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언택트 소비 열풍에 힘입어 급성장한 라이브 커머스 전문 플랫폼 ‘그립’은 어떻게 코로나 이전에 시장 기회를 포착하고, 빅테크와 대형 유통사보다 한발 앞서 선발주자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나?
1. 업계 공식을 따르지 않고 엔드 유저에게 가장 편리한 방식의 영상 커머스 경험을 구현할 방법을 탐색했다. 판매자와 소비자 행동을 관찰한 뒤 이들을 플랫폼에 록인(lock-in)했다.
2. ‘누구나 팔 수 있어야 한다(Everyone can sell)’는 명확한 사업 철학을 바탕으로 소상공인 들에게 방송에 대한 자율권을 주고,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시장이 라이브 커머스를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3. 강한 연결(strong tie)이 가지는 가치에 주목해 옆집 언니, 형 같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육성했다. 취향과 관심을 공유하는 팬덤 커뮤니티로 진화하면서 자연스레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고객군을 세분화했다.
“라이브 커머스, 그걸 왜 하죠? 그냥 유튜브, 인스타그램으로 물건 팔면 되는 거 아니에요?”
2019년 2월, 그립(Grip)의 김한나 대표(41)가 국내에서 처음 모바일 생방송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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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플랫폼을 론칭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제조업자들에게 하루 백여 통의 이메일과 DM(다이렉트메시지)을 보내도 단 한 통의 응답도 돌아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이미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이 판매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강력한 ‘쇼핑 플랫폼’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듣도 보도 못한 앱에 입점해달라는 요청에 상인들이 화답할 리 없었다. 실시간으로 영상통화하듯 고객과 소통할 수 있고 바로 주문, 결제가 가능하다는 라이브 커머스의 강점을 설명해도 그것만으로 바쁜 소상공인들의 발길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약 6개월간 김한나 대표가 인턴 한 명을 데리고 여기저기 발품 팔며 모은 판매업체는 겨우 49곳. 어쩌다 답장이 온 업체가 있으면 아무리 외진 시골이어도 기차를 타고 한걸음에 찾아갔지만 헛걸음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렇게 힘겨운 첫발을 내디딘 그립의 위치는 2년 만에 180도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이 급감한 오프라인 자영업자들의 판로를 열어주고 막힌 숨통을 틔워주면서 온라인 비대면 트렌드의 선봉에 선 것이다. 2020년 한 해 소상공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열띤 응원을 받은 결과, 2021년 2월 기준 그립에 입점해 있는 업체는 1만여 곳으로 급증했다. 2020년 한 해 거래액은 243억 원을 돌파했고, 월별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0배 뛰었다. 플랫폼에 들어오겠다고 요청하는 판매자들만 하루 100여 곳이 넘을 정도다.
달라진 건 숫자만이 아니다. TV홈쇼핑을 스마트폰으로 옮겨놓은 것 아니냐, 다른 영상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뭐가 다르냐는 각종 질문에 시달리던 라이브 커머스는 이제 더는 이런 질문을 받지 않고도 위상을 인정받는 ‘유통업계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네이버, 카카오 출신 8명의 외인구단으로 시작한 그립의 창업자들은 한발 늦게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들과의 경쟁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수많은 개인 인터넷 쇼핑몰과 아마존, 쿠팡 등 오픈마켓, 유튜브 등 글로벌 영상 플랫폼과 SNS까지 가세한 이커머스 격전의 한복판에서 이름도 생소한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과연 그립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라이브 커머스의 잠재력에 눈 뜬 대기업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경쟁 우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코로나로 속도가 빨라졌을 뿐 코로나 없이도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김 대표를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만났다. 언택트 소비 열풍을 업고 비상한 회사의 사업 전략과 비전은 무엇인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지금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