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사랑의 불꽃』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라

이경림 |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누구나 한 번쯤 내 존재 전체가 부정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준비한 시험을 앞뒀을 때, 앞으로의 인생을 바꿀 면접을 기다릴 때, 열정을 다 바친 프로젝트의 결과 보고가 닥쳤을 때처럼 말이다.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 중요한 순간에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 초조, 스트레스가 엄습한다.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왜 이런 중요한 순간에 드디어 내 노력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희열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평가받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고통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그 순간에 가치 증명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활동을 자기중심적으로, 즉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이런 경험이 고통스러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나 자신의 고독한 만족감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삶은 상대방의 인정에 의존해 가치를 부여받는 구조로 짜여 있다. 최소한 친구나 가족처럼 친밀한 사람들에게 내 가치를 이해받으려 한다. 동료와 상사처럼 공적 관계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아주고 지지해주면 더 든든해진다. 심지어 국가나 민족, 인류 같은 추상적 주체들에도 내가 뭔가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기대한다. 그 인정에 대한 증거로 애정, 동료의식, 연대감 같은 것을 바라면서 말이다. 거기에다 경제적 성공이나 명예까지 보상받는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만나는 모든 이가 항상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님을 경험으로 잘 안다. 인정받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존재하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권능을 가진 상대방은 나와 동일하게 자기만의 의지를 가진 존재다. 그들이 나를 인정해줄지 말지, 또 얼마나 크게 또는 작게 인정해줄지는 나의 통제 범위 밖에 있다. 그래서 언제든 나의 가치를 부정당할지 모른다는 예견이 우리에게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근대 출판시장 최초의 베스트셀러,

『사랑의 불꽃』

『사랑의 불꽃』은 1923년 첫 출판 당시 하루에만 30∼40권씩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던 베스트셀러로 알려져 있다. 자료가 부족해 정확한 판매 부수를 알 수는 없지만 오늘날 연구자들이 ‘근대 출판시장 최초의 베스트셀러’라 언급할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무엇보다 ‘출판시장’ 전체를 기준으로 따진 베스트셀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소설, 시 등 문학서류뿐만 아니라 교과서, 족보, 처세서, 자기계발서 등 시중에 나도는 모든 출판물 전체를 통틀어 ‘잘나간’ 책이라는 이야기다. 1924년 『조선문단』에 “만 부 이상 팔리기는 조선 출판계에 오직 이 무정뿐이다”라는 광고가 실릴 만큼 당대의 베스트셀러하면 『무정』이 대명사였지만 대중적 인기는 『사랑의 불꽃』이 『무정』을 앞질렀다고 전해진다. 당시 한 기자가 경부선 기차에 오른 개성의 여학교 수학여행단이 자리에 앉자마자 일제히 연분홍색 표지의 『사랑의 불꽃』을 꺼내 읽는 풍경을 목격한 경험담을 쓰기도 했을 정도다. 사실 『무정』이 1918년 출판된 이래 5년여간 판매고를 쌓아 왔음을 감안하면 당시 진정한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사랑의 불꽃』이라고 보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그 베스트셀러를 쓴 춘성(春城) 노자영의 인기도 과장하자면 요즘 BTS가 누리는 인기만큼이나 대단했다. 요즘 BTS의 앨범을 사본 적이 없는 사람도 BTS의 이름과 히트곡 하나 정도는 알고 있다. 1920년대 세간에는 “춘원(이광수)은 몰라도 춘성은 안다” “남녀학생 중에 옥편은 한 권 없을망정 노자영의 작품 한 권씩은 다 있다”는 말이 돌아다녔다. 실제로 『사랑의 불꽃』 이후 노자영이 직접 출판사를 차려 출간한 소설 『무한애의 금상』 『영원의 몽상』은 둘 다 판매고
2000∼3000부를 넘겼고, 권당 ‘수백 원’의 인세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애초에 노자영이 출판사를 차릴 수 있게 해준 책이 『사랑의 불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랑의 불꽃』의 인세도 수백 원은 넘겼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책을 낸 출판사 한성도서주식회사의 자본금이 30만 원, 『사랑의 불꽃』을 쓸 당시 동아일보사 사회부 기자로 일하던 노자영의 월급이 60원, 『사랑의 불꽃』의 정가가 60전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100원의 가치를 가늠해보자면 실로 엄청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노자영 자신은 몇백 통의 팬레터와 각종 ‘조공’이 눈코 뜰 새 없이 밀려들어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도 한다.

가입하면 무료

  • 이경림plumkr@daum.net

    서울대 국문과 박사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
DBR AI

아티클 AI요약 보기

30초 컷!
원문을 AI 요약본으로 먼저 빠르게 핵심을 파악해보세요. 정보 서칭 시간이 단축됩니다!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