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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화천군의 청정성 마케팅

감춰진 축복의 미학: 추위도 팔 수 있다

송미령,김남국 | 94호 (2011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주현(서강대 중문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강원도 화천군을 알리기 위한 대표적인 슬로건은산천어와 수달의 고장이다. 군수의 명함에도, 화천군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도 이 슬로건이 적혀 있다. 하지만 과거 화천군에는 산천어가 아예 없었다. 수달도 낙동강이나 섬진강 유역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는 동물이다. 화천군은 전문가를 동원해 지역에 사는 수달을간신히찾아냈다.

왜 화천은 고장의 전통적인 명물과 거리가 먼 산천어나 수달을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육성했을까. 내세울 만한 명물이 없기 때문이다. 화천군은 전체 면적(909) 97.6%가 산과 호수다.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땅을 수복한 지역으로 전체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어서 2층 높이의 건물을 지으려 해도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강 유역으로 상수원 보호구역도 많다.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4차선 도로가 하나도 없는 지역이다. 당연히 관광 인프라가 부족했다.

주민 수는 24000명이며 민간인보다 더 많은 군인( 36000)이 거주하고 있다. 옛날에는 낚시꾼들이 많이 몰려왔는데 평화의 댐 건설로 물 흐름이 정체되면서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농산물과 군인 가족들이 가져오는 용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날씨마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얼음이 얼 정도로 혹독했다. 지역 발전 관점에서 본다면 자원, 사람, 인프라, 규제, 자연 환경, 심지어 날씨까지 기댈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화천은 이제 1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산천어축제의 고장으로, 수달연구센터와 UN수달총회를 개최한 수달 연구의 본거지로 부상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교육, 복지, 일자리 등과 관련한 제도적 역량과 시민사회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개발한사회의 질(social quality)’ 조사에서 화천이 86개 군 중 1위에 올랐다. 대부분 농촌 지역이 인구 감소로 고민하고 있지만 화천은 인구가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화천 출신들은춘천 옆에 있는 화천이라고 말하기 귀찮아 그냥 고향을 춘천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화천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정갑철 화천군수 및 군청 관계자 인터뷰와 문헌조사를 통해 화천군의 도전과 응전의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산과 물, 그리고 청정성을 팔자

지난 2002년 취임한 정갑철 군수는 지역 발전 방안을 고민했다. 규제와 입지 여건 때문에 기업 유치도 어렵고 지역 내에 특별한 천연자원도 없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산업 육성도 거의 불가능했다. 유일한 돌파구는 관광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특별한 관광자원이나 문화재가 없었고 인프라도 부족했으며 한번 해보자는 주민들의 인식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농촌 지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물이 전부였다. 게다가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100만명 이상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화천 산천어축제(위)와 타임지 보도 화면(아래)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정 군수는 불리한 지역 여건을 뒤집어 생각해봤다. 각종 규제로 지역 발전은 안됐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로 인해 청정한 자연은 유지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규제 때문에 공장이 들어올 일도 없고 군부대가 유지되는 한 대규모 개발은 거의 불가능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니 빈곤을 타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 군수는청정성을 무기로 관광을 육성해보기로 결심했다. ‘에코 파라다이스란 비전도 구상했다. 청정성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이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큰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청정성을 기반으로 성과를 내려면 가시적인 관광 상품이 필요했다. 화천은낭천(화천의 옛 이름) 얼음축제를 개최했다. 전국에서 가장 빨리 얼음이 언다는 점에 착안해 빙어 낚시와 얼음 축구 같은 스포츠를 즐기게 해주는 축제였다. 빙어도 잘 안 잡혀 서너 마리 정도만 잡으면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재미가 별로 없으니 참여 인원이 1만 명도 안 되는동네 축제에 그쳤다.

새로운 축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군수 선거에서 도와줬던 사람들을 소집했다. “군수로 당선시켰으면 일을 잘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조력자들을 다그쳤다. 초어, 빙어, 산천어, 불꽃 등 몇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중 산천어가 눈에 들어왔다. 화천에는 없지만 산천어가 1급수의 청정한 물에서만 산다는 점이 정 군수의 청정성 및 에코 파라다이스 콘셉트와 맞아 떨어졌다. 산천어는 어감도 화천과 비슷해 정 군수의 호감도를 높였다. 그는 산천어축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주변엔 온통 회의론으로 가득 찼다. 우선 빙어처럼 얼음낚시로는 산천어를 잡을 수 없다는 게 낚시 애호가들의 주장이었다. 실제 낚시꾼들 사이에서 산천어는플라이 낚시로 낚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얼음낚시로 산천어를 잡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정 군수는 이들의 말만 듣고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양식장에서 산천어를 가져다 풀어놓고 얼음낚시로 직접 잡아봤다. 불과 몇 분 만에 찌가 흔들렸고 굵직한 산천어가 꼬리치며 올라왔다. 빙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손맛이 좋았다.

산천어가 얼음낚시로 잘 잡힌다는 사실만으로 축제를 개최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편하게 낚시할 수 있도록 낚시 가게도 축제 현장에 있어야 하고 식사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주민이 없었다. “화천에 살지도 않는 산천어를 갖고 왜 난리냐” “산천어로 사기 친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별수 없이 군수가 발로 뛰었다. 화천읍에 네 개뿐인 낚시 가게에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한 주민에게는 소머리고기를 사주면서 적자가 나면 고기 값을 받지 않을 테니 축제장에 나와 달라고 사정했다.

2003 12일 산천어축제가 시작됐다. 정 군수는 2만 명만 오면 술을 사겠다고 말했다. 축제를 개막하고 초기에는 별 호응이 없었다. 그런데 주말부터 인파가 밀려들었다. 운이 따라줬다. 그해 유독 겨울 날씨가 따뜻해 눈이 오지 않아 인근 지역 겨울 축제가 흥행에 실패했다. 방송사들은 긴급하게 다른 축제 현장을 찾아야 했다. 화천은 겨울이면 읍내의 양 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 얼음이 두껍게 얼기 때문에 축제를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관광에 걸림돌로만 생각했던 추위가 화천을 결정적으로 도와줬다. 지역 축제 관련 콘텐츠 제작에 차질이 생긴 방송사들이 긴급히 화천 산천어축제를 홍보해줬고 주말부터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너무 많은 인파로 휴대전화 불통 현상까지 생겼다. 2만 명이 넘으면 술을 사주겠다던 군수도, 술을 얻어먹을 수 있었던 축제 조직위원회 사람들도 모두 손님맞이에 넋이 나갔다. 낚시 가게는 몇 년 씩 묵었던 재고를 완전히 소진했고 머리고기도 금세 바닥났다. 고기가 부족해 희멀건 국물의 설렁탕을 내오자한우도강탕(韓牛渡江湯)’이란 별칭이 생겼다고 한다. 산천어 회를 떠주던 사람은 몸이 망가지겠다며 비명을 질렀다. 당초 9일 예정이었던 축제는 20여 일로 연장됐다. 나중에 집계해 보니 축제에 참가한 사람은 22만 명을 넘어섰다.

따뜻한 겨울 날씨로 인한 방송사의 홍보라는 우연이 작용했지만 순전히 운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산천어축제는 다른 축제보다 재방문율이 높다. 실제 이듬해 산천어축제 방문객은 58만 명을 넘어섰고 2006년부터는 100만 명을 넘겼다. 방송사의 도움으로는 반짝 흥행에 성공할 수 있지만 축제 자체의 경쟁력이 없었다면 이처럼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산천어축제만의 독특한 재미가 장기적 성공을 가져온 원동력이다.

산천어축제는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겨울에 빙어 낚시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낚시꾼들에게 강렬한 손맛을 제공했다. 또 대부분 낚시꾼들은 남성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낚시를 하는 동안 다른 재미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산천어축제에 참석한 여성과 아이들은 얼음판 위에서 썰매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낚시로 건져 올린 산천어를 즉석에서 요리해서 먹을 수도 있다. 소위낚시 과부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해준 셈이다.

다른 축제와 자연스럽게 차별화된 특징도 있다. 대부분 축제는 봄(전체 축제의 18.5%)이나 가을(45.9%)에 열린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사람을 모으기 힘들기 때문이다. 추위밖에 없는 화천은 추위를 무기로 새해 가장 먼저 열리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경쟁 축제가 많지 않아 수도권 주민들의 겨울 여가 시간을 상대적으로 쉽게 빼앗아올 수 있었다. 역발상을 과감하게 실행해 보니 개발이 어려운 환경과 추위 등은 이제 화천만의 강력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됐다.

화천이 수달 중심지가 된 것도 청정성을 상품화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많은 농촌 지역은 청정성을 무기로 내세운다. 따라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가 필요했다. 한 공무원이 수달은 청정한 지역에서만 살기 때문에에코 파라다이스라는 화천의 비전과 잘 맞는다며 수달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수달이 당장 지역 주민들에게 수익을 안겨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 군수는 화천이 수달을 통해 청정성과 관련한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화천군은 전문가를 불러 조사를 실시했고 지역에 사는 수달을 찾아냈다. 이후 중앙정부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 수달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세계수달총회도 유치했다. 많은 사람들이 화천을 얘기할 때 수달을 떠올린다면 장기적으로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 나온 정책이다. 다른 지역에도 수달이 많이 사는데 화천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 군청 공무원은안동은 고등어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내륙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사람들은 안동하면 간고등어를 떠올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화천군은 

청정성이 단순한 마케팅 구호로 전락하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가 힘들다고 보고 실제 청정한 자연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고 목재과학단지를 만들어 해충방지용 등으로 활용되는 목초액,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목탄 등을 보급해 농촌지역의 친환경성을 높이고 있다. 또 친화경 오리농법을 시작한토고미 마을을 비롯해 청정성에 기반한 다양한 농촌 체험 마을도 운영하고 있다.


사소한 자원에도 상상력과 스토리를 입혀라

산천어축제 하나만으로 지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두껍게 얼지 않으면 이 축제는 그날로 끝난다. 천재지변 등 통제하지 못하는 요인도 있다. 실제 2011년 산천어축제는 구제역 확산으로 개최하지 못했다. 정 군수는 부임 초기부터 다양한 아이템을 찾아냈다. 지역 내에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만한 소재는 많지 않았지만 작은 실마리라도 상상력을 입혀 축제로 구현했다.

쪽배 축제가 대표적이다. 북한강변에 있던 화천은 과거 무동력선을 이용해 서울로 물자를 수송하는 통로 중 하나였다. 옛날에는 모든 한강변에서 무동력선을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화천만의 고유한 자산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 군수는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이란 가사를 떠올리며 쪽배 축제를 생각했다. 물이 많은 화천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데다 여름에 주로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는데 이런 관행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2003년 여름철부터 시작한 쪽배축제는 20만 명의 관람객을 모을 만큼 성장했다. 화천군은 다양한 종류의 무동력선을 타고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했으며 수영, 캠핑, 수상골프장 등도 마련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화천에서는 일부 농가가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었다. 일교차가 큰 기후의 특성상 영양분이 꽉 찬 차진 토마토가 생산되며 가격도 비교적 높다. 전국 대부분 농촌에서 토마토가 생산되기 때문에 화천만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 군수는 절박한 현실에서 작은 자원이라도 활용하자는 생각에 토마토 축제를 고안해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인라 토마티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벌인 일이다. 그래서 초기에 프로그램이 엉성했다. 축제 기간 중 차진 화천산 토마토를 더 많이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2003년 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첫 축제를 열었는데 한 주부가 남편에게 토마토를 던지며태어나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정 군수는 축제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스페인 축제를 벤치마킹하고 토마토 위에서 뒹굴며 금반지를 찾는 등 오락적 요소를 가미했다. 오뚜기 등 토마토 관련 업체와 함께 대형 조형물을 세웠으며 1000명분의 스파게티를 만드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했다. 올해 축제에는 5만 명이 방문했다. 방문객 수는 산천어축제보다 훨씬 적지만 이틀 동안 토마토 등 농산물 25000만 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평화의 댐도 화천에 자리 잡고 있다. 분단의 아픈 상처와 정치 논란 등으로 평화의 댐은 이름과 달리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 활용하기에 따라서 좋은 관광자원이 될 잠재력은 갖고 있었다. 정 군수는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활용 방안을 고민했다



이삼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평화의 댐을 방문하면서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정 군수의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각종 상징물을 설치해 평화의 메카로 포지셔닝하면 관광자원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시적인 상징물을 고민하다 종을 떠올렸다. ‘평화의 메시지가 종소리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한국에 종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상상력과 스토리도 필요했다. 화천군은 살상에 사용된 탄피로 종을 만들자는 역발상의 아이디어를 냈다. 세계의 대표적 분쟁지역에서 탄피를 모으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종소리를 들을 때이스라엘 병사가 팔레스타인 소녀를 향해 발사한 총소리도, 독일 병사가 유태인 학살을 거부하다 총살 당한 탄피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 스토리 라인을 잘 갖추니 실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미국인 목사가 어렵게 입국심사를 통과해 화천까지 탄피를 전달한 사연, 30개 국의 분쟁 국가 탄피를 어렵게 수집한 사연 등이 태어났다.

또 다른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기 위해 화천군은 치열하게 고민했다. 종의 무게는만방에 평화의 메시지가 퍼지라는 의미에서 1만 관(37.5)으로 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 윗부분 비둘기 날개의 반쪽을 떼서 9999관으로 설치했다. 아직 평화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비둘기 날개를 붙여 1만 관짜리 종을 완성한다는 설명도 곁들일 수 있게 됐다. 타종을 원하는 관광객에게는 500원을 받는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의 장학금 마련을 위해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핸드 프린팅과 전쟁 유품 등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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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미령

    -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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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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