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오창성(한국외대 영문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뉴로마케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발달했나.
“뉴로마케팅은 뉴로사이언스에서 시작됐다. 1989년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뇌에 관한 연구를 미래 성장의 기초 지식이라고 여겨 많은 비용을 투입해 뇌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제일 처음 한 것은 뇌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뇌의 구조와 기능을 탐구하는 해부학적 연구가 많았다. 자연 과학에서 시작한 뇌 연구는 생명 과학, 의학 등으로 확대됐다. 인류는 2000년 동안 알지 못했던 뇌의 비밀을 최근 20년간 많이 알게 됐다. 그동안은 뇌의 기능을 알아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의 삶과 사회 발전에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지가 보다 중요해졌다. 뇌에 관한 자연과학적 지식을 인문사회과학적 관심과 결합시키는 시도가 활발해졌다. 특히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 교육학, 범죄학 등 사회과학 영역에서 그동안 연구됐던 뇌 지식을 다양한 사회과학적 물음에 집어 넣어보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뉴로사이언스라는 최첨단의 지식을 마케팅에 응용하는 것이 바로 뉴로마케팅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뉴로마케팅은 급격히 발전했다. 기업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겨 투자가 계속 됐기 때문이다. 10년가량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뉴로와 다른 지식 간의 통섭 분야 중에서도 가장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뉴로마케팅이다.”
뉴로마케팅이 기업에서 활발히 쓰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경제 활동의 주축은 크게 기업과 소비자다. 이들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이 돈과 상품이다. 이러한 교환 과정에서 기업과 소비자는 각각 조금이라도 더 파워를 많이 가지려고 한다. 그런데 ‘내 것이 더 매력적’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파워를 많이 갖게 된다. 소비자의 돈의 가치와 기업이 가진 상품 가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느냐에 따라 둘 간의 파워가 결정된다. 산업사회 이후 200여 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파워는 늘 기업이 갖고 있었다. 제품이 필요해서 사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기업 생산성에는 한계가 있어서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했다. 또 자원과 지식 싸움에서도 기업은 소비자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고도로 성숙해지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비자에게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또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기업 간 제품 성능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게 된 것도 소비자에게 파워가 전이된 이유다. 고도의 기술 사회에서는 소비자가 제품의 기술력을 비교해서 구매하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브랜드와 디자인이 보다 중요해졌다. 그런데 브랜드와 디자인은 상당히 감성적인 판단이다. 제품 성능과 가격을 비교할 때의 판단 메커니즘과 다르다. 예를 들어서 ‘서울 을지로에서 강남을 갈 때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빠른가’와 같은 질문과 ‘김태희와 전지현 중에 누가 더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도출할 때의 사고 메커니즘은 전혀 다르다. 후자의 질문은 바로 감성적 메커니즘과 관련돼 있는 것인데 소비자들의 이러한 판단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뉴로마케팅이다. 과거의 마케팅은 제품의 성능과 가격에 의해서 물건을 고르는 시대의 소비자 행동, 즉 합리적 소비자를 기반으로 했다면 현재의 마케팅은 감정에 따라 물건을 고르는 소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반적인 설문 조사와 인터뷰는 말과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인데 말과 글은 인간 이성의 작용이다. 이런 조사로는 ‘당신은 왜 그 브랜드가 좋은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좋아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인데 말과 글이라는 이성적인 도구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설문조사와 인터뷰만으로는 소비자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서-무의식-욕망-이미지 이런 것들이 소위 ‘소비자 감성’이라고 칭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서 구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을 ‘감성마케팅’이라고 한다. 이 첫 단계가 소비자의 감성 파악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일반적인 조사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말과 글로는 표현이 안 되고 의식적이지 않은 내면의 감성은 몸(Body)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이의 보디랭귀지를 자세히 보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말과는 달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을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가 겉으로 드러나는 몸짓, 즉 관찰(observation) 방법이다. 이는 뉴로와는 관계없다. 겉으로 드러난 소비자의 행동들을 세심히 관찰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유추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이 바로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신경기제, 즉 뇌의 작용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뇌 자체를 연구하거나 뇌 작용의 흔적을 연구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기기들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들이 fMRI, EEG, eye-tracker 등이다. 이러한 기기들을 통해서 소비자가 해당 제품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뉴로마케팅이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생리적 기제를 확인해서 그들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fMRI, EEG, eye-tracker 중에서 현장에서 보다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 있나.
“이 세 가지는 용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사안마다 각각 별개로 쓰이고 동시에 쓰일 때도 많다. 예를 들어서 어떤 광고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광고를 보여줬을 때 소비자의 눈이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가를 알려면 eye-tracker를 써야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의 뇌파가 어떤가를 보려면 EEG를 사용해야 한다. 그간의 광고 연구에서는 eye-tracker가 많이 사용돼 왔다. 특히 인쇄 광고에서 제품명과 모델 사진을 같이 보여줬을 때 소비자가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를 조사할 때 효과적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다른 기법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최근에는 기술이 보다 발전해 인쇄 광고뿐 아니라 동영상 광고까지 시선 추적이 가능해져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언제 뉴로마케팅을 써야 하나?
“거의 답이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서는 굳이 뉴로마케팅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사실(fact) 확인이 필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일반적인 서베이를 통해서 가능하다. 가설 확인이 서베이의 목적이다. 확신이 없는 가설을 수치를 통해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베이를 통해서는 깜짝 놀랄 만한 답을 얻지는 못한다. 서베이 질문은 당사자가 직접 만들기 때문에 이미 자신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예상 답안을 보기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답은 보기에 없기 때문에 얻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서베이가 무용지물이냐? 절대로 아니다. 서베이는 몇 가지 선택사항 중에 가장 정답에 근접한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뉴로마케팅은 질문은 있는데 답이 가늠이 잘 안될 때, 즉 상식적 예측이 불가능할 때 사용한다. 뉴로마케팅을 통해 도출되는 답은 ‘우리의 머릿속에 있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무엇’이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DBR Tip1 참고). 섹스 어필 광고의 효과에 대한 실험이었는데 다 벗은 것과 살짝 가린 것 중에 어느 광고에 더 눈길이 가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서베이에서 소비자들은 ‘다 벗은 것에 눈길이 간다’고 답했지만 실제 fMRI 조사를 해보니 살짝 가린 광고를 볼 때 더욱 흥분하고 몰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상의 즐거움 때문에 살짝 가린 광고를 보면서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뉴로마케팅을 통해 ‘의식적으로는 A를 좋아한다고 답했지만 무의식적으로 B를 좋아하는’ 소비자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업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뉴로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뉴로마케팅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무의식적인 심층 심리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절대 뉴로마케팅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전통적인 서베이 없이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는 없다. 소비자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는 서베이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한 방법을 통해 모든 걸 알 수 없다. 뉴로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마음의 조각들을 찾으려고 애쓰는 수밖에 없다.”
최근에 디자인 선호에 대한 소비자 심리 반응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 구매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브랜드와 디자인을 고르겠다. 특히 디자인이 제품 구매 행위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 뉴로마케팅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일단 어느 제품이 소비자의 눈을 즐겁게 하면 그 제품을 거부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미팅 때 첫눈에 마음에 든 사람은 다른 조건을 떠나 호감이 간다. 일종의 후광 효과인데 그 첫 이미지를 깨기란 굉장히 힘들다. 가령 이성 간의 만남에서 첫눈에 필이 딱 꽂혔는데 다른 조건이 뛰어나지 않아 망설이는 경우와 첫눈에 반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조건들이 전자보다 나을 때 어떤 선택을 할까? 많은 사람들은 첫눈에 필이 꽂힌 경우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이미 앞에 가진 긍정적 인상을 통해 뒤에 오는 부정적 정보를 절상시키기 때문이다. 어눌하게 말을 못하는 것이 진지하게 보이고 지루한 것은 과묵한 것이 되는 식이다. 만약 첫인상이 좋지 않으면 말을 조금만 못해도 ‘말도 못하냐’가 된다. 디자인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은 충동구매다. 일단 첫눈에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 쌀 경우 ‘예쁜 것이 가격도 싸네’라고 생각하고 가격이 비싸면 ‘예쁘니깐 비싼 거지’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실제로 멋진 디자인과 평범한 디자인의 제품 두 가지를 보여주고 뇌 영상반응을 측정해본 결과 전자를 봤을 때 소비자가 더 많이 주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시선집중은 강력한 호기심으로 이어져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요모조모 따져보고 평가하게 된다. 원초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즐기려는 본능으로 많은 사물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 추한 것은 재빨리 시야 밖으로 버리고 아름다운 것은 계속 즐기려 한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점점 제품 간의 품질 차별화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디자인은 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뇌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연구해보니 공감각(multisensory) 디자인이었다. 노란색 레몬처럼 생긴 지우개를 보면서 시각과 미각을 모두 느끼는 것이 공감각 디자인이다. 평범한 컴퓨터 자판에 초콜릿 색깔을 입혀서 보여주니 소비자의 주목률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미각 반응도 보였다. 초콜릿을 실제로 먹은 것처럼 맛을 느낀 것이다. 문어 얼굴 모양의 통에 종이티슈를 넣어 문어 입으로 뽑아 쓸 수 있는 디자인의 티슈통을 본 소비자는 시각뿐 아니라 촉각(haptic) 반응도 보였음을 뇌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 재미있는 티슈통을 보고 티슈를 하나씩 뽑아 쓰는 상상을 해 본 것이다. 일반적인 디자인과 공감각 디자인 중에 어떤 디자인을 선택할 것인지, 공감각 디자인의 제품에 얼마만큼의 가격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등을 뉴로마케팅을 통해 연구했다(DBR Tip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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