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DBR은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SKK GSB(Graduate School of Business)와 공동으로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와 시사점을 소개하는 코너를 연재합니다. SKK GSB 소속 교수들이 저명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을 토대로 기업 경영자에게 유용한 통찰을 주는 경영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데요?”
유명한 맛 집이라고 해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면 기분 좋을 리 없다. 줄서기와 기다림은 시간적 손해와 짜증을 유발시킨다. 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금융연구원이 은행의 콜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8%)가 상담원 연결을 위한 대기시간이 불만족스럽다고 얘기했다.1)또한 서울 및 수도권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놀이공원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작년보다 만족도가 무려 11.7%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놀이시설에서의 긴 대기 시간이었다.2)
이처럼 사람들은 원하는 어떤 목적을 성취하거나 어떤 것을 얻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대기시간과 대기절차에 대해 부정적인 직관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다. 실제로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비효율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줄서기 시스템을 개선해 기다림이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는 ‘디즈니 운영통제센터’를 만들었다. 통제센터는 시시각각 관람객들의 흐름을 체크하고 기다리는 줄이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통제하고 있다. 그곳에는 각종 비디오 카메라와 컴퓨터 프로그램, 공원을 상세히 보여주는 디지털 지도 등이 갖춰져 있다. 갑자기 관람객의 정체가 발생하거나 줄이 길어질 때를 대비한 다양한 대응책도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놀이기구 ‘캐러비안의 해적’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 대기자가 늘어나면 이 상황이 통제센터에 바로 통보된다. 센터는 상황을 파악하고 가동 보트 수를 늘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또 영화나 만화주인공의 캐릭터 탈을 쓴 도우미를 내보내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줄서기는 과연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부정적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줄서기에 오히려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상승시키고 매출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기다림’이 가지고 있는,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줄서기를 보는 새로운 관점: 목표 기반 분석 방식 (Goal-based Analysis)
줄서기에 대한 새로운 비밀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이 비밀을 밝히기 위해 사용된 학문적 접근 방식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마케팅 및 심리학 분야에서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접근 방식이 ‘목표 기반 분석 방식’(Goal-based Analysis)이다. 이는 인간의 목표와 동기에 기반한 분석방식으로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설정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기적 힘(Motivational force)이 존재한다. 마케팅에서의 많은 현상들이 이와 같은 소비자들의 목표 달성 관점에서 매우 유용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주제인 ‘줄서기’에 이와 같은 목표 기반 분석 방식(goal-based analysis)을 적용시키면 사람들의 줄 서는 행동은 제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받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자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 사람들은 ‘기다림’이라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로부터 제품 가치를 유추(Inferring value from people behind)
그러면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줄서기에는 어떤 심리학적 비밀이 숨어 있을까? 목표 기반 분석 방식을 적용시키면 줄서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우리가 목표를 향해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우리는 줄 안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의 목표에 대한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유추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나를 기준으로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내가 아직 해야 할, 남아 있는 노력(remaining actions)을 상징한다. 반대로 ‘뒤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내가 이 목표를 향해 그동안 이룬 어떤 성취(accomplished actions)를 상징하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줄 안에서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로부터 유추하게 되는 정보에 대한 것이다. 앞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앞으로 더 기다려야 할 시간과 노력을 유추하는 것은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뒷줄에 서 있는 사람들로부터 본인의 목표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게 볼 수 없는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러면 이러한 성취감은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목표나 동기(Goal/motivation)에 관한 기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경험이나 행동으로부터 목표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유추하는 경향이 있다(Higgins, 2006; Shah & Kruglanski, 2002). 즉,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이미 성취한 일들이나 경험들로부터 우리의 목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목표를 향한 몰입도(Commitment)가 얼마나 강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Fishbach & Dhar, 2005).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목표로 운동하고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성취들(예, 운동 시간, 참았던 음식, 빠진 체중)을 생각할 때 자신이 얼마나 다이어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심지어는 더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Koo & Fishbach, 2008).
따라서 줄을 선 사람들은 자신의 뒤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이 성취감은 자신의 ‘목표’, 즉 구입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제품이나 음식, 서비스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놀이 공원에서 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사람의 뒤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그 기구가 더 인기 있고 재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치를 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장실험을 통한 줄서기의 긍정적 효과
이 같은 줄서기의 ‘밝은 면’을 증명하기 위해 실제로 미국의 베이글 샌드위치점에서 기다리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현장실험(Field experiment)을 진행했다. 이 베이글 샌드위치점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는 새로운 지점이었다. 점심에 많은 고객들이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무작위로 줄의 3분의1 지점과 3분의2 지점에 있는 사람들을 선택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구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샌드위치의 기대가치(expected value)와 샌드위치를 구입하기까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본인의 노력(required effort to get their meal)에 대한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사이 다른 실험자는 고객들이 모르게 그 설문에 응답하고 있는 고객의 앞과 뒤에 몇 명의 다른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기록했다. 분석 결과, 예상대로 고객의 뒤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고객의 제품에 대한 기대가치는 높아졌다. 즉, 뒤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때 뒤의 사람들의 존재로부터 “내가 지금 목표에 어떤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유추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 제품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객의 앞에 있는 사람의 숫자나 줄 전체 길이는 제품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앞줄에 선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그 고객이 느끼는 앞으로 더 기다려 할 시간은 늘어났다. (그림 1)
‘착각’으로 인한 ‘성과’의 부각 (When Progress is Illusionary)
줄에 서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제품의 기대가치를 변화시킨다는 뜻밖의 사실에서 다른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이 같은 줄서기의 영향이 제품의 정확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오랜 시간을 기다릴 만큼 자기 시간을 투자할 정도면 실제 그 제품의 가치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뒤에 사람이 많을 경우 제품의 기대 가치가 과연 상승할 것인가?
실제로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학교 캠퍼스 안에 신제품 과자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ASTE TEST)를 실시해 참가자들이 줄을 서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기다린 시간과 노력을 통제했을 때 기대가치에 대한 뒷사람들의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실험 도우미들을 이용해 가상으로 뒤에 누군가가 서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즉, 한 실험 그룹에서는 각 참가자들이 샘플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는 순간 두 명의 도우미가 그 참가자의 뒤에 줄을 서고 3분 정도 후에 참가자는 설문지를 통해 맛보게 될 쿠키의 기대가치에 대해 표시했다. 다른 실험 그룹에서도 참가자들이 줄을 서고 3분 후에 설문지에 응대했지만 그 시간에 도우미들이 뒤에 줄을 서지 않았다. 놀랍게도 두 개의 다른 그룹의 참가자들이 기다린 시간은 총 3분으로 같았지만 뒤에 두 명의 도우미가 줄을 섰을 때가 참가자들의 쿠키 샘플에 대한 기대가치가 더 높았다. 더 놀라운 점은 실제로 샘플 맛을 보고 난 뒤에 맛에 대한 평가도 뒤에 두 명의 사람이 줄을 선 그룹이 아무도 없었던 그룹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 제품에 기대하는 가치가 상승할 때, 이는 실제로 사용했을 때 느끼는 제품의 가치 상승으로 연결됐다.
이 같은 결과는 본인의 시간 투자와 상관없이 줄에 선 뒷사람의 존재로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기다리는 목표, 즉 제품에 대해 가치를 유추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뒤에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 시간을 투자해 기다리지를 않았는데도 자신의 목표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제품의 기대가치 상승으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