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외광고

천의 얼굴을 가진 옥외광고

16호 (2008년 9월 Issue 1)

판매촉진(Sales Promotion) 활동, 4대 광고(TV·라디오·신문·잡지)의 보조 역할…. 흔히 옥외광고라고 하면 이러한 인식이 컸다. 국내에 옥외광고가 본격 등장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옥외광고를 ‘판매 주체’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면서 옥외광고도 중요한 광고 수단으로서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해 가고 있다. 가장 다양한 매체와 표현력을 지니고 있는 옥외광고는 이제 5대 광고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으며, 광고의 주요 영역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추세다.
 
Out Door가 아니라 Out of Home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옥외광고를 ‘아웃 도어 애드버타이징(Out Door Advertising)’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옥외광고라는 말에는 장소를 제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이제 이러한 장소 제한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가 계속해서 나오는 데다 일부 매체는 정보기술(IT)과 접목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상상조차 못한 표현으로 소비자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옥외광고를 ‘OOH 또는 OHM(Out of Home Media)’이라고 부른다. 이는 장소 제한을 없애고, 옥외광고의 표현 세계를 무한하게 바라보는 새로운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실내 공간’과 ‘옥외 공간’으로 양분할 수 없는 다양한 공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있는 대형 쇼핑몰 ‘캐널시티’(사진1)는 여러 동의 건물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쇼핑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곳을 정신없이 다니다보면 한순간 건물 내부에 있다가 또 어느 순간 건물 밖을 걷고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내를 걷든 실외를 걷든 여전히 캐널시티라는 쇼핑몰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공간의 시대에서 광고 또한 ‘하이브리드’ 시대를 맞고 있다.
 
옥외광고,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
하루 24시간 가운데 사람들은 평균 10시간 정도를 집 밖에서 보낸다. 이 10시간 가운데 자의든 타의든(대부분 타의겠지만) 광고를 접하는 시간은 평균 5시간 이상으로 추정된다. 신문을 보든, 버스와 지하철을 타든, 무심히 거리를 걷든 광고와 접촉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광고를 즐겁게 볼 줄 아는 게 광고가 많은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요령이라 할 수 있다. 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이런 이유로 재미있는 광고, 기발한 광고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광고의 유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디자인 수준이 매우 높은 대형 옥외광고물이 잇달아 서 있다. 이 가운데 디자인이 뛰어나면서도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재미있는 광고가 많다. 운전자들은 스쳐 지나가는 광고물들이 주는 유머로 가볍게 웃으면서 피로를 푼다.(사진2)
 
도심의 옥외광고에도 유머가 녹아 있다. 매년 우수 옥외광고를 뽑는 미국 옥외광고협회(OAAA)는 올해 BBC의 케이블방송 광고를 대상으로 선정했다. BBC는 건물 외벽에 케이블 와이어로 뉴스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사진3) 케이블로 세상을 연결하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 각 창문에서 빠져나온 케이블 와이어는 건물도 되고 사람도 된다. 어린아이 장난과도 같은 이런 광고를 보고 미소 짓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요즘 국내 지하철에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스크린도어가 계속 설치되고 있다. 그런데 이 스크린도어가 그냥 안전장치로만 설치된다면 사람들은 어딘가에 갇힌 듯한 공포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포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바로 광고다.(사진4) 승객들은 스크린도어에 부착된 광고를 보고 친숙한 모델의 미소 띤 얼굴을 통해 지하 공간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서울에서는 버스중앙차로제가 시행된 이후 기발한 형태의 새로운 버스정류장 광고가 속속 등장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엔스토리(NSTORY)가 기획한 버스정류장 게임기 광고(사진5)는 눈으로만 보는 옥외광고가 아니다. 게임기를 듣고 보는 것은 물론 실제로 만질 수 있도록 해 소비자에게 공감각적 즐거움을 준다.
 
분중(分衆)의 시대에 적합한 옥외광고
옥외광고의 과학적 효과를 측정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옥외광고 집행을 주저하는 기업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서울 광화문에 시민들을 모이게 한 촉매제가 바로 LED전광광고판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광고물의 인지 효과를 과학적 수치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옥외광고는 특히 매체마다 물리적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측정 방법도 달라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각 매체의 특성을 반영한 효과적인 측정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기업 마케팅이 항상 거대하고 장황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직 한두 명의 고객만 감동받더라도 마케팅을 통해 그들이 그 제품과 기업의 충성고객이 될 수 있다. 이런 고객을 잡기 위해 다양한 광고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적합한 것이 바로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옥외광고라 할 수 있다.

이제 대중(大衆)의 시대는 지났다. 오늘날은 분중(分衆) 시대다. 개인 소비자의 욕구나 성향은 백인백색으로 다양해지고 있으며, 전체 소비 트렌드도 다면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소비의 동질성이 파괴되고 이질성이 불거지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스마케팅의 의미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분중 시대의 소비자들은 작은 울타리 안에서 모든 정보를 입수하고, 자신의 욕구를 분출하고 싶어 한다. 분중 시대의 소비자들은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것을 거부하고 각자가 주연이고자 한다. 뜻이 맞는 이들끼리 똘똘 뭉쳐 외치고 노래하며, 비록 작은 공간에 있을지라도 그 공간 안에서 아주 큰 힘을 발휘한다.
 
이제 장소의 한계라는 옥외광고의 특징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됐다. 자신만의 욕구를 가지고 울타리를 치고 있는 분중 시대의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공간 속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천의 얼굴을 지닌 옥외광고가 가장 적합하다.
 
필자는 단국대 응용미술학과에서 시각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관광부 옥외광고 분야 자문위원, 행정자치부 옥외광고 정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옥외광고 조사전문 회사 EDR-LK 대표이사, 희망제작소 부설 간판문화연구소 컨설팅센터장, 한양대 광고학과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 <우리나라 옥외광고의 이해> <장사가 되는 간판 안 되는 간판>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