장에서 내실 다지기로 바꾸고 2) 기업 가치 바겐세일을 활용한 M&A에 적극 나서고 3) 자금력을 확보해 선택지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4) 인재를 확보하고 5) 마케팅 비용을 재점검하면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



닷컴 버블을 이겨내고 2005년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안착한 CRM(고객관계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는 매출 1조 원 돌파가 예상되던 2008년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기업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독형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목격한 세일즈포스의 수장 마크 베니오프는 SaaS(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Software as a Service)라는 거대한 시장 흐름에 올라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경영 기조를 B2B 영업 중심의 일반적 성장 전략에서 M&A를 통해 전체 유효 시장을 확장하는 매크로 성장 전략으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세일즈포스는 경기 불황이 이어졌던 2009~2011년 사이, 15건의 크고 작은 M&A를 성공시키며 3년 만에 매출을 두 배 이상 성장시킬 수 있었다. 이는 훗날 테블로, 뮬소프트, 슬랙에 이르는 조 단위 M&A도 과감하게 진행하는 세일즈포스의 인수합병 DNA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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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를 견디는 현명한 방법:

머슬업(muscle-up) 전략

자금 조달의 혹한기가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오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세일즈포스 사례처럼 그동안 내실 중심 경영을 해왔던 기업들은 이를 오히려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다음 경기 회복 단계에 진입했을 때 더욱 높게 뛰어오르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항상 인재 영입에 목말라 있는 고성장 스타트업은 적극적인 애퀴-하이어(Acqui-hire)1 를 통해 미래의 인재를 영입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한 기회를 틈타 적극적으로 스몰딜 M&A를 추진하며 미래 신사업을 조기에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요란하게 외부 활동을 하기보다 조용히 근육을 키우며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머슬업’ 전략은 경기 침체기를 현명하게 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많은 기업의 주목을 받고 있다.


1. 불황기에 공격적으로 인재 확보에 나선 ‘노션’

협업 및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노션(Notion)은 팬데믹 이전까지는 조용히 ‘입소문’과 ‘제품력’에 기반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지난 2년여간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협업 툴에 대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회사는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경험했다. 이에 경영진은 앞으로 보다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채용, 인수합병 및 마케팅 전반에서 변화를 꾀하면서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노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벤처 혹한기가 닥치자 많은 스타트업은 비용 지출을 줄이고 보수적인 경영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여타 스타트업과 달리 노션은 2021년 10월 세쿼이아캐피털의 주도로 무려 3600억 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2 한 데 이어 우리사주 매입을 통한 인재 유출 차단 및 신규 인력 영입, 스몰딜 중심의 애퀴-하이어 M&A, 브랜드 마케팅 도입을 통한 대중 브랜드 이미지 선점 등 적극적인 ‘머슬업’ 전략으로 혹한기를 타개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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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극적인 우리사주 매입으로 인재 유출 방지

스타트업이 시리즈B를 지나 어느 정도 성장 단계에 진입하면 새로 조직에 들어온 구성원들은 나름 상장을 통해 성과를 나누게 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최근 들어 기술주 중심의 대규모 주가 조정이 이어지면서 당분간 고성장 스타트업의 상장이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직원들이 불안한 미래로 인해 동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션은 2022년 7월, 기존 투자자인 세쿼이아캐피털과 인덱스벤처스와의 협의를 통해 직원들이 보유한 우리사주 일부를 최근 기업 가치인 13조 원과 동일한 가격으로 인수하는 거래3 를 성사시켰다. 직원들이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는 길을 터줌으로써 불황기에도 인재를 지키고 외부 인력까지 적극 영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노션의 구주 거래가 화제가 된 이유는 보통 일부 임원에게만 허용됐던 비상장 단계 우리사주 매각 프로그램을 전 사원을 대상으로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션의 탄탄한 실적과 직원 중심의 문화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최근 노션의 채용 지원 인력은 이전 대비 5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2) 스몰딜 M&A로 인재 확보와 제품 확장

노션은 자사 제품의 가장 큰 경쟁력인 타사 소프트웨어와의 ‘연동 및 자동화’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거점을 둔 오토메이트(Automate.io)란 기업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기업은 노션이 필요로 하던 연동 개발 API를 200가지 이상 확보하고 있던 회사였다. 이에 2021년 7월 노션의 COO가 직접 e메일로 연락을 하며 미팅을 시작한 두 회사는 노션의 적극적인 구애에 힘입어 첫 미팅 이후 두 달 만에 인수합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노션은 오토메이트를 인도에 기반을 둔 노션의 5번째 글로벌 엔지니어링 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이를 계기로 스몰딜이 인재 영입뿐 아니라 제품 개발의 속도를 앞당겨 줄 수 있다는 점을 직접 체감한 노션은 2022년 3월 젠데스크와 핀터레스트에서 M&A를 담당하던 임원인 힐러리 시라지를 M&A 총괄로 영입해 본격적으로 초기 스타트업 인수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22년 6월에는 캘린더 앱을 만드는 크론(Cron), 이어 7월에는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플로대시(Flowdash) 인수까지 완료하며 적극적으로 M&A 행보를 이어 나갔다.

노션이 인수한 기업들의 특징은 벤처캐피털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았거나(오토메이트), 시드 투자 정도만 받은(크론 및 플로대시) 곳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노션의 M&A 전략이 이미 몸집이 큰 곳보다는 합리적인 기업 가치를 가지고 속전속결로 거래를 진행할 수 있는 작은 스타트업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션이 M&A를 통한 규모의 성장보다는 인력과 제품의 내재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 대중 마케팅 전개

과거의 노션은 개발자와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노트 앱이자 협업 툴이었다. 하지만 최근 노션은 옥외광고판 및 지하철 광고 등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광고에 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앞다퉈 광고비를 절감하는 시기, 과감한 역발상을 통해 광고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용 소프트웨어에서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로 포지셔닝을 확장하고자 하는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다.

노션은 궁극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와 구글의 구글워크스페이스를 대체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향후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경영진은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회사의 잠재 고객을 확장하고 경쟁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특히 경기 불황기에 광고 단가가 내려가는 점을 적극 활용, 고객 노출도를 높이는 접근은 앞으로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미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머슬업’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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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황 직전 20조 원 확보하고 알짜 M&A로
성장 동력 찾은 ‘이베이’

미국의 대표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는 2015년 페이팔 분할 이후부터 기업 가치 상승이 제한적인 기업으로 치부돼 왔다. 회사의 장기 성장성에 대한 염려가 커지면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결국 이사회는 2019년 말 경기 하락에 대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알짜 자산 매각에 나서며 선제적으로 구조 조정에 돌입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이베이의 지마켓 매각이 한국 시장 철수의 신호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배경에는 더 큰 그림이 있었다. 이베이는 미국의 티켓 판매 회사인 스텁허브(StubHub)를 2020년 초 약 5조 원대(40억 달러)에 매각했고 2021년 3월에는 영국의 생활 광고 사이트 이베이 클래시파이드(eBay Classified)를 노르웨이의 애데빈타(Adevinta)그룹에 약 13조 원(92억 달러)에 팔았다. 또한 한국의 지마켓을 2021년 6월 신세계에 3조 원대에 매각하면서 총 20조 원이 넘는 자금을 회수했다. (그림 2) 지마켓 매각이 대규모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및 현금 확보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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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베이는 팬데믹 직전 구조 조정에 돌입해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하던 지난 2년간 무려 3개의 매각 빅딜을 성공시키고 대규모 자금을 손에 쥐었다. 그 덕분에 이베이는 다시 찾아온 불황기인 지금, 넉넉한 곳간을 활용해 사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머슬업’ 전략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1) 대중 커머스에서 팬 커머스로 사업 전환

이베이는 그동안 자신만의 색깔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최근에는 이베이에서만 살 수 있는 카테고리를 늘려 팬층을 만드는 버티컬 전자상거래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4월 월마트 전자상거래사업부에 있다가 새로 이베이 CEO로 부임한 제이미 이아몬은 ‘기술 주도 재창조’를 기치로 내걸고 이베이의 변신을 선언했다. 앞으로 전 세계 1억5000만 이베이 고객 중 연간 구매액이 평균 3000달러에 달하는 1900만 명의 ‘열광적 소비자’에게 집중하는 플랫폼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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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마존은 물건을 사기 위해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면 이베이는 ‘가장 마지막에’ 방문하는 곳으로 이미지가 형성돼 있었다. 골동품이나 절판된 제품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상품이 이베이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이미 CEO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오히려 이 ‘가장 마지막에’ 방문하는 곳이라는 이베이의 특징을 장점으로 살리는 방안을 고안했다. 여기에 재미를 더해 사람들의 재방문과 구매를 높이고자 ‘스니커즈’ ‘스포츠 기념품’ ‘자동차 소모품’처럼 ‘수집’과 ‘취미’가 전자상거래와 결합될 수 있는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 장기 불황에도 끄떡없는 사업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2) 스몰 M&A를 통한 빠른 온보딩

그럼 이베이는 어떻게 빠르게 ‘팬 커머스’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바로 속전속결로 진행하고 있는 소규모 M&A에 있다. 2014년부터 칼 아이칸과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외부 투자 및 M&A에 소극적이었던 이베이는 2020년 새로운 경영진의 지원에 힘입어 기업 내부 M&A 부서를 재정비한 후 적극적으로 1조 원 이하 스몰딜에 나서고 있다.

2021년 11월 중고 스니커즈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니커콘(Sneaker Con)’ 인수를 시작으로 2022년 6월에는 아티스트를 위한 NFT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영국의 ‘노운오리진(KnownOrigin)’, 그리고 8월에는 트레이딩카드 거래 플랫폼 ‘티시지플레이어(TCGPlayer)’와 자동차 부품 거래를 돕는 가맹점 솔루션 ‘마이핏먼트(MyFitment)’를 연달아 인수하며 M&A 본능을 되살리고 있다.

이베이의 M&A에서 주목할 점은 인수 대상의 특징들이다. 이베이는 벤처캐피털 자금을 투자받은 스타트업보다는 이미 검증된 업력을 보유한 숨은 강소기업들을 인수 대상으로 낙점해 왔다. 가령, 스니커즈 관련 글로벌 이벤트를 주관해 오다 최근 스니커즈 인증 서비스 시장에 진출한 스니커콘은 2009년 설립된 강소기업이다. 희귀 카드 거래 전용 플랫폼인 티시지플레이어 역시 사모펀드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업력 25년의 회사다. 스니커콘과 티시지플레이어는 각각 미국 뉴욕과 시러큐스에, 노운오리진은 영국, 마이핏먼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해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베이가 빠른 속도로 외형을 키워가는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대신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알짜 기업 발굴에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스몰딜을 할 때 외부 투자를 받은 적이 없는 강소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거래 종결의 확실성과 합리적인 기업 가치에 있다. 먼저, 회사의 이해관계자가 적을수록 잡음 없이 단기간 내 M&A를 완료하기 수월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외부 투자 유치에 대한 니즈 없이 자체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해온 기업들이다. 이런 강소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는 경기 상황은 M&A를 통한 사업 전환을 도모하는 기업에 있어는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머슬업’을 위한 M&A에 있어서는 대규모 변화 관리를 동반한 ‘빅딜’보다는 거래의 가격과 속도에 방점을 두는 스몰 M&A가 적합하다.

이베이가 지금껏 인수한 기업 4곳을 모두 더해도 현재까지 투입한 자금이 1조 원도 안 된다. 이처럼 빅딜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고, 스몰딜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이베이의 ‘머슬업’ 전략은 혹한기에 최적화된 경영 전략이 아닐 수 없다.

3. 팬데믹에서 얻은 교훈으로 마케팅 전략
수정해 역대 최대 실적 달성한 ‘에어비앤비’

팬데믹 직후 여행객이 사라지며 존립의 위기에 빠졌던 에어비앤비는 발 빠른 인력 구조 조정과 마케팅 비용 삭감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사례다. 2020년 1분기 매출이 1조1000억 원에 달했던 에어비앤비는 같은 해 2분기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으며 매출이 60% 가까이 감소하는 위기에 휩싸였다. (그림 4) 하지만 한 달 만에 1조3000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4 투자를 이끌어내며 사업의 안전판을 마련한 뒤 빠르게 생존 모드로 전환, 인력 구조 조정과 마케팅 비용 절감을 진행하면서 이익률을 개선했다. 결국 에어비앤비는 2020년 12월 100조 원이 넘는 기업 가치로 상장에 성공하며 유례없는 단기 턴어라운드 스토리를 써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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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팬데믹 한 달 만에 구조화 채권 발행해 실탄 확보

에어비앤비는 2020년 3월 팬데믹이 현실화하자 한 달 만에 실버레이크파트너스 주도로 1조3000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당시에는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팬데믹을 버티기 위해 곳간부터 채워 넣고 ‘런웨이(보유 현금이 바닥 날 때까지 생존할 수 있는 기간)’를 연장한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당시 자금 조달에서 주목해볼 점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에쿼티 형태의 자본 조달을 피하고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구조화 채권 형태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특히 연 이자율 10%에 이전 라운드 대비 40% 할인된 가치로 사채 발행가액의 3분의 1에 달하는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회사는 과감하게 사채 발행을 선택했다.

에어비앤비 경영진은 IPO 이후 인터뷰에서 다시 팬데믹 직전으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5 당시에는 수직 낙하하는 실적으로 인해 예전 기업 가치를 고수하기 어렵다는 것이 명확했고 언제까지 팬데믹이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든 주주 가치의 희석을 동반하는 에쿼티 조달보다는 조건을 양보하더라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채권형 투자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다는 게 경영진의 설명이다. 또한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사채 발행 금액이 유입되자 골드만삭스 주도로 4조 원 이상의 대출 한도도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에어비앤비는 적어도 자금 측면에서는 재빠르게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2) 퍼포먼스 마케팅을 줄이자 새로운 가능성 발견

에어비앤비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2020년 초, 회사는 검색 마케팅, 키워드 마케팅 등 퍼포먼스 마케팅에 투입하던 비용을 대폭 줄였다. 사람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여행을 할 수 없게 됐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의사결정이었다. 하지만 마케팅을 줄였음에도 고객은 오히려 새로운 경로를 통해 유입됐다. 뜻밖에도 사람들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 달 살기’ ‘세컨드 홈’ 등을 찾아다닌 덕분에 새로운 사용자가 에어비앤비 서비스로 유입된 것이다. 이로 인해 회사는 마케팅 비용 집행 규모가 고객의 구매 및 확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후 에어비앤비는 회사의 마케팅 방향성 자체를 ‘검색 마케팅’에서 ‘브랜드 마케팅’으로 전환했다.

여행 플랫폼은 검색 광고 시장의 ‘큰손’으로 통한다. 부킹닷컴이나 익스피디아 모두 동일한 호텔 상품을 제공한다면 결국 누가 먼저, 더 많이 고객에게 노출되느냐가 구매 의사결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또한 기존 여행 플랫폼과의 경쟁을 위해 검색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팬데믹이 터지자 에어비앤비만이 제공해줄 수 있는 독보적인 숙박 경험이 자연스럽게 수요 회복을 견인했고, 고객 확보를 위해서는 검색 경쟁보다는 브랜드의 차별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1년 2월 시작한 브랜드 캠페인 ‘Made Possible by Hosts’는 에어비앤비의 전략 수정을 잘 보여준다. TV 광고 등을 통해 노출도를 높이고 더 많은 사람이 브랜드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마케팅 전략을 재정비하면서 에어비앤비는 2021년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매출 67% 상승을 기록하는 등 완벽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2022년 3분기에는 무려 1조 원 규모의 잉여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며 오히려 불황기에 재무 구조를 더 탄탄하게 다지는 반전의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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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츠스케일링의 반대 개념인 머슬업 전략

지금까지 노션과 이베이, 에어비앤비가 다가오는 불황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혹자는 세 기업 모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상황에서 혹한기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내실을 다지는 ‘머슬업’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션은 2012년 설립 이후 8년 가까이 생존의 마지노선에서 버텨온 스타트업이었다. 그리고 이베이는 2014년부터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을 받으며 번 돈을 모두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쓰고 현상 유지조차 버거워하던 기업이었다. 반전의 스토리를 쓰기 전까지는 잊힌 1세대 벤처에 불과했다. 에어비앤비 역시 빠른 실행력을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팬데믹 직후만 해도 계속기업으로서 존립에 대한 의문마저 받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처럼 세 기업 모두 순탄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기에 더더욱 이번 혹한기를 내실을 다지고 전략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머슬업 전략은 성장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모든 전략을 이에 맞게 일치시키는 실리콘밸리의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블리츠스케일링 전략은 속도를 중시한다. 모든 제품을 최소한의 기능과 UI(사용자 인터페이스)만을 가지고 우선 출시한 뒤 고객 반응을 살핀다. ‘빠른 실패 (Fail Fast)’를 모토로 삼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방식의 접근법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실패를 흡수할 수 있는 벤처 자금이 뒷받침될 때만 유효하다. 반면 ‘머슬업’ 전략은 단기적인 성장의 엔진을 끄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내부 전략을 재점검하고 다시 핵심 역량으로 돌아가는 접근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리가 올라 투자 가용 자금이 사라지고 모두가 움츠러드는 현 시기에는 체력을 키우는 내실 위주의 머슬업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는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머슬업 전략을 요약해보고자 한다.

1. 외형 성장에서 내실 다지기로 목표 KPI를 변경하고, 이를 이해관계자와 공유하라

이베이는 2021년부터 ‘열성적 구매자 배가 효과(Enthusiast Buyer Multiplier Effect)’를 새로운 경영 목표로 제시하고 전사적인 GMV(Gross Merchandise Volume)6 성장 지표 대신 전체 구매 고객의 15%에 달하는 ‘열성적 구매자’의 재방문율, 재구매율, 건당 구매 금액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리고 열성적 구매자들을 발견하기 쉬운 스니커즈, 스포츠 카드, 수집품, 레트로 스포츠카 부속품 등 특정 카테고리로 커버리지를 넓혀가고 있다. 그리고 이베이는 이렇게 달라진 전략적 방향성을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연초 대비 주가 하락률도 아마존의 48% 대비 양호한 35% 수준으로 방어하고 있으며 분기 잉여 현금 흐름도 1조 원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혹한기에 흔들리지 않는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2. 기업 가치 바겐세일을 적극 활용하는
M&A를 수행하라

노션과 이베이의 혹한기 M&A 전략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인수 대상으로 벤처 투자금을 대규모로 유치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극초기 스타트업 혹은 외부 투자 없이 성장한 강소기업을 공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 투자를 수차례 받아 다수의 주주가 참여하고 있는 스타트업 인수는 혹한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기업 가치가 상대적으로 고평가돼 있는 데다 다수의 투자자 및 창업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M&A 진행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애퀴-하이어가 목적이라면 시드 단계 초기 기업 인수가 유리하다. 그래야 인수 후 통합에 투입되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처럼 혹한기에는 대규모 인수 후 통합 작업이 필요한 빅딜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체력을 비축하는 데 유리하다.

반대로 아직까지 시리즈A 이전 초기 단계이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역으로 애퀴-하이어의 대상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금 여력이 있는 회사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게 혹한기를 버티기엔 더 수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서베이에 따르면 창업 생태계가 가장 활성화된 실리콘밸리에서도 시드 단계 기업 중 60%는 시리즈A에 이르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한다.7 경기 불황기에는 이 수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시장 상황을 고려해 현실적인 판단을 한다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하게 피벗을 감행하면서 내부 자원을 낭비하기보다는 애퀴-하이어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것이 필요하다.

3. 자금력을 확보해 최대한 선택지를 넓혀라

에어비앤비는 IPO를 앞두고 있던 2020년 예상치 못한 팬데믹이 터지자 곧바로 긴급 자금 확보에 나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시리즈 형태의 자본 유치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사모사채 형태의 구조화 금융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자율과 지분 희석이 부담될 수 있지만 신속한 자금 조달에 방점을 둔 에어비앤비 경영진은 한 달 만에 자금 조달을 완료해 빠른 시간 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리즈란 이름이 붙는 자본 형태의 벤처 자금 유치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자금 조달 방식이다. 자금이 풍부하던 과거에도 최소 6개월, 지금은 1년이 지나도 거래 종결을 확신하기 어렵다. 1년 이상 충분한 런웨이가 남아 있더라도 지금과 같은 시장 환경에서는 불확실성이 큰 선택지인 것이다. 만약 어느 정도 성장 단계에 안착한 기업이라면 위기일수록 구조화 금융 같은 선택지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게 ‘머슬업’을 위한 시간을 버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혹한기에도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는 자금력이 필수다. 단순히 가진 비용만 절감한다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경험 데이터 분석 기업 퀄트릭스에서 미국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창업자들 중 88%가 펀드레이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염려가 크다고 한다.8 그렇다 해서 펀드레이징을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움츠러든 벤처캐피털보다는 대안이 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쿠팡은 소프트뱅크가 기술 펀드인 비전펀드를 설립하기 전인 2015년부터 소프트뱅크를 전략적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9 이때까지만 해도 소프트뱅크는 벤처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쿠팡은 ‘한국의 알리바바’를 만든다는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과거 알리바바 투자로 성공을 경험했던 소프트뱅크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당시 국내외 통틀어 유례없던 규모의 거금을 단일 투자자로부터 유치함으로써 지금의 쿠팡을 있게 한 로켓배송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다. 이처럼 유수의 벤처캐피털이 높은 밸류에이션이나 적자 리스크 등으로 투자를 망설일 때도 회사의 성장 잠재력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항상 선택지를 열어 두고 회사의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힘써야 한다.

4. 불황기를 인재 확보를 위한 최적의 시기로
활용하라

노션은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정리 해고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적극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 불황기야말로 평소에 데려오기 어려웠던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노션은 최근 CFO를 영입해 조직 운영에 안정을 꾀하고 상장사가 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으며 HR 기능을 강화해 꾸준히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

닷컴 붕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2006년 네이버가 인수한 검색엔진 ‘첫눈’은 지금까지도 인재 확보를 위한 M&A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당시 첫눈을 이끌던 장병규 의장과 신중호 대표 등 수많은 인재가 지금의 크래프톤과 라인 등 주요 스타트업의 성공을 일궜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는 불황기에는 동기부여만으로는 인재를 붙잡아 둘 수 없다. 가능하다면 실질적인 보상과 적극적인 사측의 움직임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노션은 회사 전 직원 대상 우리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인력 이탈을 막고 인스타카트 출신 CFO, 핀터레스트 출신 M&A 총괄 등 쟁쟁한 임원진을 적극 영입해 불황기에 체력을 비축했다.

5. 마케팅 비용을 끄고, 어떤 서비스가 가장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이는지 재점검하라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는 고속 성장 시기 관성적으로 집행하던 마케팅 비용이 변동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관성을 깨기 위해서는 팬데믹 초기 에어비앤비처럼 인위적으로 마케팅 비용 집행을 줄여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혹한기 동안 어떤 근육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에어비앤비는 2020년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체 마케팅 비용을 전년 대비 60% 이상 삭감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전년 대비 30% 감소한 수준에서 동종 업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결국 이렇게 마케팅 비용과 무관하게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이는 서비스를 확인한 것은 에어비앤비가 마케팅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에어비앤비는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경쟁자가 부킹닷컴이나 익스피디아 같은 여행 플랫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롭게 유입된 고객들을 통해 여전히 많은 사람이 낯선 사람의 집에서 지낸다는 에어비앤비의 접근법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런 인사이트 덕분에 에어비앤비는 그동안 구글과 페이스북에 쏟아붓던 퍼포먼스 마케팅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TV, 신문, 길거리 광고 중심의 브랜드 광고와 캠페인 전개에 힘을 쏟을 수 있었고,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유연하면서도 과감한 경영 방식은 팬데믹과 경기 불황의 이중고를 이기는 오늘날의 에어비앤비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혹한기 경영 목표는 성장이 아닌 생존

지난 2년간 유례없는 유동성 호황 직후에 찾아온 투자 혹한기가 불황을 겪어본 적 없는 많은 스타트업들에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특히 ‘성장’을 지상 과제로 놓고 한 방향으로 달려온 투자자와 창업자들은 어디까지 긴축을 하고, 어떻게 성장을 이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떤 경영 목표도 생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향후 1년 이상의 가용 자금을 확보하고 있더라도 안심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의 불확실성은 큰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경영 목표를 빠르게 전환하고 회사 내부의 상황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 기업들에 필요한 건 ‘순발력’ 테스트가 아닌 ‘근력’ 운동이다. 따라서 경영 지표, 인재, 마케팅, 자금 조달, M&A 전방에 걸쳐 기조를 전환하는 ‘머슬업’ 전략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박제홍 아틀라스퍼시픽캐피탈 대표 jehong@atlas-pac.com
박제홍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다. 에이티커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국내외 대기업과 다수의 성장 전략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후 국내 사모펀드에서 중소중견기업 경영권 인수 및 성장자본 투자를 이끈 바 있다. 현재는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캐피털 ‘아틀라스퍼시픽’에서 전 세계 혁신 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으며 스타트업 및 테크 전문 뉴스레터 CapitalEDGE를 운영하며 에디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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