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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Highlights

망하는 신사업 살려내는 ‘제품 시장 맞춤〈Product Market Fit〉’

장효곤 |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페이팔’은 당초 1990년대 말 인기를 끌던 휴대기기 팜파일럿(초창기 PDA 제품)의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 솔루션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팜파일럿끼리 돈을 송금할 수 있는 송금 서비스를 거쳐 현재의 전자상거래 결제 수단으로 진화해 큰 성공을 거뒀다. 페이팔 창업자들이 시장 반응에 귀를 닫은 채 이용자 늘리기에만 급급했거나 초기 사업모델을 고수했더라면 오늘날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큰 시장을 창출할 완벽한 제품을 단 한 번에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업 초기에는 물건을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잠재력이 충분하며 우리 제품이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신제품이 안 팔린다. 마케팅을 더 해야 할까?
“어디 마케팅 잘하는 사람 없습니까?” 자주 듣는 질문이다. 필자가 이유를 물으면 보통 이런 답이 온다. “신제품을 냈는데 잘 안 팔리네요. 마케팅을 강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케팅을 강화하면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 문제일까? 문제는 제품 자체에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큰 기대를 갖고 제품을 출시한 사람 입장에서 인정하기는 쓰라리겠지만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스타트업 시장에서 시작된 개념인 ‘Product Market Fit’, 우리 말로 하자면 ‘제품 시장 맞춤’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하 Product Market fit은 제품 시장 맞춤 또는 PMF로 부르겠다.)

제품 시장 맞춤(PMF)의 중요성
1. PMF란?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유명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마크 앤드리슨은 PMF 개념을 이렇게 정의했다.

“좋은 시장에 그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갖고 있는 것.”

좋은 시장이란 무엇인가?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그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란 무엇인가? 그 시장의 고객이 갖고 있는 문제를 잘 해결해주는 제품이다. 다시 말해 고객의 니즈를 잘 만족시키는 제품이다. 시장의 잠재력이 크고, 우리 제품이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한다면 PMF를 찾은 것이다.

사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길 기본 원리에 가깝다. 그러나 PMF에 입각한 사업 방법론이 기존 관념과 다른 것은 그것을 찾는 노력을 사업 초기의 가장 중요한, 거의 유일한 과제로 삼는다는 점이다. PMF 관점에서 보자면 사업 초기의 목표는 사업 자체가 아니라 ‘시장이 있음을 검증하는 것’이다.

2. 신사업이 망하는 이유
가장 분명하게 성공과 실패를 알 수 있는 것은 스타트업의 신사업이다. 대기업의 신사업은 모기업의 지원을 통해 성과가 좋지 않아도 꽤 오래 연명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실패하면 생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스타트업이 큰 성공의 꿈을 품고 시작하지만 실제로 그 꿈을 실현하는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미국에서 2008∼2010년 시드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1098개를 2017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곳 중 7곳이 망하거나 그럭저럭 연명하는 데 그치고 있다. 오직 30%만이 상장에 성공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거나 지속적인 투자를 받았다. 상장하거나 인수된 28%의 기업 중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곳은 많지 않았다. 상장 또는 인수 당시의 기업 가치를 살펴보니 90%의 스타트업들이 5000만 달러 이하였다. 1 대부분이 몇십억 원에서 몇백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그친 셈이다. 미국에서 기업가치 산정 시 한국에 비해 0이 한 개, 심지어 두 개가 더 붙는다는 통념을 제쳐두더라도 미국이 대체적으로 스타트업의 가치를 더 높게 인정함을 고려하면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초대형 성공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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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많은 새로운 사업이 실패하거나 애초의 꿈에 못 미치는 그저 그런 사업이 될까? 미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시장 니즈 없음’이다. 2 우리가 기대했던 고객의 니즈가 아예 애초부터 없었거나, 매우 작았거나, 또는 우리 제품이 그 니즈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현금 고갈 문제나 경쟁, 가격/비용 문제, 사용자에게 불친절한 제품, 사업 모델 없는 제품 등 다른 이유들 역시 ‘시장 니즈 없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시장 니즈가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1)



스타트업이 실패한 세 번째 이유로 언급된 것은 ‘적합한 팀이 아님’이다. 실력 있는 투자자, 경영자들도 많이 하는 얘기로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좋은 인재들은 별 볼 일 없는 사업도 결국은 훌륭한 사업으로 탈바꿈시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사업도 망칠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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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이 더 중요하다?
물론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성공적인 스타트업과 함께한 투자자들은 사람보다 시장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은 이렇게 표현했다.

“대단한 팀이 별 볼 일 없는 시장을 만나면, 시장이 이긴다.”

“별 볼 일 없는 팀이 대단한 시장을 만나면, 시장이 이긴다.”

“대단한 팀이 대단한 시장을 만나면, 특별한 일이 생긴다.”

물고기가 많은 호수에 가면 실력 없는 사람도 고기를 많이 건질 수 있지만 물고기가 별로 없는 곳에서는 일류 낚시꾼도 고기를 건지기 힘든 것에 비유할 수 있다.

4. 영업 마케팅 잘하면 된다?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어디 마케팅 잘하는 사람 없습니까?” 또는 “영업 잘하는 사람 없습니까?”다. 사업이 잘 안 될 때 경영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훌륭한 마케터나 영업사원이 있으면 시장이나 제품에 문제가 있어도 사업이 잘될 수 있을까? 예외 없는 법칙은 없으므로 ‘절대’ 또는 ‘항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영업 마케팅이 시장과 제품의 문제를 완벽하게 극복할 수는 없다. 사업 성공의 원리를 생각하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사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사업의 지속가능한 성공은 동일한 패턴을 따른다. (그림 2)

최근 10년 정도 사이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순추천지수(Net Promoter Score)가 유행하게 된 것도 이러한 선순환의 중요성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순추천지수는 고객에게 “친구나 동료에게 우리 제품을 추천할 의향이 얼마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우리 제품을 고객들이 좋아하는지 측정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 선순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을 고객이 좋아하는 것’이다. 영업이나 마케팅을 잘하면 일시적으로 고객이 늘 수는 있다. 광고비를 많이 쓰거나, 요즘 유행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하거나, 무료로 써보라고 하는 (심지어 고객이 되면 돈을 주는) 등의 마케팅으로 신규 고객을 늘릴 수 있다. B2B라면 인맥이 넓은 영업사원을 써서 그런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니즈가 크지 않거나 제품이 니즈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선순환이 일어날 수 없다. 고객이 제품을 써본 후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입소문이 나지 못함은 물론이고 유입된 고객들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이 잘 안 될 때 경영자는 쓰라리더라도 영업 마케팅에서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전통적인 신사업 개발 방식의 문제점
1. 너무 이른(PREMATURE) 규모 확대
좋은 시장에 좋은 제품을 갖고 들어가지 못했다고 바로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거의 필연적이다. 문제는 최초의 기대가 현실과 맞지 않음을 깨달은 후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원을 고갈했을 때다. 앞에서 본 두 번째 이유인 현금 고갈이 그런 경우다. 2011년에 인터넷 스타트업 3200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스타트업 실패 원인의 약 4분의 3은 ‘너무 이른 규모 확대’였다. 3

규모 확대는 이런 활동을 말한다.
- 고객 획득에 노력과 비용을 들임
- 제품의 부가적인 기능을 추가함
- 제품의 양산에 투자함
- 생산, 판매, 마케팅, 서비스 등 부서별 전문 인력을 채용함
- 규모 확대를 위해 많은 자금을 조달함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이런 활동들을 반드시 해야 한다. 문제는 ‘너무 이른’ 시기에 하는 것이다. 너무 이른 것인지, 아닌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나? 그것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이자 앞에서 얘기한 PMF다. 즉, 우리가 좋은 시장에 좋은 제품을 갖고 있음을 검증하는 것이다. 너무 이른 규모 확대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의 스타트업이 너무 이른 시기에 규모를 확대한다. 4 필자의 느낌으로는 일반 기업의 신규 사업의 경우에는 70%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2. 실제 사례로 본 문제점들
필자의 실제 경험에 기초한 가상의 사례들을 보자. A 기업은 새로운 개인용 하드웨어를 만들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시장이었다. 시장은 빠르게 크고 있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 대부분은 아직 품질이나 사후 서비스 등에 문제가 많았다. 초기 시장에서 흔히 그렇듯 아직 지배적인 모델이 없었고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시도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잘하는 회사들은 있었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강력한 업체는 없었다. A 기업은 이 시장에서 강자가 되고자 했다. 출시를 앞둔 상태에서의 주요 사업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 초년도부터 일정 물량 이상의 생산과 판매 목표를 달성한다.
- 소비자가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여섯 가지 색상과 두 가지 크기를 제공한다.
- 9가지의 제품 주변기기와 6가지의 업그레이드 옵션을 제공한다.
- 단위 원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연간 판매 목표의 상당 부분을 한 번에 제조한다.
- 오프라인 대리점과 온라인 직판을 판매 채널로 한다.
- 온라인 판매를 위해 자체 판매용 웹사이트를 개발한다.
- 출시 기념 오프라인 행사, 온라인 판촉 행사 등 수요 촉발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한다.

전형적인 ‘너무 이른 규모 확대’를 보여주는 사업 계획이다. 아직 PMF가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처음부터 규모를 확대하려 했다. PMF의 관점에서 사업 초기에는 본질적으로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사업 초기에는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PMF를 검증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사업 계획이 아래와 같이 달라져야 한다.

- 판매 목표는 없다. 고객의 반응을 최대한 빨리, 적은 비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목표다.
- 한 가지 색상, 한 가지 크기만 제공한다.
- 주변기기와 옵션은 없다.
- 단위 원가는 높아지겠지만 최소 물량만 제조해 전체 지출을 낮춘다.
- 온·오프라인 중 한 가지 판매 채널만 활용한다.
- 온라인 판매는 전자상거래 전문 업체 사이트를 이용한다.
- 출시 마케팅은 최소한의 검색 광고만 한다.

두 계획의 차이를 가장 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첫 번째의 ‘판매 목표는 없다. 고객의 반응을 최대한 빨리 이해하는 것이 목표’라는 부분이다. 판매 목표가 중요한 경우, 많이 팔기 위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생산 물량도 늘려야 하고, 영업 부서에 판매 목표를 강조해야 하고, 판촉 활동도 활발히 벌여야 한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시장을 학습하고 우리 제품이 잘 맞는지를 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사업 전략은 전혀 달라진다. 생산은 적게 하고, 단위 원가가 아니라 전체 비용을 낮춰야 한다. 사업 추진을 늦추고 인력을 더 필요로 할 수 있는 복잡성은 피해야 한다. 주변 기기나 옵션은 없애고 핵심 가치만 제공하는 제품을 빨리 내보내야 한다. 판촉 활동은 최소화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분석하는 일을 해야 한다. 앞의 사업 계획이 판매 중심 사업 계획이라면 뒤에 것은 학습 중심 사업 계획이다.

A사는 외부 자문인의 조언에 따라서 사업 계획을 수정했다. 하지만 완전히 학습 중심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절충된 형태였다. 제품의 종류는 줄였고, 액세서리와 옵션도 줄였다. 판매 목표는 조금 낮췄고, 초도 생산 물량도 감축했다. 출시 행사도 최소화했다. A사는 사업을 시작한 후 많은 것을 배웠다. 판매는 예상보다 적었다. 하지만 제품에 품질 문제가 있음을 알게 돼 판매량이 적은 것이 오히려 다행인 측면이 있었다. 또 고객들이 실제로 무엇을 중시하는지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사업을 계획할 때에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었다. 단, 어떤 고객들이, 왜 우리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명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A사는 새로이 알게 된 점들을 바탕으로 수정한 제품을 출시하려고 했지만 바로 할 수는 없었다. 미리 생산해 놓은 제품들의 재고를 먼저 처리해야 했다. 이후 A사는 수정한 제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어떤 고객에게 왜 우리 제품이 좋은지를 간단명료하게 얘기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제품을 판매하면서 시장을 좀 더 파악해야 한다.

A사의 경험에서 보듯 너무 이른 규모 확대는 여러 문제를 가져온다. 비용과 시간을 이미 많이 썼기 때문에 PMF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제품을 수정하거나 타깃 시장을 수정하는 등 방향 전환을 할 여력이 줄어든다. 시간과 비용이 남아 있다면 한두 차례 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만 이미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을 써버릴 경우 최초의 실패가 최종적인 실패가 될 수 있다.

너무 이른 규모 확대는 학습 자체를 방해하기도 한다. IT 제품을 만든 B사의 경우를 살펴보자. 판매를 맡은 제휴 회사의 영업에 힘입어 한 외국 회사가 B사의 신제품을 시험 사용하기로 했다. B사는 시험 사용이 만족스러우면 이 고객이 대량 구매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해당 고객이 시험 사용의 조건으로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할 것을 부탁하자 B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시험 사용이 끝난 후 판매를 맡은 제휴사는 해당 고객의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기대했던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제휴사는 해당 고객의 구매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다른 제품을 구매하려 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실망한 B사는 다른 고객에게로 영업 초점을 돌렸다. 몇 달간의 추가 개발과 영업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도 아쉽지만 그보다 더욱 실망스러운 점은 그 과정에서 B사가 제대로 뭔가를 학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B사는 해당 고객이 이전에 어떤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자사의 제품을 시험하려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제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제품을 제공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고객이 시험 사용을 하며 느낀 장단점을 상세하게 보고받지 못했고, 오직 이러저러한 추가적인 기능이 필요하다는 점만 전달받았다. 시험 사용이 끝난 이후에도 고객이 무엇 때문에 결정을 미루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른 제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에도 그것이 어떤 제품이고, 왜 검토하는지 알지 못했고 그를 파악하려는 노력 자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B사도 ‘너무 이른 규모 확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 직후에는 PMF를 검증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여야 하지만 B사는 빨리 판매 성과를 올리는 것에만 치중했다. B사는 판매 확대가 아니라 학습에 중점을 둬야 했다. 시험 사용 이전에 이 고객은 어떤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었나? 우리 제품을 시험해 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기능은 정말 급한 것인가? 그 기능 없이 시험할 수 있을까? 그 기능이 필요하지 않은 다른 고객은 없을까? 시험 사용 이후의 상세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은 무엇인가? 또 다른 어떤 제품을 검토하는가? 왜 검토하는가?

B사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영업 결과만을 궁금해했다. 그래서 희망이 보일 때에는 고객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쏟았고 영업이 실패로 끝나자 실패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렇게 기존의 전형적인 신사업 추진 방식은 보통 너무 이른 규모 확대 경향을 보인다. 실패 비용이 너무 커서 재도전할 여력을 남기지 못한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혁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PMF 사고에 기반한 더 스마트한 방식이다.

PMF 사고방식
1. 검증 전의 사업은 가설
신사업 개발의 최종 목표는 ‘이익을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얘기하는 가만히 있어도 돈 버는 사업 말이다. 고객이 유인되는 입구, 매출이 발생하는 경로,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 사후 서비스를 하는 방식 등이 최적화돼 있어 잘 설계된 공장이 제품을 대량 생산하듯이 이익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이익을 만드는 기계를 만든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사업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라 하겠다. 사업 모델은 사업이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구조다.

전통적인 신사업 추진 방식의 경우 처음부터 이러한 사업 모델 전체를 완전히 기획하고 구축한다. 사업 계획에 구매, 생산, 마케팅, 판매, 서비스 등 사업 모델의 모든 요소를 완성된 모습으로 담는다. 여기에 각각 소요되는 인원, 자금을 추정한 재무 계획을 더한다. 상당히 큰 이 금액을 쉽지 않은 설득 과정을 거쳐 조달한다. 그리고 사업 계획에 따라 사업 모델을 구축한다. 당연히 출시하기 전의 준비 기간은 오래 걸린다. 1년, 2년, 또는 그 이상이다.

PMF 관점과 이러한 전통적 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사업 계획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검증되기 전까지는 ‘가설’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 장짜리 메모이건, 100쪽짜리 문서이건 검증되지 않은 모든 사업 계획은 가설이다.

PMF는 사업 모델의 구성 요소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시장과 제품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이다. 어떤 고객이 이런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할 것이라는 가설 말이다. 이 가설을 검증을 한 후 비로소 본격적으로 규모 확대를 위한 활동과 투자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PMF를 검증하기 전까지의 신사업은 겉으로는 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연구개발에 가깝다. 다만 그 검증이 실험실 안에서 이뤄지지 않고 시장에서 이뤄질 뿐이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사람은 PMF가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우리는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2. 검증은 최대한 빠르고 싸게
PMF 관점으로 신사업을 하는 이유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타깃 시장, 제품, 사업 모델 등을 수정할 기회를 갖기 위함이다. 큰 시장을 창출할 완벽하게 매력적인 제품을 단 한 번에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 어렵다. 현실적인 최선의 방법은 빨리 낮은 비용으로 검증을 하고, 학습한 지식을 바탕으로 수정한 제품이나 사업 모델로 다시 도전하는 것, 소위 피벗(Pivot)을 하는 것이다. 많은 성공적인 혁신도 피벗을 거쳤다. 검증 우선 신사업 개발 방법론의 뒤쪽에서 피벗 사례를 보기로 한다.

검증 우선 신사업 개발
전통적인 신사업 개발 방식이 빠지기 쉬운 너무 이른 규모 확대를 막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개발 방식이 필요하다. 검증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이런 방식을 ‘검증 우선 신사업 개발’이라고 부르자. 이 방식에 따른 신사업 개발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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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맞춤에서 사업 모델 맞춤까지는 검증 과정이다. 문제 맞춤과 솔루션 맞춤을 합한 것이 PMF다. 시장성을 확인하고 사업 모델을 검증한 후에 비로소 규모 확대 단계에 들어가라는 것이 이 방식의 요지다. 너무 이른 규모 확대가 스타트업 실패의 원인이라고 했는데, 사업이 위 단계 중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알고 그에 맞는 활동을 하는 것이 이를 방지하는 방법이자 성공의 길이다. 스타트업들을 분석한 결과, 자신의 단계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 스타트업들이 섣부르게 서둘러 규모 확대에 나선 스타트업들보다 처음엔 성장이 더뎌 보이나 결국은 훨씬 더 빨리 성장했다. 건너뛰지 말고 거쳐야 할 단계를 거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1. 문제 맞춤
모든 사업은 결국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곧 시장이다. 신사업 개발의 첫 단계인 ‘문제 맞춤’은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문제가 해결할 가치가 있을까? 문제는 ‘심각성’과 ‘보편성’ 두 가지 축으로 평가한다. (그림 4) 심각성은 그 문제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간절히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보편성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심각하고,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문제라면 큰 시장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해결할 가치가 크다. 적어도 소수에게 심각한 문제거나 가볍다면 많은 사람이 가진 문제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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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감기는 거의 모든 사람이 걸리지만 폐암은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이 걸린다. 대신 감기는 대개 며칠 아프면 낫고 치료하지 않는다고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폐암은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철저히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한다. 질병은 이렇듯 문제의 심각성과 보편성을 비교적 분명히 알 수 있지만 많은 문제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영어회화를 못 하는 것이 직장인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일까? 전자상거래로 구매한 물건을 당일에 받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얼마나 심각한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같은 문제도 고객에 따라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과 보편성을 알기 위해서는 잠재고객들과 얘기해봐야 한다. 그들이 과연 이러한 문제를 갖고 있나? 현재는 어떤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고 있나? 그 해결책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현재의 방식에 어떤 불만이 있나?

잠재 고객들과 얘기를 하면서 어떤 고객들에게 이 문제가 심각한지 이해했으면 그들이 잠재적 타깃 시장이다. 이제 그런 유형의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를 추정해야 한다. 보편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정해진 방법은 없다. 검색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관련 분야 종사자에게 물어본다.

2. 솔루션 맞춤
솔루션 맞춤은 발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를 검증하는 것이다. 솔루션 대신 제품이나 서비스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고객 문제의 해결책임을 강조하고 아직 제품이나 서비스로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아이디어 상태일 수도 있으므로 솔루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실제로는 문제에 대한 발상과 솔루션에 대한 발상은 함께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이미 알고 있었던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를 수도 있고, 이미 갖고 있던 아이디어나 기술을 적용할 문제가 나중에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검증하는 경우도 많지만 논리적으로는 문제 검증이 우선이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린스타트업 방법론이 유명해진 후 제품개발 단계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MVP(Minimum Viable Product), 즉 최소기능제품이다. 하지만 ‘최소기능제품’이라는 용어가 자칫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필자는 MVP라는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보다는 솔루션 맞춤, 솔루션 검증이라는 용어가 이 단계의 본질을 더 잘 표현한다. 제품의 개발은 필수가 아니다. 검증이 핵심이다.

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올릴 콘텐츠를 예약 발송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인 ‘버퍼(Buffer)’의 창업자는 버퍼를 개발하기 전에 간단한 웹 페이지부터 만들었다. 해당 페이지에 버퍼의 기능을 간단히 설명해두고 옆에는 ‘가격 보기’ 단추를 달았다. 그 단추를 누르면 “버퍼는 아직 준비 중입니다. 준비가 완료되면 알려드릴 테니 e메일을 알려주십시오”라는 설명과 함께 e메일 입력 창이 뜨도록 했다. 그는 상당수 방문자가 e메일을 남기는 것을 보고 수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포스(Zappos)의 창업자는 1999년부터 신발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는 근처의 신발가게에 가서 신발 사진들을 찍어서 간단한 홈페이지에 올렸다. 주문이 발생하면 그는 신발가게에 가서 신발을 사 와서 배송을 했다. 많은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큰돈을 쓰기 전에 신발을 온라인으로 판다는 아이디어의 타당성부터 검증한 것이다.

자포스 사례는 또 한 가지 면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자포스는 신발을 근처의 매장에서 소비자 가격으로 사서 보냈기 때문에 이익을 낼 수가 없었다. 만약 신발을 도매로 한꺼번에 구매해 보유하고 있었다면 이익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발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려는 수요가 없었다면? 구매한 신발들은 쓸모없어지고, 큰 비용을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자포스는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매장에서 사옴으로써 큰돈이 낭비될 만한 리스크를 없앤 것이다.

이 외에도 검증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도 활용할 수 있다. 일정 금액을 미리 지급하면 제품이 완성됐을 때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고객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다. 제품이 동작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줘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쓰느냐는 것은 결국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격에 달려 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는 고객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수요가 충분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필자가 관여한 국내 최초의 온라인 자동차보험도 그렇게 탄생했다. “설계사 없이 인터넷으로 가입할 수 있고, 10%가 싸다면 가입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즉각 대답이 가능했다. 금융 상품의 성격상 소비자들이 충분히 실제의 구매 상황처럼 선택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품이나 식품처럼 실제 제품 경험이 중요하다면 단순히 물어보는 것으로 검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 사업 모델 맞춤
앞쪽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업 모델은 이익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기계 또는 공장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업이 다음과 같이 굴러간다면 이익을 만드는 기계, 즉 사업 모델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1. 제품은 타깃 고객의 니즈에 최적화돼 있다. 사용해 본 고객의 만족은 높아서 대부분 충성 고객이 된다.
2. 우리 고객과 제품에 가장 잘 맞는 마케팅 방식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최적의 판매채널을 사용하고 있다. 고객들이 빠르게 유입된다.
3. 가장 효율적이면서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생산 또는 서비스되고 있다.
4. 이익을 낼 수 있는 적절한 수익모델이 있다.

문제 맞춤과 솔루션 맞춤을 했다면 1번에 필요한 조건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좁은 의미의 PMF는 거기까지다. 하지만 아직 사업 모델의 나머지 부분을 검증해야 한다. 비효율적인 사업 모델로 규모 확대를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타깃 고객에게 우리 제품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런 고객들을 효과적으로 모으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다음 과제다. ‘Go-to-market’ 전략,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Revenue Optimization’ 등의 용어 5 들은 모두 이와 관련한 것인데 마케팅, 영업, 홍보가 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인터넷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마케팅, 영업 등의 기능적 구분 없이 고객을 우리 회사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고객 깔때기(funnel) 분석이다. (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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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우리를 알게 되고 충성 고객이 되기까지의 일련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어디에 방해가 있고, 어떤 활동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깔때기 분석과 함께 마케팅과 영업 채널들을 시험해 최선의 조합을 찾아낸다.

고객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도 효율화돼야 한다. 규모를 본격적으로 늘리기 전에 조직, 프로세스 등을 시험해본다. 일인다역으로 하던 업무를 전문화해 보고, 주문량을 늘리면 생산비가 얼마가 될지를 따져본다. 이 과정에서 설비 투자나 정규 인력 채용을 서두르지 말고, 빌려 써보고 외주나 임시직을 활용해 본다. 아직도 본격 투자가 아니라 사업 모델을 최적화하는 검증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익 모델 확립도 사업 모델의 나머지 부분이다. 제품을 판매하는 일반적인 사업 모델의 경우 가격을 정하는 정도 외에 수익 모델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콘텐츠 사업의 경우에는 한동안 수익 모델이 없는 채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그 같은 과정을 거쳤던 성공 사례들에 비춰볼 때 규모 확대 이전에 수익 모델이 꼭 확립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익 모델 확립이 가급적 빨리 해결돼야 할 과제임은 분명하다.

검증이 어느 정도 됐다면 이제 비로소 제대로 된 사업 계획을 작성할 수 있다. 문제 맞춤이나 솔루션 맞춤 단계에서는 정교한 사업 계획은 필요하지 않다.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가설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전체적인 사업 모델이 어떤 모습인지 윤곽이 그려졌으니 사업 계획을 작성할 수 있고, 사업 계획을 작성하는 과정에서의 조사 분석을 통해 경제성을 검증한다.

4. 규모 확대
사업 모델 검증까지 했으면 이제 드디어 규모를 확대한다. 계획한 사업 모델대로 마케팅 계획을 실행하고, 유통채널을 확대하고, 조직을 분업화하고, 인력과 설비에 투자한다. 고객들이 점점 몰려오고, 그 고객들에게는 효율적으로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된다. 회사는 잘 만들어진 기계처럼 돌아간다.

피벗(각 검증 단계에서 앞으로 돌아감)
그런데 앞서 검증을 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당초 해결하려던 문제가 고객에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거나, 잘못된 솔루션이었거나, 비효율적인 사업 모델임을 알게 됐다면?

먼저 이것이 전혀 나쁜 소식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좋은 소식이다. 앞쪽에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검증 우선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발견을 최대한 빨리, 적은 비용으로 하고 사업 모델 수정, 소위 ‘피벗’의 기회를 더 많이 갖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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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신규 사업은 최초의 가설에 오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차이는 있을지라도 피벗은 거의 필연적이다. 단지 피벗을 얼마나 현명하게 하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피벗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솔루션은 그대로 두고 타깃 시장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고객들을 타깃으로 하되 그들에게 더 잘 맞도록 솔루션을 수정하는 것이다. 두 가지 요소가 혼합돼 있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 간편 결제의 대명사 같은 ‘페이팔’의 처음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공동 창업자들이 1998년 처음 개발한 것은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휴대기기 팜파일럿(초창기 PDA 제품)의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 솔루션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보안 의식에 비해 너무 시대를 앞서간 제품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그 제품을 포기했다. 6 PMF 관점에서 보자면 해결할 가치가 없는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대신 이들은 팜파일럿끼리 서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친구들끼리 돈을 나눠 낼 때처럼 여러 사람 사이에 돈이 오갈 때에 편리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도 모든 사람이 팜파일럿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7 그래서 e메일로도 송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팜파일럿이 있으면 팜파일럿으로, 상대가 팜파일럿이 없으면 e메일로 돈을 보낼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동일한 고객들을 위해 솔루션을 수정한 셈이다.

그런데 전자상거래 사이트였던 이베이의 판매자들이 페이팔을 이용해 상품의 대금을 받기 시작했다. 이베이에서의 사용량이 빠르게 증가함을 알게 된 페이팔 창업자들은 팜파일럿 송금 기능을 중단하고 페이팔을 전자상거래 결제수단으로 만들었고, 여기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타깃 시장을 과감하게 수정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위에서 설명한 것만 4번, 페이팔 창업자들의 말에 의하면 더 많은 피벗을 거쳐서 온라인 결제수단이라는 PMF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기간이 15개월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8

페이팔이 PMF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초기의 제품에 집착해 마케팅을 하고, 영업사원을 뽑고, 제품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자를 더 투입했더라면 온라인 결제 솔루션이라는 PMF를 찾기도 전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빠른 시간에 검증하면서 변화했기 때문에 최종적인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
많은 얘기를 했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새로운 사업을 할 때, 될 사업인지 먼저 검증하고 규모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검증 우선 신사업 추진 방식은 문제 맞춤 - 솔루션 맞춤 - 사업 모델 맞춤 - 규모 확대의 단계를 거친다. 새로운 제품, 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해 보기를 권고한다.


우리 사업은 어느 단계에 와 있나? 또는 어느 단계에 있어야 하나?


필자소개 장효곤 이노무브 대표 HYOKON.ZHIANG@INNOMOVE.COM
필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베인앤드컴퍼니 한국지사에서 이사로 재직한 후 혁신 컨설팅 및 인큐베이팅 업체 이노무브를 창업했다. 다양한 업종의 신사업 개발, 기존 사업 재혁신 작업을 대기업에서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기업에서 수행해왔다. 대표 저서는 『한국 기업의 롱테일 전략』이며 현재 경영 패러다임의 역사와 미래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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