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physics on Trend
Article at a Glance
기술 주도 R&D를 중시하는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아마도 상품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에 왔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원들이 트렌드의 생리를 모르면 상품의 디자인 경쟁력을 판단하기 힘들다. 아무리 미적으로 훌륭한 디자인도 아방가르드-키치-리바이벌 사이클에서 하향선을 타고 있다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미국의 여피족이 ‘미니멀리즘’을 차용해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지만 이후 보보스족이 등장해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며 여피족의 문화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밀어냈다. 이런 현상은 늘 반복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항상 아방가르드 예술이 있다. ‘선도자’가 되고 싶은 기업이라면 아방가르드부터 주목하라. |
편집자주
매해 연말이 되면 ‘20XX년 트렌드 예측’류의 책이 서점에 넘쳐납니다. 하지만 대부분 신문기사와 몇 가지 특정한 문화현상을 짜깁기한 것에 그쳐 실망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사회와 문화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위치한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를 알고 싶어 합니다. 글로벌 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현재 세계적 ‘트렌드 리더’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해외의 최신 문화 트렌드, 그리고 그것이 비즈니스에 미칠 영향에 대해 소개합니다.
1. DKNY, Calvin Klein, Giorgio Armani와 미니멀리즘
1980년대 미국 뉴욕에 DKNY, CK, Armani라는 3개의 브랜드가 혜성처럼 떠올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모든 것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간결한 디자인과 장식 없는 회색·하얀색·검은색 등 무채색이 바로 이 세 브랜드의 특징이다. 매장 인테리어도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딱딱하고 심심한 편이었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회색 콘크리트 배경에 내부 장식이 전혀 없고, 마치 공방처럼 쇠파이프에 옷을 걸어놓았을 뿐이었다. 화려함을 중요시하던 당시에, 이처럼 심플한 디자인과 매장구성은 많은 이들에게 새롭고 낯설게 다가왔다. 결국 이처럼 심플한 뉴욕의 디자인은 1980년대 파리와 런던을 제치고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한 뉴욕만의 패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오늘날의 우리나라에서 ‘모던한’ 카페, 음식점, 사무실을 꾸밀 때 응용될 정도로 전 세계의 유행을 리드한 글로벌 트렌드로 삽시간에 확장됐다. 마케팅이 중요한 기업들 입장에서, 자신이 세팅한 트렌드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트렌드를 만들어 퍼트릴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뉴욕에 등장했던 위 세 브랜드에 대한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세 브랜드의 디자인은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들이 창작한 게 아니었다. 당시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방가르드 예술의 한 분파였던 ‘미니멀리즘’이라는 예술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미니멀리즘은 1980년대의 뉴욕에서 시작돼 파리, 런던, 도쿄, 밀라노로 이어지는 글로벌 시티의 전반적인 트렌드로 퍼져나갔다.그 근원을 따져 보면, 독일 출신의 건축가 그로피우스(1883∼1969)와 프랑스의 화가 이브 클라인(1928∼1962)이 단초를 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두 예술가는 예술 작품에서 장식을 없애고 ‘순수한 비율과 상징’의 예술로 옮겨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로피우스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구호를 내놓았고 이브 클라인은 아무 것도 그려져 있는 않은 파란 캔버스를 전시했다. 이 두 사람의 이러한 예술 활동은 미국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1956년, 미국에서 조각가 토니 스미스가 한 변이 180㎝인 거대한 정사각형 철을 출품하면서 뉴욕의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는 예술가들은 ‘줄여 나가는’ 경쟁을 벌였다. 예술이란 ‘근본적인 것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라는 믿음에 기인한 활동이었다. 예술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점점 빼는 과정이었고, 이는 ‘미니멀리즘’의 사조로 정착됐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패션 디자이너 도나 캐런, 캘빈 클라인 등은 미니멀리즘의 예술 트렌드를 받아들여 남녀 정장을 다시 디자인했다. 몸의 근본적인 직선을 방해하는 모든 커브와 색상, 패턴이나 버튼 등의 장식을 모두 없앤 패션을 추구했던 것이다.젊은 뉴욕커들은 이미 미니멀리즘 예술 경향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색채와 장식은 ‘촌스러운 것’, 정사각형, 원, 직사각형 같은 원천적인 형태와 비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나 디자인을 ‘도회적인 것’ ‘세련된 것’이라는 사고가 싹트고 있었다. 따라서 도나 캐런과 캘빈 클라인의 심플한 패션은 뉴욕이라는 ‘글로벌 A 시티’1 젊은이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글로벌 A 시티인 뉴욕의 디자인은 다시 이들의 삶을 묘사한 수많은 영화와 TV 프로그램, 잡지를 타고 한국의 ‘National Hub’인 서울의 연예인들까지 자극했고, 지금은 한국 시골에 있는 카페도 어느 정도 장식과 색상을 자제해야만 ‘세련됐다’ ‘모던하다’ 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우리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기업들은 ‘세련됨’이라는 문화권력을 선점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아방가르드 예술은 산업디자이너들이 응용할 수 있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인생관을 창조하는 활동 방향을 제시한다. 영국 광고업자 찰스 사치는 상품의 진정한 가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만든 스타일을 선점해 문화적 고지를 점령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YBA(Young British Award)라는 상을 통해 영국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후원한다.
실제로 영국 정부의 예술 후원 단체인 ‘British Art Council’의 훈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우리들의 목표는 영국의 창의적 정예부대를 구성해 영국 기업과 국익의 상징적 우위와 장기적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 British Art Council 헌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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