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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Interview: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B급의 ‘B’, 이젠 여럿이 좋아하는 ‘Best’
A급 주류 위협하는 ‘이상한 것들’의 반란

김성모 | 278호 (2019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몇 년 전부터 인터넷을 달군 ‘B급 감성’이 이제는 기업들까지 파고들고 있다. 기업들이 B급 콘텐츠를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B급을 표방한 오프라인 매장까지 내놓고 있다. B급 열풍은 언제부터 시작됐고, 사람들은 왜 B급 감성을 사랑할까.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촌스럽고 예술적이지 않은 ‘키치(Kitsch)’ 장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설명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를 주류로 떠오르게 만든 SNS의 힘이다. 여기선 완성도가 떨어져도 재미가 있으면 나름의 평가를 받는다.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뭉치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콘텐츠의 평가가 구독자, 조회 수 등 ‘숫자’로 이뤄지는 인터넷 플랫폼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B급 콘텐츠는 수준 낮은,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B’는 여럿이 가장 좋아하는, ‘Best(최고)’를 뜻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홍지선(경희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비(B)급의 습격. 몇 년 전부터 영화, 방송,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B급’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다수의 20, 30대 밀레니얼 계층은 유치와 허무, 찌질로 대변되는 B급 코드에 열광한다. B급 문화는 저예산 영화를 뜻하는 B급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B급 문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보통 주류에서 벗어난 하위문화로 사회 기득권에 대한 저항, 풍자의 성격을 지니지만 재미를 중요시 여기는 것. 그것이 B급이다. 하지만 대놓고 기존 질서에 반감을 나타내는 저항문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이 문화의 특징은 촌스럽고 때로는 과격하다는 점이다. 유치하고 어설퍼 조잡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최근 이 비주류문화가 정교하게 잘 짜인 A급 주류문화를 위협하고 있다.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B급 광고는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장한 한 광고 영상이 큰 주목을 받았다.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1분32초 분량 중 1분9초를 토요일에 업무를 준 광고주(LG생활건강)를 원색적으로 욕하는 데 할애한다. 그러다가 남은 23초 동안 이 회사의 세탁세제를 홍보하며 끝난다.

“아니, 씨X 일을 무슨 불토에 시키냐고!!! 나는 완전 돈만 주면 되는 줄 아나 본데. 맞아요, 맞습니다. 정확히 찾아오셨네요. 역시 돈이 최고야. 짜릿해, 언제나 새로워! ‘놀면 뭐 해 벌 수 있을 때 쭉 벌어놔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까 XX 간사하게도 좀 짜증이 납니다. … LG생활건강 마케팅부서는 X 됐따리. 적어도 컨펌만은 한다고 했어야해따리. 누구든 불토에 지혜를 건들면 아주 X 되는 거야.”

앞부분만 보면 광고주 고발 영상 같다. 이는 실제 LG생활건강의 승인을 받은 온라인 제품 광고다. 이 영상은 공개되자마자 입소문을 타며 조회 수 200만 건을 돌파했다. 실제 제품의 판매량도 기존 대비 40% 이상 늘었다. 오프라인에서도 B급을 표방한 매장이 등장했다. 신세계그룹이 지난해 선보인 잡화점 ‘삐에로쑈핑’에는 물건들이 두서없이 진열돼 있다. 성인용품 옆에 맥주가 있고, 명품 옆에는 철수세미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찾잼(물건 찾는 재미)’에 빠진 20, 30대 젊은이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삐에로쑈핑의 방문객은 1년 만에 400만 명을 돌파했다. 여기서 20, 30대 매출은 46%로 절반에 가깝다.



그렇다면 B급 열풍은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LG생활건강, 신세계그룹은 어떻게 이같이 과감하게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었을까.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젊은이들은 왜 이러한 마케팅에 지갑을 여는 것일까. 수년간 트렌드를 연구하고 있고 2009년부터 매년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출간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일류만을 좇던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B급’에 빠져든 것일까.
아주 오래전, 문화라는 것은 귀족들만 향유하는 것이었다. 물론 포크송, 민담 등이 있었지만 존재감이 크지 않았고 널리 통용되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회가 대중화되고, 산업사회로 발달하면서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넓어졌다. 내용도 달라졌다.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 앤디 워홀이다. 캠벨수프 캔, 코카콜라 병, 메릴린 먼로 등을 활용한 그의 작품들을 보면 전혀 고급스럽지 않은데, 이 촌스럽고 예술적이지 않은 상투적인 장르를 ‘키치(Kitsch)’ ‘팝아트(Pop Art)’라고 불렀다. 키치나 팝아트 장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시대정신이 된 것이 시초라고 본다. 현재 B급 문화가 주류로 떠오른 데는 SNS의 힘이 컸다. 예전에는 다수가 힘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대중매체에서는 고급스럽고, 폼 나고 완성도가 높은 것들만 다뤄졌다. 그런데 인터넷이 생기고 SNS로 수많은 의견이 오가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콘텐츠도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뭉치니까 힘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B급 콘텐츠라고 부르지만 이를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맞지 않다. 우열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당 콘텐츠를 사랑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B급 콘텐츠가 여운이나 깊은 감동을 안기진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가벼운 웃음을 주는 ‘B급 콘텐츠’에 열광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B급 콘텐츠가 유통되는 매체의 속성에 주목해야 한다. 웃음에는 해학미, 골계미 등 종류가 있다. 그런 것들은 보통 오래 들으면서 맥락 속에서 재미를 찾는다. 서사(敍事)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반면 SNS나 유튜브는 매체 특성상 서사를 갖기 어렵다. ‘짤’이라고 하는 단편적인 이미지, 15초 이내의 짧은 동영상이 보통 효과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콘텐츠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두 번째는 콘텐츠를 향유하는 ‘숫자’의 문제다. 소위 A급의 완성도 높은 콘텐츠에서 웃음과 재미를 느끼려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맥락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B급 콘텐츠 열풍의 중심에는 성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포함돼 있다. 유튜브나 SNS에서의 평가는 구독자, 조회 수 등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양의 문제’이지 ‘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한순간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콘텐츠가 계속 만들어지고 향유되는 것이다.



B급 열풍은 최근 트렌드로 지목된 ‘와비사비’1 (약간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주는 행복), ‘아날로그로 회귀’ 등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이들도 결국 완벽하지 않은, 일종의 결핍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모든 사물에 양면이 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고, 양극·음극이 있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우리 시대에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디지털, 속도, 효율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 아날로그, 느림, 비효율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은 계속 형태를 바꾸면서 있어왔다. 과거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경기가 한창 좋을 때 히피족들이 기존 질서에 반발하는 ‘히피운동’을 벌였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이에 대한 반문화적 성격을 띠는 ‘사이버펑크’가 등장한 바 있다. 이런 트렌드들이 결핍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역사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SNS나 유튜브가 이러한 반작용이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폭발 기제가 된 것이 큰 차이다. 불신·불안·불황 3불 시대의 영향도 있다. 사회가 행복하면 모두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반작용들이 위축이 된다. 히피가 등장했지만 미국 사회를 휩쓸진 않았다. 당시 미국 사회는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계속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반작용은 그 자체로 끝났다. 지금은 경제는 장기 불황으로 어렵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아졌는데 오히려 믿지 못하는 부정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불신사회가 되고, 범죄율은 떨어져도 불안하고,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런 현실이 이를 더 키운 것이라고 본다.



특히 밀레니얼세대, Z세대가 B급 코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2017년 ‘픽미(Pick me)세대’를 트렌드로 꼽았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회에서 선택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세대를 포함한 젊은 층들이 지난해에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바라고, 올해에는 ‘나나랜드(사회 기준이나 타인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를 꿈꾼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관심사가 외부에서 나의 행복, 나만의 행복으로 구심점이 옮겨간 것이다. 여기서 B급 코드와 맥락이 맞닿아 있다. B급은 일종의 ‘취향의 개인화’다. 예술 작품 감상이나 클래식 같은 취미를 예로 들어 보자. 예전에는 남들의 취향을 못 따라가면 못 배운 것이 돼버리기 때문에 취미도 공부해가면서 했다. 그런데 요새 젊은 층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난 저 그림 이해 못 하겠는데, 별론 것 같아’라며 쿨하게 넘긴다. 남들의 시선과 관련 없이 내가 재밌는 게 중요하다. 개그맨 유세윤이 한 방송에서 ‘B급 감성은 자기 자신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라고 했는데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관심사가 외부에서 나 자신으로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여러 이유가 있는데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 시대에 가장 큰 트렌드가 ‘원자화’다. 가족도 점점 핵가족화되고 있다. 1인 가구가 많아졌는데, 특히 주목하는 건 3∼4인 가구다. 이들의 행동 양식을 보면 같이 잠만 자지 사실상 따로 행동한다. 4인 가구를 예로 들어보자.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같이 식사하는 게 한 달에 몇 번이나 될까. 예전에는 아침을 같이 먹는다거나 매일 한 끼는 함께했다. 지금은 그런 집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TV를 모여서 보거나, 전화라도 1대를 놓고 같이 썼다. 지금은 각자 방에서 PC로 보고 연락도 스마트폰으로 개별적으로 한다. 철저하게 개별화, 원자화된 것이다. 두 번째는 SNS의 발달이다. 인터넷은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과 유사하다. 큰 광장에서 내가 의견을 꺼내놓으면 남들이 나의 의견을 어떻게 바꿀까가 중요했다. 광장 주인은 물론 포털 사이트다. 그런데 SNS는 전부 내 이름으로 개설된다. 나만의 비밀번호가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공간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의견을 퍼가기도 하지만 내가 굉장히 중요하고 내가 중심이 된다. 실제로 SNS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키워드를 조사해 보면 대부분 ‘나’를 중요한 화두로 꼽았다.


사실 밀레니얼세대, Z세대가 자기에게 맞춰져 있다고는 하지만 SNS에 영향도 많이 받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맞지 않나?
‘나’를 중시하는 것은 맞지만 자존감이 높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디지털 세대는 정보 공유가 빠르다. SNS에서는 실시간으로 소통하지 않는가.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이 해결하는 방식은 2가지다. 첫 번째는 ‘사회가 잘못됐다’며 시스템 문제로 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 자신을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이 두 가지가 같이 작동하는데, 후자를 많이 생각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SNS가 후자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행복이나 만족은 궁극적으로 내가 얼마나 똑똑하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러한 나의 본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에서 온다. 우리가 볼 때 부족함이 많은 사람도 주변 사람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잘났으면 자존감도 높다. 반면에 비교하는 대상이 너무 뛰어나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SNS가 왜 중요하냐면 그 비교를 굉장히 넓고 적나라하게 하게 된다. 과거에 친구가 좋은 가방을 가지고 나타나면 한 번 부러워하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SNS에 들어가면 그 부러워할 대상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엄청나게 많은 비교가 끊임없이 이뤄지는 것이다. 예전처럼 친한 친구나 지인들과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유명인뿐만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가진 것 이상으로 과시하게 되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올리고 서로 그런 것들을 보면서 열패감을 느낀다. ‘자존감 높이기’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오고 팔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젊은 세대들의 특징이 어떻게 소비행태에 영향을 미치나? 이들이 중요시하는 ‘가성비’ ‘가심비’는 어떻게 보면 상충되는 개념이 아닌가. 성능을 따지다가도, 자기가 좋아하면 아낌없이 돈을 쓴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취향이나 개성이 분명해서 거기에 대해서는 돈을 얼마든 써도 아깝지 않다고 느낀다. 옷이든 신발이든, 카메라든 오디오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얼마든지 지갑을 연다. 그것이 마음에서 오는 ‘가심비’다. 그런데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돼 있지 않나. 나머지 부분에서 가격과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둘이 공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 가지 짚어볼 점은 과거 한국 사람들은 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체면’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이 때문에 브랜드도 상대적으로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가성비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요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SNS에서는 보통 정제되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들이 큰 호응을 얻는 것 같다. TV 예능 프로그램도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이 대세다. 일종의 페르소나 2 가 허물어지는 추세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젊은 층이 사용하는 SNS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톡, 밴드 등 적게 쓰는 사람도 3개를 넘어간다. 그런데 각각이 쓰는 용도가 다르다. 페이스북은 친구와 연락하고, 인스타그램은 패션, 맛집 사진 올리고. ‘나’라는 아이덴티티가 매체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같은 밴드도 동창회 밴드에서 다르고, 취미생활 밴드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자각을 못할 뿐이지 수많은 페르소나가 생성되는 것이다. 오히려 현대인의 가장 큰 고뇌는 ‘멀티 퍼스널리티(multi personality)’라고 생각한다. 상황별로 어떤 가면을 쓰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연예인들이 아이를 키우는 장면이나 인간적인 모습이 TV에 자주 등장하는데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페르소나를 시청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신선함을 느끼고 환호한다. 그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 같은 콘텐츠가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광고가 나올 수 있었을까.
갑을 관계의 전복에서 오는 쾌감이 크다고 생각한다. 보통 광고를 만들 때 광고주가 승인하지 않으면 어떤 광고도 올릴 수 없다. 갑과 을이 가장 확고한 영역이 광고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보면 주말에 일을 시켰다고 광고주를 욕한다. 광고도 허접해 보이고 심지어 나오는 시간도 마지막에 잠깐이다. 갑을 전복시킨 데서 오는 쾌감이 크다고 본다. 이러한 광고가 나오려면 권한의 위임이 중요하다. 여러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봤는데, 어떤 회사는 SNS 마케팅은 ‘꼰대 콘텐츠’가 된다고 과장도 결재를 안 한다고 하더라. 대리급 이하 직원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일이 발생하면 부장 또는 상무 등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만큼의 리스크를 감당하면서도 권한 위임을 한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계를 깨지 않으면 이러한 광고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밀레니얼세대, Z세대로 갈수록 이런 변화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기성세대와 취향의 차이가 큰 만큼 기업들이 마케팅할 때 혼란을 많이 겪을 것 같다.
타깃의 문제라고 본다. 홍보할 제품과 광고 타깃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서 콘텐츠와 미디어가 정해지는 것이다. LG생활건강이 모든 마케팅을 ‘LG 빡치게 하는 노래’처럼 만들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만큼 광고가 가능한 매체가 다원화돼 있다. 내 주변 50대한테 이 광고를 이야기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불쾌해 할 수도 있다. 이 광고를 재밌다고 생각하는 세대가 따로 있는데, 유튜브처럼 그들이 보는 매체가 따로 있지 않느냐. 완벽한 타기팅이 가능하다. B급 감성을 선호하는 계층에게만 그 광고를 전달하는 것이다. LG생활건강도 해당 광고를 TV에 노출하진 않았다. 아마 광고를 승인할 때도 이러한 매체의 특성을 고려해서 대담하게 했을 것이다. 현대 마케팅은 무슨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보다 어떤 매체를 선택할 것인가가 그만큼 중요하다. 콘텐츠는 그다음 문제다.


기업들이 트렌드를 공략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해 달라.
첫 번째는 타깃을 정밀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최대한 정밀하게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그 타깃에 적합한 페르소나를 만들고, 세 번째는 그 페르소나가 주로 이용하는 매체를 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당 매체에 적합한 콘텐츠를 기획한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과거 마케팅을 보면 ‘세정력이 뛰어나다’ ‘물에 잘 녹는다’ 등 제품을 특성을 먼저 고려한 뒤에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다음 매체를 골랐다. TV에서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을 고르고 거기에 광고를 냈다. ‘이렇게 광고하면 많이 보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은 역순으로 해야 한다. 타깃부터 선택하는 것이 맞다. 예를 들면,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95년생을 공략하겠다’라고 먼저 정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A대에 다니면서 광고를 전공하는 95년생’이라든지, ‘연희동에 거주하면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 이렇게 가야 한다. 타깃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그래서 데이터가 매우 중요해진 것이다. 빅데이터 이야기할 때 오해하는 것이 데이터가 무작정 많아서 빅데이터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따라가는 큰 트렌드를 찾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에 필요한 데이터를 솎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홍보하려는 제품 시장을 대표하는 ‘페르소나’를 찾는 것이다. ‘왜 서대문구여야 해? 강남구는 안 돼?’라고 물어보면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95년생 학생들이 우리 제품을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기업들한테 상당히 중요한 플랫폼이 됐다. 앞으로도 유튜브에 집중해야 할까.
유튜브가 어떻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다만 틱톡이나 네이버 동영상처럼 직관적이면서도 짧은, 동영상 위주 플랫폼의 중요성은 계속될 거라고 전망한다. 그 안에서 소비도 이뤄지고 기업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이다. 영상물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단순하다. 그만큼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데 아내와 여행을 가기로 하고 전날 밤에 짐을 쌌다. 캐리어 비밀번호를 ‘000’으로 맞추고 잤는데, 다음 날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책을 넣으려고 캐리어를 열었더니 가방이 열리질 않았다. ‘멘붕’이 왔다. 이때 아내는 네이버로 해결 방법을 검색했고 나는 유튜브를 찾았다. 결과적으로 유튜브에서 나온 해결책이 훨씬 도움이 됐다. 영상으로 가르쳐주니까 따라 하기가 그만큼 쉽다. 관공서 서식 집어넣는 것부터 부동산 등기 할 때 무엇을 써야 하는지 등 수많은 콘텐츠가 영상으로 올라와 있다. 철저하게 콘텐츠 제작자에게 광고비 등을 책정해주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정보의 신뢰성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영상을 보고 따라 했는데 캐리어 비밀번호가 풀리지 않았다고 치자. 그런 것 때문에 유튜브나 유튜버에 항의할까? 그렇지 않다. 당장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노하우나 재미를 줄 수 있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대중매체를 믿고 거기에 올라오는 정보는 후광을 얻었다. 지금은 어떤 매체도 잘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매체에 있단 이유로 정보를 믿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신뢰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가 얼마나 만족도를 주는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트렌드 변화, 세대 간 격차는 기업 내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조직문화에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려운 문제다. 내가 조언하는 회사들에서도 현재 밀레니얼세대, X세대, 베이비붐세대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화두다. 그러려면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이나 패턴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 그러면 ‘왜 우리가 젊은 애들한테 맞춰야 하는가, 내가 회사의 주축이고 의사결정도 하는데 애들이 우리를 따라와야지’라고 말한다. 문제는 신입사원 등 젊은 세대는 회사를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꿀 수 없으니까 사표를 내고 떠나버린다. 바꾸는 건 바꿀 수 있는 기성세대가 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는 그 조직이 가지고 있는 문화나 전통을 다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가 중요하다. 항상 기성세대 직장인을 만나면 ‘내가 너만 한 때 뭐 했는데’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 당시 경험했던 것들과 지금 상황이 확연하게 다르다. 신입사원 교육 갔을 때 하는 말도 있다. ‘누구 꼰대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왜 우리 부장은 신선하게,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할까’ 지적하는 것 역시 서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에서 재미난 것을 한다. ‘역(reverse)멘토링’이다. 회사에 인턴이나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멘토가 붙지 않느냐. 기자로 치면 후배한테 취재원은 이렇게 대해야 하고 기사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가르칠 것이다. 역멘토링은 반대로 하는 것이다. 신입사원이 부장한테 ‘이런 질문은 하는 것 아닙니다’ ‘부장님, 그런 질문 요새 애들은 되게 싫어해요’ 이렇게 조언해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실제로 기업 몇 곳이 이런 제도를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B급 트렌드가 언제까지 갈 거라고 예상하나. 다음 트렌드도 예측할 수 있을까.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디테일한 것은 바뀌겠지만 작용과 반작용의 문화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들이 문화의 동력이 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힘이다. 언제까지 갈 거라고 물어본다면 ‘영원히 갈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새로운 트렌드가 나오면 과거를 추억하는 ‘복고풍’도 등장한다. 복고풍은 지금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학창 시절일 때도 있었다. 다만 유행의 대상 시기가 1980년대로 갔다가, 1990년대로 갔다가 시기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B급 감성도 대상을 정하는 것에 따라 다른 것 아닐까. 완성도 높은 고급문화가 있고, 그와 반대되는 것도 있다. 한글날만 되면 글이나 단어를 이상하게 쓴다는 기사가 수년째 나오지 않았나. 다만 그 ‘이상하게’라는 것이 시기별로 달랐던 것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B급 감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리가 논의하기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됐을 뿐이다. 다음 트렌드로 짚으려고 염두에 둔 것이 있다. 10월27일, 2020년 트렌드코리아에서 공개하겠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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