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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펍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아니어도 재미만 있으면 끝', 개인방송과 협업으로 온라인 게임 평정

임현석 |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출시 8개월 만에 전 세계 2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국산 온라인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요인

1) 영화에서 차용한 ‘서바이벌’ 콘셉트
2) 다국적 개발팀으로 지역 색 없앰
3) 스팀, 아마존웹서비스 등 글로벌 플랫폼 활용해 글로벌 시장 동시 공략
4)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의 진화를 감지. 1인 방송을 위한 개별 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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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16년 3월, 중견 게임사 블루홀 이사진은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흥행이 불투명한 기획안을 승인한다. 장병규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4개월 동안 기획서를 검토한 후였다.

배틀그라운드는 최대 100명의 이용자가 고립된 섬에 들어가 최후의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다. 섬에 있는 각종 무기와 차량 등을 활용할 수 있으며 잘 싸우는 것만큼 잘 숨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구역이 좁아지며 경쟁은 치열해져 간다. 영화 ‘배틀로얄’ ‘헝거게임’과 비슷한 콘셉트다. 게임 다운로드 가격은 3만2000원이다.

블루홀 자회사 블루홀지노게임즈(현 펍지)의 한 직원이 제안한 이 기획안은 국내 게임업계 흥행공식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대세인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이었고 유행이 한참 지난 총싸움 게임이었다. 유료화 전략이랄 것도 따로 없었다. 그저 게임을 많이 파는 것 외엔 대안이 없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 기획안을 승인한 장 의장도 흥행 가능성에 대해선 갸웃했다. 그는 “매출 목표치가 40만 장이었다. 농담 삼아 200만 장 팔면 프로듀서에게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만 장이면 국내 최고 히트작 수준의 판매량이다. 아무도 이 게임에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장 의장이 농담을 한 것이다.

결과는? 200만 장은 정말로 농담이 됐다. 2017년 3월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Playerunknown’s Battlegrounds, 이하 ‘배틀그라운드’)란 이름으로 출시된 이 게임은 11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2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참고로 국민게임으로 불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출시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에서 총 1100만 장 팔렸다. 배틀그라운드는 불과 8개월 만에 스타크래프트 10여 년의 성과를 훨씬 뛰어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심지어 정식판도 아닌 베타 버전인데 그랬다.1  회사 측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11월 말까지 누적 매출액은 약 5000억 원대, 그중 약 95%가 해외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접속자수는 250만∼300만 명에 이른다.

국내 게임산업 사상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다. 2008년 스마일게이트가 만든 슈팅 게임 ‘크로스파이어’가 중국 진출 후 동시접속자수 8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유럽과 북미 시장에선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4년 펄어비스가 내놓은 MMORPG ‘검은사막’은 일본, 러시아, 북미, 유럽 등 100여 개국에 진출하면서 가입자 765만 명을 확보했지만 배틀그라운드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었다.

배틀그라운드의 흥행 덕분에 2007년 창립한 블루홀의 기업가치는 급성장했다. 장외시장 정보업체 38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비상장기업인 블루홀의 추정 기업가치는 2017년 초 2074억 원에서 11월에는 약 5조 원까지 치솟았다. 장 의장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도 1조 원대에 이른다. 처음 기획안을 내고 게임 개발을 총괄 기획한 김창한 프로듀서는 9월 펍지2 의 대표가 됐다.

정식 출시도 하기 전에 신화가 된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요인을 분석한다.


‘하나뿐인 내 목숨’ 새로운 형식 과감히 적용

게임산업은 크게 모바일 게임, PC 게임, 콘솔(X박스,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등) 게임으로 나뉜다. 블루홀이 기획안을 검토하던 2015년 당시, 게임업계에선 모바일 시장에 빨리 뛰어들어 오랜 기간 유저와 스킨십을 하며 시장을 운영하는 기업이 향후 업계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었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캐주얼 퍼즐게임 ‘애니팡’의 성공 이래 많은 회사들이 모바일에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게 기폭제였다. 어느 회사든 모바일 시장 진출과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었다. 블루홀 역시 모바일로 방향을 정한 듯했다. 2015년 1월, 블루홀은 중소 게임사인 지노게임즈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지노게임즈는 당시 모바일용 RPG 게임을 개발 중인 회사였다. 그래서 블루홀이 지노게임즈를 인수한 것을 두고서 모바일 게임 개발력을 확보하고 모바일 시장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많았다.

블루홀지노게임즈로 이름을 바꾼 지노게임즈 소속 개발자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출신으로 16년의 개발 경력을 가진 김창한 프로듀서였다. 그는 지노게임즈가 그동안 출시해온 게임 콘텐츠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고, 또 북미 등 글로벌 진출을 꾀한 적이 있는 회사의 핵심 인재였다. 그런데 그의 선택은 모바일이 아닌 PC 게임이었다. 그는 “PC 온라인 게임 시장이 주춤했지만 저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여전히 이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으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치 가정용 게임기(콘솔) 시장이 줄어들었을지언정 사라지진 않고 꾸준히 수요가 있는 것처럼 PC 온라인 게임 시장도 주춤할 뿐 여전히 큰 수요가 있는 시장이라는 설명이었다.

슈터(총싸움) 게임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도 의외였다. 모바일 시대에는 맞지 않는, 저물어가는 장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넓은 시야가 확보돼야 하는 총싸움 게임의 특성상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에 맞게 개발하기 어렵다. 또 단순반복적인 총싸움에 물린다는 이용자도 많았다. 한때 한국에서도 넥슨이 2005년 내놓은 총싸움 게임 ‘서든어택’이 동시접속자 35만 명을 달성하며 인기를 끈 적이 있었지만 그 인기도 수그러든 지 오래였고, 2016년 나온 후속작 ‘서든어택2’는 두 달 만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총싸움 게임은 이제 마니아 취향의 장르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미국 업체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오버워치’ 정도만이 이 장르의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김창한 프로듀서는 배틀그라운드가 여느 총싸움 게임과는 차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내 시장에선 총싸움 게임의 영향력이 차츰 줄어들고 있었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보면 여전히 이런 종류의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다만 기존 게임의 틀을 깨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총싸움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2개의 팀으로 진영을 나눠 전투를 벌이는 형태다. 게임 중 캐릭터가 죽으면 부활해서 상대편으로 돌격하는 것을 무한 반복한다.

김 프로듀서는 기존의 총싸움 게임 팬층을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짜기로 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여러 명이 게임에 참여해 단 한 명만 살아남는 이른바 ‘배틀로얄’ 방식이었다. 『배틀로얄』은 1999년 일본 작가 다카미 코순이 발표한 소설로,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제는 ‘고립된 장소에서 다수의 인원이 무작위로 싸우며 최후의 1인을 가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인기 영화 ‘헝거게임(2012)’ 역시 이런 형식이다.

김 프로듀서는 이 배틀로얄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워 대규모 인원이 함께 즐기는 게임을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조건 상대방을 많이 죽이고 전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총싸움 게임과는 차별화될 거라고 봤다.

기존 총싸움 게임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유저들은 호전적으로 돌격하는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임의 주목적이 ‘전투’가 아니라 ‘생존’이 된다면? 잘 싸워야 할 뿐 아니라 잘 숨어야 하고, 좋은 무기와 탈것 등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재미 요소가 생긴다. 또 한 번 죽으면 끝이다. 게임의 긴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승리가 목표인 기존 총싸움 게임의 목표는 람보처럼 전장으로 뛰어들어가 상대방을 몰살시키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반면 생존이 목표인 배틀그라운드의 주인공은 우리 현실과 더 닮아 있다. 생존을 위해선 획일적인 플레이가 아니라 정해진 룰 안에서 저마다의 생존방식을 고민해야만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과거에도 배틀로얄 형태의 게임들이 있긴 했다. 브렌던 그린(Brendan Greene)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개발자가 ‘아르마’라는 해외 온라인 슈터 게임을 일부 수정한 것이 시초였다. 그러나 이렇게 독립 개발자들이 만든 배틀로얄 게임들은 기존 게임 내에서 즐길 수 있는 부속 옵션으로 제공됐을 뿐이다.3  소소한 재미 이상을 주기 어려웠고 대규모 인원이 동시에 즐길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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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된 글로벌 인재에게 손을 내밀다

김창한 프로듀서는 기획안을 들고 모회사인 블루홀을 찾아갔다. “핵심 콘셉트가 분명한 만큼 복잡한 게임 설계가 필요 없다. 1년이면 개발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브렌던 그린이 만든 기존 게임들의 배틀로얄 모드가 인기를 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블루홀의 장병규 의장은 과연 흥행 가능성이 있는지, 예산은 얼마나 쓸 건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그가 보기에 김 프로듀서와 개발팀이 가져온 제안은 너무 극단적이고 세부 사항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그는 “핵심 콘셉트만 가지고 덤벼든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하고 거칠다. 브렌던 그린을 직접 데려와서 함께 개발하지 않는 한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고 김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이어 “브렌던 그린을 데려오면 게임 기획안을 승인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것 역시 반 농담이었다. 장 의장은 “간섭하지 말라는 개발진의 입장에 한편으론 짜증기가 솟기도 했다. 브렌던 그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홧김에 한 말이지, 정말로 데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어찌 됐든 김 프로듀서는 그 말을 듣고 브렌던 그린을 찾아 나섰다. 소셜미디어에서 ‘플레이어언노운(playerunknown)’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브렌던 그린의 e메일 주소를 찾아내 함께 게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브렌던 그린은 승낙했다. 그는 이 장르를 좋아하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모드’를 만드는 것으로 명성을 날리긴 했지만 사실 당시 견제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웹디자이너였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아가며 아일랜드의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혼하면서 데려온 딸도 보살펴야 했다. 가족들은 그가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는 걸 보고 결국 거리에 나앉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4

그린은 이런 상황에서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김창한 프로듀서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을 약간 수정하는 일을 했을 뿐이었는데 “너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자 주저 없이 짐을 꾸려 한국에 왔다.

장병규 의장은 “김 프로듀서가 고수는 고수”라며 이 정도 판을 짜온 것에 대해 존중하는 의미를 담아 기획안을 승인한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치열하게 논의하던 경영진은 이후 프로젝트에 일절 간섭하지 않기로 한다. “블루홀은 개발자를 존중하는 회사죠. 내부적으로 킥오프5 는 치열하게 논의가 이뤄지지만 그 이후엔 개발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개발진에게 전권을 줍니다”라고 장 의장은 말했다. 실제로 블루홀은 국내 게임사들이 잘 만들지 않는 특이한 게임들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양궁, 볼링을 다룬 게임, 또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액션게임을 만든 이력도 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들이 쌓이면서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수작이 나올 만한 토양이 갖춰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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