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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마케팅

운명은 없다…게임의 룰 이해하면 이긴다

유원상 | 88호 (2011년 9월 Issue 1)
 

게임이론과 마케팅 전략
모든 경쟁은 본질적으로 게임이다. 날로 심화돼가는 극심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자를 제압하고 시장을 장악하며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창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경영 관련 용어들을 보면 경쟁 양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경영 일선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들은 군사 용어나 스포츠 용어에서 차용된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많은 유사점들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은 스포츠, 혹은 전쟁과 큰 차이가 난다. 전쟁이나 스포츠에서는 경쟁자를 패배시키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반면 기업경영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경쟁자와 공멸할 수도, 혹은 전쟁에서 패배하고도 작지 않은 영토를 확보할 수도 있다. 경영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게임의 본질이 아니다. 기업들은 경쟁자들을 파산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사업을 눈부신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심지어 경쟁자들을 초토화시키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는 경쟁자의 눈부신 성공이 반드시 나에게 끔직한 소식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업 성공의 핵심요인은 결점이 없고 논리적이고 창의적이기까지 한 ‘최고’의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 맞는 ‘최적’의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기업들이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게임을 하고 있다면 그 게임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가와는 상관없이 참담한 실패를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최적의 게임을 판별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게임이 나에게 맞지 않는 엉뚱한 게임이라면 현재의 게임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바꿀 수 있다면 어떤 게임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마케팅 전략가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게임이론을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게임이론은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과 경제학자 오스카어 모르겐슈테른(Oskar Morgenstern)이 1944년에 공저한 게임과 경제적 행동이론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게임이론은 경기자(player)들이 상호 의존적인 상황에서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금세기 최고의 과학적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게임이론은 경쟁을 바라보는 하나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한 경기자의 행동에는 반드시 경쟁자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내 행동에 다른 경기자들이 어떤 반작용을 해올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와 내 경쟁자들이 실행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종류의 대응들을 예측해야 한다. 그다음 예측된 모든 대응들을 역방향으로 논리적으로 추적해 올라가면서 분석해야 오늘 내 의사결정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도록 통제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자기중심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게임이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게임이론에서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원칙은 다른 경기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즉 다른 경기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현재의 게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발견한 게임에 단순히 순응하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게임으로 현재의 게임을 바꾸어 나가야 마케팅에서 성공할 수 있다. 다음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영자는 자사에 적합한 최적의 게임을 도출함으로써 현재의 게임에 순응하는 것보다 훨씬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게임의 역설: 모두가 패자인 상호 파괴적 경쟁에서 모두가 승자인 Win-Win 게임으로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상호파괴적인 판촉경쟁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사에서 딜러에게 지급하는 연말 판매수당과 가격할인은 업계 전체의 수익성을 심각하게 잠식했다. 한 기업이 연말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딜러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면 다른 경쟁사들도 이에 따라야 했다. 거기에다 소비자들은 가격 리베이트까지 원하는 실정이었다. 이 상황에서 GM(General Motors)은 한 은행과 손잡고 사용금액의 5%를 1년에 500달러까지, 총 3500달러까지 적립해 GM 상품을 구매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를 출시했다. 이 GM 카드는 카드업계에서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며 폭발적인 가입률을 기록했다. GM은 이 카드를 통해 포드 등 경쟁사들의 미래 고객들을 선점해 묶어두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이 카드의 전략적 목적은 당시 업계의 판매경쟁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데 있었다. 카드 가입자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GM은 그때까지 구매고객에게 지불하던 다른 모든 인센티브들을 중지하고 이를 카드의 혜택으로만 대체하도록 했다. 이 정책은 GM 카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고객군에게는 상대적인 가격인상과 같은 효과로 나타났고 그 결과 경쟁사인 포드에도 가격을 따라서 인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게 됐다. 이에 따라 GM도 포드에 고객을 잃지 않으면서 가격을 인상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이 GM 카드 출시는 GM뿐 아니라 그 경쟁사인 포드에까지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쟁사들은 GM의 이 성공적인 카드 전략을 따라 할 수 없었을까? 포드와 폭스바겐은 각기 GM과 유사한 종류의 카드들을 출시했다. 그렇다면 이 유사 카드들이 GM의 카드 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까? 많은 전략 지침서들은 경쟁자들이 모방할 수 있는 전략은 전략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원칙이 항상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모방할 수 없는 전략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방은 시장이 보낼 수 있는 최상의 찬사라고 볼 수도 있다. 만일 경쟁자들이 GM 프로그램을 광범위하게 모방한다면 GM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사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고객들의 숫자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사들의 모방은 GM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포드나 폭스바겐도 모두 자사의 카드를 출시하면서 모든 기존 판매 인센티브를 카드 혜택으로 대체했다. 그 결과는 양 사의 카드에 가입하지 않은 GM 고객을 포함한 대다수의 차량 구매자들에게 양 사 제품의 가격인상 효과로 나타났다. 이는 GM이 현재 가격으로 자신의 고객을 굳건히 지키거나, 혹은 이들을 대상으로 가격을 얼마간 인상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게 됐음을 시사한다. 결국 3사는 모두 출혈 가격경쟁을 피하고 수익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충성 고객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바라보는 하나의 잘못된 신화는 전쟁에서처럼 자신이 승리하기 위해 경쟁자가 반드시 패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GM의 사례는 기업이 많은 경우에 win-win 전략의 선택을 더 선호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Win-win 전략을 추구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장점들이 있다. 첫째, win-win 전략은 일반적으로 경쟁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새롭고 차별화된 전략적 기회나 구도를 찾을 수 있는 잠재력이 더 크다. 둘째, 경쟁자들을 패배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하지 않으면서 전략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쟁자를 죽이기 위한 가격 인하는 잠시 동안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가져다주지만 곧 경쟁자들의 보복을 유도해 소모적인 가격경쟁에 빠지게 되며 그 결과 종전과 같은 시장점유율로 되돌아가면서 낮은 가격으로 인한 수익성의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GM 카드 이전의 자동차 시장과 같이 결국 모두가 피해를 보는 패자들만의 (lose-lose) 게임이 되는 것이다. 셋째, 경쟁자들의 생존을 보장함으로써 보다 지속 가능한 전략을 구현할 수 있다. 넷째, 경쟁자들의 win-win 전략의 모방은 나에게 이득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재의 게임을 자신에게 적합한 최적의 게임으로 재편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선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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