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 보조금
기업이 제품 가격을 낮추면 소비자는 환호하고 때로는 고마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70% 할인을 해놓고도 감사는커녕 비판받는 기업들이 있다. 한국의 통신사들이다. 통신사들이 올해 3분기에 벌였던 ‘보조금 전쟁’은 수많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이 기간 동안 통신사들은 매출과 가입자 1인당 매출(ARPU)을 크게 늘리면서도 이익은 급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들여다보기 위해 시계를 몇 달 앞으로 돌려 9월로 가보자. 당시 통신사들은 서로 전쟁을 벌였다.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쥐어줘 가며 경쟁사 고객을 빼앗았다. 급기야 당시에는 ‘17만 원짜리 갤럭시S3’까지 등장했다. 갤럭시S3는 6월 말에야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한데다 공장 출고가격이 99만 원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이었다. 30만 원이 조금 넘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아봐야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단말기 가격은 60만 원이 넘게 마련이었다. 그게 불과 석 달 만에 17만 원으로 떨어졌다. 한 달에 15만 원씩, 하루에 5000원꼴로 값이 떨어진 셈이다.
3분기 단 석 달 동안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 세 곳이 쓴 마케팅 비용은 무려 2조3000억 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통신사가 새 스마트폰을 팔기 위해 가입자와 대리점에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과 인센티브로 쓰였다. 대리점은 가입자를 더 모으기 위해 이렇게 받은 인센티브의 대부분을 또 한번 가입자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이 돈이 대부분 보조금으로 쓰인 셈이다. 17만 원짜리 갤럭시S3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무려 70%가 넘는 할인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얻은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마케팅비’를 천문학적으로 쏟아부었지만 어떠한 마케팅 효과도 누리지 못했다. 시장점유율은 3개 통신사 간의 전쟁 같은 경쟁이 끝나고 나자 제자리로 돌아갔고 판매량은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9월에 반짝 늘었지만 10월에 그만큼 판매가 급감하면서 조삼모사가 돼 버렸다. 이익률도 물론 심하게 훼손됐다. 그리고 9월 전쟁에 앞서 갤럭시S3를 산 소비자는 통신사의 엄청난 가격할인에 분노했고 운좋게 이 값이 갤럭시S3를 구한 소비자들도 딱히 통신사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마케팅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계속 달라지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공통점은 존재한다. 마케팅이란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기업이 사회 구성원들과 나누는 대화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제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를 내보내고 캠페인을 벌인다. 또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점에 제품을 배치한다. 물론 합리적인 수준의 지불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격에 팔아야 하고 사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필요를 충족시키는 제대로 된 제품이어야 한다. 이른바 제품(Product)과 가격(Price), 판촉(Promotion)과 유통(Placement)이라는 마케팅의 ‘4P’다.
통신사들이 올해 9월 갤럭시S3로 벌인 일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모두를 망쳤는지 기가 찰 지경이다. 우선 통신사가 판매하는 제품은 단순히 스마트폰인 갤럭시S3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가 만들었지만 통신사는 삼성전자로부터 이 제품을 구해와 소비자에게 ‘통신서비스’와 함께 되판다. 통신사의 제품은 통신요금제로 상징되는 통신서비스다. 현대사회의 소비자들은 모두 이 통신서비스에 목말라한다. 국내 통신사의 통신서비스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통신사는 자기 제품을 판매하는 데 실패했다. 통신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리고 소비자들은 갤럭시S3를 사기 위해 통신사 대리점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주유소에서 기름을 파는데 A주유소에서 5만 원 이상 기름을 넣으면 목욕용품 세트를 덤으로 준다기에 목욕용품 브랜드가 주유소 브랜드보다 더 유명해진 격이다. 이렇게 되면 제품이 사라져서 경품 제공을 멈추고 난 뒤 소비자를 계속 유지할 수가 없다. 옆 주유소에서도 그 목욕용품만 가져오면 소비자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전쟁 이후 통신사들의 시장점유율이 제자리로 돌아온 게 이런 까닭에서다.
사실 애초에 LTE라는 새로운 통신서비스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통신사들은 제품 경쟁을 벌였다. 전국 단위 커버리지가 중요한지, 아니면 통신망에 연결되는 속도가 중요한지, 해외 로밍은 잘 되는지 등의 차별점이 개별 통신사마다 존재했다. 그러다 8월부터 다시 목욕용품 싸움으로 상황이 변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제품을 버리는 마케팅 전쟁에 매달렸다. 사실 ‘마케팅’ 전쟁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가격도 말이 되지 않았다. 소비자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지불해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시장 환경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경쟁 탓에 이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들쭉날쭉했다. 번호이동 통계를 한번 보자. 9월부터 10월까지의 두 달 동안 ‘17만 원 갤럭시 S3’가 풀렸던 9월 둘째 주에는 무려 68만 명의 이동통신 가입자가 번호이동을 했다. 그런데 10월 첫 주 번호이동 가입자는 5만 명에 불과했다. 13배가 넘는 이런 차이가 생기도록 만드는 가격경책은 합리적이라 볼 수 없다. 이제 소비자들은 통신사가 제시하는 가격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조금 없이는 어떤 제품도 사지 않기로 맘을 먹은 듯 보인다. 결국 이는 더 많은 보조금을 투입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값 자체도 크게 변했다. 처음 스마트폰을 도입하던 2009년 말에는 주력 요금제의 월 요금이 4만5000원이었지만 이듬해 SK텔레콤이 무제한 데이터요금제라는 새 요금제를 선보이면서 주력요금제를 1만 원 올라간 5만5000원으로 바꿔 놓았다. 곧 정부의 기본료 인하 권고 때문에 주력요금이 5만4000원으로 조금 줄어들었지만 2012년부터는 LTE 시대가 열렸다며 6만2000원 요금제가 주력 요금제가 된다. 그리고 보조금 전쟁을 거치면서 이익률이 떨어지자 통신사들은 유통매장에 대한 리베이트를 7만2000원 요금제에 맞춰 늘리기 시작한다. 7만2000원 요금 가입자를 유치하면 더 많은 돈을 주는 식이었다. 결국 3년 만에 스마트폰 신규 가입자의 일반적인 월 요금 수준이 3만 원 가까이 올라간 셈이다.
한국의 통신서비스 가입자는 5000만 명이다. 인구 수를 넘는다. 이들이 2년에 한번 정도 휴대전화를 바꾼다. 주기가 빠를 때에는 18개월이면 바꾼다는 통계도 나오곤 한다. 2년이라고 계산해도 1년에 2500만 명이 새 휴대전화를 사야 한다. 잠재적 번호이동 고객이다. 통신사들은 이들을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겨우 68만 명이 17만 원짜리 최신 스마트폰의 혜택을 봤다. 다른 주에 번호이동을 통해 이득을 본 사람을 포함해도 100만 명이 된다고는 보기 힘들다. 나머지 2400만 명은 이런 사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