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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고객에게 집착하면 보이는 것들

이승건 | 316호 (2021년 03월 Issue 1)
2015년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간편 송금 서비스를 선보이며 출발한 토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토스가 현재 선보이고 있는 서비스는 약 40여 개. 흥미로운 점은 이 40여 개의 서비스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서비스라는 점이다. 토스는 모바일 청첩장, 소액 기부하기, 자동차 이용 프로그램 등 자동차 이용 프로그램 등 약 120개의 서비스를 토스 앱을 통해 선보였다.(이 중 80개가 없어짐)

불과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무려 120개의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통해 빠르게 고객과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검증했기 때문이다. MVP는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핵심적 기능을 갖춘 제품을 뜻한다. 지금은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한 스포티파이, 에어비앤비 역시 MVP로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많은 국내 스타트업이 MVP를 활용해 사업성을 검증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금융업계에서 MVP란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아직도 다수의 금융 회사는 흔히 말하는 ‘빅뱅식 서비스 출시’를 선호한다. 여기서 빅뱅식 서비스 출시란 고객이 어떤 기능이나 서비스를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공급자 입장에서 ‘그럴 것’이라는 가정에만 기대 오랜 기간, 많은 자원을 투입해 한 번에 온전한 기능을 제공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 같은 방식은 한 번에 고객의 마음을 꿰뚫어 봐야 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크다. 자칫 새로 개발한 서비스가 고객의 니즈와 다를 경우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인 작업이 공사(空事)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서비스 출시 후 고객이 원했던 기능이 출시한 것과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고객 니즈에 맞춰 이를 다시 개발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토스팀은 ‘빅뱅 출시’ 경험이 거의 없다. 토스팀이 5명 규모였을 때부터 시작해 유니콘이 되고 구성원 숫자가 800여 명에 이른 지금까지 그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MVP로 일부 유저에게 서비스를 오픈하고 사용자 경험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몇 번의 작업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1800만 유저에게 서비스를 오픈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토스’는 대기업 경쟁자들보다 실패를 더 ‘저렴하게’ 만드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불확실성이 높은 핀테크 등의 신산업의 경우, 얼마나 효율적으로 학습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시간과 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경쟁사를 생각하면 저렴한 실패비용과 빠른 학습은 생존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셈이다.

서비스를 전체 오픈한 이후에도 서비스의 수명을 장담할 수 없다. 론칭 후 불과 4개월 만에 토스에서 사라진 기능도 있었다. 토스에서는 이런 경험들을 ‘실패’가 아닌 학습을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 실제로 반기를 점검하고 다음 반기를 준비하는 행사가 6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데, 경영 성과 자체에 대한 수상은 없지만 ‘베스트 러닝 셰어 상’은 있다. 실패를 통해 새로운 학습을 할 기회를 준 사례를 오히려 치하하는 것이다. 또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더 과감한 실험에 도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개인이나 개별 팀이 아닌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고과를 평가한다. 간편 송금, 무료 신용등급조회 등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나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가 아닌 ‘고객이 진짜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스팀의 MVP는 단순히 ‘사업성 있는 아이템’을 찾는 과정이 아닌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내려는 ‘고객 집착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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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대표
필자는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일하던 중 2011년 회사를 설립했다. 8번의 시행착오 끝에, 2015년 출시한 아홉 번째 서비스 ‘토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5번째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다. 간편 송금에서 시작한 토스는 현재 약 1800만 명이 이용하는 모바일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고 지난해부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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