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으로 본 남성소비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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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종말>의 저자 해나 로진은 변화하는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남성 우위가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온다고 주장했다. 물리적 힘이 지배하는 전쟁과 노동의 시대가 가고 정보와 지식이 지배하는 이른바 ‘4차 산업’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보를 취합하고 가공하는 일에는 멧돼지를 때려잡던 수렵시대의 수컷 본능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한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강화는 부양자로서의 남성의 역할을 더욱 축소시켰다. 가장으로서의 짐을 덜게 된 남성들이 이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마하고 있는 ‘무기’는 바로 ‘신체자본’이다. 남성들은 자신을 가꾸고 돋보이게 함으로써 남성성을 증명한다. 심지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생중계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전쟁이나 냉전에 대한 기억이 없다. 힘으로 수컷임을 증명해야 할 동기가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이다. |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12년 남성 화장품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2000만 명 정도에 불과한 한국의 성인 남성이 전 세계 남성 화장품의 20%를 소비했다. 무려 5억6500만 달러(한화 약 6500억 원)어치다. 한국 남자가 누군가. 부엌에는 출입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던 사나이들 아닌가. 그런데 화장이라니. 조상님이 놀라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노릇이다.
‘꽃미남’으로 대변되는 예쁜 남자들의 전성시대다. 헤어왁스로 정돈한 투블럭컷 헤어스타일, 비비크림과 틴트밤으로 생기를 준 얼굴, 그리고 시어서커 재킷에 버뮤다 팬츠를 매치해 ‘댄디 룩’을 완성한 당신. 옛날이라면 일부 남성에 국한된 이야기로 생각됐겠지만 어느새 외모는 경쟁력이 됐고 미용과 패션은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형외과를 찾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메트로섹슈얼 변종들
1994년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심슨은 ‘호화로운 상점들이 즐비한 대도시에 사는, 패션에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성’을 지칭해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후 ‘레트로섹슈얼(retro-sexual)’ ‘크로스섹슈얼(cross-sexual)’ ‘위버섹슈얼(ueber-sexual)’ ‘럼버섹슈얼(lumber-sexual)’ 등 다양한 ‘변종’이 등장했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섹슈얼’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는 점이다. (표 1) 성적 매력은 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덕목이었으나 이제는 남자들도 섹시하고 볼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세태를 두고 ‘남자의 종말’ 혹은 ‘수컷의 멸종’이라는 평론을 내어놓기도 하지만 남성성(masculinity)이란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일 뿐 영원히 소멸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상남자’로 알려진 마초(macho)의 이미지도 사실 역사 속에 잠시 존재했던 하나의 현상일 뿐 원래부터 남자라는 존재가 근육질의 ‘터프가이’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귀족 남성들은 여성 못지않게 화려한 의상과 치장을 즐겼다. 당시에는 성별보다 계급이 신분적 우위를 드러내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성별에 따른 직업의 분화가 일어나면서 남성은 일터가, 여성들은 가정이 주된 생활 무대가 됐다. 소비생활은 주로 집안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몫이 됐으며 자연스레 여성의 취향을 겨냥한 제품과 마케팅이 시장을 지배했다.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상품은 여성의 구미에 맞도록 제작·판매됐고 남성은 여성의 소비생활을 가능케 할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남성성을 과시했다.
제국주의와 1,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마초의 이미지가 남성스러움의 전형으로 떠올랐던 시기를 지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남성은 생산자(혹은 부양자), 여성은 소비자’라는 이분법은 점차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맞벌이 가구의 비율이 50%를 육박하고 있으며, 드물지만 남성 전업주부도 등장하고 있다. 여성의 생산자 및 부양자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곧 남성이 소비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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