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어떤 공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개인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특정 공간 내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들은 인간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근래 뇌과학자와 장소과학자(Place Scientist)들에 의해서 그러한 행동양식과 공간에 대한 밀접한 관계가 증명되면서 마케팅 영역에서도 ‘공간’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인간이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가 속한 사회의 기준과 성숙도에 따라 다르다. 우리의 할머니가 제품을 선택하던 기준과 어머니의 선택 기준은 우리의 선택 기준과 다르다. 세대 간의 갈등은 제품 선택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지난 세대에는 상품의 기능과 혜택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면 현대의 소비자들은 제품과 본인과의 특별한 의미를 더 중시한다. 현대의 마케팅 활동은 브랜드, 제품, 기술, 서비스가 어떻게 소비자에게 특별한 감성적 의미를 주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 소비자의 변화는 기존 전통 마케팅 형식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고 이런 변화 속에 스페이스 마케팅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활발해졌다.
공간마케팅은 ‘공간을 매체로 활용(space as media)하는 마케팅’이고 ‘장소에 기반한 체험마케팅(Place based experiential marketing)’이며 ‘3차원의 감성마케팅(3 Dimensional Sensory Marketing)’으로 정의할 수 있다.사실 공간마케팅이란 용어는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용어다. 서구의 ‘space’라는 개념은 동양권과는 다른 개념이며 일반적으로 우주, 즉 비어 있음을 뜻하는 용어다. 시간과 공간을 대칭적 개념으로 파악한 동양철학은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을 고대에 통찰한 놀라운 선각적 개념이지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사용되는 공간이라는 개념은 space보다는 place에 가깝다. 하지만 place marketing은 장소마케팅, 즉 특정지역을 명소화하는 개념으로 이미 선점된 명칭이기 때문에 편의상 공간마케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Space as Media
공간마케팅은 공간을 매체로 활용하는 마케팅이다. 일반적으로 공간마케팅은 두 가지 의미에서의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공간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마케팅활동이다(Space as Product). 쉽게 말하면 아파트, 상가와 같은 부동산을 판매하는 마케팅을 의미한다. 다른 의미는 공간을 하나의 매체로 활용해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케팅활동을 의미한다(Space as Media). 넓은 의미에서는 축구장의 펜스 광고나 건물 옥상의 빌보드광고 등도 공간을 매체로 활용하는 경우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통상 옥외광고(OOH·out of home)라고 통칭되며 여기서 언급하는 공간마케팅은 소비자가 활동하는 특정 공간이나 장소를 고객 접점의 매체로 활용하는 마케팅을 의미한다.
Place Based Experiential Marketing
대부분의 공간마케팅은 체험마케팅을 근간으로 한다. 누구나 여행과 같은 특별한 경험을 통해 각별한 친구, 또는 연인이 됐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그 반대의 결과가 되기도 하지만). 체험마케팅은 고객과 브랜드와의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주고 그들 간의 감성적 연대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케터들이 체험마케팅에 주목하는 이유는 고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 고객들은 제품의 기능적 편리함에 만족했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은 자신의 감각에 호소하고 가슴에 와 닿으며 자신의 정신을 자극하는 제품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원한다. 체험마케팅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행될 수 있지만 공간을 통한 직접적인 체험이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꼽힌다.
체험마케팅이 등장한 배경을 알면 그 의미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체험마케팅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컬럼비아대의 번 슈밋(Bernd Schmitt) 교수는 정보기술의 보편화, 브랜드의 홍수, 오락성 추구 성향 등이 체험마케팅 탄생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통찰력 있는 분석이지만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체험마케팅의 탄생 배경을 새롭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체험마케팅이 탄생한 첫 번째 배경은 미디어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상품과 매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2006년 한 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3만2000여 개의 신상품이 출시됐다. 하루 동안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 가까운 신상품이 출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현대인들은 하루에 3000개의 상업적 메시지를 접한다고 한다. 사실상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급격한 세계화는 그 홍수의 물살을 더욱 거세게 했다. 메시지의 범람 속에서 소비자는 점점 더 면역성이 강해지고 반응은 둔감해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전통적인 매체를 통한 반복적 메시지 전달 방식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얼마나 메시지를 많이 노출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소비자와 특별한 관계(engagement)를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쉽게 말하면 양보다는 질 중심의 마케팅이 절실해졌다.
두 번째는 인간행동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기인한다. 현재의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행동의 많은 부분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우리 행동의 95% 정도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매우 합리적인 인지와 결정과정을 통해서 정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소비자들은 합리적, 논리적, 이성적인 프로세싱을 거치기보다는 즉흥적이며 감성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와의 감성적 유대가 마케팅에서 더욱 중요해졌으며 체험마케팅은 이런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각광받게 됐다.
세 번째는 인간 욕구의 변화다.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인 단계에서 공동체적인 단계로, 그리고 개인적인 단계로 진화한다. 마케팅 대상으로서의 소비자는 상품의 소비에 개인적인 의미와 오락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미 쇼핑은 단순한 생필품 구매보다는 하나의 즐거운 경험으로서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다. 구매에 있어 실용가치(utilitarian value)보다는 쾌락가치(hedonic value)가 더 중시된다는 사실은 최근 다양한 연구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심지어 할인점에서도 실용가치보다는 쾌락가치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인들의 쇼핑은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개념이다. 큰 쇼핑몰은 일종의 도심형 테마파크로 진화하고 있다.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는 어느 사이 하나로 결합되고 있다.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라는 신조어는 이러한 경향을 대변한다. 쇼핑을 즐거운 체험과 결합하는 것이 판매자들에게는 중요한 목표가 됐다. 체험마케팅은 이런 면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3 Dimensional Sensory Marketing
공간마케팅은 3차원적 마케팅이다. 공간은 벽과 바닥과 천장 사이의 비어 있는 곳을 의미한다. 3차원 공간에서 사람들은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인 경험을 한다. 시각과 청각 등에만 의존하는 전통매체와 달리 공간매체에서는 청각과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이 동반된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감각을 통한 감성효과는 강력하며 오래 지속된다.
브랜드마케팅은 그 브랜드에 인격(Personality)을 부여하고 그 인격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정석이다. 공간마케팅에 동원되는 모든 감성은 그 브랜드의 스타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유명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감각을 정교하게 설계해 모든 고객접점에서 꾸준히 활용한다. 자신들만의 컬러팔레트, 타이포그래피의 원칙을 만들어 일관성을 유지한다. 특정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향(香)과 공간에 쓰이는 재료들까지도 명확하게 규정한다. 스타벅스는 커피의 맛과 향뿐 아니라 간판, 인테리어, 패키징, 판매원들을 통합하는 독특한 감성미학을 도입해 고객들이 늘 즐겨 찾는 공간, 즉 제3의 공간으로서 놀라운 성공스토리를 만들었다.
후각:후각은 모든 감각 중 가장 원초적인 감각기관이다. 인쇄매체를 통해 향이 전달되는 기술들도 개발돼 있지만 실제 공간을 통해 느끼는 후각효과와는 차이가 크다. 후각을 통한 감성마케팅은 공간마케팅에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수단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냄새는 강력하게 기억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냄새가 어떻게 기억과 연관되는지는 그 패턴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냄새와 감정을 다루는 뇌 영역이 같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기억을 통한 회상은 사람의 무드를 강력하게 변화시킨다.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단 몇 개의 분자들은 과거 어린 시절의 저녁 무렵이나 첫사랑과의 특별했던 순간, 또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괴로웠던 사건들을 빠르게 회상시키고 잠시나마 현실세계와 단절시키면서 특별한 감정상태로 빠져들게 만든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향에 민감하며 한국인의 후각은 타 인종에 비해 더 발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각은 특별한 감성을 일으키고 이러한 감성은 정신적, 신체적 반응을 일으킨다. 라벤더향은 수면의 질을 향상시킨다. 자몽향은 남자가 여자의 나이를 더 어리게 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활용해 보시라!). 좋은 향은 자가면역 능력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다른 이유로 병원에 식물반입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병실에 꽃을 들고 방문하는 전통은 시각적 효과보다는 후각적 효과에 기인한다. 카지노에서 향을 이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분 좋은 향이 있을 때 겜블러들은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고 한다. 좋은 향은 시간감각도 조절한다. 기분 좋은 향을 맡으면 고객들은 쇼핑센터 계산대에서 기다릴 때 지루함을 덜 느끼며 매장 체류시간을 늘린다. 또한 좋은 향은 공간의 크기를 실제보다 더 크고, 밝고, 깨끗하고, 신선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스타벅스의 잘 볶은 원두향은 다분히 의도된 결과다. 커피찌꺼기를 버리지 않으며 직원들은 향이 강한 향수나 화장품을 쓰지 못한다. 좋은 커피향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며 그곳에서의 기분 좋은 기억을 가지게 만든다. 반대로 기분 나쁜 향은 그 역의 효과가 있다. 좋은 향을 제공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나쁜 향은 제거해야 한다.
후각기관은 빠르게 피로해지는 특성이 있다(재래식 화장실의 기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 효과까지 빠르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향은 공간에서 소규모로 액상, 초, 스틱을 통해 활용되기도 하고, 기계실의 대규모 냉난방 공조설비에 연결돼 디퓨저를 통해 전달될 수도 있다.
청각:소리는 강하며 오랫동안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 영화관에서 눈을 감고 소리만을 듣는 것이 소리 없이 영화를 보는 것보다 훨씬 감정이입에 도움을 준다. 오랜 세월 생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을 중심으로 소리가 감정에 미치는 연구가 진행돼 왔다. 음악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느끼는 원초적 반응이다. 연구자들은 음악에 따라 동물들의 반응이 달라진다고 한다. 심지어는 식물도 반응한다. 소리에 의해 감정이 변하기도 하지만 감정상태에 따라 목소리도 변화한다. 우울한 사람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워진다. 음악은 냄새와 같이 기억을 회상시킨다. 누가 술에 취해 옛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그는 그 노래의 추억보다는 그 시절의 추억을 음미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일정한 리듬은 편안함을 만든다. 불규칙한 리듬은 상대적으로 기분을 돋게 만든다. 느리고 부드러운 운율은 편안함을 만든다. 빠르고 단속적인 운율은 에너지 레벨을 올리고 행동을 빠르게 만든다. 빠르고 느림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심장 박동수가 기준이 된다. (심장 박동수는 분당 50에서 70회이다). 저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음은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장조와 단조도 같은 식으로 작용한다.
소리의 크기도 중요하다. 소리의 크기는 데시벨로 표시되며 공간의 용도에 따라 조절돼야 한다. 라디오와 TV를 통한 소리보다는 큰 공간을 통해 울리는 소리의 효과가 훨씬 강력하다. VOD가 일반화돼도 쉽게 극장의 관객이 줄지 않는 것은 대형 화면의 효과도 있지만 소리를 통해 느끼는 임장감이 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