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5. 패션산업의 네트워크 시대 대응 전략

엄마가 내 몸에 꼭 맞는 옷 만들어주듯
초연결 시대엔 ‘감동의 맞춤 패션’ 뜬다

255호 (2018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연간 약 2000조 원대로 추산되는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는 산업혁명과 같은 환경 변화에 따라 주도 기업의 교체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산업혁명 이전 수작업 시대에는 옷을 ‘엄마’가 만들었다. 수요자가 소재를 직접 고르고, 디자인 작업과 봉제도 직접 했다. 그러다 1차 산업혁명으로 방직기가 발명되면서 영국과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어 19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2차 산업혁명기에는 전기를 공급받는 기계가 대량으로 옷을 생산했고 화학공업의 발달로 나일론 등이 상용화됐다. 이 시기에 나이키, 갭, 랄프로렌 등 글로벌 브랜드가 등장했다. 이어 정보기술로 촉발된 3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자라나 H&M, 유니클로 등 과거 패션산업의 변방국가에서 등장한 기업들이 다품종 대량 공급이 가능한 SPA라는 개념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초연결 네트워크 시대인 4차 산업혁명기에는 ‘엄마기계’ 시대가 열릴 것이다. 즉, 수요자의 상황, 맥락, 선호 등을 반영해 소재를 고르고 디자인해서 옷을 제작하는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기계를 잘 활용하는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네트워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엄청난 네트워크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16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최초로 언급한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 회장은 이를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적 세계를 융합시키고 경제 및 산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신기술”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달리 독일 등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가상물리시스템(CPS, Cyber Physical System)으로 정의한다. 또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등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IT 융합을 30년 가까이 연구한 필자로서는 이런 정의들에 동의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런 기술들은 지난 3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어떤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산업 구조적으로 어떤 세력들이 주인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본고에서는 패션산업의 예를 통해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전 세계 패션산업의 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연간 약 2000조 원에 육박하며, 매년 115%씩 성장하고 있다. 특히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융합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패션산업은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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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과 패션산업
산업혁명 이전인 수작업 시대에는 옷을 ‘엄마’가 만들었다. 수요자가 소재도 직접 고르고, 디자인도 직접하고, 봉제도 직접 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을 자신과 가족들이 입었다. 수요자가 모든 것을 직접 했던 시대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1차 산업혁명은 기계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됐다. 옷을 ‘기계’가 만들어줬다. 인간이 만든 옷보다 기계가 만든 옷이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계를 보유하기 위한 자본을 가진 공급자 혹은 기업이 등장했다. 공장과 창고가 지어지고, 도·소매업이 생겨나고, 기업이 만들어내는 브랜드가 등장하고, 공산품을 만들어 파는 시장이 형성됐다. 공업화로 인해 도시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으며, 도시의 상공업자들에게 자본이 집중되면서 신흥 부르주아(bourgeois) 계급이 등장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귀족계급을 대신해 정치·경제를 지배했고 자본주의의 발달은 절대왕권을 무너뜨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공급자는 수요자가 했던 소재 선정, 디자인, 봉제 등의 작업을 대신했고, 수요자는 구매만 하면 됐다. 결국 수요자 중심에서 공급자 중심의 시대로 전환됐다. 또 공급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성복(ready to wear)이란 개념이 나오면서 불특정 다수가 수요자로 여겨졌다. 이는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1차 산업혁명은 방직기를 발명하고 면방산업을 육성한 영국을 세계 최고의 섬유패션 강대국으로 이끌었다. 이 시기에 최초로 패션 업계에서 ‘브랜드(brand)’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당시 만들어진 주요 브랜드들은 대체로 럭셔리(luxury) 브랜드로 불렸다. 이후 프랑스, 영국, 미국과 당시 유럽의 생산기지였던 이탈리아 등이 주도해 패션 브랜드의 개념과 시장을 만들었으며 버버리, 샤넬, 루이뷔통, 구찌, 프라다 등이 탄생해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LVMH그룹은 루이뷔통, 셀린느, 디올 등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 기업으로 연 매출 40조 원에, 6000개 매장과 12만 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을 중심으로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주로 전기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기계’가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증기를 대신한 전기에너지의 활용은 대량 생산 체제를 더욱 가속화했다. 또 주로 석유를 원료로 전지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화학공학이 지금의 IT처럼 주도적인 기술로 등장했다. 합성고무나 나일론을 위시한 화학섬유의 등장이나 석유의 주 생산지역인 중동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도 이때부터다. 전기기계는 기성품의 대량 생산(mass production)을 본격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대량 생산으로 인해 저가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됐지만 막대한 잉여생산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기업들은 잉여생산으로 인한 재고를 줄이기 위해 활발한 마케팅을 시작했고, 수요자들의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넘쳐났다.

이 시기 패션산업에서는 미국의 도약이 가장 눈에 띈다. 천연 셀룰로오스 재생섬유인 레이온 섬유가 발명되고, 이후 1938년 미국 듀폰사는 나일론을 개발했다. 듀폰은 당시 오늘날 구글과 같은 지위를 누렸다. 이 밖에도 방수가 되면서 땀을 배출하는 고어텍스를 개발한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 화학섬유의 대명사가 된 일본의 도레이 등이 글로벌 섬유소재 업체로 급성장했다. 이 무렵부터 의류의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서 럭셔리 제품보다 대중적인 일반 의류와 스포츠웨어 분야가 시장을 주도했다. 1961년에는 프레타포르테(고급 기성복) 컬렉션이 등장했고 유럽의 파리와 밀라노, 런던 등을 중심으로 고급 기성복이 패션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바로 나이키, 갭, 랄프로렌 등이다. 이 무렵 한국에서도 내수 시장을 겨냥한 패션 브랜드들이 탄생했다.

20세기 중반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3차 산업혁명이 촉발됐다. 컴퓨터나 인터넷이 연결된 ‘자동화기계’ 혹은 ‘정보화기계’가 옷을 만들어 줬다. 디지털 기술 혁신으로 온라인을 통한 문화, 서비스,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수많은 아날로그 요소가 디지털화했고 이를 이용한 거대한 플랫폼 기업이 등장했다. IT 덕분에 수요자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급자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공급자는 더욱 빠르고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아마존 같은 거대한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하면서 고객들은 옷을 만져보거나 입어보지 않고도 온라인에서 구매했다.

자라나 H&M 등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혹은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IT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매장에서 수집한 정보에 기초해 1∼2주 만에 ‘다품종 대량 공급’이 가능한 SPA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구현한 퍼스트 무버형 글로벌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특히 이전까지 패션산업에서 2등 국가를 면치 못하던 스페인에서 자라가 나왔고, 인구가 1000만 명에 불과한 스웨덴에서 H&M이 등장했다. 패션의 변방이었던 아시아에서도 유니클로가 나왔다. 이들 브랜드는 연 매출 약 30조 원 선을 기록하며 블랙홀처럼 기존 패션 브랜드들을 압도하고 있다. 다만 초다품종 생산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공급자 중심의 기성복이 지배하는 패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유사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은 패션산업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필자는 ‘엄마기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정의한다.(그림 1) 즉, 옷을 ‘엄마기계’가 만들어 준다. 여기서 엄마기계란 엄마의 특성과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 시스템, 장치,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을 총칭한다. 엄마의 특성과 기능이라 함은 수작업 시대에 엄마가 하던 일들과 유사하다. 엄마가 수요자인 자녀들의 상황, 맥락, 선호, 의도 등을 반영해서 소재를 선정하고, 디자인하고,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냥 막연히 보편적으로 대중을 위한 좋은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상에게 가장 좋은 옷을 만들어준다. 이때 엄마가 고려하는 것을 한마디로 ‘컨텍스트(context)’로 부를 수 있다. 즉, 컨텍스트를 반영한 ‘전문가 기계’의 등장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콘텐츠가 왕이라면 컨텍스트는 신이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빌리자면 일반적으로 좋은 옷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수요자가 원하는,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훨씬 더 중요하다. 엄마기계 외에도 온갖 영역에서 운전자 기계, 바둑기사 기계, 비서 기계, 운동선수 기계, 의사 기계, 통역사 기계, 디자이너 기계, 화가 기계, 기자 기계, 요리사 기계, 스타일리스트 기계, 숍마스터 기계, 생산자 기계 등이 등장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이렇듯 많은 영역에서 컨텍스트를 반영하는 전문가 기계가 등장하는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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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엄마기계’의 등장은 이 시대의 수많은 것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물인터넷, 로봇 같은 기술들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공급자-수요자의 역할 변화다.(그림 2) 즉, 이 세상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 산업혁명으로 기업이 주도하는 공급자 중심의 세상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일은 공급자가 수요자를 대신해서 해주었고, 수요자는 공급자가 제공하는 것들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를 자유 외에는 없었다. 수요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문하거나 말할 수 없다. 공급자가 이런 수요자의 개별 요구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요자들의 기능과 역할이 다시 커지고 있다. 초연결 네트워크와 수많은 전문가 기계의 도움을 받아 원하는 것을 말하고,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자의 기능과 역할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소비자 주권이 회복되고 있다. 네트워크 시대에 초연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리소스들이 바로 이런 일들을 가능케 하고 있다.

또한 1∼3차 산업혁명 시대를 풍미했던 공급자 및 기성품 위주의 산업·경제 시스템은 패션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자가 원하는 ‘맞춤 제품’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수요자가 옵션들을 선택해 자신만의 것을 조합하는 방식인 ‘대량 맞춤(mass customization)’을 넘어 수요자가 처음부터 디자인에 직접 개입하는 ‘개인 맞춤 생산(personalized production)’ 시대가 열리고 있다.

패션유통 부문 역시 매 산업혁명에 따라 혁신적 변화를 이어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1차 산업혁명은 기성품 위주의 패션제품을 판매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2차 산업혁명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브랜드 중심의 베스트셀러를 판매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이후 3차 산업혁명은 전시공간이 필요 없는 온라인 유통을 낳으면서 롱테일(long tail)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수요자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컨텍스트를 반영하는 큐레이션 유통과 개인별 서비스, 공유, 개방, 데이터 기반 서비스가 대세를 이룰 것이다.

혁명과 변화의 주도 세력 교체
산업혁명에 따른 패션산업의 변화를 살필 때 눈여겨볼 것은 매번 주도세력이 바뀐다는 것이다.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럭셔리 기업에서 나이키 같은 기업들로 주도세력이 바뀌더니 급기야는 자라나 H&M 같은 SPA 기업들이 패션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유럽의 기업들이 나서는가 싶더니 대규모 자본을 중심으로 한 미국 기업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오늘날 대세는 스페인이나 스웨덴, 일본 등 50년 전까지만 해도 패션 분야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던 나라들이 주도하고 있다.

만약 당시 공룡 기업들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해 새로운 사업 분야에 투자했다면 주도권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샤넬이나 나이키 같은 회사가 대규모 자본과 전문 인력을 동원해서 SPA 사업을 했다면 오늘날의 자라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비단 패션에서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유통업에서도 아마존의 기업가치가 월마트를 추월했다. 수십 년간 오프라인에서 최고의 유통 기업이었던 월마트는 작은 차고에서 시작한 아마존에 밀렸다. 월마트가 온라인 유통으로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프라인이라는 자신들이 가진 매력적인 자원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인 온라인 유통에 굳이 목매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온라인에 대항해 오프라인에서의 지배력을 더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월마트의 이런 전략에는 한계가 있었다. 공유경제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기존 호텔 기업들은 더 나은 호텔을 짓고 서비스를 강화하려고 한다.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패션산업에서 한 번도 세계의 주역이 되지 못했던, 그래서 기득권조차 없는 한국에 한 줄기 희망이 될 수도 있다.

혁신적 패션 기업들의 대응 방안
네트워크 시대에 글로벌 패션기업들의 대응 전략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공룡 기업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과 혁신 스타트업 기업들이 펼치는 전략이다.

패션 분야에서 공룡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 그리고 정보력을 동원해 자신들이 보유한 플랫폼 기반의 네트워크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 선봉에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스포츠 패션 브랜드 아디다스가 있다. 아디다스는 스피드 팩토리를 구축해 소비자 개개인의 컨텍스트를 파악해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스피드 팩토리에는 6대의 로봇과 3D프린터가 2개의 생산 공정에 투입된다. 10명의 종업원만으로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 제작이 가능하고, 고객은 수백만 가지의 조합 중 원하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2005년에 개발한 스마트 러닝화 ‘아디다스 원(Adidas One)’은 센서, 프로세서, 구동부 등이 장착된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품을 이용하면 고객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아디다스는 더 이상 신발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서비스 회사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제 운동화는 신고 다니는 모바일폰 같은 네트워크 단말기로 진화하고 있다.

나이키도 2000년 ‘나이키아이디(NikeID)’를 출시하고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한 운동화를 제작/배달하고 있다. 현재 1개의 기본 스타일에서 84가지 조합의 상품 주문이 가능하다. 또한 2016년 11월에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했던 자동으로 신발 끈을 조여주는 스마트 운동화 ‘하이퍼어댑트 1.0(HyperAdapt 1.0)’을 시판했다. 이 밖에도 ‘나이키 플러스(Nike Plus)’는 애플사와 협력해 운동화에 내장된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운동량을 아이폰에 전송해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나이키가 운동 트레이너 역할까지 해주고 있는 셈이다.

자라는 각 매장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실시간 고객정보와 판매 및 재고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해 수요를 파악하고, 시장과 가까운 곳에 생산 공장을 배치해 신속하게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수요가 많은 제품은 더 많이 배치하고, 수요가 적은 물건은 재고를 덜 남겨 물류 및 보관비를 줄이고 재고 처리를 위한 할인행사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자라는 과거 4년 동안 IT 분야에 10억 유로를 투입해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활용, RFID의 도입 등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다.

일본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미래에 대비하려면 제조 소매업에서 벗어나 정보제조 소매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디지털 혁신을 통해 ‘만든 것을 파는’ 기업에서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상품화하는 기업으로 변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의 핵심에는 인공지능을 구사하는 정보 플랫폼이 자리하고 있다. 이 플랫폼에 고객 정보를 집약하면 어떤 상품이, 어디에서, 얼마나 수요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상품을 기획,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정보제조 소매업으로서 유니클로가 목표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옷을 ‘입은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경계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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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패션업계만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 같은 IT 기업도 패션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구글은 글로벌 패션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IT와 패션이 융합한 혁신적인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구글은 2016년에 글로벌 패션업체인 H&M과 함께 사용자 위치정보를 이용해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수집하고 개인 맞춤형 드레스를 제작해 주는 서비스인 ‘코디드 쿠튀르(coded couture)’를 개시했다. 이는 실제 ‘엄마기계’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글은 또 리바이스와 제휴해 스마트 재킷 생산을 위한 ‘프로젝트 자카드(Project Jacquard)’를 진행했다. 전도성 섬유로 옷감을 직조하고 여기에 센서가 장착된 회로를 넣은 후 스마트폰 등으로 조작할 수 있는 재킷을 개발해 2017년 9월 ‘스마트 커뮤터 재킷(Smart Commutor Jacket)’이란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했다. 또 2016년 9월 인공지능을 사용한 소위 ‘디자이너 기계’인 ‘프로젝트 뮤즈(Project Muse)’를 공개했다. 독일 자란도와 협력한 프로젝트 뮤즈는 구글의 머신러닝 기술에 600개 이상의 의류 디자인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결합해 옷감의 질감, 색상, 스타일 등을 고려한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 실제 구글은 디자인 결과물을 베를린의 한 패션쇼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또 2017년 4월 ‘스타일 아이디어(Style Ideas)’라는 이미지 검색 기능을 쇼핑 검색에 추가했다. 구글은 빅데이터를 사용해서 패션 트렌드를 예측하는 시도를 하는 등 패션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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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패션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최근 공격적으로 패션 브랜드 및 유통 업체들을 인수하고 자체 패션 브랜드를 출시하고 있는 아마존은 2016년에는 새로운 패션 아이템과 관련 제품을 가지고 30분 동안 얘기하는 뷰티패션 토크쇼 ‘스타일 코드 라이브(Style Code Live)’ 방송을 시작했다. 또 아마존 프라임 고객을 위한 ‘프라임 워드로브(Prime Wardrobe)’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을 구매하기 전에 집에서 미리 착용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료로 반품할 수 있다. 2017년 4월에는 ‘에코룩(Echo Look)’ 서비스를 발표했다. 인공지능 알렉사(Alexa)가 탑재된 에코(Echo) 스피커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해 고객에게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주는 스타일리스트 서비스가 바로 에코룩이다. 또 아마존은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라온 사진이나 이미지를 분석해 최신 패션 스타일을 추출한 뒤, 이를 기반으로 옷을 디자인하는 알고리즘도 개발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옷을 만드는 주문형 의류 생산 시스템 관련 기술을 2017년 4월18일에 특허(US9623578) 등록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코웬앤드컴퍼니(Cowen & Company)는 아마존의 패션 부문 매출이 2021년 62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나이키, 자라 등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패션그룹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패션쇼가 위협받고 있다. 버버리, 톰포드, 베트멍 등은 2016년 가을 패션위크부터 불참을 선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공급자 중심으로 6개월 앞서 제품 출시 계획을 알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3차 산업혁명 이전 사회에서 패션 제품의 ‘홍보’를 위해 고안된 패션쇼와 패션위크는 SNS라는 강력한 홍보 매체가 등장하자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빅데이터의 보고인 SNS가 본격적으로 패션산업에서 활용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비자와 소통하며 컨텍스트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활용돼 패션계를 좌지우지할 것이다.

글로벌 패션 공룡 기업보다 더 과감한 혁신을 선도하는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크게 제조기반 패션기업들과 유통 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패션 제조기반 혁신 기업부터 살펴보자. 이들 대부분은 수요자가 디자인에 참여하는 방식의 온라인 맞춤형 패션 스타트업들이다. 재즐(Zazzle), 스프레드셔츠(Spreadshirts), 스레드리스(Threadless), 보노보스(Bonobos) 등이 대표적이다. 뉴욕에 본사를 둔 보노보스는 2007년 설립한 온라인 남성 패션 스타트업이다. 수요자가 원하는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이 가미된 커스텀 핏(custom fit)의 남성 바지를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보노보스는 초창기에는 바지(치노 팬츠(chino pants)) 하나에만 집중했는데 고객이 원하는 ‘내 몸에 딱 맞는 바지’를 제공하는 게 목표였다. 신체사이즈와 고객의 취향에 따라 28∼40 사이즈로 세분화하고, 핏(fit)은 ‘테일러(tailored)핏, 슬림(slim)핏, 애슬레틱(athletic)핏, 스트레이트(straight)핏, 부츠(boots)컷 등으로 세분화했다. 바지 가격은 개당 95달러로 사이트 오픈 반년 만에 4만 달러의 판매고를 달성했다. 이후 셔츠, 재킷, 신발 등 제품 라인을 추가하며 창업 3년 만인 2011년에는 1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등 폭풍 성장을 이어갔다. 현재는 미국 전역에 30여 개의 오프라인 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성공을 거듭하던 보노보스는 2017년 월마트에 3억1000만 달러에 인수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패스트패션이 불가능해 보였던 기성복 비즈니스 시장에서도 맞춤형 패션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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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D프린팅과 스캐닝을 이용한 고객 맞춤형 패션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3D프린터를 사용하면 소비자들의 몸에 딱 맞는 맞춤형 제작이 대량으로 가능해진다. 이스라엘의 대니트 펠레그(Denit Peleg)는 세계 최초로 맞춤 주문형 3D프린팅 재킷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이들이 선보인 보머 재킷(Boomer jacket)은 유연한 고무재질의 소재로 프린트됐으며, 부드러운 원단으로 안감을 대어 착용성을 높였다. 고객은 크기, 색상 등 약 100개 항목에 대해 맞춤형 주문을 할 수 있다. 현재 3D 재킷을 한 벌 만드는 데 약 100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펠레그는 2년 전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학생 시절 처음으로 3D프린터로 옷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가정용 3D프린터 6대를 이용해 1500시간, 즉 62일 만에 재킷 한 벌을 만들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제작시간이 15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3D프린팅 기술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지 못해 현재 판매가가 1500달러(약 168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수요가 늘면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 또 기술이 더 발전하면 집에서 2∼3시간 만에 자신의 체형에 맞는 티셔츠를 만들 수 있는 때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패션산업에서 3D프린터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야는 신발 업계다. 미국의 스타트업 피츠슈즈(Feetz Shoes), 프리볼브(Prevolve) 등은 앱으로 자신의 발을 찍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선택하면 3D프린터로 운동화를 제조할 수 있다. 운동화의 가격은 200달러 미만이다. 피츠슈즈는 2016년 창업 이후 매출이 수직상승하며 현재는 3조 원에 이른다.

3D 스캐닝 기술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여성용 브래지어를 출시한 여성 스타트업 ‘에블린 앤 바비(Evelyn & Bobbie)’는 2017년 5월 킥스타터(Kickstarter)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인후원자 3507명으로부터 40만 달러를 모았다. 이 브래지어는 188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요자의 체형은 매우 중요한 고객의 컨텍스트 중 하나다. ‘엄마기계’가 내 몸에 꼭 맞는 속옷을 만들어 주는 기업이 바로 ‘에블린 앤 바비’다. 이렇듯 현재 많은 글로벌 패션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개인 맞춤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2010년에 창업한 미국의 ‘에버레인(Everlane)’은 옷이 만들어지고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전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이고 하청 공장 원가까지 모두 공개하는 ‘투명성’으로 승부하는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 창업자는 벤처캐피털에 근무하다가 50달러에 팔리는 티셔츠의 원가가 불과 7달러 수준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창업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기업이 얼마의 이윤을 얻는지도 고객들이 정확히 알 수 있다. 세일 행사도 하지 않는다. 또 원자재 가격 변동이 생기면 판매 가격을 변경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라 등 패스트패션 업체와 가장 큰 차이는 에버레인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비 트렌드인 ‘가치소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이 시대 고객의 컨텍스트 중 하나인 ‘알고자 하는 욕구’를 비즈니스에 반영했다. 에버레인은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했으며 기업가치도 2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패션유통 분야에서도 스타트업들은 약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2011년 설립한 미국의 ‘스티치픽스(Stitch Fix)’다. 스티치픽스는 의류 브랜드와 계약을 맺고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가입자를 위해 스타일링된 의류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소위 찾아가는 서비스다. 회원 가입 시 수집한 고객 정보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후 담당 스타일리스트가 고객에게 적합한 5개의 스타일 아이템을 고르고 스타일링 방법을 안내한다. 스티치픽스는 고객 정보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기 위해 80명의 데이터전문가를 고용했으며, 이 알고리즘으로 찾아낸 아이템이 정말 그 고객에게 최적인가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는 스타일리스트를 3400명(전 사원의 60%)이나 고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7년에 매출액 9억7710만 달러(약 1조864억 원)를 달성했으며, 회원 수는 220만 명에 이른다. 스티치픽스는 2017년 11월16일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상장일 장 마감 기준 15억 달러였던 스티치픽스의 주가는 상장 10일 만에 50% 증가했다. 스티치픽스가 이처럼 높은 가치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앞선 모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베이나 아마존처럼 옷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는 많다. 하지만 스티치픽스처럼 고객의 성향이나 체형에 맞는 옷을 골라주는 맞춤형 서비스는 드물다. 스티치픽스는 아마존이 가지고 있지 못한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인 ‘추천’을 선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통은 고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도서 판매점이었던 아마존이 ‘롱테일’이라는 키워드를 선점해서 모든 실물을 취급하고 있는 것처럼 스티치픽스도 ‘추천’이라는 키워드로 사업 분야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와비파커(Warby Parker)는 2010년 뉴욕에서 창업한 안경업계의 스티치픽스다. 창업 5년 만인 2015년에 연 매출 1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2016년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했다.

‘대여’를 통해 공유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패션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렌트 더 런웨이(Rent The Runway)’는 럭셔리 드레스 등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 기업이다. 현재 회원은 약 600만 명 정도이며 기업가치는 6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와 유사한 공유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일본의 스타트업인 ‘에어 클로젯(Air Closet)’은 온라인 기반의 의류 대여로 2015년 2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패션의 소비 형태를 ‘구매’에서 ‘대여를 통한 사용’으로 바꾼 이 스타트업들은 패스트패션 왕국을 위협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개척했다는 평가다. 싼 가격에 최신 패션을 손에 넣기 위해 패스트패션을 구매했던 많은 소비자가 이들을 통해 최신 패션을 소유하지 않고 사용하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패션유통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것이 바로 ‘챗(Chat)’ 쇼핑이다. 수요자의 컨텍스트를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고객에게 원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 채팅이나 메신저를 사용해 고객의 컨텍스트를 즉석에서 파악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타오바오왕(Taobao Wang)의 회원 전용 메신저인 알리왕왕(Alli Wang-Wang), 인도 3위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스냅딜(Snap Deal)이 운영하는 모바일 기반 오픈마켓인 쇼퍼(Shopo)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고객이 직접 입력한 컨텍스트를 반영한 제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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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런던에서 창업한 패션 스타트업 ‘리스트(Lyst)’, 구글의 광고 기능을 쇼핑에 도입하는 전략으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미국의 ‘위시(Wish)’, 2008년 영국에서 설립한 온라인 하이패션 쇼핑 플랫폼 파페치(FarFetch) 등은 고객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은 수천만 명의 사용자와 수만 개의 기업을 연결한다. 리스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1200개 이상의 디자이너와 패션 브랜드, 패션 매장과 소비자를 연결한다. 사용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브랜드나 디자이너, 혹은 유저를 팔로하면 그들로부터 패션 아이템을 추천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팔로하고 있는 아이템이 세일을 하거나, 매진된 아이템이 새롭게 입고됐을 때는 e메일로 알려주기 때문에 최신 정보를 놓치지 않게 된다. 이 사이트는 시각적으로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사이트 내에서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퍼스널라이즈드 컬렉션(personalized collection)을 만들 수 있다. 버버리, 샤넬, 발렌티노 등의 하이엔드 브랜드뿐 아니라 제이크루(JCrew) 등의 캐주얼 브랜드, 블루밍데일(Bloomingdale), 바니스(Barneys) 및 네타포르테(Net-a-Porter)를 비롯한 많은 유통업체의 계정이 구비돼 있어 가장 폭넓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월간 20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226억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으며 ‘맞춤 쇼핑경험(bespoke shopping experience)’을 지향하는 네타포르테 이후 최고의 온라인 쇼핑 혁신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위시는 사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위시 리스트에 담고, 태그를 달고, 친구들에게 추천을 하면, 할인쿠폰이나 무료 업그레이드 등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동시에 위시는 사용자들의 다양한 행동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한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고 누적될수록 위시의 추천 엔진은 점점 정교해지고, 사용자들은 검색 없이도 자신에게 딱 맞는 상품을 추천받을 수 있게 된다. 위시가 지향하는 것은 아마존처럼 많은 상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팔면서, 구글의 검색 기능처럼 사용자가 요구하는 상품을 정확하게 추천할 수 있는 ‘구글 버전의 아마존’이다. 현재 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전 세계 3100만 명가량의 활성 사용자와 1만 명 이상의 판매자를 보유하고 있는 위시는 4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2014년) 유니콘 기업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개인 맞춤 서비스로 무장해 아마존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평가다.

파페치는 ‘멀리서(Far)’와 ‘가져오다(Fetch)’는 의미를 가진 합성어를 브랜드로 사용하고 있다. 즉, 멀리 있는 패션 아이템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미다. 일종의 명품 매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옷을 골라서 가져다주는 ‘숍마스터 기계(shop master machine)’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파페치는 약 300개의 해외 편집숍과 부티크들이 참여하는 패션 쇼핑몰로서 부티크별로 큐레이션된 상품을 모은 게 특징이다. 먼저 ‘패션 정찰대’로 불리는 파페치 직원들이 전 세계 40개국에 머물면서 개성과 트렌드, 럭셔리감 등의 기준으로 부티크와 디자이너를 선별해 협력을 맺은 다음 홈페이지에 올릴 제품을 고른다. 고객이 이 사이트에서 상품을 구입하면 그 정보가 부티크의 컴퓨터와 앱에 통보된다. 밀라노와 파리, 뉴욕 등 세계 각국의 유명 부티크가 엄선한 상품을 현지에 가지 않고도 구입할 수 있다는 편의성 때문에 전 세계 150개국에서 최신 유행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애용하고 있다. 온라인 매장이 없는 소형 편집매장들은 파페치 사이트를 통해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고 매장도 홍보할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파페치의 플랫폼은 ‘고객 인지기능’을 갖춘 오프라인 매장을 지원하며, 스마트 피팅룸에 설치된 ‘디지털 거울’은 소비자가 그동안 파페치에서 구입한 제품을 토대로 ‘좋아할 만한 옷’은 물론, 현재 입고 있는 옷과 어울릴 만한 신발 등을 추천한다.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파페치의 2016년 총거래액은 8억 달러(약 9026억 원)로, 4년 전보다 3배나 증가했다. 2017년 현재까지 총 34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창업 7년 만에 영국을 대표하는 유니콘으로 부상했다.

한국 제조 기반의 패션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제조 기반 패션기업들은 지금까지 글로벌 패션기업들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이 원하는 섬유와 천, 그리고 옷을 우리 특유의 근면과 성실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 공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우리의 역할을 이제 중국이나 동남아 기업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해외로 생산 공장을 이전한 기업들이 겨우 버티고 있다. 한국 패션기업은 더 이상 조력자로서 버틸 기력이 없어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쟁력으로 글로벌 패션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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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글로벌 패션 기업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유럽의 럭셔리 패션 기업, 미국을 위시한 패션 브랜드 기업, 후발주자인 패스트 패션 기업이 그것이다. 한국이 글로벌 패션 기업이 되기 위해 이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샤넬 같은 럭셔리 패션이 되기에는 역사와 문화가 부족하고, 나이키 같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기업이 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고 자본도 부족하다. 자라가 2주에 만든 것을 우리가 1주에 해낸다고 글로벌 패스트패션 기업이 되기는 어렵다.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스타일에 100만 벌씩 주문하는 H&M을 2000벌 주문하는 한국 기업이 이겨낼 수 없다. 그들과 경쟁하는 대신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편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실제 휠라코리아(Fila Korea)는 2007년 글로벌 브랜드인 ‘휠라(Fila)’의 신발 및 의류 사업을 인수했고, 2011년 미국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Titleist)’를 사들였다. 삼성은 2011년 이탈리아 명품 가방 브랜드 ‘콜롬보(Colombo)’를, 성주그룹은 2005년 독일 가방 브랜드 ‘MCM’을 인수했다. 그런데 자본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도 우리가 글로벌 패션 기업이 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글로벌 패션 기업에 도전해야 할까. 필자의 견해로는 그들이 산업혁명 때마다 그러했듯이 우리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들도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들에 의해 워낙 많은 분야가 점령당했기에 남은 분야가 많지는 않지만 4차 산업혁명은 분명히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초연결 시대에 소비자 중심의 맞춤형 패션산업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부분이다. 아직 ‘맞춤’ 패션 하면 떠오르는 나라나 기업이 없다. 몇몇 외국의 스타트업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아직 글로벌 패권을 장악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기성복으로 먹고살기도 힘든데 언제 한 벌 한 벌 만들어 돈 버냐고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대일 생산을 해서 동일한 가격대로 맞춤 제품을 공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당장은 돈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현재의 글로벌 패션 기업들도 과거에는 이런 경험들을 했다. 나이키가 러닝화나 테니스화를 들고 신발을 소위 세분화(segmentation)했을 때 다들 비웃었다. “테니스화를 테니스할 때만 신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자라나 H&M이 2∼3주에 신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겠다고 했을 때에도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1년에 시즌별로 2∼5번 신상품을 기획하고 만들어 팔아도 재고가 남아 힘든 상황인데 수십 번 신상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공급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그들이 해내고 얻은 선물이 바로 글로벌 패권이다. 필자는 지금의 블랙홀인 패스트패션을 넘어서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이 곧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패스트패션의 한계는 아무리 빠르고, 싸고 다양하게 만들더라도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패스트패션을 이길 자는 이런 공급자 중심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소비자 중심의 패션일 것이다. 맞춤 패션은 기존 방식대로 만들어 놓고 파는 게 아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소위 ‘선주문 후생산’ 방식이다. 의류 재고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3D프린팅, 디지털 텍스타일 프린팅(DTP), 3D스캐닝, 맞춤 생산 및 협업 시스템, AR/VR,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활용될 것이다. 소비자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ICT 융합형 스마트 의류 분야도 우리가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맞춤 혹은 스마트 패션을 지배하는 주인이 돼야 한다. 우리는 동대문으로 대표되는 제조 인프라가 있고, 또 맞춤 및 스마트 패션을 가능하게 하는 ICT 융합 기술이 있다. 이는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의 강점이다. 한국은 필요한 모든 원부자재를 동원해 하루 만에 원하는 옷을 만들 수 있는 제조 인프라를 갖고 있다. 이런 인프라는 구조조정이나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다. 십수 년 전부터 국가적으로 추진했던 ICT-섬유패션 융합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은 ‘미래패션공작소(My Fashion Lab)’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서 세계 최초로 1시간 이내에 3D 기술과 디지털 텍스타일 프린팅 등을 이용해 고객이 원하는 옷을 즉석 주문-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스마트 의류와 관련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우리가 해낼 수 있다.

또한 패션 유통 분야에서도 더 이상 기다리는 유통이 아니라 찾아가는 지능 능동형 유통 시스템을 시도해야 한다. 3차 산업혁명이 온라인이라는 공룡을 탄생시켰듯 이제는 추천, 공유 등과 관련한 거대 기업이 만들어질 것이다. 패션 유통 역시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 글로벌 패션 유통은 벌써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뛰어들지 않으면 늦는다. 시간이 없다.

필자소개 박창규 건국대 유기나노시스템공학과 교수 cezar@konkuk.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고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과 2017년에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국제인명센터로부터 ‘세계 100대 공학자’로 선정됐다. 건국대 유비쿼터스정보기술연구원 원장, ICT융합네트워크 이사, 정보화정책 편집위원, 공군 자문위원, 한국의류산업학회 수석부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디지털 의류 및 신발 분과 의장으로 ISO 국제 표준규격을 20건 이상 제안해 12건을 발행한 바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