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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7. 헝다그룹 사태에서 배우는 교훈

360조 원 빚과 함께 추락한 방만 경영
중국의 ‘정책 역주행’ 대비 전략이 교훈

최승훈 | 335호 (2021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때 부동산 개발 업계의 신화로 불리던 중국의 헝다그룹은 약 360조 원이라는 부채를 끌어안고 하루하루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넘기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부동산 시장 과열을 통제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이 강력한 규제를 꺼내 들면서 단계적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헝다 몰락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모럴해저드: 창업주의 방만에서 비롯한 기업 비리

2. 문어발 게임: 핵심 역량과는 동떨어진 사업 확장

3. 정책 역주행: 정책 도박이라는 러시안 룰렛식 접근



편집자주
이 기사의 기획과 윤문에는 김혜민 DBR 인턴기자(서울대 종교학과 졸업)가 참여했습니다.

또 하나의 경제 사건이 터졌다. G2 시대임을 실감케 할 정도로 중국의 위상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중국의 부동산 개발사 헝다그룹(恒大集團•Evergrande Group)이 경제 관련 소동의 주인공이 됐다. 사건이 터진 뒤 해외 언론은 일제히 헝다에 관한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세계 증시 역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출렁였다. 정작 조용한 건 중국 언론과 증시뿐이었다.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한때 부동산 개발 2위까지 올랐던 헝다는 약 360조 원(1조9700억 위안)의 부채를 끌어안고 곧 직면할 부도와 공산당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이처럼 헝다가 디폴트 공식화로 파산 수순을 밟게 된 배경에는 창업주 쉬자인(許家印)의 방만 경영이라는 오너 리스크, 핵심 역량과는 무관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 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은 의사결정 실패가 있다.

헝다그룹은 자동차 부문인 헝다자동차의 핵심 전기차 사업 부문인 ‘프로틴일렉트릭’을 영국 전기차 회사 베데오에 매각하면서 자금 확보에 총력을 다했으나 만기가 도래한 달러채 이자를 상환하지 못한 채 디폴트에 빠졌다. 12월6일까지 이뤄졌어야 할 달러 채권에 대한 이자 지급을 하지 못하면서 같은 달 9일 헝다의 신용등급은 사실상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의미하는 ‘제한적 디폴트’로 강등됐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중국 공산당조차 헝다그룹을 단계적으로 해체하기 위한 중장기적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헝다의 자산을 자국 기업에 매각해 내부 붕괴를 막고 부동산 버블 붕괴의 뇌관이 될 우려가 있는 헝다의 몸집을 줄여 부동산 시장이 동요하는 것을 예방하겠다는 목적이다. 그렇다면 한때 부동산 업계의 신화로 불렸던 헝다그룹이 오늘의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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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다와 중국 부동산 개발 시장의 위기

헝다그룹은 1997년 쉬자인 회장에 의해 설립된 중국의 부동산 개발 기업이다. 쉬 회장은 중국에서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허난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수성가한 재벌들이 으레 그러하듯 발군의 실력과 노련한 처세, 강력한 의지를 발판으로 부호의 길로 나아갔다. 홀아버지 밑에서 고학으로 우학과학기술대를 졸업한 그는 10년간 대학 때의 전공을 살려 강철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중국의 개혁 개방 시류를 놓치지 않고 부동산으로의 업종 전환에 성공했다. 그가 광저우에 헝다를 설립한 건 38세의 일이었다. 기회를 잡은 그는 2000년대 중반 광둥성 부동산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4100개의 부동산 개발, 관리 사업을 요체로 기업을 그룹화했다.

그는 이어 2015년 자동차, 헬스케어, 문화관광과 신에너지 등으로의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렇게 뻗어 나간 헝다는 산하 계열사 2873개, 직접 고용 인원 20만 명의 초대형 그룹이 됐다. 한때 기업 가치가 170조 원(1450억 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나아가 2017년 헝다는 기존의 고부채, 고레버리지, 고회전율 및 저비용이라는 ‘3고1저’ 모델에서 저부채, 저레버리지, 저비용 및 고회전율이라는 ‘3저1고’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겠다고 천명하면서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338위에서 158위로 도약했다. 하지만 이 무렵 이미 헝다의 부채 비율은 800%에 육박하고 있었고,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부동산 개발 산업의 특성상 사업 모델 전환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렇게 누적된 총부채는 2020년 약 320조 원 규모로 불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이름 아래 부동산 기업 융자 총량 규제를 도입했다. 은행 대출 전체 잔액 중 주택 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의 상한선을 설정해 부동산 기업들의 돈줄을 죄기 시작한 것이다. 헝다의 항해에 순풍을 불어주던 공산당의 부동산 정책이 역풍으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높은 레버리지 비율을 자랑하며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헝다는 직격탄을 맞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가 비단 헝다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중국 부동산회사 상위 30개사의 3분의 2는 중국 공산당이 제시한 ‘3대 레드라인’ 1 중 최소 1개를 위반하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가 갖고 있는 전체 부채는 약 6238조 원에 달할 정도였다. 이에 따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10월19일 뤼디홀딩스, 양광청, 중국아오위안, 자자오예, 상성홀딩스, 푸리부동산, 중량홀딩스 등 7개 부동산 회사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이처럼 헝다의 위기를 시작으로 고급 부동산 전문 개발사 화양녠이 디폴트 상태에 빠졌고,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 중 두 번째로 달러채를 많이 발행했던 자자오예의 경우 디폴트 우려가 고조되면서 홍콩에서 거래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중국 부동산 업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위기를 맞이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도미노 붕괴의 단초를 제공한 헝다의 시작과 끝에는 창업주 쉬자인 회장이 있었다. 헝다의 몰락은 쉬 회장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오랜 기간 누적돼 온 결과였다. 임직원 비리와 경영진 오판에 따른 무리한 사업 확장, 중국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가 맞물린 것이다.

헝다그룹은 왜 몰락했을까

부동산 업계의 신화, 자수성가의 롤모델, 밀레니엄 기부왕으로 칭송을 받던 쉬자인 회장과 그가 이끄는 그룹이 어쩌다 오늘날의 위기를 맞게 됐을까? 헝다그룹은 기부와 고배당이라는 미명으로 치장된 오너 및 임직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핵심 역량과는 무관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 정책 도박이라는 러시안룰렛이 더해지면서 수세에 몰렸다.

1. 모럴해저드: 창업주의 방만에서 비롯한 기업 비리

쉬자인 회장은 명실공히 중국 1등 ‘기부왕’이었다. 기부 한 번 했다 하면 그 액수가 수천억 원에 달했으며 최근 10년간 매년 끊임없이 기부를 이어왔다. 2020년에도 중국의 부자 연구소 후룬연구원이 선정한 중국 기부왕 5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중국 대부분 기업가의 기부가 보이지 않는 정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쉬 회장의 기부도 선의에 의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중국에서의 기부는 자선이나 대의를 목적으로 대가 없이 내놓는 돈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서 기업을 향한 규제 철퇴를 막기 위한 ‘보호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이 ‘공동부유(共同富裕)’론 2 을 천명하며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부유층과 기업의 부를 대중의 몫으로 돌리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지난 1년간(2021년 6월 기준) 중국의 6대 빅테크 기업은 약 30조 원을 기부했다. 중국 정부가 일부 기업의 폐업까지 초래할 수 있는 초강도 규제를 암시하자 선제적인 기부로 대응한 것이다.

쉬 회장은 기부만이 아니라 ‘배당왕’이기도 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헝다는 11번에 걸쳐 9조2000억 원(500억 위안)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고배당은 영업이익을 주주들과 나눈다는 장점이 있지만 미래의 현금흐름을 악화할 수 있는 위험도 동반한다. 심지어 헝다의 경우 쉬 회장의 지분이 70%에 달한다는 점에서 배당금의 과반이 본인의 몫이 되는 구조였다. 이 배당금 중 일부가 정치 자금, 결탁 세력의 비자금 등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기부와 고배당 자체가 문제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또한 중국 비즈니스 특성상 헝다 같은 규모의 그룹을 운영함에 있어 보호비 지출, 정치 자금 및 비자금 확보는 경영상 필요한 과정이었을 수 있다. 일당 독재 구조인 중국의 특성상 권력과의 결탁이 없는 사업은 규모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부와 배당 규모가 너무 큰 나머지 헝다의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도덕과 사회적 신의를 등진 경영 행태, 개인적인 부의 축적을 위해 강행되는 터무니없는 고배당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쉬 회장이 헝다의 고배당을 결정하던 때 회사의 부채 비율은 이미 780%에 육박하던 상태였다. 해외에서 13%에 달하는 고리성 달러 채권도 발행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정작 쉬 회장 본인은 엄청난 현금을 챙겼고 일종의 중국형 부유세(富裕稅)인 기부를 앞세워 기부왕이라는 면죄부까지 받았다.

이런 헝다그룹의 모럴해저드는 쉬 회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청빈한 오너 밑에서도 비리가 조직 전반에 만연하기 쉬운데 기업 수장부터 사리사욕에 잠식당한 헝다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국의 직원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금세 주변의 행동을 답습하고 복제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모럴해저드는 삽시간에 조직 전반에 퍼져 나갔다. 또한 한창 현금 유동성 악화에 허우적거리던 헝다그룹이 회사의 금전난을 핑계로 직원들에게 아파트 판매 할당량을 주고 1인당 최소 920만 원(5만 위안)의 금융 상품 투자를 권했을 때 직원들 누구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쉬 회장이 10조 원에 가까운 배당금을 챙겨 1470억 원(8억 위안) 상당의 해외 대저택을 구입하고 110만 원(6000위안)짜리 허리띠를 차고 돌아다니는데 회사와 고통을 분담하려는 직원이 있을 리 없었다. 실제로 올해 11월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쉬 회장의 호화 자산은 전용 제트기, 고급 요트 등 한화로 5000억 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회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의기투합하기보다는 대표에게 뒤질세라 한마음 한뜻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개인의 잇속을 챙겼다. 내부 정보를 이용해 외부와 결탁하고 헝다가 구매하려는 부동산을 350억 원(1억9000만 위안)에 선매수한 뒤 자신들의 직위를 이용해 515억 원(2억8000만 위안)에 되팔아 차액을 챙긴 사례도 있었다. 또한 헝다의 위기가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확실해지기 직전 쉬 회장의 부인과 친인척, 가까운 투자자들은 서둘러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전액 환매했으며 고위급 임직원 역시 앞다퉈 투자금을 환수했다. 헝다는 이미 자정 작용이 불가할 정도로 부패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쉬 회장은 친자식과도 같아야 할 자신의 기업, 형제와도 같은 동료 직원들의 살을 발라 주변을 달래고 개인의 부를 쌓으며 사업을 운영했다. 그리고 이런 사업 운영의 결과 때마침 닥쳐온 공산당의 정책 회귀에 속절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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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어발 게임: 핵심 역량과는 동떨어진 사업 확장

기업의 비전은 등대처럼 길잡이 역할을 하며 조직이 추진력을 얻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쉬 회장은 소위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의 경영 행보에는 일관된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자연히 핵심 역량과는 무관한 사업 확장으로 이어졌고 결국 헝다를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 절박함과 절실함이 간절했던 창업 초기, 쉬 회장은 당시 공산당 정책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며 ‘선택과 집중’이란 노선을 견지했다. 개방 개혁의 거점 지역, 회전율 빠른 소형 주택, 모범적 거주 환경 건설이라는 전략을 통해 공산당의 두 번째 발전 단계인 소강사회(小康社會, 모두가 여유 있는 문화 사회)3 를 도달하자는 목표를 세웠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부동산 사업을 기반으로 한 헝다의 성장세는 시장이 레드오션이 되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어렵게 올라온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쉬 회장이 내민 대책은 업종 확장이었다. ‘세(勢) 불리기’를 통해 성장 정체를 타개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쉬 회장은 타 업종 인수합병(M&A)을 본격화하며 헝다의 전기자동차, 스포츠, 헬스케어, 첨단 기술, 식음료와 같은 새로운 사업 부문으로 확장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물론 타 업종 M&A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 역량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사업 분야를 M&A하면 인수 후 이를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운영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기업 역량을 통합해 매출 시너지를 달성하려면 M&A마다 맞춤형 전략도 요구된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헝다에 이런 전략이 있을 리 없었다. ROI(투자자본수익률) 4 에 대한 운영 계획이나 볼트온 전략5 같은 현실적인 대책도 전혀 없었다. 핵심 사업이자 국가 지원 사업인 부동산은 고루해 보인다는 이유로 기존에 하던 사업과는 최대한 거리가 먼 신사업 M&A만 추진했을 뿐이다.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이미 끝물로 향해 가던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런 대책 없는 확장의 한 사례였다. 헝다가 2019년 스웨덴의 전기자동차 업체 NEVS를 인수한 뒤 쉬 회장은 “테슬라를 이길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포부와 달리 헝다자동차는 2021년까지 단 한 대의 자동차도 판매하지 못했다. 결국 헝다는 이번 디폴트 위기 속에서 자금 조달을 위해 전기자동차 핵심 사업부를 영국 회사에 매각했다.

헝다그룹은 이런 식으로 2015년 이후 쏟아져 나오는 부도, 부실기업을 쓸어 담는 데만 무려 11조 원(600억 위안) 이상을 털어 넣었다. 중점 사업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 기업의 특성상 대출 비중이 높고 자금 선순환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접근이었다. 장기간 육성해야 하는 미래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는 보유 부동산의 전체 순환이 50년 이상 걸리는 헝다에 심각한 무리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묻지마식 투자’는 헝다그룹을 부실기업의 온상으로 만드는 올가미가 됐다.

은행의 ‘저금리 무한 대출’, 대륙 스케일의 ‘규모 경제’. 지난 30년간 당연하게 주어진 경영 환경에서 중국 기업들은 마지막 열쇠인 ‘대형 자본’이라는 밑천만 갖추면 불패 신화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불패를 위해 행해진 무분별한 확장은 부실 자본 돌려막기를 낳았다. 하지만 헝다에는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연관 산업 타격, 사회적 혼란 등의 우려가 있는 대형 기업의 경우 중국 공산당이 절대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의미다. 부동산 개발 투자에 여념이 없고 고금리 해외 채권까지 연일 찍어내던 시기에 주저 없이 전기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대마불사 법칙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물며 2010년 광저우 FC를 인수한 다음에는 축구학교 설립에 2200억 원을, 수용 인원 10만 명 규모의 축구장 건설에 2조 원을 투자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이 빚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철석같이 믿던 ‘대마불사’의 원칙이 무너졌다. 공산당이 시작한 ‘옥석 가리기’의 틈새에서 화천자동차, 베이따팡정, HNA그룹 등이 산산조각 났다. 더욱이 헝다는 시진핑의 태자당이 아닌 상하이방 6 과 공청단(중국 공산주의 청년단)과 협력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의 구제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이렇듯 국가가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국유 기업까지 가차 없이 선별하기 시작하자 그동안의 세 불리기로 누적된 헝다의 부채는 파산의 단초가 됐다.

3. 정책 역주행: 정책 도박이라는 러시안룰렛

중국은 공산당의 정책 기조에 따라 기업들의 운명이 뒤바뀌는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다. 어떤 시장이든 규제와 정책과 방향성을 고려해야 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중국은 특히 그렇다. 정책 기조에 따라 기업들의 매출 증감세가 더욱 뚜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산당의 정책 기조는 국가 주석의 말 한마디에 언제든 급변할 수 있기에 중국은 기업들 입장에서 잠재력이 큰 만큼 위험성도 큰 시장이다. 헝다는 이 도박과도 같은 중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수혜를 입고 잭팟을 터트리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헝다가 몰락의 길을 걷게 한 것 역시 부동산 정책이었다.

헝다가 최고의 자리에 서기 전인 2014년, 중국은 전국적인 부동산 불황기를 맞이했다. 그간 이어진 유례없는 경제 발전과 오랜 기간 함께했던 부동산 열풍이 가라앉으며 침체기로 접어든 것이다. 부동산 재고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안감이 안정화 정책으로 이어졌고, 땅값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쉬 회장은 과감히 베팅을 시작했다. 가격이 하락하는 땅과 오래된 주택들을 매입했다. 그리고 2016년, 그의 베팅이 승전보를 전해오기 시작했다. 급작스레 찾아온 경기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다시 부동산 재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 안정화라는 이빨을 숨기고 꼬리를 내린 것이다. 이후의 성공은 쉬 회장에게 인생 최고의 2017년을 선물했다. 헝다 창업 20주년이었던 그해 그룹의 구단 광저우 FC는 7년 연속 리그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쉬 회장은 포브스 선정 중국 1위 부호로 등극했다.

판돈을 쓸어 담은 그는 그 판을 접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 쉬 회장은 지속해서 토지 매입을 진행했고, 계속된 베팅으로 부채 비율은 800%로 치솟았다. 하지만 그새 중국 공산당은 잠시 숨겼던 조정의 이빨을 다시 드러냈다. “부동산은 거주하는 공간이지 투기하는 수단이 아니다(房住不抄).” 이미 공표됐던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 중국 인민은행 총재인 저우샤오촨이 또 한 번 못을 박았다. “과도한 부채 확대에 기댄 경기 호황이 끝나면 은행 채무자들의 부채 상환 능력은 한계를 만날 것이다. 결국은 건전한 자산까지 내다 팔게 되는 금융 시스템 붕괴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라면서 ‘민스키 모멘트’7 를 예고한 것이다.

곧 이어 2020년 7월, 중국 공산당은 1) 선급금을 제외한 자산 대비 부채 비율 70% 초과 2) 순부채 비율 100% 초과 3) 현금의 단기 부채 비율 1 미만이라는 세 개의 레드라인을 정하고 이 기준에 해당하는 부동산 개발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규제를 시작했다. 규제 카드를 받아 든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일제히 사업 확장에 급브레이크를 밟고 디레버리징을 시작했다. 하지만 헝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고금리 국외 채권까지 발행하며 레드라인을 넘어선 배팅을 한 것이다.

부동산 황제가 된 쉬 회장이 두 번째 베팅에 나선 데는 정부도 중국 부동산 시장은 어찌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작용했다. 2016년 경제 발전에 대한 압박으로 공산당이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이빨을 숨기지도, 꼬리를 내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동사회(大同社會, 인륜이 실현되고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 8 건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더욱 강력해진 부동산 대출 규제를 들이댔다. 게다가 2020년 1월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2008년부터 시행해온 반독점법의 수정 초안을 발표하며 중국의 시장경제 체제 가속화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반독점법은 사실상 공산당 주류 세력을 위협하거나 스스로 세를 키우는 기업들을 분해하는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레드라인을 거스르던 헝다그룹은 정책 역주행으로 불어난 부채를 끌어안은 채 허무한 종말을 맞이하게 됐다. 공산당의 눈 밖에 나면서 구제받지 못한 채 단계적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중국 시장

그나마 존재하던 자율과 융통을 냉정하게 거둬내고 더 비정해진 중국 정치와 공산당의 정책이 과연 성공할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내비게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이다. 오히려 너무도 명확해서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샛길로 빠질 일도 없어 보인다. 주체는 ‘중국 공산당’이고 방향은 ‘정책’이다. 이 둘을 거스르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설령 있을지언정 잘려 나갈 것이란 신호가 다각도로 전달되고 있다. 최근 알리바바의 마윈 역시 앤트파이낸셜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공개 석상에서 중국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가 규제 당국과의 면담인 ‘위에탄(約談)’에 불려 들어갔다. 결국 앤트파이낸셜의 상장은 물거품이 됐고 앤트그룹은 3조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산당의 행보에 예외는 없었다.

앞으로 경제와 사업에 대한 통제는 더욱 제도화되고 늘어날 것이다. 통제가 어렵다는 4차 산업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최근 등장한 중국의 ‘데이터보안법’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특정 기업들의 데이터를 중국 정부와 ‘공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은 공산당 정책 실현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 발전된 정보기술(IT)이 무한 감시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시장 통제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용기와 자신감은 21세기 IT 인프라와 데이터가 만들어 준 판옵티콘(Panopticon) 9 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 같은 노선을 볼 때 중국 공산당의 정책과 방향성에 대한 연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해진 노선을 철저히 미리 파악하고 그 본질에 어울릴 사업을 도모해 정책에 반하지 않는 경영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금속탐지기와 지도를 손에 쥐고 지뢰밭을 지나는 것과 같다. 지뢰밭을 지나 보물 상자가 묻힌 곳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제아무리 위세 등등한 중국 공산당도 그간 득세하던 고양이를 다 잡아들이고 자기 입맛에 맞춰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하게 조여 오는 정부의 통제에 그간 몸집을 불려왔던 기업과 자본이 살길을 찾아 도망칠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중국 기업들과 자본들이 빠져나갈 비상구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은 중국을 향해 세운 칼날을 점점 예리하게 갈아가고 있다. 이미 진입한 자본조차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신흥 강국들은 중국과 국경을 맞댄 물리적인 긴장 관계에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중국이 텃밭처럼 가꾸어오던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까지 생산 기지와 판매 시장으로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다. 결국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대립선상에 있지만 한국이 그나마 안전하고, 성숙한 개발 및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세계 시장을 상대하고 있는 강력한 무역 허브로서 중국의 기업과 자본이 줄행랑칠 수 있는 최적의 출구일 수 있다. 차분히 그들의 방문을 예측하고 준비한다면 힘 빠지고 갈 곳을 잃은 기회들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줄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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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다그룹의 경영 실패가 주는 교훈

한 시대를 잠시나마 풍미했던 초대형 기업 헝다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헝다의 실책들은 헝다가 처음 행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렇게 종말을 맞은 숱한 기업들이 있었다. 부동산 기업 화샤싱푸가 그랬고, 최대 민영 금융기업이던 중국민생투자가 그랬다. 대형 항공사 HNA, IT 선봉장이던 칭화유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기다리고 있던 함정들에 보란 듯이 빠져버렸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부정부패로 1997년 IMF와 함께 부도를 맞이한 한보그룹 등의 사례를 통해 오너 리스크, 부실 재정의 위험성을 두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중국에선 이런 말이 통한다.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사람도, 권력도 궁지에 몰리거나 답답한 상황 속에 갇히면 해결책을 모색한다. 권력은 그 해결책을 ‘정책’이란 이름으로 완성시킨다. 문제의 해법이 단단히 녹아 있는 경우도 있고, 애매모호한 대안이 포장된 경우도 있다. 이런 정책의 본질을 연구하고 고민하여 꿰뚫어 볼 수 있어야 이에 대응하는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 대책을 가능케 하려면 일단 약점부터 최소화해야 한다. 헝다의 몰락이 중국을 넘어 인접국인 한국, 멀게는 미국 증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만큼 헝다의 경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약점을 최소화하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첫째, 관성을 경계하라. 관성적 움직임을 경계하는 것은 약점을 최소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관성적으로 행하던 사소한 일이 큰 약점으로 불어나 기업공개, 투자 유치, 사업 확장 등 원대하고 치밀한 목표 앞에서 걸림돌이 돼 다리를 부러뜨리고 자리에 주저앉힌다. 쉬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비윤리 경영도, 결탁 세력과 경영진의 이익을 위한 고배당과 기부도 중국식 경영 관성에서 비롯한 결과였다. 이렇게 관성적으로 누적된 비리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약점으로 자라나게 된다.

둘째, 사회적 책임을 지켜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은 기업의 핵심 역량과 가치에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헝다는 장기적 비전과 전략 없는 무리한 사업 확장의 결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고민 없는 무분별한 확장은 헝다의 정체성을 흐렸고, 사익에 집중한 비리는 윤리경영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도록 만들었다. 방향성과 책임 의식 없는 의사결정은 결과적으로 헝다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가치는 크고 단단해 사욕이 뚫을 수 없어야 하며 책임감은 홀로 있는 방 안에서도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심오하고,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이 정도 경영의 원칙이 비즈니스의 긴 여정을 가능케 할 것이다. 경쟁이 심화할수록 요구되는 것은 명확한 비전이다. 이러한 자세로 성장한 기업은 섣부른 정의감도, 아나키스트와 같은 무모함도 없다. 오히려 영악하고 지혜롭게 현상의 본질 저 너머에 있는 깊숙한 의도를 이해하고 있다. 한 치 앞만 내다보는 의사결정이 기업을 나락으로 이끄는 지름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만 경영으로 시작된 헝다의 위기, 그리고 중국 부동산 시장의 도미노 몰락이 비즈니스 업계에 주는 교훈이다.



최승훈 작가는 중국사업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베이징대 법학과를 다니다 4학년에 중퇴하고 미래통신 해외법인의 최연소 수석 대표를 지냈다. 중국 국영기업 및 삼성 오픈타이드 차이나(현 제일펑타이)에서 근무 했으며 SK, 삼성, LG, P&G, 드림성형외과 등 다수 기업의 중국 사업 컨설팅을 수행한 바 있다. 저서로는 『중국을 이기 는 비즈니스 게임』이 있으며 현재 제일펑타이 고문을 역임하며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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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법치국’시대… 중국 비즈니스를 위한 길라잡이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값싼 인건비와 토지는 국내 제조 기업을 위한 최적의 생산 기지였다. 그러나 중국은 새로운 산업 육성 초기에는 해외 기업과 투자를 적극 환영하다가 이후 중국 기업들이 자립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올 때는 어김없이 해외 기업을 쫓아냈다. 이 같은 중국의 ‘역뻐꾸기’ 전략을 한국 기업들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교역 상대 1위 국가인 중국을 마냥 피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이번 헝다 사태를 통해 우리가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중국 시장을 이해하고 최근 들어 더욱 멀게 느껴지는 중국에서의 돈벌이, 사업 운영을 고민할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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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민족 국가 중국, 이기주의의 역사

최근 중국과 중국인의 도덕성은 전 세계적으로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족 차별과 인종 문제 등을 다루는 인권 단체들조차 중국의 방패가 되길 기피하고 있다.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원천적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중국은 차별과 생존이라는 역사에서 ‘이기주의’란 대명제를 이어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땅은 크고 넓으나 옥토(沃土)와 박토(薄土)가 극단적으로 나뉘고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지역과 위험한 지역이 크게 갈리는 탓에 민족 간 수많은 영토 분쟁과 왕권 교체를 반복해 왔다. 지형적 차별은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차별, 신분의 차별, 빈부의 차별로 뻗어 나갔고, 반목과 갈등은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커졌다. 자연히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는 당연지사가 됐다.

계몽과 선도를 앞세운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등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등장했지만 이는 소수 지식인의 이상에 불과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출범한 것이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이었다. 하지만 수천 년간 지속돼온 이기주의가 단번에 해소될 리는 없었다. 마오쩌둥의 뒤를 이은 덩샤오핑 시대에 와서야 ‘온포사회(溫飽社會,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사회)’ i 건설을 시작으로 소강사회(小康社會)-대동사회(大同社會)로 이어지는 중국의 사회주의 대기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포사회의 실현은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를 수용하는 계기가 됐다. 경제 발전이 속도를 내면서 이기주의가 약간 흐려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는 여전히 문화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2. 관시(關系)와 췐즈(圈子)

이 같은 중국의 이기주의는 현대에 이르러 관시와 췐즈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관시와 췐즈는 중국 사회의 주요 공식이다. 관시는 일반적으로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금전적 이해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얽힌 이해타산적 공식에 가깝다. 그리고 췐즈란 개개인의 관시가 엮인 하나의 집단을 뜻한다. 공동의 이익을 담은 배를 띄우고 한배를 탄 관계는 관시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무리 죽마고우라 할지라도 이 배를 완성하지 않았다면 관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췐즈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혈연, 동문 등의 우발적 관계들로 형성되는 집단과 달리 췐즈는 집단 이기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이너서클’의 의미가 더 강하다.

집단 이기주의를 지향하는 췐즈는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B.A.T.’는 단순히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각 회사를 주축으로 한 그들의 IT 사업 췐즈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췐즈 내에서 인프라와 역량을 공유하고 이익과 성과를 나눈다. 반대로 그들 이외의 췐즈와 췐즈의 구성원에게는 철저히 배타적이다. 이러한 췐즈의 경합은 한 개인이나 한 회사가 상대할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다. 또한 췐즈 내에서도 쓸모가 다하면 가차 없이 낙오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경제 주체가 췐즈를 구축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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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법치국(依法治國)’의 대동사회(大同社會)

문제는 기업들의 이러한 췐즈 구도에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이 불편한 시선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산당의 췐즈가 아닌 경제 발전과 함께 개별적으로 힘을 키워온 췐즈로 시선이 향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가 과거에도 ‘선개방, 후규제’라는 방식을 채택해 왔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언제나 중국은 시장을 개방한 뒤 일정 시간이 흘러 상점이 가득 차고 호황이 찾아오면 민주적인 방식과는 무관하게 절대 기준을 도입해 거래 형태를 규정하고 운영을 통제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덩샤오핑이 온포사회 건설로 부흥시킨 경제 발전과 췐즈의 활성화를 시진핑 정부가 박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최종 목표인 대동사회 실현을 위해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있다. 최근의 시장 상황이 더 위태로운 이유는 시진핑의 공산당이 기업들을 옥죄는 도구로 ‘의법치국’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법에 의존한 통치’란 뜻으로 법가의 ‘이법치국(以法治國)’, 즉 ‘법을 이용한 통치’라는 말을 교묘하게 뒤튼 형태다. 성악설(性惡說, 사람은 타고난 본성이 악하다는 순자의 윤리 사상)을 기초로 하는 법가는 중앙집권적, 관료적인 공포정치, 상벌정치를 통해 체계적으로 통치하고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는 사상이다. 법가는 그 힘과 파급력이 강하고 강제성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이를 활용하는 주체의 성숙도에 따라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섣불리 꺼내든 전체주의에 스스로 무릎을 굽혀야 했던 마오쩌둥 시대를 지나 시진핑 정권은 다시금 법가의 통치 사상을 꺼내 들었다. 국가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인치(人治)로 상정하며 배격하고 철저히 공산당을 통해 원론적으로 통제되고 운영되는 중국의 정•경제를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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