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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영업전략

기업만 고객? 기업도 결국 사람. 그걸 알아야 ‘어떻게’가 풀린다

이장석 | 221호 (2017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영업이라고 다 같은 영업이 아니다. B2C 영업과 B2B 영업은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 영업 관리자나 담당자들은 둘의 차이를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B2B 영업은 실행 프로세스와 접근방법이 전혀 다르다. 때문에 대다수의 기업들이 B2B 영업 경험자를 찾아 새로운 B2B 영업을 만들기를 기대하지만 시장에서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큰 이유는 B2B 영업의 고객이 기업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B2B 영업 조직은 아직도 기업이라는 통 속에 개별 고객의 정보를 함께 섞어서 관리하고 있다. 더욱이 많은 영업관리 시스템이 기업과 개인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도록 개발돼 있다. 지금 당장 B2B 영업을 위해 알아야 할 고객 이름부터 정리해봐야 한다.



편집자주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 대표가 영업, 그중에서도 B2B 영업의 핵심을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연재한다. 이 대표는 한국IBM에 사원으로 입사해 부사장까지 지냈으며 30년 이상 B2B 영업 현장을 경험한 전문가다.



영업이라고 다 같은 영업이 아니다. 크게 보면 영업은 B2B와 B2C 영업으로 나눌 수 있다. 더 세분화하면 제품 영업, 고객 영업, 국내 영업, 해외 영업, 대리점 영업, 지역 영업, 단일 고객 영업, 영업전략기획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각 세부 영역은 각각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영업의 본원적 요소와 영업이 지켜야 할 기본은 같지만 영업의 실행을 위한 프로세스와 접근방법은 영역별로 다르다.

IT 영업이라고 해도 PC 영업과 SW 영업이 같을 수 없고, 하드웨어 영업과 컨설팅 영업이 같을 수 없다. 전자산업이라 하더라도 가전제품 영업과 반도체 영업이 같을 수 없다.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영업한다고 해도 고객을 담당하는 영업과 제품 영업이 같을 수 없다. 제품 영업이나 고객 영업에서 탁월한 결과를 만들었어도 전략 및 마케팅 또는 협력회사 관리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영업을 잘했었다’ ‘영업의 전설이다’ 같은 말은 의미가 없다. 야구 천재, 농구 천재는 있어도 프로 스포츠 천재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투포환의 전설은 맞아도 육상의 전설은 지나치다. 음식점에도 홀 서비스 직원, 카운터 직원, 지배인, 셰프 등 다양한 역할로 구분돼 있다. 주방에는 셰프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조도 있고 설거지 담당도 있다. 셰프도 전문성이 다 다르다. 일식 요리사가 이탈리아 요리 셰프를 바로 대체 할 수는 없다. 식당에서 일했다고 무조건 셰프라고 할 수 없으며 식당의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보통 우리는 영업(Sales)을 쉽게 하나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영업 전문가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B2B 영업을 이해하고 기업에 정착시킨 영업 전문가는 없다. 대부분은 여전히 B2B 영업과 B2C 영업의 차이도 구분 못한다.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B2B 기업들이 B2B 영업 전문가를 찾아 새로운 B2B 방법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시장에서 그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B2B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정설로 뿌리내리고 보편화하고 있다. 영업을 했다고 해서 영업의 전 영역을 다 알고, 잘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실수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어떤 경력을 쌓았는지 제대로 평가해야만 그에 맞는 역할을 맡길 수 있는 것이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B2B의 본질과 핵심 과제를 모르면서 각자 본인의 경험에 의해 그것을 B2B 영업이라 정의하고, 직원들을 가르치고, 조직을 운영하면서 B2B 영업의 핵심은 지금도 왜곡되고 있다.



B2B 영업에 대한 오해들

첫째, B2B, 즉 기업 대상의 비즈니스에서 고객은 기업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B2B라는 용어가 기업 대상의 영업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1990년대 초까지는 이런 의미로 해석하고 접근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기업에서 어떤 영역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해당 비즈니스에 대한 구매 및 의사결정자는 극히 제한적이었으니 영업하는 입장에서는 소수의 고객을 설득하면 충분했다. 기업 업무용 차량을 영업하는 자동차 세일즈맨은 구매부 직원 및 관리자 등 몇 명만 생각하면 됐고, 공장의 설비를 판매하는 영업사원, IT 장비를 영업하는 사람, 사무용품을 판매하는 사람 등 거의 모든 B2B 영업직원들은 각 기업마다 극소수의 고객만 상대하면 충분했다. 지금도 그러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제품, 서비스의 복잡성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동일한 제품의 영업 대상이 2000년까지 10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그 후로 십 년 단위로 2배 이상 다양해졌다고 봐야 한다.

과거에 소수의 고객이 점유했던 전문 지식은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인 정보로 공유되고 있고, 고객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개방화되고 투명해졌다. 그러다 보니 의사결정은 소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유관 부서가 모두 참여하게 되고 다양한 의사결정자가 존재한다. 또한 기술적 보편성에 의해 다양한 경쟁자가 참여하니 경쟁은 복잡해졌고 이로 인해 관련 고객 수가 늘어났다.

그럼에도 B2B 영업을 기업 대상의 영업이라고 생각하고 아직도 기업 단위로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고객을 기업이라는 커다란 ‘통’ 하나로 생각하다 보니 개별 고객의 니즈, 불평·불만, 제언, 충고 등을 그 통 속에 넣어 썩히고 있으며 실제 영업의 현장에서는 극히 제한된 고객만을 상대로 영업활동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만나온 고객만을 생각하니 전 방위적 고객 관리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영업직원은 고객으로부터 멀어지고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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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영업은 계약의 상대가 기업일 뿐이지 영업의 상대가 기업은 아니다. 고객의 니즈를 고객 회사 관점에서 고민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영업 활동의 상대는 여전히 기업을 대표하는 다양한 조직과 직급의 ‘개인’들이다. 나아가 이것이 영업 관리의 모든 프로세스에 녹아 있어야 한다.

둘째, B2B 영업은 인간 관계에 달려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일반화돼 있다. B2B 영업이 상대적으로 거래 규모가 크고, 예측 가능하며, 의사결정의 기준이 극히 주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적인 관계는 영업 기회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한번 성사된 거래는 반복적,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고객 입장에서 이전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한번 형성된 인간관계는 큰 무기가 되기도 하고, 경쟁자에겐 높은 장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치를 대신할 관계는 존립할 수 없다.



영업은 신뢰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영업직원이 고객으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하면 영업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영업직원들이 신뢰와 인간관계를 혼용하고 있다. 때로는 제품의 질이 조금 떨어져도 인간 관계에 의해 열세의 상황이 극복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예외를 전부로 생각하고 모든 영업의 시발점과 종착역을 관계에 의존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영업직원이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주변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그런 행동에 의한 결과를 자신의 능력이라 믿으며 반복하다 보니 B2B 영업은 관계 중심의 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을’은 ‘갑’에게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갑’은 ‘을’에게 그에 상응한 재화를 지불하는 것이 영업이다. 여기서 ‘갑’이 ‘을’에게 지불하는 재화의 크기로 가치의 크기가 결정된다. 본질적 가치보다 큰 재화를 지급하는 ‘갑’이 있다면 이는 ‘갑’이 어리석거나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갑’과 ‘을’ 사이에 가치 이외에 다른 불순물이 개입된 것이다. 이물질이 더해진 물은 이내 썩는다. 불순물에 의한 거래는 한 번은 성사될 수 있어도 영속성은 없다. ‘갑’과 ‘을’의 관계는 가치를 기반으로 심화됐을 때 모두에게 약이 되지만 잘못된 관계는 이내 허물어진다. B2B 영업의 핵심은 여전히 가치이다. 인간 관계는 가치의 윤활유가 될 수는 있지만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셋째, 흔히 B2B 영업은 B2C에 비해서 단순할 것이라 생각한다. B2C 비즈니스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읽기가 쉽지 않고, 모든 고객을 직접 만날 수도 없으며,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의해 상황이 뒤집히기도 한다. 그러나 B2B 비즈니스는 기업 대상이니 고객도 명확하고, 관리 범위가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B2C 비즈니스가 B2B 비즈니스보다 복잡하고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B2B 비즈니스의 영업은 B2C 비즈니스의 영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그 핵심이 무엇일까?

B2C 영업은 고객이 찾아오도록 하는 영업이라면 B2B 영업은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이다. B2C 비즈니스는 제품, 서비스, 사업 내용을 홍보하고 고객이 찾아오면 영업이 시작된다. B2B 영업에서도 홍보 활동을 하지만 B2B 영업은 고객을 찾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B2B 영업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유이다. 하지만 많은 B2B 영업의 문제가 근원적인 차이를 간과하면서 발생한다.

고객이라는 목적지에 이르려면 어떤 경로, 어떤 방법으로 목적지에 도착할지에 대한 계획이 중요하다. 요즘엔 누구나 운전을 하기 전 내비게이션을 통해 경로를 검색한다. 출발지에서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이동의 목적, 중간 경유지, 동반자의 취향, 교통수단, 이동 시간대, 교통상황, 시급성에 따라 가는 길은 모두 다르다. 길이 멀면 멀수록 처음 출발할 때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하며 많은 것이 바뀐다. 하나의 제품이라 해도 고객, 지역, 경쟁 상황에 따라 ‘고객’이라는 종착지에 이르는 방법이 다양하다. 그저 여행을 떠난다면 길을 엉뚱하게 들어서 늦어져도 그만이지만 늦으면 안 되는 약속이라면, 이유 여하와 관계 없이 제시간에 도착 못 한다면 그 자체로 상황은 끝날 것이다. 영업은 전쟁이다. 목표 진지에 늦게 도착하면 그 진지는 이미 적의 손에 넘어간다.

실제 거의 모든 기업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 한 가지 제품에서도 고객으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 다양한데 제품까지 다양해지면 어떻게 될까? 제품의 포지션, 비즈니스 속성, 고객, 산업, 지역, 자사의 역량, 시장 지배구조에 따라 고객 접근 경로가 달라야 한다. 여기에 제품 수가 곱해진 만큼의 길이 새로 생기고 AIDA(Attention-Interest-Desire-Action, 인지-관심-구매욕구-행동) 단계까지 반영해 시장접근 경로를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그래서 B2B 영업은 GTM(Go to Market·시장접근경로) 방정식을 푸는 일이다. 그것도 무한 차 방정식이다.

B2B 영업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 핵심은 시장 접근 경로에 있다. 하지만 이것을 획일적으로 생각하거나 도외시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고객을 모른다

B2B 비즈니스의 영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직시할 수 없고, 본원적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며, 잘못된 영업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당연히 B2B 비즈니스 영업은 기업 대상의 영업이고, 궁극적인 가치는 기업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영업직원이 만나고, 듣고, 배우는 상대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영업직원이 고객 기업을 이해하고 가치를 생각하고 소통하는 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개별 고객인 것이다. 때문에 고객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래 사례를 살펴보자.



칠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 한 분이 어시장에서 생선을 고른다. 커다란 대야에 생선을 가득 담아 시외버스를 탄다. 한 시간 넘게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어느 산간 마을 앞에서 내려 하늘 한번 휘 둘러보고 생선 대야를 머리 위에 이고 타박타박 걷기 시작한다. 저 멀리 10여 채의 집이 띄엄띄엄 보인다. 한참을 걷다 다다른 마을 입구의 첫 집을 내 집처럼 들어선다. 마침 마당에 있던 다른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하며 머리 위의 생선 대야를 함께 내려주면서 생선 할머니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생선 대야는 한 쪽 귀퉁이에 두고, 둘은 한참 동안 지난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내 그 집의 할아버지도 나와 인사를 나누고, 마치 가족처럼 정겨운 시간을 보낸다. 점심시간이 되자 같이 상을 차리고 마주 앉아 식사를 한 뒤 상을 물리고 생선 할머니는 집주인과 함께 설거지를 한다. 잠시 후, 마을의 다른 할머니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반갑게 서로 인사하고 할머니들의 수다 2라운드가 펼쳐진다. 집주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내어오고, 다른 할머니들은 바리바리 가져온 주전부리를 펼치며 깔깔 웃는다. 얼마쯤 지났을 때, 주인 할아버지가 생선 대야의 보자기를 풀며 묻는다. “오늘은 어떤 생선인가?” “고등어 하고 청어가 물이 좋아 가져왔어요.” 생선 할머니는 아무 느낌 없는 목소리로 툭 던진다. 모여 있던 동네 할머니들은 필요한 만큼 생선을 봉지에 담고, 물어보지도 않고, 생선 할머니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주며 ‘잘 가게’라는 인사를 남기고, 하나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대야에 생선은 아직 남았다. 집주인 큰아들이 외출에서 돌아와 생선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창고를 정리한다. 이제 생선 할머니가 떠날 시간이다. “놓고 가”라고 하면서 주인 할머니는 남은 생선을 다른 통에 옮기며 아들에게 한마디 더 한다. “여기 계산해야지.” 창고에서 일하던 아들이 나와 지갑을 연다. “여유 있게 드려.” 할머니가 다시 아들에게 채근한다. 아들은 익숙한 일인 것처럼 웃으며 생선 할머니의 손에 돈을 꼭 쥐여준다. 해가 넘어갈 즈음 집주인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생선 할머니에게 남은 주전부리거리를 담아 준다. 할머니가 빈 생선 대야에 정을 가득 담고 시외버스에 몸을 싣는다.



TV를 통해 방영된 어느 할머니의 삶과 애환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대목이다. 25년 전 처음 생선을 팔 때, 부끄러워 말도 제대로 못했던 아주머니는 이제 마을의 숟가락 수까지 알고, 가슴으로 대화하고,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

충청남도의 한 어시장에서 행상을 하던 할머니가 생선과는 거리가 멀었던 충청북도 내륙지방의 외딴 마을을 목표시장으로 정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먼 거리를 무거운 짐을 지고 이동하려 했으니 힘들고 고단했겠지만 할머니의 고생은 산골 주민들에겐 차별화된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진실성은 신뢰로 지속됐다. 생선 할머니는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알고 한 주에 한 번 딱 필요한 만큼 가져와 팔고 갈 수 있었다. 어쩌면 이 할머니는 이 마을 외에도 다른 마을들을 고객으로 가지고 있고 주기적으로 관리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1980년대에는 화장품 방문 판매 아주머니가 있었다. 이 아주머니는 화장품을 싸들고 집에 들를 때마다 물건만 팔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이웃 아주머니들까지 모이게 하고 한참이나 이야기를 주고받고, 웃음과 정을 나눴다. 화장품 아주머니는 정과 마음을 나눈 후 마지막에 화장품 보따리를 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할머니 이야기를 보면서 어렸을 때 엄마와 얘기 나누던 화장품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세상이 바뀌고, 우리에게는 정보가 넘친다. 귀한 샘물을 찾아 목을 적시는 것이 할머니식 고객 관리라면, 차고 넘치는 정보, 그리고 조금만 신경 쓰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고객 정보를 스쳐 지나치고, 소홀히 다루고 썩히는 것이 오늘 B2B 영업에서의 고객관리의 현 주소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의 숟가락 수도 알고, 가족의 애환도 알고, 경조사도 알고, 성향도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도 안다. 할머니가 컴퓨터로 고객의 정보를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수첩에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아니다. 이름, 생일, 주소가 삐뚤삐뚤하게 적혀 있을지는 모르겠다. 성도 없이 ‘춘식이네’ ‘영희네’라고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객을 안다.

그러나 B2B 영업을 하는 영업직원은 고객을 모른다. 회사에선 뛰어난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 기업도 있을 것이다. 최첨단 고객관리 소프트웨어도 사용하고 직원들은 모두 최신형 모바일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고객을 제대로 아는 B2B 영업직원은 거의 없다. 영업하는 모든 사람이 고객을 알고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제대로 모른다. 조금 어설프게 알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가장 먼저, 고객에 대한 정의가 잘못됐다. B2B 비즈니스 초기에 정의되고 관리되던 고객에 대한 개념이 상황의 변화에 맞춰 재정립되지 않은 채 운용되고 있다. B2B 비즈니스가 기업 대상 비즈니스다 보니 B2B 비즈니스의 고객은 기업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B2B 영업을 하는 거의 모든 회사의 프로세스와 영업 패러다임을 지배하고 있다. 당연히 기업과 기업의 거래와 관련된 결과물은 기업 단위로 관리되고 운영돼야 한다. 계약, 제품 인도, 청구, 정산, 계약 의무 이행 등 회사 단위의 관리 포인트는 그것이 맞다. 하지만 그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프로세스와 활동은 기업이 아니라 개인들이 주도한다. 회사는 실체가 없으며 고객 회사를 대표하는 다양한 개인들이 고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B2B 영업 조직은 아직도 기업이라는 통 속에 개별 고객의 정보를 함께 섞어서 관리하고 있다. 더욱이 많은 영업관리 시스템이 기업과 개인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도록 개발돼 있다.

둘째, B2B 영업조직이 개별 고객의 정보관리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 영업조직의 가장 치명적인 병폐는 단기 실적주의다. 물론 영업조직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고, 결과로서 모든 것을 말한다. 영업 조직이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기에 회사의 관리 시스템, 조직 운영의 핵심은 ‘단기 목표 달성’이다. 매출, 수익 목표 달성과 중요 영업기회의 수주, 거의 모든 영업조직이 이 두 가지 카테고리에 95% 이상의 시간을 쓰고 있다고 본다. 고객의 이슈도 단기 목표 달성과 관련됐을 때 심각하고 집요해진다. 장기적인 주제, 지금 당장의 비즈니스와 연관되지 않으면 80% 이상 가볍게 지나친다. 관리자, 임원, 그 누구도 고객이라는 ‘전부’에 대해 평상시에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누가 그 근원적 숙제를 풀겠는가?

한 예로 2015년 중소기업 고객을 담당하고 있는 주니어 직원들을 주간 단위로 코칭한 적이 있다. 적게는 500개 회사, 많게는 1000개 가까운 기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이었다. 고객사의 비용집행 규모가 크지 않고 실제 거래가 거의 없었던 회사들을 묶어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직원들에게 맡긴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한 사람이 500개 이상의 회사를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500명이 아니라 500개의 회사를 맡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력의 재배치를 통해 규모도 작고, 기회도 작은 기업들을 다른 방법으로 영업을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전통적인 대면 영업보다 디지털을 활용한 영업을 했다. 거의 7000개 가까운 기업을 이런 형태로 맡겼기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첫 만남에서 직원들의 자기소개, 맡고 있는 고객의 특성과 본인들의 영업전략 및 활동까지 들었다. 잠시 후 내가 물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고객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나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한 직원이 얘기했다.

“저는 20%의 직원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연이어 다른 직원들이 답을 하기 시작했다. 50%, 70%, 10%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처음 대답한 직원이 그중 가장 선임자여서 그 직원에게 담당하고 있는 회사 중에 가장 큰 고객을 물어보고 그 고객사의 고객 DB를 열어보라고 했다. 무려 268명의 고객 정보가 고객 DB에 저장돼 있었다. 그 회사는 필자도 7년 전에 담당했던 회사라 잘 아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DB를 들여다보고 충격에 빠졌다. 거의 대부분의 고객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퇴사했거나, 은퇴했거나, 역할이 바뀐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2년 가까이 고객 정보는 업데이트되지 않았고 새로운 고객 정보는 하나도 추가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의 고객 DB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어떻게 접근하는지 방법을 교육하고, 일주일 후에 다시 진도를 가지고 모이기로 했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교육은 되풀이되고, 진도는 나가지 못했다. 한 시간 코칭을 받고 업무로 돌아가면 그들은 이제까지처럼 직속 관리자, 담당 중역으로부터 ‘당장의 목표달성’을 위한 활동에 내몰리고, 본원적인 문제를 잊고 지낸 것이다. 담당 중역과 관리자에게 심각하게 시정을 경고했지만 개선하지 못하고 내가 회사를 떠났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반드시 알아야 할 고객을 정리하는 것이다. 산업에 따라, 제품의 특성에 따라, 반드시 인지하고 관리해야 할 고객이 있다. B2B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에 따라 다르고, 한 회사의 영업조직이라도 유사성이 있지만 제품과 서비스에 따라 목표 고객이 다르기에 또 달라진다. 어떤 B2B 영업은 CEO, CFO, CTO, CIO 및 관련 관리자, 실무자를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B2B 영업은 공장, 연구소, 경영관리본부의 책임자와 실무자를 알아야 할 것이다. 알고 있는 고객을 적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알아야 할 고객부터 정리해야 한다. 이름을 몰라도, 현재 전혀 관계가 수립되지 않았어도 비즈니스를 위해서 반드시 알고 가치를 전달해야 할 고객이 누군지는 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 다음에 할 일은 냉정하게 현 상황을 명시하는 일이다. 정리된 고객 직위 옆에 현재의 고객이 누구인지 이름을 적어보라. 자신이 맡고 있는 모든 기업, 반드시 관리돼야 할 직위의 모든 고객 직원 및 관리자의 이름을 알고 적을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영업직원은 30%가 안 될 것이다. 다음, 그 고객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영업직원을 비롯한 누군가가 그 고객을 만날 수 있고 가치전달이 가능한지를 고민해 대표 한 사람을 명기한다. 그리고 고객의 성향을 ‘우호-중립-부정’의 세 유형으로 구분해 평가해보라.

다음 과정은 ‘어떻게’를 고민하는 것이다. 영업과 관련해 반드시 관리해야 할 고객을 정리함으로써 조직 내부에 기준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앞 사례에서 필자는 주니어 영업직원들에게 공통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고객으로 12개의 직책을 지정해줬다. 물론 회사에 따라 두 개 또는 세 개의 업무를 한 사람이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같은 이름을 쓰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체계 없이 회사 단위로 마구잡이로 쌓여가는 정체불명의 고객 정보를 예방할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하고 있는 고객이 누구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고객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모르는 고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누가 어떻게 고객과의 가치전달 통로를 개척할 것인지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게 된다.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인 고객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설득할 것인지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지속적 관리다. 계획은 누구나 짤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실행돼야 의미가 있다. 더욱이 이런 계획은 모두가 함께 집요하게 진도를 관리하지 않으면 실행되지 않는다. 고객을 바로 아는 것이 몇 주, 몇 달 만에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한번 하면 끝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 작업이 당장 결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영업 조직은 일상으로 돌아가 단기목표 달성에 매몰되고 이런 일은 이내 묻혀진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에 대한 정보는 모래사장에 쓴 글씨와 다름 없다. 이내 지워지고, 곧 쓰레기가 된다. 고객 정보 관리는 영업직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조직 모두의 책임이다. 관리자, 임원, 지원부서, 서비스부서 모두가 실행주체가 돼 실행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 대표 js.aquinas@gmail.com

필자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과학을 전공했다. 한국IBM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제품사업, 고객영업, 서비스사업, 전략, 마케팅, 협력사 비즈니스, 신사업등 전 부문을 이끈 경험으로 2016년 한국영업혁신그룹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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