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융복합시대 기술 진보와 경제 거래의 혁신

거래 신뢰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 ‘제로’
블록체인이 금융 산업의 틀을 흔든다

323호 (2021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제 거래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없앤 블록체인 기술은 상대적으로 느린 거래 처리 속도, 높은 결제 및 송금 수수료 등의 한계로 인해 화폐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은 주식•채권 발행이나 귀금속 거래와 같이 속도보다는 신뢰 확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분야에서는 널리 활용될 것으로 보이며 모바일 신분증이나 스마트시티 구현 등 전 세계 국가가 디지털 정부로 발돋움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중국 등 해외 정부가 디지털 화폐 발행을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 금융업이 기존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상 자산의 법제화 등을 통해 금융산업의 진입장벽을 없애야 장벽 내•외부의 모든 참여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발명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IT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관심을 받았지만 최근엔 글로벌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비트코인은 경제 거래에서 화폐나 은행 등의 중개인이 제공하는 ‘거래 신뢰’ 부문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동안 당연시돼 오던 화폐나 은행 같은 중개인의 역할을 기술이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진전이다.

경제 거래에서 중개인이 제공해오던 거래 신뢰를 중개인 없이 네트워크상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거래 신뢰를 확보하는 비용을 제로(0)화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인터넷의 발명으로 연결 비용이 제로화되며 각 산업에선 새로운 형태의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했다. 블록체인은 이를 넘어서는 인류사의 대혁신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은 금융업권 중심의 기존 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시티 조성 등 부를 생성하고 거래하는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사고 영역을 넓히고 막대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상 자산은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까. 각국 중앙은행들의 디지털 화폐(CBDC) 발행 움직임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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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과 양면성 플랫폼 비즈니스

가상 자산은 ‘양면성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을 갖는다. 양면성 플랫폼 비즈니스란 내가 만나고자 하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플랫폼을 더욱 선호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앱(app)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앱 사용자들이 구글플레이를 가장 많이 찾기 때문에 구글플레이를 선호한다. 사용자들 또한 구글플레이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구글플레이를 선호한다. 이렇듯 양쪽 고객군이 서로의 선호도를 살피면서 나의 선호도를 정하는 것을 양면성 플랫폼적 비즈니스 특성이라고 부른다.

플랫폼 양쪽 고객들의 참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 플랫폼은 스스로 커지는 힘을 갖게 되는데 이를 임계점(Critical Mass)이라 부른다. 카카오톡, 구글플레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양면성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임계점을 넘어선 플랫폼은 비로소 플랫폼 그 자체가 안정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될 수 있다. 비트코인 등 가상 자산이 구축하는 플랫폼 역시 참여자들이 보유한 가상 화폐가 비즈니스나 거래에서 구매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커질수록 보유하려는 수요도 높아질 것이다.

다만 검색 엔진 야후처럼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명멸해간 플랫폼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생태계 적응력이 더 뛰어나고 사용이 편리한 가상 자산이 새롭게 등장한다면 비록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하더라도 도태될 수 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이러한 시각에서 임계점을 넘어 스스로 자생력을 갖췄는지, 최근 더욱더 구체화되고 있는 글로벌 법제화 과정에서 요구되는 가상 자산으로서의 구비 요소 등 새로운 생태계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투자자들의 통찰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DBR mini box II
화폐의 기본 기능

화폐의 기본 기능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다. 첫 번째 기능은 회계 단위로서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화폐는 커피 한 잔 2500원, 승용차 2500만 원, 아파트 7억 원과 같이 많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재는 단위이다. 두 번째 기능은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대가로 지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정화폐는 판매자가 건네받은 액면과 같은 구매력을 판매자도 행사할 수 있음을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세 번째는 화폐가 부채의 청산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폐는 많이 보유할수록 부자가 된다. 즉 가치 저장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상 자산의 비즈니스 활용성

1. 화폐 대신 쓸 수 있을까?

블록체인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발명하기 위해 고안한 기술이다. 이후 많은 연구에서 블록체인이 갖는 투명성, 분산성, 수정 불가능 등의 특성들이 여러 산업과 비즈니스의 융복합을 이루는 인프라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비트코인은 화폐가 수행하는 기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까? 가상 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의 주장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비트코인이 화폐의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폐의 네 가지 기본 기능 1 외에도 화폐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화폐 발행 시 액면가와 제조원가의 차이로 상당한 이익이 발생하는데 이를 화폐주조차익(시뇨리지, Seigniorage)이라 한다. 한국은행은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고 발행 차익을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부의 일반회계 세수로 입금해 추경예산 등의 재원으로 쓴다. 즉 화폐 발행에 따른 차익을 온 국민이 골고루 나눠 갖는다. 또한 국가는 화폐와 은행을 통한 결제 흐름을 경제활동의 모니터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국가는 이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에 대해 과세하고 재정을 확보한다. 또한 모니터링 수단은 자금세탁방지(AML)와 테러자금조달금지(CFT) 활동에 국제적인 공동 보조를 취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의 시각에서 비트코인이나 알트코인들이 이러한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면 화폐로서의 후보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시된 거의 모든 암호화폐, 암호통화, 암호토큰, 디지털 토큰 등 어떤 명칭을 가진 가상 자산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화폐의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비트코인 거래의 합의 방식은 비트코인의 거래 비용 절감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거래량과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합의 과정이 병목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10분마다 생성되는 블록당 수록되는 거래 건수는 2021년 4월 평균 2059건2 이었다. 신용카드의 거래 결제 처리 능력이 1초당 적어도 평균 4000여 건임을 감안한다면 비트코인을 일상 상거래에 사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만약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 요금을 결제하기 위해 신용카드 결제 시 소요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 누구라도 새로운 결제 수단을 사용하기를 꺼리게 될 것이다.

비트코인의 결제/송금 비용은 어떨까? 은행을 통한 결제/송금 비용보다 획기적으로 저렴하기라도 할까? 현재 비트코인 거래는 중개인 없는 거래로 거래가 블록에 저장돼야 거래가 완결된다. 2021년 4월 기준 블록체인에 거래를 기록하는 비용, 즉 결제/송금 수수료는 건당 평균 30.52달러 3 다. 이는 결제 금액의 크기가 아닌 거래 건당 수수료로 원화로는 원/달러 환율 1100원이라 해도 3만3681원이나 된다. 일상의 거래에서 활용되기에는 턱없이 비싼 송금/결제 수수료다. 실생활 거래에서 사용하려는 입장에서 거래 비용 및 속도를 평가한다면 비트코인은 고비용 비효율 구조다.

2. 가상 자산 활용이 용이한 분야는 따로 있다

그렇다면 가상 자산이 화폐가 구비해야 할 요건들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유통을 금지해야 할까? 최근 가상 자산이 활용되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 답을 바로 알 수 있다. 우선 지금까지 중개인의 거래 신뢰를 필요로 했던 경제 거래들을 짚어보고 이들에게 블록체인 기술 도입이 필요한지를 점검해보자.

먼저 블록체인 기반 가상 자산을 주식이나 채권 발행에 활용하려 한다면 법정화폐를 대체할 정도의 속도 수준을 장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개인 없이도 주식이 거래되기 위해서는 화폐를 대체하기 위해 확보돼야 할 회계 단위, 가치 교환 수단, 지불 수단의 기능까지 반드시 화폐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장착할 필요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블록체인이 현행의 부동산, 귀금속 등 고가 자산의 등기제도 또는 거래를 대체하는 데는 속도보다는 거래 신뢰에 초점을 둬야 하므로 앞에서 든 성능의 기술이 채택될 필요는 없다. 도소매업자 간 금 중개 플랫폼인 ㈜금방은 귀금속 시장에서 현물 결제금의 거래 방식을 디지털화해 실물 이동으로 인한 금 손실을 최소화하고 거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했다. 2019년 설립한 이 회사는 이렇게 구축된 신뢰를 기반으로 창업 3년 차에 시장점유율을 21%까지 높일 수 있었다.

㈜금방의 블록체인 기술은 신뢰와 투명한 거래가 생명인 금 거래 시장의 특성과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이 잘 결합된 사례다. 다만 이 비즈니스 모델은 추후 확장성 4 관련 문제가 당면 과제로 부상할 수 있어 이에 상응하는 처리 속도를 염두에 둔 기술 채택이 필요하다. 국내 시장 규모를 감당하는 데는 결제 속도가 최우선 순위는 아닐 수 있지만 곧 가시화될 글로벌 시장 진출 시엔 거래의 투명성은 물론 결제 속도와 보안성 강화가 동시에 달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 클라우드 SaaS5 전문 스타트업인 피네보는 신용카드와 가맹점의 결제망을 클라우드 방식으로 구축하는 데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사례다. 블록체인을 핵심 원장 6 기술 구현 방식으로 채택함으로써 실시간 백업망을 구축해 데이터의 유효성 검증에서의 정확성과 투명성을 제고했다. 클라우드에 결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신용카드사가 필요로 하는 구매 상품 정보와 가맹점의 고객 식별 정보에 대한 니즈도 충족시키도록 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신용카드사와 카드 가맹점 사이에서 거래 승인, 정산 등의 업무를 제공하는 기존 밴(Van)사7 의 서비스에 더해 빅데이터 처리 역량을 결합해 차세대 빅데이터 환경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모바일 신분증이 있다. 본래 공적 기관에서 발행한 신분증은 본인임을 식별하기 위해 소지한 사람의 얼굴을 현장에서 대조하며 사용된다. 온라인 거래에서도 거래 상대방의 신원 확인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늘어나고 있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모바일 신분증을 가상 자산과 결합해 사용할 수 있을까?

모바일 신분증은 거래 신뢰 구축이 기본적인 요구사항이며 화폐 본연의 기능까지 장착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근 지자체들의 움직임처럼 먼저 모바일 신분증을 도입하고 여기에 더해 차후 지역 화폐를 결합하고자 할 경우에는 신속한 결제 기능이 모바일 신분증 도입 단계에서부터 확보돼야 한다. 즉 정부 및 지자체가 여러 개의 서비스를 융복합한 디지털 정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먼저 융복합 서비스의 확장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단계별로 추진한다 하더라도 초기 단계에서부터 융복합 서비스에 필요한 기능들을 담을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채용하는 것이 비용의 중복 지출을 피하고 예산도 절감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모든 가상 자산이 화폐의 기능을 모두 충족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장착하고자 하는 가치의 거래 특성에 맞는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하면 된다. 또한 장차 여러 서비스의 융복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적어도 이러한 계획된 서비스의 거래 특성에 맞는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하는 것이 예산의 중복이나 낭비를 피할 수 있는 길임을 다시금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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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들의 CBDC 발행이 시사하는 점

2018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디지털 화폐(CBDC)에 관한 전향적인 보고서를 냈다. 캐나다, 핀란드 등 인구는 적은데 현금 결제 비중이 낮아 중앙은행의 통화신용 정책 효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국가들에 중앙은행 CBDC의 발행 검토를 권장하는 내용이다. 또한 아프리카 등의 저개발국가들도 금융 인프라에서 소외된 국민들의 금융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CBDC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과 3년이 지난 지금, 이들 국가 외에도 전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CBDC 도입을 준비 또는 검토 중이다.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CBDC는 크게 중앙은행이 전 국민들에게 계좌를 발행해 입출금을 관리하는 은행이 되는 ‘계좌 방식’과 ‘블록체인 방식’ 두 가지로 분류된다. 계좌 방식은 중앙은행 서버에 개인들이 거래 계정을 두고 이에 기반해 통화 유통이 이뤄지는 방법이다. 중국이 시험 중인 CBDC가 이러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법은 다만 중앙은행 서버가 작동을 멈추면 일시에 시장이 멈출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토큰형 CBDC는 블록체인 방식으로 CBDC를 발행해 중앙은행의 서버가 작동을 멈추더라도 시장에서 유통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또한 국가 단위 경제 규모에서도 불편함 없이 작동할 수 있을지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국가의 법정화폐로 채택됐을 때 현행 현금이나 신용카드 등과 비교해 결제 속도가 뒤지지 않는 토큰형 CBDC를 만들 블록체인 기술이 마땅치 않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플랫폼 기반의 가상 자산들, 또는 여기서 파생됐으나 그 기반 기술은 블록체인의 확정 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많은 가상 자산의 처리 속도는 우리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신용카드나 다른 결제 수단들의 상거래 처리 속도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CBDC를 토큰 방식보다는 계좌 방식을 채택하려 하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다.

다행인 점은 최근 퍼블릭 블록체인의 당면 과제를 해결한 대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자가 늘어나고 거래 규모가 증가하면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지는 블록체인 장부의 생성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 DAG 방식 8 의 토큰이다. 현재까지는 로커스체인(Locuschain)9 과 데피닛(Difinity)10 이 가장 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록의 확정에 블록체인 방식이 아닌 DAG 방식을 채용하고 확정 작업에 참여하는 네트워크 단말기의 메모리 요구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특히 로커스체인은 Dynamic Sharding11 기법을 적용해 네트워크 부하도 크게 경감하는 등 CBDC 토큰 방식이 요구하는 최소 기능들을 퍼블릭 블록체인 환경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CBDC 도입의 장점은 소위 통화학자들이 말하는 ‘헬리콥터 머니’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CBDC를 전 국민의 계좌에 직접 입금해 ‘골고루’ 공급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개인들의 계좌 잔고에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해 CBDC 사용을 촉구하는, 즉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G7 국가에 CBDC 도입을 검토하는 작업도 상당 부문 진척이 이뤄지고 있으며 특히 IMF 총재였던 크리스틴 라가르드를 새 총재로 맞이한 유럽중앙은행은 2021년 3월, 앞으로 4년 이내에 CBDC를 도입할 것임을 밝혔다.

법정화폐도 이제 본연의 기능을 넘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기능 확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정부도 국민들에게 복지 관련 예산을 집행할 때 사용자와 사용처, 구매 품목에 대해 특정할 수 있는 기술들을 블록체인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과거 개별적, 독립적으로 작동했던 기능들이 디지털 시대에 융복합돼 사용자들의 효용을 더욱더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만보기는 한때 걸음 수를 세어주는 운동량 측정 기구로 세상에 나왔다. 만보기가 스마트폰에 장착된 이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운동량 측정을 위해 만보기를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단순한 걸음 수 측정은 물론 최근 기간별 걸음 수 및 평균 걸음 수, 소모한 칼로리 정보 등을 제공하고, 심지어는 친구들과의 운동량 비교 등 네트워크에 연결된 스마트폰 만보기 앱은 과거 만보기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마찬가지로 중앙은행 CBDC가 화폐 본연의 기능만을 고집한다면 디지털 가치 거래의 융복합이 급속하게 진행된 이후에는 사용자들에게 외면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 중 하나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제공함으로써 융복합의 블랙홀로 자리매김했듯 블록체인에 기반한 기술은 기존의 모든 가치 거래 수단이 되는 재화나 서비스들을 융복합해 버릴 수 있다. 법정화폐가 요구하는 모든 기능과 역할을 부가 서비스로 장착해 편의성을 앞세운 민간 가상 자산들의 도전에 중앙은행 법정화폐도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심하게는 도태돼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법정화폐를 두고도 통신사가 만든 ‘M-Pesa’12 라는 통신 머니를 거의 전 국민이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필자는 외국 중앙은행들과 CBDC 도입 관련 미팅을 진행할 당시 CBDC가 도입돼 중앙은행 화폐에 헬리콥터 머니 기능이 장착되는 것을 싫어하는 한 중앙은행 총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통화신용정책 수행에 있어서 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싶은데 이러한 정책 수행이 가능해지면 점점 늘어날 정부의 중앙은행의 간섭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일상에서 경험하게 될 디지털 융복합 상품들은 법정화폐를 포함해 모든 가치 거래 수단을 결합해 편의성을 높임으로써 중앙은행도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해야 할 것이다. 중앙은행이 지금의 고유 영역만을 고집한다면 거대한 디지털 시장에서 고립된 섬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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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티 구현을 위한 핵심 인프라

서울 근교에 거주하면서 여의도 소재 대기업에 근무하는 강 모씨는 맞벌이를 하는 까닭에 늘 시간이 빠듯하다.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편도 각각 1시간 거리,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나마 집안의 전자기기들이 디지털로 연결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에 필요한 집안일을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스마트폰에 연동된 앱을 통해 냉장고의 식자재 재고 현황을 자동으로 파악한 뒤 마트에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고 결제하면 퇴근 시간에 문 앞에 배달되도록 할 수도 있다.

위 이야기는 앞으로 전개될 스마트시티의 초기 단계 모습을 상상해 본 것이다. 이를 더 자동화할 순 없을까? 앞으로 냉장고가 스스로 부족한 계란과 우유를 자동으로 주문하고 결제할 수 있기를 원하는 고객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냉장고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 기기가 정보를 가져오거나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 많은 기기가 스마트해지려면 인간의 요구에 맞게 편리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지급 결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은 많은 디바이스를 연결시키고 있다. 2030년에는 전 세계 300억 개의 디바이스가 연결된다고 한다. 디바이스가 자동으로 계측하고 통신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북미에서는 1인당 연결되는 IoT 기기가 13개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디바이스 간 소통이 늘어나면 디바이스 간 신뢰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등장할 수 있다. 편의성을 위해 연결된 디바이스의 개수가 개인별로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네트워크 속도나 식별 문제로 오히려 인간이 디바이스에 종속되는 불편한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 그때는 연결된 디바이스의 보안이 지금보다는 더 큰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기기들이 현금카드나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본인 인증을 필요로 하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기가 누구의 책임하에 있는지, 사용한 금액은 누구에게 결제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모바일 결제를 하더라도 중개인을 통해 거래 신뢰가 확보되는지 등 우리가 그동안 인간을 중심으로 당연하게 여겨온 프로세스를 재구성해 기기에 결제 능력을 부여해야 하는 등 기존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스마트시티를 추진 중인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블록체인은 스마트시티 환경에서 기기 간의 신뢰를 확보하고 중개인 없이도 기기가 결제 능력을 갖추는 데 반드시 필요한 스마트시티의 핵심 인프라다. 특히 스마트시티에서 생성되는 도시 데이터를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기여도에 따라 도시 입주민들에게 배분하는 차세대형 스마트시티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그 유용성이 커진다.

스마트시티 구축은 현 정부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추진 중인 사업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경기도 오산 AI스마트시티에는 블록체인과 개인데이터지갑(PDV) 기술을 결합해 개인들에게 정보의 처분 권한을 돌려주고 개인들이 플랫폼의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정도를 측정하는 인프라가 구축될 예정이다. 이에 참여하는 개인들에게 플랫폼 무료 이용권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플랫폼이 창출하는 수익도 기여도에 따라 배당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 배분을 무기로 사용자들을 불러모을 수 있어 플랫폼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오산 AI스마트시티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부문에 역점을 뒀다. 이러한 비즈니스에 대한 연구개발, 사업 모형의 구축 및 시험 등을 희망하는 기업들을 입주시켜 미래 산업 지형 변화에 미리 대비하는 전초기지로 활용될 것이다.

정책 당국자의 눈으로 본 가상 자산

1. 다른 단어 같은 생각

영어 단어 Risk의 한국말을 물으면 대부분은 위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돌아서서 위험의 영어 단어를 물으면 Danger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한국말 ‘리스크’는 Risk일까? Danger일까? 통상적으로 한국말로 위험은 ‘잘못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잘해야 본전이다. 금융 시장에서 Risk는 ‘그 결과가 특정되지 않는 정도’를 나타낸다. 평균보다 더 높을 확률과 평균보다 더 낮을 확률이다. 기대치와 결과치의 차이가 클수록 리스크가 크다고 말한다. 즉 결과가 기대치보다 아주 낮아서 회피하고자 하는 결과(하방 리스크)로 시현될 확률이 높으면 리스크의 크기는 커진다. 아주 좋은 결과(상방 리스크)가 시현될 확률이 높아도 역시 리스크는 커진다. 이렇게 따져보면 한국말의 위험은 하방 리스크만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하겠다. 일상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사람들은 리스크, 위험 모두를 하방 리스크로 받아들여 무조건 피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가상 자산이 글로벌 시장에 같은 시기에 등장했음에도 가상 자산 법제화 노력이 국가마다 차이가 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가상 자산 법제화를 서두르는 반면 우리는 가상 자산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법제화가 늦어지고 있다. 가상 자산에 내재된 리스크는 모두 위험(하방 리스크로만 간주해버리는)하다고 동일시해버리는 언어적 특성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2. 같은 단어 다른 생각

기술 발전이 산업이나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는 초기 과정에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경제 현상을 나타내는 어휘가 부족하거나 그 정의가 확정되지 않는 용어들이 혼용되면서 빚어지는 일들이다. 플랫폼, 빅데이터, 핀테크, 인공지능, 블록체인, 암호화폐 등의 용어들은 각자의 경험과 지식의 범위나 이해하고 있는 내용에 따라 천양지차다. 정책 당국자가 정책 수요자들과 소통하는 경우 이러한 점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책 당국자가 기대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반응이 정책 수요자인 시민들에게서 나타나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 적지 않게 접하게 된다.

예를 들면 기재부 장관이나 한국은행이 가상 자산을 화폐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은행은 법정화폐를 독점 발행하는 기관으로서 화폐가 아닌 가상 자산에 암호화폐, 가상 화폐와 같이 ‘화폐’라는 용어를 붙이면 국민들에게 혼란을 부를 수 있어 전혀 받아들이지 않겠단 입장이다.

2021년 4월22일 국회 정무위원회 당시, 가상 자산 법제화에 관한 국회의원들과 금융위원장의 대화를 보면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져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암호화폐의 투자과열 양상 및 투자자 보호에 대한 대책’을 물었는데 이때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거래되고 있는 가상 자산은 암호화폐로 볼 수 없고 금융자산으로 볼 수도 없어서 자본시장법으로 규율하는 금융자산의 보호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강 의원이 ‘암호화폐’라는 용어로 부른 가상 자산을 금융위원장은 ‘화폐’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강 의원의 투자자 ‘보호’는 암호화폐 사기 피해와 버블이 꺼졌을 때 일반 가상 자산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를 언급한 것으로 보이나 금융위원장은 가상 자산은 자본시장법에서 정한 금융자산이 아니므로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투자자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지극히 법적인 답을 내놓은 것이다. 같은 단어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혼용하고 있어 의사소통이 되지않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정책 수요자들에게 전달되면서 오해가 증폭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담당 부처가 자신들이 담당하는 업무 범위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에게 전해지는 어감은 ‘가상 자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로 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정책 수요자 입장을 살피는 정부 조직의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이렇게 같은 용어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한 오해와 이에 따른 소모적 논쟁들로 인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왜 우리가 법제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강구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가상 자산 주무부처?

최근 가상 자산 관련 법제화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진전되면서 주무부처를 어디로 할 것인지가 이슈였다.13 현재 총리실 내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10개 정부 부처와 다수의 기관이 가상 자산 문제를 대응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부처가 이 문제를 담당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가상 화폐를 규제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금융위 소관이기에 가장 적합한 부처가 금융위라고 하고 있고 금융위는 가상화폐에 화폐 기능이 있으니 기재부가 주무가 돼야 한다고 서로 떠미는 모양새였다. 이런 주장과 의견들을 살펴보면 가상 자산 전체를 바라보기보다 일부 특성만을 주장의 논거로 삼아 핵심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 논란의 핵심은 가상 자산이 갖는 리스크(불확실성)를 서로 떠안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도입 후 문제가 생겼을 때 정책을 도입했던 담당자가 책임을 져야 할 부문이 크다면 많은 이가 이를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더구나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면 더욱더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싶을 것이다.

가상 자산에 대한 학습이 덜 된, 아니 아직 본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태에서 잠재된 리스크의 모습을 정책 담당자가 그려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는 주로 기술 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가상 자산이 만들어낼 비즈니스 영역의 선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시장은 가상 자산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고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정책 당국이 리스크 하단의 모습(하방 리스크)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장이 협력한다면 정책 당국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에 필요한 법제화를 추진하는 데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정책 당국도 시장과 더 많이 소통하고 공부해 혁신적으로 변화가 일고 있는 가상 자산을 제도권 안으로 끌고 오는 일에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상 자산은 어떤 가치를 장착하느냐에 따라 여러 얼굴을 갖는다. 화폐에서 주식, 채권, 등기정보 등등 많은 가치 거래에서 중개인의 거래 신뢰를 동원하지 않고도 거래가 가능하게 해 미래의 산업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영역이다. 어쩌면 미래 정부에서 가장 큰 영역의 주무부처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인데도 정부 부처들은 서로 주무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웃지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가상 자산을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했을 때 다단계의 기승, 불법 거래의 양산 등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주무부처가 모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큰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가상자산의 주무부처에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슬기롭게 핑퐁 게임을 끝낼 것인가 생각해 보면 지금 부처별로 산재해 있는 지급 결제 업무를 가상 자산 업무와 묶어서 가상 자산 소관 업무로 몰아주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가상 자산 소관 업무가 가상 자산 기반 금융자산 거래는 물론이고 비금융자산의 거래 외에도 통신사업자의 간편 결제, 플랫폼 사업자의 송금 및 결제 업무 등 지급 결제와 관련한 업무를 묶어 준다면 보다 더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업부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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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어디로 가야 하나?

금융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하다. 국가는 신용화폐 취급 허가를 통해 금융업 진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이러한 진입장벽은 역설적으로 금융업을 다양한 산업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경쟁력이 뒤진 분야로 전락시켰다. 진입장벽은 장벽 밖의 사업자가 장벽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줄 수도 있지만 장벽 내의 사업자들이 밖으로 나가는데도 장벽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은행이 기술 진보를 받아들여 금융업의 서비스를 제고하는 것을 핀테크라 통칭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종래에 은행 업무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통해 내 손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결합은 거대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금융을 장착해 막강한 경쟁자로 등장하게 했다. 이를 핀테크와 구분해 테크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의 등장은 금융업의 경쟁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플랫폼 기업의 선두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앞으로 Bank는 망해도 Banking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블록체인으로 구현된 가상 자산이 중개인 없이도 거래 신뢰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은 금융 거래를 포함한 많은 가치 거래를 가상 자산에 장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로서는 금융 산업의 진입장벽 밖에서 가상 자산 기반 가치 거래를 하는 사업자들의 경쟁력이 진입장벽 내에서 금융 거래에 머물러야 하는 금융 사업자의 경쟁력에 비해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전이 되는 시점이 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의 금융산업이 한국을 따라잡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금융 인프라를 중국 대륙 전역에 한국 수준으로 구축하는 것은 각국의 사례를 볼 때 적어도 수십 년은 걸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스마트폰에 기반한 핀테크로 단기간에 이를 따라잡았다. 이제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중국에 비해 얼마나 앞서 있는지, 과연 앞서 있기는 한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금융업이 기존 인프라 위주의 산업지형으로 짜인 데 반해 중국은 핀테크에 기반한 미래형 금융 인프라 도입에 집중한 데 따른 결과라 할 것이다.

가상 자산이 쓸어 담을 금융 거래 및 가치 거래의 대상은 증권, 채권 등 금융상품은 물론 비금융상품 및 서비스를 망라하며 이들을 특성에 따라 융복합해 가치 거래 산업의 지형에 혁신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중개인 없이도 금융 거래를 포함, 가치 거래를 구현 가능한 가상 자산이 등장한 지금이 산업 지형에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불러올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상 자산에 관한 기본법 제정을 서둘러 가상 자산 사업을 영위하려는 사업자들에게 필요한 생태계 및 규제 환경을 마련해 주고 금융업에도 가상 자산 기반 가치 거래 비즈니스 기회를 개방해 우리나라 가상 자산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 암호화폐 거래 및 채굴 금지라는 강수를 들고나왔고 미국, 인도 등에서도 규제 움직임이 커지면서 국내 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와 실명 계좌 발급 등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하는 등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리 두기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연일 보도되고 있다. 보수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국내 은행들의 몸 사리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규제 움직임에 눈이 가려 경제 생태계의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더욱더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는 가상 자산이 금융업에 가져다줄 미래 먹거리로서의 잠재력도 놓아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국의 조치도 인민은행의 CBDC 출시를 염두에 둔 선제 조치로 풀이되고 있고 각국의 가상 자산 관련 법제화 등 인프라 구축 경쟁은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 자산을 활용한 금융자산의 진화, 가상 자산을 활용한 기존 금융 거래 행태의 혁신 등 금융회사들이 선도해야 할 분야를 금융업권 밖의 경쟁자들이 부가 서비스 중의 하나로 장착해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미래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다.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 ybmoon519@gmail.com
필자는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SB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Finance)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미국 경제 예측 전문기관인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 전문 컨설팅회사 LECG와 CompassLexecon에 근무하며 거시경제 및 미시적 시장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나이스평가정보 CB연구소소장으로 일하며 한국은행 가계부채 DB, 금융위 DSR 등 금융 정책 인프라 구축에 기여했다. 2018년부터 아프리카 말라위 정부와 CBDC 발행을 위한 기술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현재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