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소비자는 지켜본다, 기업이 약속을 잘 지키는지

인종차별 철폐를 똑같이 외쳤는데도
넷플릭스는 박수받고, 보그엔 역풍 분 이유

315호 (2021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지난해 여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가 미 전역을 들끓게 한 이후 미국 기업은 달라졌고, 달라져야만 했다. 소비자, 특히 MZ세대가 기업이 인종 평등의 가치 실현에 나설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당위적 선언만으로는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기업 내부에서부터 인종주의를 몰아내고, 구체적인 계획하에 사회적으로 인종 정의를 추구하는 노력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담대한 변화를 결심했다고 해서 하룻밤 사이에 결실이 맺어질 리 없다. 소비자는 기업이 약속을 실천하는지 냉철하게 지켜본다. 많은 기업이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고 똑같이 천명했음에도 누구는 박수받고, 누구는 오히려 역풍에 시달리는 이유는 일관된 태도와 오랜 시간 속에서 숙성되는 진정성의 유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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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기업이 올인하다시피 하는 인종차별 근절 활동은 아직 한국 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인종 문제가 결국 사회 속에 깊게 뿌리내린 집단 간 갈등과 배제, 반목, 혐오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미국 기업이 취하는 전략과 행동은 한국 기업에 많은 함의를 던진다. 한국 기업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젠더, 세대, 정치적 다름 간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에 동참하는 미국 기업들의 행보는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먼저 본아페티(Bon Appe'tit) 사례를 보자. 본아페티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 잡지다. 뉴요커, 보그 등을 보유한 미디어그룹 콘데나스트가 발행한다. 본아페티에 실린 레서피는 에피큐리어스(epicurious.com)라는 웹사이트에 올라간다.

요즘 본아페티와 에피큐리어스는 ‘아카이브 수리 프로젝트(Achive Repair Project)’라는, 전례 없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1965년 이후 쌓아온 3만5000여 개 레서피를 뒤져 인종차별주의적인 내용을 찾아 수정하는 작업이다. 일례로 이 잡지는 앞으로 쌀국수 샐러드 레서피의 제목에 ‘아시안(Asian)’을 넣지 않기로 했다. 또 인도에서 유래한 커리 양념인 바두반(Vadouvan)에 대해서도 ‘이국적인(exotic)’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 잡지가 이처럼 인종차별주의적 콘텐츠를 솎아내기로 한 것은 최근 뼈아픈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자 미 전역에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이하 BLM)’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BLM 시위는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 60여 개국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는데, 물리적 공간만큼이나 온라인에서도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뜨거웠다. 그중에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성토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종차별적 행보로 전격 사임

본아페티도 그중 하나였다. 그간 많은 유색 인종은 이 잡지가 그들의 음식 문화를 잘못 소개하거나 백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조리법을 바꾸는 일이 적지 않다고 느껴왔는데, BLM 운동을 계기로 구체적인 고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0년부터 편집장을 지낸 애덤 라포포트가 과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종차별주의적 게시물을 올린 것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의 아내가 벌겋게 술 취한 남편 사진에 #보리쿠아(boricua, 푸에르토리코인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남편과 공유했던 것이다. 사진에서 라포포트는 두건과 야구모자, 커다란 체인 목걸이 등 푸에르토리코인의 전형적인 패션으로 간주되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대중, 그리고 잡지 제작에 참여하는 요식업계 전문가들의 격한 반응에 라포포트는 바로 사임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 잡지의 인종차별과 관련한 고발은 계속됐다. 조직 내에서 유색인종 직원에 대한 차별이 횡행했으며,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백인 출연자와 달리 유색인종 출연자에게는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은 일 등이 폭로됐다. 일부 유색인종 직원은 사표를 냈고, 몇몇 인기 전문가는 더 이상 본아페티와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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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아페티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식 사과하며 “우리 브랜드에서 인종차별을 몰아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번 잃은 신뢰는 되찾기 어려운 법이다. 지난 연말에는 아이티의 전통 음식인 수프 주무(joumou)를 오인한 레서피를 소개했다가 바로 대중의 거친 항의를 받고 또 한 번 사과해야 했다. 아이티인들은 새해 첫날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쇠고기와 감자를 넣고 끓인 주무를 먹는다. 그런데 이 잡지는 쇠고기와 감자 대신 코코넛 밀크와 시나몬, 절인 견과류를 넣은 주무 레서피를 ‘아이티의 전통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음식에 담긴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세밀하게 신경 쓰지 못한 셈이다.

지난해 여름 BLM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간 이래 인종 문제에 올바르게 처신하지 않은 바람에 대중의 철퇴를 맞은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꽤 인기 있는 크로스핏(CrossFit, 여러 종목의 운동의 장점을 섞은 피트니스)을 처음 고안해 낸 그렉 글래스먼 크로스핏 CEO는 SNS에 조지 플로이드를 조롱하는 글을 올리고 화상회의에서 “나는 플로이드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CEO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리복 등 브랜드를 비롯해 1000여 곳의 제휴 헬스클럽이 크로스핏과의 파트너십을 중단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6월 흑인 여가수 키비(Kirby)는 틱톡에 ‘비인종주의 아침 식사를 만드는 법’이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이틀 후 식품회사 퀘이커오트는 자사의 팬케이크 믹스 ‘앤트 제미마(Aunt Jemima)’의 흑인 여성 이미지를 삭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 제품은 1889년 첫 출시됐을 때부터 유모 혹은 가정주부로 보이는 흑인 여성을 브랜드 이미지로 사용했다. 초기 이미지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스칼릿의 흑인 유모와 유사했다. 이후 몇 차례 중산층 흑인 여성 같은 이미지로 개선했지만 여전히 유모나 하녀 같은 뉘앙스를 풍겨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그치지 않았다. 틱톡 영상은 키비가 냉장고에서 앤트 제미마 팬케이크 믹스를 꺼내 싱크대 개수대에 쏟아버린 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심지어 아침 식사에서도!”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상은 180만 회 이상 조회되고 82만 건이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퀘이커오크는 ‘인종 평등을 향한 진전을 이루기 위해’ 제품 이미지와 제품명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최근 몇 년간 이 회사가 “앤트 제미마의 이미지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로만 강조할 뿐 변화를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에 BLM 운동이 한창인 와중에 나온 이 같은 결정은 늦은 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페이스북은 인종 평등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와 흑인 기업(Black Owned Business)에 수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및 그의 추종자가 발신하는 인종차별적이고 거짓 사실에 기초한 포스팅을 내버려 두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1 또한 아마존이 BLM 운동에 대한 지지 성명을 내자 SNS에는 해당 성명과 아마존이 근로자 처우를 등한시한다는 뉴스 헤드라인을 섞은 밈(meme)2 이 돌았다. 아마존 물류센터 직원은 주로 유색인종인데 그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인종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대중의 반응이었다.

“기업은 사회 변화를 위해 나서야”

거리에서 벌어지는 BLM 시위는 지난해 가을 이후 잦아들었지만 BLM 운동이 요구하는 시대 정신에 부응하려는 미국 기업의 노력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태도로 인종 평등 실현에 참여하고자 한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문구를 빌딩 외벽 및 SNS 공식 계정에 내거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시민단체에 거액을 기부하고, 흑인 기업을 지원하며, 조직 내 다양성 및 포용성(Diversity and Inclusion)을 높이는 노력에 착수하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둬왔던 비즈니스 관행은 사라지고, 정치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유명한 일성(一聲), “인종주의 사회에서 비인종주의자(non-racist)가 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반인종주의자(anti-racist)가 돼야 한다”를 몸소 실천하려는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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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의지가 워낙 뜨겁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기업이 너도나도 다양성과 포용성 이슈에 특화된 컨설팅 회사, 특히 흑인 전문가가 이끄는 회사를 찾아 헤매거나 흑인 임원에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조직 내에 다양성 및 포용성 실현 임무를 맡기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코칭 전문 업체 어워큰(Awaken)의 미셀 김 CEO는 “흑인 전문가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자 아예 흑인이 경영하는 컨설팅 회사 및 흑인 컨설턴트의 목록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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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BLM 운동에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는 이유는 고객, 특히 소비자의 주축을 이루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인종차별 문제에 제대로 처신하지 않는다면 평판을 잃는 것은 물론 사업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 본아페티의 인재 유출 사태에서 보듯 다양성 및 포용성을 갖추지 않은 회사는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기업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MZ세대 전문 조사 기관 와이펄스가 지난해 6월 미국의 16∼34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의 세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인종차별을 꼽았다.4 BLM 운동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응답자의 55%는 BLM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거나 알고 있다고 했고, 69%는 브랜드가 BLM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은 브랜드가 소셜미디어에서 지지 성명을 밝히고(59%), 인종 정의 활동을 펼치는 단체에 기부하며(58%), 고용 등 사업 방식을 개선하고(51%), 인종차별의 원인에 대해 논하는 콘텐츠를 확산시키며(51%), 흑인 리더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51%)를 원한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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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조사 기관 모닝컨설트의 보고서도 Z세대가 기업에 갖는 사회적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5 1997년에서 2012년 사이에 출생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68%가 BLM 운동이 세상을 보는 자신의 관점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76%는 기업이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치적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76%가 기업과 기업 리더는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정부에 인종차별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업이 BLM 운동을 공개 지지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도 82%에 달했다.

BLM 운동은 소비자의 구매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66%가 BLM 운동에 대한 기업의 대처가 향후 해당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구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 BLM 운동에 대한 지지도는 세대별로 차이를 보인다. 베이비붐세대의 56%, X세대의 62%, 밀레니얼세대의 70%, 그리고 Z세대의 81%가 BLM 운동을 지지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지지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래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면 BLM 운동의 정신과 발맞추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흑인 경제를 돕고자 흑인 비즈니스에서 소비하겠다는 의지도 Z세대(24%)가 가장 높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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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업은 BLM 운동에 어떻게 동참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와 내용과 방법이 진정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실제 미국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슬기로운 BLM 동참 ①
빈말은 금물, 구체적인 행동 계획 있어야

지난해 6월 팀 쿡 애플 CEO는 트위터에 올린 영상을 통해 직접 애플의 ‘인종 평등 및 정의 이니셔티브(Racial Equity and Justice Initiative)’를 발표했다. 영상에서 쿡은 1950∼60년대 흑인 시민권 운동의 본산인 앨라배마주(州)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거론하며 “이제는 변화할 때이며 애플이 변화에 힘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1억 달러(약 1100억 원) 규모의 이니셔티브로 유색인종, 특히 흑인이 겪는 기회와 존엄성에 대한 구조적 장벽에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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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년이 지난 올해 1월, 애플은 1억 달러의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했다. 애플은 흑인 대학 6 을 위한 글로벌 혁신 및 학습 허브인 프로펠센터(Propel Center) 건립에 25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올해 말에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Apple Developer Academy)를 열 예정이다. 7 이 아카데미를 통해 애플은 30일짜리 입문 프로그램과 초기 사업 계획을 돕는 10∼12개월짜리 집중 프로그램을 매년 1000명의 학생에게 제공한다. 또 여성 및 유색인종에 투자하는 뉴욕의 벤처캐피털 할렘캐피털(Harlem Capital)에 1000만 달러, 소외 계층 기업에 대출해주는 은행 사이버트윌리엄생크(Siebert Williams Shank)에 25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흑인에 대한 차별을 타파하자” “조직 내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이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대중은 기업의 이러한 입장 표명을 반기지만 말한 대로 행할 것이라고 믿어주진 않는다. 대중은 구체적인 계획을 묻고, 실제로 실천하는지 지켜본다. 애플이 반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니셔티브의 첫 번째 세부 계획을 공들여 수립해 발표한 것도 이러한 대중의 태도를 잘 알기 때문이다.

애플 외 다른 기업들도 채용과 승진, 흑인 경제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추세다. 페이스북은 건설회사, 마케팅 업체 등 다양한 흑인 회사에 연간 1억 달러를 지출하고, 2023년까지 흑인 및 라틴계 직원 수를 두 배로 늘리며, 향후 5년 내 임원진에서 흑인 비중을 30%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펩시는 2025년까지 관리자급(manager)에서 흑인 비중을 30%까지 높이고, 최소 100명의 흑인 경영진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흑인이 경영하는 하청업체로부터의 구매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페이팔은 5억 달러의 기금을 마련해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주도하는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고, 소외 계층에 주력하는 은행 및 신용조합을 지원하기로 했다. 에스티로더는 향후 5년 내 흑인 직원 비율을 미국 인구 중 흑인 비율(약 15%)과 동일한 수준으로 높이고, 향후 2년 내 흑인 대학에서의 채용 활동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표했다. 아디다스는 신규 채용 인원의 30% 이상을 흑인 및 라틴계에 할당하기로 했다.

인종 정의에 반한다는 대중의 비판을 수용하거나 흑인 사회를 도우려는 구체적인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은 흑인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를 야기한다는 우려가 제기된 자사의 얼굴 인식(face recognition) 소프트웨어를 경찰이 사용하는 것을 1년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IBM은 한발 더 나아가 인권 및 개인정보 침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를 감안해 더는 안면인식 기술 개발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미자동차경주협회(NASCAR)는 경기장 내에서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가 주로 소지하는 남부연합기 사용을 막을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NASCAR는 2015년부터 남부연합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했지만 실제 사용을 막진 않아 비판을 받아왔다.

플로이드 사건이 벌어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본사가 있는 유통업체 타깃은 이 지역의 흑인 중소기업에 1만 시간 분량의 컨설팅을 제공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BLM 시위 관련 폭동 사태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월마트는 1억 달러를 들여 ‘인종평등센터(Center on Racial Equity)’를 짓기로 했다. 이는 소외 계층을 위한 직업 훈련과 형사 사법 개혁 등 인종차별 철폐 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피트니스 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핏빗은 코로나19 등 상대적으로 흑인 건강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치는 요인과 해결책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핏빗 앱에서 흑인 인플루언서를 더 많이 드러내겠다고 밝혔다. 이미지 검색•공유 플랫폼인 핀터레스트는 사용자가 BLM 운동의 취지에 대해 잘 배울 수 있도록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검색 결과에는 광고를 삭제하기로 했다. 유튜브는 흑인 창작자의 작품을 지원하고 홍보하는 데 쓸 1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마련하고, 흑인 창작자가 백인 우월주의 및 인종차별적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슬기로운 BLM 동참 ②
오명을 벗는데도,명성을 얻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다고 해서 당장 대중으로부터 진정성 있게 사회 변화에 나선다고 인정받을 순 없는 법이다. 오명(汚名)을 벗는 것 역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최근 보그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표지 모델로 내세웠다가 한바탕 곤혹을 치렀는데, 그 배경에는 이 잡지가 유색인종을 차별, 배제해왔다는 오래된 인식이 놓여 있다.

1988년부터 보그 미국판의 편집장을 맡아왔고 현재는 콘데나스트의 글로벌 최고 콘텐츠 책임자이자 보그의 글로벌 편집 책임자인 안나 윈투어는 BLM 시위가 들불처럼 번진 지난해 6월 직원들에게 인종차별을 사과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흑인 에디터, 사진작가, 디자이너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았고, 흑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콘텐츠를 게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보그는 2020년 9월 호를 흑인 예술가와 모델, 사진작가 등을 집중 조명하는 316쪽짜리 특별판으로 제작했다. 이 호(號)의 제목은 ‘희망(Hope)’이었다.

하지만 대중, 그리고 보그 내부에서조차도 이러한 보그의 ‘전향’을 진실된 것이라고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18명의 전현직 직원들은 뉴욕타임스와의 익명 인터뷰에 응해 윈투어의 인종차별 행위를 고발했다. 8 그중 한 전직 흑인 직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보그스럽다(That’s Vogue)’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마르고 부자이고 백인’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BLM 시위가 한창 벌어지던 때 콘데나스트가 인종 형평성과 관련한 대규모 회의를 열었는데, 윈투어가 회사 내 다양성 및 포용성위원회(diversity and inclusion council)의 위원장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보그 표지가 백인 위주로 제작된다는 점은 오랫동안 지적돼온 문제다. 2019년 디지털 매체 푸딩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05년 사이 81명의 보그 표지 모델 중 흑인은 3명뿐이었다. 9 이후 보그는 좀 더 자주 흑인 여성을 표지에 세웠지만 그들 대다수는 피부가 밝은 편이었고 사진 촬영 시 조명 처리나 사후 보정을 통해 실제보다 피부톤이 밝게 표현됐다. 보그는 지난해 8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체조 선수인 시몬 바일스를 표지 모델로 세웠는데, 흑인 여성인 바일스의 피부 역시 밝게 처리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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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M 운동을 계기로 소셜미디어에서는 백인 중심적인 보그 표지에 대한 반대 운동도 벌어졌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학생이자 모델인 흑인 여성 셀마 노어가 자신의 사진을 보그 로고와 합성한 사진을 SNS에 올리며 해시태그로 ‘보그챌린지(#VogueChallenge)’를 게시 10 한 이후 세계 각지에서 유색인종들이 보그에 인종 다양성을 요구하는 의미로 보그챌린지 운동에 동참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SNS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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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와중에 해리스 부통령 표지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피부색이 평소보다 밝게 표현된 사진에 대중은 곧장 “보그가 또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을 했다”고 비난했다. 전적(前績)이 있기 때문에 해리스 부통령의 피부 톤이 유색인종 중에서도 밝은 편이라거나 인위적인 수정을 하지 않았다는 보그 측 해명은 대중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분위기다.

넷플릭스는 보그와는 반대로 진정성 있게 인종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로 인식되는데, 그 이유 역시 ‘시간’에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6월 초 56편으로 구성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컬렉션을 공개하며 정기구독 회원이 아니어도 무료로 시청할 수 있게 했다. 이 중에는 ‘오렌지 이즈 블랙’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등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다수 포함돼 있다. 2013년부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선 넷플릭스는 ‘모두를 위한 콘텐츠(something for everyone)’라는 브랜드 지향점에 걸맞게 흑인 콘텐츠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를 만든 흑인 여성 영화감독 에이바 듀버네이는 이러한 넷플릭스를 “세계에서 가장 앞섰을 뿐 아니라 가장 왕성한 흑인 이미지 배급자”라고 평가한다. 11 아이비리그에서 흑인 대학생들이 인종차별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을 제작한 흑인 영화 제작자 저스틴 사이미언은 “이 드라마 같은 작품은 이제 어느 채널에서든 볼 수 있는 하나의 장르가 됐지만 2015년 넷플릭스와 계약을 할 당시만 해도 이런 류의 작품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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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흑인 콘텐츠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조직 내부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흑인 임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급속한 성장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던 2015년, 콘텐츠 구매 권한을 가진 임원 중 5명이 흑인이었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담당한 타라 던컨이라는 흑인 여성 임원도 있었다. 이들은 흑인 감독이나 배우에게 기회를 주며 흑인 콘텐츠 제작에 힘을 실었다.

넷플릭스는 흑인 서사를 제작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오랫동안 백인의 콘텐츠라 여겨지던 영역에서도 ‘인종 개방’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최근 공개한 오리지널 콘텐츠 ‘브리저튼’은 19세기 초 영국 런던의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임에도 남자 주인공 등 주요 인물이 흑인으로 설정됐다.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끈 이 작품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브리저튼의 성공은 영국 시대물(British costume drama)이 번성하려면 유색인종이 삭제되거나 인종차별의 희생자로서만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12

많은 기업이 앞다퉈 흑인 경제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하는 와중에도 ‘준비된’ 넷플릭스가 가장 빛났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6월 자사의 현금 보유금의 2%에 해당하는 최대 1억 달러를 흑인 고객에게 중점을 두고 서비스하는 금융기관에 예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흑인들이 저리로 은행 대출 등을 받을 수 있게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것은 BLM 운동 이후 여러 기업이 추진하는 방안인데, 넷플릭스는 이를 플로이드 사망 전인 지난해 4월부터 준비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넷플릭스 리더십에 다양성을 높이자는 내부 논의를 진행하던 중 한 직원이 흑인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은행을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던 와중에 플로이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넷플릭스는 우선 흑인 경제개발 이니셔티브(Black Economic Development Initiative)에 2500만 달러, 흑인 인구가 많은 미시시피주 잭슨의 호프크레디트유니언(Hope Credit Union)에 1000만 달러를 예치하기로 했다.

슬기로운 BLM 동참 ③
인종 정의 실천에 완성이란 없다

갭(Gap Inc.)은 다양성 및 포용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회사다. 내부적으로 젠더 평등과 성별에 따른 격차가 없는 동일 임금 정책 등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2007년부터 유색인종 청년을 대상으로 ‘디스 웨이 어헤드(This Way Ahead)’ 프로그램을 실시해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직업을 구하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16∼24세 유색인종 청년들에게 갭 매장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와 직업 멘토링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학자금을 마련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이 회사의 정규직 직원으로 일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졸업생이 성인이 돼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비율은 72%로, 일반 청년(55%)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된 바도 있다. 또 갭은 2025년까지 신규 채용하는 신입 직원의 5%를 이 프로그램 참여자에게 할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종 정의 실천에 ‘완성’은 없다. 현재의 노력에 만족하며 변화하고 진화하는 대중의 사회의식을 외면한 판단을 내린 순간 평판에 금이 간다. 갭은 지난해 가을 “토큰주의(tokenism)로 흑인을 대한다”는 비판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토큰주의란 여성, 소수 인종, 성 소수자 등 소수 집단의 구성원을 차별한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목적에서 소수 집단 구성원의 극히 일부만을 자신의 집단 내에 포함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으로 미국 내 인종주의가 해소됐다고 여기는 것이 토큰주의의 대표적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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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갭이 지난 여름 흑인 뮤지션이자 패션 디자이너 케인 웨스트와 10년 계약을 맺고 ‘이지 갭(Yeezy Gap)’ 컬렉션을 선보인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이 소식에 사람들은 “그러면 ‘텔파’는 어떻게 됐느냐”고 질문했고, 이후 갭이 텔파와의 협업에 관한 구두 계약을 파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갭에 비난이 쏟아졌다. 텔파는 라이베리아 출신 흑인 디자이너 텔파 클레멘스가 2005년 뉴욕에서 선보인 젠더리스(genderless) 가방 브랜드다. ‘모두를 위한다(not for you, for everyone)’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텔파의 핸드백의 가격은 150∼257달러로, BLM 운동의 흐름을 타고 인종 정의의 가치를 상징하는 대상이 됐다. 라틴계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 하원의원 등 유명 인사가 이 브랜드를 애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제품이 품절됐을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갭과 텔파의 협업은 2019년부터 논의됐고, 지난해 봄 프랑스 파리의 매장 쇼윈도에는 텔파 클레멘스의 사진과 갭과 텔파의 로고를 결합한 이미지가 디스플레이됐다. 하지만 이후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프로젝트 일정은 지연됐다. 텔파는 갭에 컬렉션을 위한 디자인을 전달했지만 갭은 협업 계획을 취소하며 이미 들어간 비용의 25%만 보상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텔파와 갭 사이의 이견이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갭이 케인 웨스트와의 협업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에 갭은 대중으로부터 “‘흑인은 1명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텔파를 밀어낸 것이냐”는 거센 항의를 받았다.

시대 정신에 깨어 있는 기업

뛰어난 기능만으로 브랜드가 사랑받는 시대는 지났다. 사회적 불의에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MZ세대는 브랜드가 자신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공유한 가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동료’가 돼 주길 원한다. 현시점에서 미국 소비자가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가치는 ‘인종 정의’다. 당위적인 BLM 지지 선언만 달랑 내놓는 것은 공허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풍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미국 기업들은 처절하게 깨닫는 중이다.

기업 내부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하고 구체적인 계획하에 인종차별 개선을 향한 사회적 활동에 나설 때,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을 장거리 경주로 여기며 일관된 자세로 임할 때 브랜드는 비로소 소비자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브랜드로 명성을 쌓고자 한다면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행동을 적극 옹호해야 한다. 이는 약간의 위험을 수반하지만 소비자 충성도로 보상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지타 메논 뉴욕대 스턴경영대 교수와 티나 키슬러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영대 교수의 조언이다. 13

인종 다양성은 한국 사회에서도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이슈다. 매년 2만 건 이상의 국제결혼이 나오고 있고, 국내 거주 외국인도 전체 인구의 6%에 해당하는 250만 명을 돌파했다. 또 해외, 특히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라면 응당 인종 정의의 가치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보여야 한다. 지난해 여름 미국 소비자들은 삼성전자 미국법인의 소셜미디어에 “BLM 운동에 대한 삼성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후 삼성은 소수 인종 직원들이 겪는 어려움을 경청하고 직원 및 소수 인종 사회에 대한 지원책을 논의하는 공개 포럼을 연 후 그 내용을 대중에 공개했다.

한편 ‘인종 갈등’에서 인종을 젠더, 세대, 정치적 다름으로 바꿔보면 한국 기업이 맞닥뜨린 당면 과제가 된다. 불과 얼마 전 한 장관 후보자는 “여성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국무총리실은 불법 촬영물을 ‘누구나 한 번쯤 간직했던 비밀’로 묘사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시대정신에 민감하게 깨어 있고, 그와 관련해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한국 기업에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점에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에 동참하는 미국 기업들의 행보가 한국 기업에 시사점을 줄 것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