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덜 나쁜 기업’에서 ‘룰 세터’로

337호 (2022년 01월 Issue 2)

1980년대 스타 제품에 힘입어 글로벌 기업으로 급부상했으나 한국과 중국 업체의 추격으로 경쟁력을 잃었던 이 회사는 2014년 국제신용평가사로부터 투자 부적격 판단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추격자의 도전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워스트 케이스’의 대표가 됐습니다. 그랬던 이 회사가 최근 몇 년 새 기사회생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것도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단숨에 워스트에서 베스트 케이스의 주인공으로 변신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소니. 1980년대 소니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것이 기술이었다면 그로부터 약 20년 후, 소니의 부활을 도운 효자는 바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였습니다. 소니는 월스트리트저널이 2020년 12월 발표한 ‘지속가능한 세계 100대 기업’ 순위에서 세계 5500여 기업 가운데 1위를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기존의 성공 공식이었던 제조업에서 벗어나 환경오염에 영향을 덜 미치는 소프트웨어 미디어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 부활에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201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ESG 분야에 적극 투자하며 업의 정의를 새롭게 했습니다.

소니 사례를 소개한 것은 ESG가 이처럼 회사를 회생시키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브랜드 가치를 내재하게 하는 데 훌륭한 ‘비밀 병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ESG의 의미를 인지하고 관련 로드맵 수립에 집중하면서 주로 리스크 회피에 주력했던 단계, 즉 ‘ESG 1.0’ 시대에 머물러서는 단언컨대 이처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이제 투자자는, 소비자는, 그리고 이 시대는 ESG가 기업 브랜드에 스며들어 사업 모델을 형성시키고, 새로운 투자 기회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애써 진정성을 ‘연기’하거나 의무 방어전을 치르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시기를 지나 ESG 자체가 기업의 브랜드이자 새로운 사업의 기반이 되는 ‘내재화 단계’로 진화돼야 할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 취재를 위해 DBR가 만난 전문가들은 이를 ‘ESG 2.0’ 시대로 명명합니다. 일부 투자사나 기업들은 ESG와 관련된 인식이 거의 없거나 이해도가 거의 없는 단계를 ‘ESG 1.0’으로 상정하고 기업의 최고 임원진까지 관심을 갖고 ESG를 사업에 내재화해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단계를 ‘ESG 3.0’으로 일컫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3.0’ 단계 역시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정의하는 ‘2.0’과 대동소이합니다. 결국 ESG 도입 초기 단계와 성숙 단계를 구분하는 ‘ESG 1.0’과 ‘ESG 2.0’은 ‘덜 나쁜 기업’이 되려는 최소한의 노력 단계를 지나 ‘더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라는 차이점을 갖습니다.

핵심 사업을 환경친화적인 영역으로 피벗한 소니를 비롯해 관련 베스트 프랙티스들을 살펴보면 ‘ESG 2.0’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나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샐러드 전문점 ‘스위트드림’은 ‘건강한 음식을 즐겁게 즐기는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비전하에 미국 내 90개 매장을 각 지역 특성에 맞춰 디자인하고 지역 예술가의 작품을 내걸며, 지역 농산물을 주재료로 사용합니다. ESG 활동이 곧 기업의 핵심 브랜딩 요소가 되는 셈입니다.

‘ESG의 역풍’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잠비아 출신의 세계적 경제학자인 담비사 모요 박사는 최근 HBR 기고문 ‘기업이 반드시 답해야 할 10가지 ESG 질문들’의 첫 번째로 ‘ESG가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진 않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다논의 CEO였던 엠마뉴엘 파머가 주당순이익에 탄소배출량을 반영하는 회계기법을 개발하는 등 ESG를 경영의 우선순위로 두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쟁사 대비 큰 실적 부진을 초래하면서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퇴출된 사례를 거론했습니다. 따라서 ESG가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면서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도 ESG 활동 자체가 기업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ESG 2.0’ 체제로의 전환은 필수적입니다. ESG는 국제적 압력, 정치 지형의 변화 등을 겪으며 2022년에는 국내외 산업계에서 더욱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을 전망입니다. 새롭게 던져진 이 시대의 숙명 같은 과제.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렌드를 따라가기 급급한 ‘룰 팔로워’가 아닌 ‘룰 세터’로 우뚝 서는 선구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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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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