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디지털 헬스케어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는 디지털 기술도 엄연히 치료제의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관련 임상 연구와 FDA 인허가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스마트폰 앱, 게임, AI, VR 등 소프트웨어에 기반해 환자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가 점점 각광받고 있다. 특히 약이나 주사 등과 달리 디지털 치료제는 수백만 명에게 한 번에 배포할 수 있다는 확장성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들에 큰 시장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전통적인 제약사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개발 기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덜 침습적이면서, 기존 약의 효과를 보조하거나 높여주는 디지털 치료제 기업들에 대한 투자 및 제휴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 있다.
“과연 ‘디지털 헬스케어’로 환자를‘치료’할 수 있을까?”최근 헬스테크 분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로 꼽히는 디지털 치료제(DTx, digital therapeutics)가 시장에 던지는 화두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와 헬스케어에 스마트폰, 웨어러블,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블록체인 등의 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면서 태동한 분야다. 그런데 이런 디지털 기술로 환자 데이터를 측정, 공유, 분석, 전송할 수는 있겠지만 치료까지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어야 한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제 엄연히 ‘치료제’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새로운 종류의 약, 디지털 치료제흔히 약이라고 하면 우리는 입으로 삼키는 알약, 피부에 넣는 주사약을 떠올린다. 현재 의료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약의 범주만 살펴봐도 그렇다. 1세대 신약은 알약이나 캡슐의 형태로 제공되는 저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 2세대 신약은 주사제로 맞는 단백질 혹은 항체, 3세대 신약은 세포 치료제다. 그런데 이제는 한 가지 종류의 약을 추가해야 한다. 바로 ‘디지털 치료제’다.
디지털 치료제는 말 그대로 디지털 기술 그 자체를 환자를 치료하는 약처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게임, VR, 챗봇, AI 등 ‘소프트웨어’에 기반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디지털 치료제라 정의한다. 아직은 연구 개발 초창기에 있는 분야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9개국에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수십 개 회사의 연합체 ‘디지털 테라퓨틱스 얼라이언스(DTA, Digital Therapeutics Alliance)’가 2018년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의 정의와 특성은 아래와 같다.
- 질병을 예방, 관리, 혹은 치료하는 고도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독립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른 약이나 기기와 함께 사용 가능- 효능, 사용 목적, 위험도 등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함과거에도 소프트웨어로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가 독립적인 분야로 다뤄지게 된 것은 관련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인허가를 받는 사례가 늘면서 이런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약의 한 종류’로 자리 잡게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 가장 앞선 회사 중 하나이자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치료용 게임을 개발해 FDA 허가 심사를 받고 있는 알킬리 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의 CEO 에디 말투치(Eddie Martucci)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치료 효과가 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그 치료제가 게임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 치료제의 목적과 유형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의 형식을 띠지만 관련 이슈와 관리, 분류 방식은 기존 ‘의약품’과 비슷하다. 의약품이 음식/건강기능식품, 일반의약품, 전문의약품으로 나뉘듯 디지털 치료제도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DTA의 2018년 백서에 따르면 사용 목적에 따라 4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첫 번째는 단순 건강관리용이다. 이는 의약품 분류로 치면 건강기능식품 정도에 해당된다. 관련 법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은 건강 증진에 유용한, 기능성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한 식품이다. 질병 치료 목적의 약효는 인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 유형의 디지털 치료제는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 가능하지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임상적인 근거가 있으면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만 있을 뿐이다. 항상 규제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기관의 재량에 따라 받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질병 관리 및 예방용이다. 이 두 번째부터 본격적으로 의약품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독립적인 임상 연구를 통해 유효성, 안전성 등을 입증해야 하며 FDA나 식약처 같은 규제 기관의 인허가도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조금 특이하게도, 다른 의약품의 최적화 용도다. 디지털 치료제를 기존 의약품과 병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추가된 유형이다. 의약품은 단독으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약효의 시너지나 상호 보완 효과가 있는 경우 두 가지 이상이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디지털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기존 전통적 의약품과 디지털 치료제의 시너지가 기대되거나 둘이 상호 보완 관계에 있으면 얼마든지 함께 사용될 수 있다.
마지막이 바로 직접적인 질병 치료용이다. 약에 비유하자면 전문의약품에 해당한다. 이 유형의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 시험 결과에 따라서 규제 기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며, 치료 효과 등 의학적인 유효성을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으며, 단독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현재 FDA의 인허가를 받았거나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디지털 치료제는 대부분 두 번째 ‘질병 예방’이거나 이 네 번째 ‘질병 치료’ 유형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