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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과다출혈 ‘승자의 저주’는 불가피한가

정재승 | 11호 (2008년 6월 Issue 2)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에서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는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여행 도중 여비가 조금 부족하다면 동네 술집에 가서 손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조그만 유리 단지 하나를 구해 500원짜리 동전으로 가득 채운 후 (아마 10만원이면 충분할 것이다), 술집에 모인 손님들을 상대로 이 단지를 경매형식으로 팔아보라는 것이다.
 
경매는 낮은 가격대에서 시작하겠지만 결국 가장 높은 값을 불러 이 단지를 얻게 된 사람은 단지에 담긴 동전보다 더 큰 액수로 이 단지를 사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하루저녁 시내에 나가서 즐기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실제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맥스 베이저만 교수와 보스턴대 경영대학원 윌리엄 새뮤얼슨 교수는 보스턴대 MBA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전 단지 실험’을 수행했다. 두 교수는 8달러짜리 단지를 준비했는데 학생들에게 10달러에 파는 쾌거(?)를 이뤘다. 12개 강의에서 48번이나 실험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세일러 교수의 이 실험은 ‘승자의 저주’라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승자의 저주’란 최고 입찰액을 제시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경매에서 종종 승자가 제시한 입찰 금액이 구입하고자 하는 것의 실제 가치를 초과해 승자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도 흔히 이런 경험을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다출혈을 하는 바람에 막상 이기고도 이득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처뿐인 영광’ 말이다. ‘엄청난 몸값을 경쟁적으로 제시해 겨우 유명 배우를 데려오지만 흥행에 참패한 영화나 드라마’가 대표적인 예다. 배우의 관객동원 능력이나 연기력 등 실제 가치보다 더 큰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승자의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1971년 애틀랜틱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하는 세 명의 기술자인 케이펜, 클랩, 그리고 캠벨이 처음 생각해 냈다.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자신의 저서 ‘승자의 저주’(2007)에서 이 현상을 석유 시추권 경매 상황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석유 시추권을 획득하려고 여러 석유회사들이 경쟁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시추권을 따냄으로써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수익, 즉 이 시추권의 실제가치는 경매에 참여할 모든 기업들에게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이런 경매를 공통가치 경매라고 부른다) 이 경우 경매가 실제로 진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이곳의 석유 매장량과 질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해내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각 회사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추정치를 계산할 것이다. 어느 회사는 높은 추정치를 생각할 것이고, 어떤 회사는 아주 낮은 추정치를 제시할 것이다. 그 중 가장 높은 값을 제시한 회사가 결국 경매에서 이긴다. 이 경우 경매에서 이겨 시추권을 따낸 기업은 경매에서는 이겼지만 경매에서 가격을 너무 높이 부르는 바람에 시추권의 확보를 통해 얻게 될 실제 가치를 초과해 종종 금전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낙찰 금액에 따라 돈을 버는 크리스티나 소더비는 덕분에 막대한 돈을 벌기 때문에 ‘승자의 저주’가 싫지만은 않겠지만.)
 
실제로 승자의 저주는 곳곳에서 관찰된다. 출판전문가인 존 디사우어가 쓴 ‘책 출판’(Book Publishing, 1981)에 따르면 경매를 통해 유명 작가의 출판권을 얻은 책들 대부분이 출판권을 사들이는 데 지불한 선인세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더욱 우울한 소식은 대부분의 책들이 참담한 실패로 이어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어느 작가가 출판사를 옮겼다는 소식은 한때 화제가 되겠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란 얘기다.
 
피츠버그대 제임스 캐싱 교수는 미국 프로야구 자유계약(Free Agent) 선수 시장을 조사하면서 ‘승자의 저주’ 현상을 발견했다. 프로야구에서 특정 팀과 계약이 만료되는 선수는 자신을 원하는 여러 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아무런 제약조건 없이 팀을 이적할 수 있다. 이 경우 거물급 자유계약선수의 계약금과 연봉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보다 더 높은 금액을 받고 계약하고 있음을 안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도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부분 자유계약선수들이 자신의 실제 가치를 넘어서는 몸값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팀 전력 보강을 위해 FA시장에서 최선을 다해 대어를 낚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니 승자의 저주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기업 인수를 하는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기업은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시장가치에 막대한 프리미엄을 얹어 값을 치른다. 포트폴리오 이론으로 유명한 UCLA 리처드 롤 교수가 실제 데이터들을 분석해 얻은 증거에 따르면, 인수대상 기업의 주주들은 그 기업이 인수될 때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는 반면, 정작 인수자가 얻는 이익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인수합병이 일어나는 걸까? 아직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리처드 롤 교수는 이 문제를 ‘휴브리스 가설’(Hubris Hypothesis)로 설명한다.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인간의 오만’을 뜻하는 그리스어(語) ‘휴브리스’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아놀드 토인비가 처음 도입한 역사 용어이다.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한때 성공했던 사람이 자신의 과거 경험을 믿고 쉽게 내리는 잘못된 결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수를 계획하는 기업은 대체로 자산이 풍부하기 때문에, 대상 기업을 물색하고 후보 기업의 가치를 추정할 때 예상 가치가 시장 가치를 초과하기만 하면 무조건 인수 작업에 돌입한다. 이런 경솔함이 ‘승자의 저주’를 부른다고 리처드 롤 교수는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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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승

    정재승jsjeong@kaist.ac.kr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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