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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마케팅: 오픈 엔트리 레이스의 스토리텔링

참가자 모두 ‘인간 승리 드라마’ 주인공.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빛나는 마라톤

이종성 | 227호 (2017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마라톤은 인간의 정신력과 체력의 한계를 체험하는 극한의 무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스토리’가 양산되기에 기업들이 마케팅 기회를 잡기에 용이하다. 올해 처음 일반 선수들이 엘리트 선수들과 어우러지는 오픈 엔트리 레이스를 선보인 2017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8회 동아마라톤대회는 향후 새로운 스포츠 마케팅의 장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마라톤을 하나의 스포츠 대회가 아닌 ‘문화 현상’으로 불릴 수 있게 한 뉴욕시마라톤과 도쿄마라톤 사례가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일반인이 참가하는 오픈 엔트리 레이스는 이야기가 될 만한 선수를 발굴하고 대회 자체를 스토리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일반인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다.



올 3월 열린 2017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8회 동아마라톤은 대회 사상 최초로 엘리트 마라토너, 즉 프로 선수들과 일반 참가자들이 동시에 레이스를 펼치는 오픈 엔트리 레이스 형태로 진행돼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국제 마라톤대회가 엘리트 선수와 일반인이 함께 뛰는 방식으로 치러진 이유는 대회 참가자들의 외연확장이라는 측면과 범시민적 이벤트로 대회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뒷받침될 경우 단순히 일반인 참가자의 참가비 증대뿐만 아니라 대회 자체의 상업적 스폰서십 증가도 기대해볼 수 있다. 세계 기록을 낼 수 있는 일부 세계적 선수들이 참여하는 마라톤대회가 갖지 못하는 장점을 스포츠 경영적인 측면에서 찾으려고 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국제 마라톤대회가 오픈 엔트리 레이스로 변신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며 새로운 형식의 대회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까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성공적인 마라톤대회 개최와 관련한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 비밀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오픈 엔트리 레이스의 전형을 만든 뉴욕시마라톤대회와 도쿄 마라톤대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대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시사점은 향후 이제 막 오픈 엔트리 레이스로 걸음마를 시작한 서울국제마라톤을 비롯해 또 다른 국내 마라톤대회의 발전 가능성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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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서 시작된 뉴욕시마라톤의 신화

올해 보스턴마라톤대회 주최 측은 261번을 영구 결번시켰다. 261번은 여성의 출전이 금지됐던 1967년 대회에 정식으로 참가하기 위해 이름까지 이니셜로 표기했지만 결국 대회 도중 적발돼 실격처리 된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가 당시 받았던 번호였다.

이번 영구 결번 결정은 ‘금녀(禁女)의 벽’이 존재했던 마라톤대회 정식 참가를 통해 여성의 파워를 보여주고자 했던 스위처에 대한 일종의 헌정(獻呈)이었다. 1967년 사건 이후 전 세계 27개국에서 여성 전용 마라톤대회를 만들었던 스위처는 자신이 만든 대회를 통해 여성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1984년 올림픽에서 여자 마라톤 부문이 신설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올해 261번을 달고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완주해 팬들의 갈채를 받은 또 다른 이유였다.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과 더불어 1960년대에 들불처럼 번졌던 페미니즘 운동은 마라톤대회가 여성 참가자를 포함한 진정한 오픈 레이스가 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줬다.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장려했으며 이 와중에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도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사회 변화를 마라톤대회 운영에 성공적으로 접목한 주인공은 1970년 뉴욕시마라톤대회 창설의 주역이었던 프레드 르보(Fred Lebow)다.

1971년 뉴욕시마라톤대회에서 여성 부문 시상이 공식적으로 추가되기는 했지만 여성 참여자는 여전히 적었다. 여성 마라톤 붐 조성을 위해 1972년 르보는 여성만의 마라톤대회를 창설했다. 1967년 보스턴마라톤에서 비롯된 캐서린 스위처 사건이 르보에게 엄청난 영감을 제공한 셈이다.

르보가 만든 대회는 구간 10㎞인 여자 미니 마라톤이었다. 대회 스폰서는 여성용 셰이빙 크림 브랜드인 크레이지레그스(Crazylegs). 이 대회는 1970년대 후반에 참가자 6000명을 상회할 만큼 인기를 끌었고 결국 뉴욕시마라톤대회에서 여성 참가자가 늘어나는 ‘도미노 효과’를 견인했다. 세계적 건각들이 참가하는 유구한 역사의 보스턴마라톤대회와 달리 뉴욕시마라톤을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이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에 있다고 본 그의 판단은 맞아 떨어졌다. 지속적으로 여성 참가자가 늘어난 뉴욕시마라톤은 최근에도 약 30%의 높은 여성 참가비율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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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이 여성 마라톤 역사에서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진정한 남녀평등 정신’을 뉴욕시마라톤이 추구했기 때문이다. 뉴욕시마라톤은 1970, 71년 여성 마라토너를 배려하기 위해 남성 참가자보다 10분 먼저 출발하도록 했다. 하지만 1972년부터 이 같은 배려와 보호가 오히려 여성에 대한 ‘차별’과 ‘격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주최 측은 남녀 동시 출발로 규정을 바꿨다.



‘훈남’, 엘리트 선수로 고학력·중산층 공략

1970년대 미국 사회의 특징은 고학력·중산층이 조깅문화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스포츠 브랜드가 나이키라면 스포츠 종목은 단연 마라톤이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열린 마라톤대회는 200개를 상회했다. 1969년 40개 대회가 개최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르보는 조깅문화로 시작된 마라톤에 대한 높은 관심을 뉴욕시마라톤대회를 통해 담아내기 위해 대회를 관장하던 뉴욕로드러너스클럽(New York Road Runners Club·NYRRC)의 구조에 메스를 댔다. 지금까지 동호회 성격이 강한 자원봉사 단체였던 NYRRC를 경영 전문가들이 포진한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조직의 성격을 바꾼 뒤에는 리서치에 집중했다. 그들은 프로페셔널답게 어느 곳에 포인트를 두고 마케팅전략을 수립해야 할지 고민했고 그 결과는 고학력, 중산층의 남성과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대회 이미지 속에 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0년대 미국의 고학력·중산층의 주된 관심사는 ‘개인적 웰빙’이었다. 스포츠를 통해 애국심과 지역에 대한 긍지를 주로 느끼고자 했던 전 세대와는 달라진 부분이었다. 이런 그들의 관심에 뉴욕시마라톤은 금연, 알코올 중독, 감기 예방, 불면증 등에 마라톤이 효능이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파하기 시작했다.

또한 뉴욕시마라톤은 고학력·중산층 일반인 마라톤 애호가에게 하나의 롤모델을 제공했다. 그 주인공은 프랭크 쇼터(Frank Shorter)와 빌 로저스(Bill Rodgers)였다. 이들은 각각 명문인 예일대와 웨슬리언대를 졸업한 마라토너였다. 이들은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주로 블루컬러 출신이었던 마라톤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엘리트였다. 쇼터는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수상했고 로저스는 1975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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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뉴욕시마라톤은 스타 마라토너들에겐 신생 대회로 인식됐다. 그래서 르보는 이 두 명의 선수를 대회에 초청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로저스에게는 특별히 2000달러의 사례비까지 제공했을 정도였다.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고학력·중산층 조깅 애호가들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이 선수들을 모셔오기 위해 르보가 공을 들인 또 다른 이유는 두 선수의 훈남형 외모와도 무관하지 않다. 조금씩 늘기 시작한 뉴욕시마라톤 여성 참가자들의 참여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홍보효과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부분이었다.

두 선수의 영향으로 뉴욕시마라톤 참가자는 1970년 126명에서 1980년에는 1만6000명을 넘겼다. 대회가 참여 스포츠 제전으로 혁명적 발전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르보와 NYRRC의 프로페셔널 마케터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완주를 하려면 4시간 이상이 필요한 아마추어 참가자들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5시간이 지나 피니시 라인을 넘어서는 사람에게도 완주 메달을 주고 그들의 기록까지 계측해줬다.

이 같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 뉴욕시마라톤의 모든 참가자는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으며 관중들이 밤 늦게까지 이들의 도착에 성원을 보내는 문화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 문화는 지금은 9만 명이 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를 신청하고, 추첨을 거쳐 대회 참가 여부를 결정짓는 뉴욕시마라톤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일반인 영웅을 만들어내는 도쿄마라톤

뉴욕시마라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오픈 엔트리 레이스로 성장한 대회는 도쿄마라톤이다. 무려 30만 명의 일반인들이 대회 참가 신청을 한다. 그 가운데 보통 12% 정도가 참가자격을 얻게 된다.

세계신기록을 노리는 선수들을 위한 대회로 1981년 시작된 도쿄국제마라톤은 2007년 오픈 엔트리 레이스로 변신했고, 대회명도 도쿄마라톤으로 바뀌었다. ‘국제’가 빠진 셈이었다. 그 이유는 이 대회가 ‘국제대회’가 아니라 순전히 도쿄의 대회가 되기를 바라는 주최 측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도쿄마라톤이 아마추어 선수들과 함께하는 대회로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1999년에 개진됐지만 실제로 이 의견이 구체화된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 극우파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도쿄마라톤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는 도쿄도(東京都)의 대회 후원을 스스로 선언했고 일본 공영방송 NHK가 대회 중계를 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완주 시간을 고려하면 6∼7시간 교통 통제가 필요했고 도쿄 경찰 당국이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 문제도 도쿄 도지사의 한마디에 해결됐다. 2007년 1회 대회부터 지금까지 도쿄 지하철이 스폰서로 참여한 것도 도지사의 설득 때문이었다. 도쿄마라톤의 변신은 이렇게 정치적이었으며 사실상 관제(官製)였다.



하지만 그들의 전략은 남달랐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라톤 코스. 도쿄마라톤의 코스는 도쿄 도심을 가로지르는 형태로 구성돼 웬만한 도쿄의 랜드마크를 다 거치게 된다. 대회 참가자들뿐 아니라 거리에서 또는 TV로 대회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도쿄의 매력을 최대한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코스를 구성해도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는 것에 지장이 없었고 해발고도의 차이 등에 대한 IAAF(국제아마추어육상연맹)의 규정에도 저촉되지 않았다. 도쿄 도심이 대체로 평지로 이어진다는 지형적 특징 덕분이었다. 2012년 도쿄마라톤이 6번째로 세계 메이저 마라톤대회에 선정된 것도 비교적 평탄한 코스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나온 좋은 기록과 이에 따른 TV 중계 효과에 힘입은 결과였다.

도착지점 또한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했다. 마라톤 도착지점을 일본 최대의 국제컨벤션센터인 빅사이트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한 것도 의도가 있었다. 도쿄마라톤이 개막되기 전 3일 동안 빅사이트에선 8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운집한 가운데 스포츠용품과 체력 보충제 브랜드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마라톤 엑스포가 열렸다.

일본 미디어의 보도 태도와 효과는 도쿄마라톤을 범국민적 이벤트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다른 대부분의 마라톤대회와는 달리 도쿄마라톤은 특정 상업 미디어의 후원이 없다. 이 때문에 100여 개가 넘는 일본의 미디어들은 대회를 취재하고 기사를 보도한다. 대회 스폰서로 참여하는 기업들이 미디어 노출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일본 전국의 거의 모든 신문들은 도쿄마라톤이 끝난 직후 신문 1면에 사진과 함께 이 대회의 결과를 내놓는다. 이러한 취재 경쟁 속에서 자연스레 새로운 형태의 기사가 발굴됐다. 기록과는 무관하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일반인들의 스토리가 방송과 신문 인터뷰를 통해 대거 등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피니시 라인에 있는 스탠드에서 2000여 명의 팬들이 마라톤 완주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반인 참가자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는 것도 도쿄마라톤의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마라톤 완주 기록이 좋은 일부 엘리트 선수들만 받아왔던 팬들의 응원과 미디어 인터뷰를 일반인들도 경험하게 된 셈이다. 도쿄마라톤을 3만5000명(참가자 전원)의 영웅을 만들어내는 대회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이 같은 오픈 엔트리 마라톤 레이스만의 매력은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잔인한 이분법이 지배하고 있는 스포츠계와는 달리 모든 참가자를 승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뉴욕시마라톤과 도쿄마라톤의 성공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성공적인 마라톤 대회를 이끌었던 비결은 스토리 발굴에 있었다. 마라톤대회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기에는 얘깃거리가 될 만한 선수를 발굴하고, 대회 자체의 취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픈 엔트리가 된 이후엔 일반 참가자들의 스토리를 발굴한 것이 주효했다. 스토리를 통해 부각된 ‘영웅’들은 자연스레 마라톤대회의 토양을 두텁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토양을 바탕으로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cameroncrazie@hotmail.com

필자는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서 스포츠 기자로 근무했으며 영국 드몽포트대(DMU)에서 스포츠 문화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스포츠문화와 경영 간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포츠문화사>(2014), (2015)가 있다.
  • 이종성 이종성 | -(현)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스포츠 기자로 근무
    cameroncrazi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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