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으로 고객들의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 이런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마케터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불황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기업은 마케팅 비용을 늘리기는커녕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뛰어야 하는 마케터들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방법은 있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면 된다. 한마디로 지금은 슬림마케팅(slim marketing)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다.
1970∼1980년대 미국인이 하루에 접하는 광고 수는 평균 560여 개에 불과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미국인은 하루 평균 3500여 개의 광고를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소비자는 홍수처럼 넘쳐나는 광고에 점점 흥미를 잃고 있다. 광고 매체가 다양해지고 매체에 노출되는 횟수 또한 많아지면서 광고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광고 예산이 적은 기업일수록 효과적인 광고를 만들기가 더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충분한 마케팅 예산을 확보해야만 마케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해 기업 스스로 ‘효율적’인 마케팅 활동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마케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마케팅 자원을 얼마나 확보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정된 자원으로 얼마나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한정된 자원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마케팅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깨라
물론 적은 예산으로 효과적인 광고를 설계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돈이 적게 드는 새로운 마케팅 채널을 찾는 것 못지않게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마케팅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솔루션은 바로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방법으로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브랜드 간 품질 차이가 거의 없고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광고가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는 아무리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주장해 봐야 소비자를 사로잡기 어렵다.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과거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990년대 초 신문 기사에 재미있는 사례가 등장했다. 한 초등학교의 저학년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 ①식탁 ②침대 ③자동차 ④옷장.’ 이 문제에서 많은 학생이 ‘②침대’라고 답을 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에이스침대 광고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이 광고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침대만 생산하던 에이스침대의 목적은 분명했다. 혼숫감을 구입하는 여성들이 침대를 다른 가구와 함께 구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여성들이 혼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가구에 맞춰 침대를 구입했고, 다른 업체들은 여러 가구의 디자인과 컬러를 통일해야 신혼집을 세련되게 꾸밀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에이스침대는 ‘침대는 가구’라는 소비자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해 에이스침대가 보유하고 있던 인체공학과 수면과학에 대한 연구투자, 생산설비 및 시스템을 기반으로 ‘침대는 과학’이라는 메시지를 증언식 광고 형태로 전달했다. 이를 통해 에이스침대는 캠페인 기간 내내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으며, 1995년 매출액 1500억 원으로 시장점유율 38%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에이스침대는 ‘침대는 가구’라고 인식하고 있던 소비자의 심리적 프레임을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바꿔줌으로써 성공한 것이다.
임언석
- (현) KT 마케팅연구소 마케팅 전략 연구담당 책임연구원 - (현)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강사 - 금강기획,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